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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녀됨(의화됨)은 성화(Sanctification)의 첫 단계(Phase I) 540_ 58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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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6 오후 3:24: [69.138.75.*]

2007-07-17 ㅣ No.761

 
+ 찬미 예수
 
 
게시자 주: 이 글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글은, 가톨릭 교회가 "의화"와 "성화"를 동일시 한 적이 없음을, 되도록 정확한 근거 자료와 함께, 말씀드리고자 작성한 글입니다.
 
 
PART ONE
 
 
 "의화와 성화를 동일시 한다"는 언급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없습니다. -----> [ㅈㅈㅈ(2007/07/16) : 가톨릭에서의 은총은 단순한 하느님의 선물이거나 은사적인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개념을 일부 가지고 있다하여도 "실제로 죄를 용서하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여 이미 언급하였듯 가톨릭의 성화 개념은 의화안에 내포되어 있는 개념이므로 의화와 동일시한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동일시 하지 않기에 (즉, 구분하기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는 의화와 성화 단어의 사용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가톨릭 교리서 index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의화
(라)Iustificatio (영)Justification
회개가 의화에 우선한다 1989;
의화의 정의와 의미 1987,1989,1991-1992;
의화의 결과 1266,1990;
의화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뛰어난 업적 1994;
인간 의화의 근거 402,617,654,1987,1992;
의화의 한 측면,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음 2018;
의화되는 길 1446,1996,2001.

 
성화
(라)Sanctificatio (영)Sanctification
성덕으로 초대 2813;
인간의 성화를 위한 교회 824,827;
가톨릭 교회 밖에서 발견되는 성화의 요소들 819;
주교의 성화 임무 893;
은총은 인간 성화의 원천 1999,2001;
의화는 성화 1989,1995;
(Justification as Sanctification 1989, 1995;) <----- 주: 교황청 제공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index 입니다.)
노동은 인간 성화의 도구 2427;
인간의 성화를 위한 전례 1070;
부모와, 성화 임무에 참여 902;
인간의 성화를 위한 성사 1123,1152,1668,1677;
재속회 회원들의 세상 성화를 위한 헌신 928;
인간의 결정적 성화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540;
시간전례에서 낮과 밤의 성화 1174;
성령의 사명인 교회의 성화 767;
축일의 성화 2187;
혼인성사를 통한 성화 1637;
물건들의 올바른 사용을 통한 성화 1670;
성령의 고유 작용인 성화 703;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2807-2815,2858;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려고 파견되셨다 2818.
 
 참고: 1566년에 가톨릭 보편 교회 최초로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도 "의화(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를 동일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여태까지 가톨릭 보펴 교회에 의하여 발간된 단 두개의 교리서를 들여다 보더라도, "의화"와 "성화"를 "동일시" 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가 아니라) "구분"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파란 색 (가톨릭 교회 교리서 index) 중에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의화를 정의하고 있는 구절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 있습니다: 의화의 정의와 의미 1987,1989,1991-1992;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 index 중에
 
의화는 성화 1989,1995;
 
(Justification as Sanctification, 1989, 1995; <----- 주: 교황청 제공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index 입니다.)
Source: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index/s.htm (클릭하여 직접 확인하십시요)
 
라는 언급도 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이들 검색 결과로 부터, 루터파 개신교측이 말하는 justification 과 가톨릭 교회가  말하는 justification에 어떤 일치하는 바가 있는지에 대하여 밝히는 공동선언문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ㅈㅈㅈ 형제님께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266항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으시는데, 다음의 영문본을 읽어 보시면, 이 구절이 "의화"와 "성화를 동일시 하고 있는 구절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Case 1.
1266 The Most Holy Trinity gives the baptized sanctifying grace, the grace of justification:
     - enabling them to believe in God, to hope in him, and to love him through the theological virtues;
     - giving them the power to live and act under the prompting of the Holy Spirit through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 allowing them to grow in goodness through the moral virtues.
Thus the whole organism of the Christian's supernatural life has its roots in Baptism.

