중림동약현성당 게시판

어우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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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2-12-11 ㅣ No.1104

전 추워지면 얼굴이 빨개져서 싫습니다. 그렇잖아도 붉으래한 얼굴인데 좀 추워지면 벌개져서 항상 술마신 사람같은 느낌을 갖게되어서 그렇습니다. 추워지니까 성당 밖에 있는 시장 할머니들이 제일 고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워놓고는 있지만 그래도 견디기 힘드셨는지 모두다 일찍 일찍 가판을 접고 들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추워지니까 재래시장은 장사도 안되고 추위는 추위대로 늙은 몸을 괴롭히고, 그러니 하늘만 원망하며 일당벌기를 포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선 시장할머니들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 본당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 즉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또 그랬습니다. 새벽 4-5시면 인력시장에는 아저씨들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얻으면 하루 일당을 벌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옆본당에 새벽미사를 대신 드리러 간다던지 아니면 다른 일로 일찍 지하철을 탈 일이 있어서 나가다 보면 일당받을 곳을 못찾은 아저씨들이 집에 들어가기가 그랬는지 해장국집이나 순대국밥집에서 이른 새벽부터 소주를 드시거나 벌써 드시고 나오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그리곤 일을 못찾은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곤 했지요.

 

날씨가 추워지니 가난한 사람들이 더 살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저처럼 그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비켜서 있는 사람들은 면목없어 마추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추위때문에 부둥켜 안는 기쁨을 찾는다면 그나마 좀 견딜만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셨던 분이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수감자들에게 겨울이나 여름이나 모두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겨울이 여름보다 낫다고. 여름에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열기를 후끈 내뿜는 또 하나의 더위 주범이지만 겨울에는 옆사람이 내추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작은 난로이기에 여름에는 짜증을 내게되는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고. 그래서 그분에게는 감옥에서 여름보다 겨울나기가 훨씬 수월했노라고.

 

(상대적인 것만 강조하다보면 절대적인 극복기준을 모호하게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균형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그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나기가 어쩌면 더 인간적이고, 현명하며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는 삶의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워지면 겨우 얼굴 빨개지는 걸 걱정하는 저의 모습이 이런 소리 할 자격도 없게 만들긴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추운건 싫어. 어우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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