1266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께서는 세례 받은 사람에게 성화하는 은총, 곧 의화하는 은총을 주신다. 이 성화 은총은,

- 향주덕(向主德)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바라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며,
-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고 행동할 수 있게 하며,
- 윤리덕을 통하여 선이 성장하도록 해 준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초자연적인 삶 전체가 세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가 볼 때에, ㅈㅈㅈ 형제님께서는 "the baptized sanctifying grace" = "the grace of justification" 를 정의하고 있는 구절을 읽으시고는, 우리말 번역 오류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의화를 성화와 동일시" 하시는 듯 합니다.
 
즉,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266항은
 
"세례 받는 이에게 주어지는 성화 은총" = "의화 은총"
 
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즉, 세례 받는 경우가 아닐 때에 또 은총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었을 때에) "의화"와 "성화"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Case 2.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89 구절을 말씀하시는데, 여기서는 "내포한다" 라고 번역한 것이 ㅈㅈㅈ 형제님께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듯 합니다.
 
1989 The first work of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is conversion, effecting justification in accordance with Jesus' proclam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Gospel: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Moved by grace, man turns toward God and away from sin, thus accepting forgiveness and righteousness from on high. "Justification is not only the remission of sins, but also the sanctification and renewal of the interior man.
 
즉 영어의 "is"에 해당하는 표현이 우리말로 "내포한다"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1989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인다.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45)
 
여기서 "is" 의미가 문제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는 과일이다. (An apple is a fruit.)
 
라고 하였을 때에, 사과가 여러 종류의 과일들 중의 한 가지 종류의 과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듯이,  
 
이 표현은, "의화가 여러가지의 성화들 중의 하나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기에,
 
우리말 번역에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Case 3.
다음은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5절 입니다.
 
1995 The Holy Spirit is the master of the interior life. By giving birth to the "inner man," justification entails the sanctification of his whole being:
 
entail의 단어 설명 참고 (클릭하십시요)

Main Entry: 1en·tail
Pronunciation: in-'tAl, en-
Function: transitive verb
Etymology: Middle English entailen, entaillen, from 1en- + taile, taille limitation -- more at TAIL
1 : to restrict (property) by limiting the inheritance to the owner's lineal descendants or to a particular class thereof
2 a : to confer, assign, or transmit as if by entail : FASTEN <entailed on them indelible disgrace -- Robert Browning> b : to fix (a person) permanently in some condition or status <entail him and his heirs unto the crown -- Shakespeare>
3 : to impose, involve, or imply as a necessary accompaniment or result entail considerable expense>

위에서, 
entail: 3: to impose, involve, or imply as a necessary accompaniment or result
 
즉,  justification   ==>   sanctification 
 
 "A entails B."   =   "A는 B를 의미한다."
 
다음은 교황청 제공 프랑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995항입니다.
 
1995 L’Esprit Saint est le maître intérieur. En faisant naître l’ "homme intérieur " (Rm 7, 22 ; Ep 3, 16), la justification implique la sanctification de tout l’être :
 
여기서도 또한 영어본과 마찬가지로 "의미하다"의 뜻인 "implique"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는 "의미하다" 는 단어 대신에 "미친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1995 성령은 내적 생활의 스승이시다. “내적 인간”을49) 태어나게 하는 의화는 인간 존재 전체의 성화에까지 미친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로마 6,19.22).

이로부터 가톨릭 교회의 우리말 번역본이 영문본 및 프랑스어본에서의 의미와 같지 않게 번역이 되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위에서도 지적하였지만,
 
역시 우리말 번역에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justificaiton은 교리서 내에서 구체적으로 이 단어의 의미가 정의가 되어 있어 "그 뜻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bound 되어 있으나 (즉, 제한되어 있으나)", sanctification은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아 그 뜻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성화를 가져다 주는 선행의 종류들을 우리가 제한적으로 정할 수 없는 점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긴 말씀 드리는 이유는은 단 한가지 입니다. "의화" 와 "성화"를 동일시 하고는, 가톨릭 측이나 개신교 측이나 간에, 이번의 신앙교리성 발표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관련된 중요 문헌들에서 확인하였듯이, 가톨릭 교회는 justification 과 sanctification 을 여전히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견해도 말씀드리면서, 저 보다 더 유능한 다른 교우님들께서 관련된 자료들을 손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해 드렸으니, 그 분들도 잘 판단하실 것입니다.
 
즉, 제한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성화)제한적으로 정의를 하고 있는 것(의화)과 어떻게 동일시 할 수가 있는지요?
 
다른 한편으로, 교황청 제공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index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Justification as Sanctification 1989, 1995;
 
 
이것을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index 중에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의화는 성화 1989,1995;
 
따라서, 예를 들어,
 
사과는 과일이다. (An apple is a fruit.)
 
라고 하였을 때에, 사과가 여러 종류의 과일들 중의 한 가지 종류의 과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듯이,  
 
이 표현은, "의화가 여러가지의 성화들 중의 하나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화와 성화의 동일시는 전혀 할 수 없고대신에 "의화가 성화에 포함된다" 가 저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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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ㅈ (2007/07/16) : ㅅㅅㅌ (2007/07/16) : 그래서, 의화와 성화의 동일시는 전혀 할 수 없고, 대신에 "의화가 성화에 포함된다" 가 저의 견해입니다. =====> 구분된다면서요??? "구분되다=포함되다"가 같은 말인가요?? 그리고 의화가 성화에 포함된다구요^^??? 혹시 까꾸로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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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index 또한, "의화는 성화이다" 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러나 "성화는 의화이다" 라는 표현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index에도 또 본분 중에도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995항은 "의화가 성화에 포함된다"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확인한 결과입니다.
 
 
위에서, "구분" 이란 단어는, 글자 그대로, "다르다(distinct)"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즉, 같지 않다(not the same)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이들 두 단어의 "개념"에 있어 "일종의 뱡향"이 개입되어 있는 듯 합니다. 즉,
 
(1) 성화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오는 방향"을 가지고 있고,
 
(2). 의화는 "우리들로부터 하느님에게로 가는 방향"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 결과, (2) 는 인간의 머리로써 (즉, 인문 철학적으로) 정의를 할 수가 있으나 (1) 은 정의를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의 견해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위의 양 방향을 생각하는데 있어, 대전제는 "하느님의 은총(God's Grace)"입니다.
  
 
따라서, (개신교 신자가 아닌) 가톨릭 신자라면, 의화와 성화를 동일시 하면 안될 것입니다. 이것은, 위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보셨듯이,
 
(1) 의화는 성화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즉, 의화와 성화 사이에 논리적으로 동치 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의화와 성화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2)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의화는 성화이다"라는 언급은 분명히 하고 있으나, 그러나 그 역인, "성화는 의화이다" 라는 표현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화와 성화를 가톨릭 교회에서 동일시한다"는 표현은 매우 적절치 못한 표현입니다.
 
 
 
 
사실,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는 "의화"라는 단어의 사용이 없었는데, 이것은 "의화"라는 표현 대신에, (성화의 첫 단계로서(Phase I)) "하느님의 자녀"라는 표현을 지난 2,000 여년 동안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전통적 개념인 "느님과 가족 관계(family covenant with God)" 를 가톨릭 교회에서 그대로 이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아래의 PART TWO 에서 언급되고 있는 동방 교회의 신화(神化, deficatio) 개념 또한 이 하느님과의 가족 관계 (family covenant with God) 개념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새 계약 (New Covenant with God)에 의하여, 이제
 
"그리스도인들" = "이스라엘 백성" = "하느님의 백성"
 
인 것입니다. 
 
참고: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PART THREE 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따라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포함하여) 가톨릭 교회의 어떠한 문헌을 학습하더라도, "지금 말씀드린 이 점"을 간과하여서는 결코 아니될 것입니다.
 
 
전통적 가톨릭 성화 과정 = "세례성사에 의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됨(의화)" + "나머지 성사 생활" + "죽은 후 사심판에 따라 필요시 연옥단련 받음"
 
게시자 주: 이상, 굿뉴스 자유게시판  제 112050번 글 및  한줄답변 발췌 모음 및 내용 추가 끝 (제 112007번 글의 한줄답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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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TWO
 
출처: 굿뉴스 자유 게시판 제 112063 게시글
게시자: 이인호 형제님
(주: 며칠간 게시 후, 게시자에 의하여 삭제 되었음)
 

가톨릭을 대표하여 2006년 7월 23일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개최된 학술 심포지엄 “칭의론 (의화론) 공동선언(1999)에 관한 연구”에서 주제 발표 되었던 논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논문작성과 발표는 대신학교 교학부처장 박준양신부님이시며

신부님은 10년간 로마에 유학,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를 받으셨습니다.

참고로 박준양 교수신부님은 이탈리아에서 생활하셨으므로 이탈리아어는 논외이고, 라틴어와 그리이스어는 물론 독어와 불어에 능하십니다. 학위논문은 영어로 쓰셨음도 알려드립니다. 

이견이 있으신 부분 정리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1. 용어상의 개념 정립 - 義化 , 成化 , 神化 

가톨릭 신학과 교의 (敎義 Dogmma) 에서 말하는 의화란 무엇인가?

1997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라틴어 표준판이 승인됨으로서 1986년 부터의 작업을공식적으로 완성하여 발표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hecbismus Catholicae Ecclesiae>는 단순한 교리서라기 보다는 사실상 가톨릭교회의 거의 모든 신학적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요약, 종합하고 있는 공식적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교리서에는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론적관점에서 ‘의화’의 개념을 정의 하고 있다. 

성령의 은총에는 우리를 의화하는 힘이 있다. 곧,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 (로마6,3~4 참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로마3,22 참조) 누리게 해 준다.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고, 새 생명으로 나타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 

교리서 1987~1988항의 위 텍스트는 의화가 과연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정의 하고 있으며, 이후 1989항 이하에서는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는 의화의 단계와 과정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의화의 시작에 이어서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고

둘째, 이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는 죄에서 인간을 풀어 주고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셋째, 이렇듯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베풀어 주신 용서”가 이루어지면서본연의 의화가 뒤따른다. 즉, 의화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의화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고치유해준다.”

넷째, 의화의 결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고, 우리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게 된다.” 

의화義化” (justificatio)가 “내적 생활의 스승”이신 성령의 인도로써 “내적 인간”(로마 7,22; 에페3,16 참조)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면,

성화聖化” (sactificatio)란 인간 존재 전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성장과 발전을암시하는 개념이다. (마태5,48) 

또, ‘의화’가 인간이 내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용어라면, ‘성화’는 이미 의화한 처지나 상태(habitus)를 지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의화은총’ (義化恩寵, gratia justificationis)이라는 표현이 의화의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 사용되고 있다면

성화은총’ (聖化恩寵, gratia sanctificans)은 ‘주입注入된 상태’(habitus infusus)로서 인간을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 안에 머물게 한다는 의미에서 ‘상존은총 (常存恩寵, gratia habitualis)이라고도 지칭된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의 동방 신학에서는 ‘의화’나 ‘성화’ 개념과는 달리 ‘신화’(神化, deficatio)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동방 신학에서는 인간이 곧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라는 기본 전제(창세 1,26; 27 참조)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에 의한 인간의 구원 역사를 하나의 거대한 교육 과정으로 이해한다. 

즉, 죄악으로 인해 훼손된 인간의 모습을 구원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닮아감에로 이끌어 인간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모상’을 재건하는 것이 바로 그 상승적 교육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적 과정의 목표는 바로 인간의 ‘신화’이다. 

이러한 ‘신화적’ 구원관과 은총 신학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인간이 하느님이 되도록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Deus homo est ut homo fieret Deus)라는 유명한 명제이다. 리옹(Lyon)의 이레네오 (Ireneus, 130/140? ~202) 이래 동방과 서방의 여러 교부들에 의해서 거듭 반복, 인용되었던 이 명제는 인간 의화 혹은 성화에 관한 초세기의 신학적 이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신화은총’(神化恩寵, gratia deficans)이란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서, 이는 ‘성화은총’의 또다른 표현인 것이다. 

이상은 개념에 대한 내용일 뿐이므로 더 자세한 내용은 신학과 사상(Catholic Theology & Thought) 제58호 2006/겨울 가톨릭대학 출판부 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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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THREE

 

다음은 현재 집필 중인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위의 내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옮겨 왔으니,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 2 독서 - 로마서 5:1-2, 5-8
  (사순절 제 3 주일 - 가해)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서간문은 바오로(Paul)가 세 번째 전교 여행 중에 바오로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기원후 55-56년). 이것은 아마도 코린토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바오로는 히브루인 바리사이(Hebrewpharisee)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려고 시도하는 로마 법정(Roman court)에서 요구하는 법학 교육을 사도 바오로가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가족 계약(family covenant with God)라는 개념(concept) 안에서 교육을 받았다.

즉, 사도 바오로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물의 거래와 같은 수평적 물적관계 계약인 하느님과 로마법적 계약(Roman contract with God)이라는 개념 안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관계를 뛰어넘는 수직적 혈족관계 계약인 하느님과의 가족 계약(family covenant with God)이라는 개념 안에서 교육을 받았다.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하느님과의 가족 계약(family covenant with God)의 결과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을 닮은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들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아담(Adam)과  계약(covenant)을 맺으셨고, 하느님께서는 노아Noah)와 가족 계약을 맺으셨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부족 계약을 맺으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12 부족을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만드는 계약을 모세(Moses)와 맺으셨고, 하느님께서는 이 민족 공동체를 하나의 왕국으로 만드는 계약을 다윗(David)과 맺으셨으며, 마지막으로, 우리들 모두를 하느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 만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친히 오시어 우리들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계약을 맺음으로써 (New Covenant with God through Jesus the Christ),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든 민족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가족, 즉 가톨릭 가족(Catholic family, 그리이스어로 카톨리코스(katholikos, καθολι???))이 되었다. 성부(Father), 성자(Son), 교황님(Pope), 신부(Father), 수녀(Sister), 교형자매(Brothers and Sisters)들이라는 호칭들 모두는 하느님과의 가족 계약 안에서 불리는 호칭들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동참하기(participate) 위하여, 구원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화 없이 생명력 있게 잘 보존하여 전해 주고 있는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 즉 성전(Sacred Tradition)에 따라, 우리는 성화은총(聖化恩寵, sanctifying grace, gratia sanctificans) (즉, 상존은총(常存恩寵, habitual grace, gratia habitualis) 혹은 신화은총(神化恩寵, gratia deficans))의 결과 세례성사(Sacrament of baptism)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children of God)들이 되고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첫 단계(Phase I), 성체성사(Sacrament of Eucharist)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게 되며, 조력은총(助力恩寵, actual grace, gratia actualis)으로 불리는 성체성사 및 나머지 성사(Sacraments) 및 준성사들의 도움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성덕聖德, (sanctity, sanctitas)을 쌓고 완덕(完德, spiritual perfection)을 추구하다가, 사후에는 삼위일체(Trinity, Trinitas)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사심판(私審判, particular judgment, judicium particulare)에 따라 (필요시 남은 죄와 죄의 흔적, 즉 잠벌의 정화(purification)를 위하여 연옥(purgatory)을 거쳐) 비로소 떠나왔던 본향인 천상 교회(Heavenly Church, 즉 천당)로 불림을 받아, 완전히 성화(completely sanctified)된 상태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과 일치(unity)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 즉 성전(Sacred Tradition)의 한 유산인 성스러운 저자(sacred writer)의 견해(eyes)과 이해(understanding)를 통하여 성경을 해석하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참고: 가해 연중 제 22주일 제 2독서 해설 참조]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Covenantal_Theology_(Roman_Catholic)]


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로마서의 앞 부분은, 신앙(faith)이란 단순히 믿는 것(believing)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약 충실하심에 대하여 확신하기 때문에 그러한 믿음을 실천하는(live out =act out, practice)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적 축복을 베풀기 위한) 하느님의 아브라함과의 계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사실, 이 로마서(1:5 및 16:26)에 있어 성인 바오로(Saint Paul)에 의한 “믿음” 단어의 처음과 마지막 사용들에 있어, 그가 인용한 것은, “믿음만으로”가 아니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44항에 정의되어 있는 “신앙의 복종(obedience of faith)으로”, 즉 “자신이 들은 하느님 말씀에 기꺼이 복종하는 것으로”이었는데, 이것은 로마서 서간문 전체에 걸쳐 “믿음” 단어의 사용을 위한 문장의 전후 관계를 설정한다. 성경 전체에 걸쳐 “믿음만으로” 라는 표현이 단 한번 사용된 곳은 야고보서 2:24인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See how a persion is justified by works and not by faith alone)."


[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144항에 정의된 “신앙의 복종(obedience of faith)”, 즉 “자신이 들은 하느님 말씀에 기꺼이 복종”: 신앙의 복종(‘복종하다’라는 라틴어 oboedire는 ob[에게]와 audire[듣다]의 합성어이다)이란,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기꺼이 복종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성서는 아브라함을 이러한 복종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를 가장 완전하게 실현하셨다.

출처: http://222.109.34.30/pds/bishop_docu/CATECHISMUS/CATECHISMUS_01_1.htm#i142]


“아무도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못하게 하자: ‘만약에 의화(justification)가 믿음으로부터 온다면, 어떻게 의화가 거저 주어질까? 만약에 믿음(faith)이 마땅히 의화(justification)를 받을 만하다면, 왜 이것은 지불된(paid) 것이라기 보다는 주어진(given) 것일까?’ 열심신자들이 그러한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자, 왜냐하면, 만약에 열심신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따라서 나는 마땅히 의화를 받을 만하다,’ 그러면 그에게 다음과 같은 해답이 주어질 것이다: ‘그대가 받지 않았던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러므로, 만약에 믿음(faith)이 간청하여(entreats) 의화(justification)를 받았다면, 믿음의 정도에 따라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데에 준하여(according as), 뒤를 따르기는 하되 앞서지는 아니하고, 함께 하기는 하되 이끌지(lead)는 아니하는 의지(will)와 함께, 인간의 어떤 것도 하느님의 은총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은총 자체가 당연히 증가를 얻을 만하고(grace itself merits increase), 그리고 이러한 증가는 당연히 완미를 얻을 만하다(the increase merits perfection).” [힙포의 성인 아우구스틴 (Saint Augustine of Hippo (기원후 417), Letter to Paulinus of Nola, 186,3,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예수님의 완전하고 무결한 희생 때문에, 하늘은 이제 열리었고 우리는 이미 노예들이나 종들이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로마서 14:19를 보라.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유산을 가지고 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이전에는, 어떠한 사람도 의화되지 않았고 또 어떠한 사람도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 윤리적으로 정의롭게 얼굴을 나타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여 당신의 아들이 죽는 것을 허락하는데, 이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이 열리어 우리가 들어가게 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믿지 않는 자들과 하느님의 적들을 위하여 적기에 당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다면 ... 만약에 우리가 그를 믿는다면 얼마만큼이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도움으로 보호해 주실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영광과 삶을 획득할 수 있게 하려고 우리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적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면, 당신의 친구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인지를 단지 생각하라!” [(히브리서를 제외한) 사도 바오로(St. Paul)의 전체 서간문에 대한 (익명) 주석자 (The Ambrosiaster) (기원후 366-384), Commentaries on Thirteen Pauline Epistles] [참고: http://www.newadvent.org/cathen/01406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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