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06년 7월 30일 세나뚜스 월례회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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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7-31 ㅣ No.36

 훈화

(세나뚜스 월례회의-2006년 7월 30일) 윤병길 세례자요한 지도신부

찬미 예수님,

우리는 오늘 영적 독서를 통해 중요한 진리의 말씀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는 말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세나뚜스 지도신부를 하면서 때로는 이상한 질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이것이 레지오 활동이 됩니까? 안 됩니까?”

“신부님, 우리 신부님은 레지오에 관심이 없어요.”

“방문 활동을 하려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요.”


이런 류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왜 레지오 단원들이 이런 질문을 할까?


우리는 하느님의 도구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려고 레지오 단원으로서 열심히 기도와 활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때때로 보람을 느끼며 만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의 나약함을 자극하는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왜 레지오를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간부직책만 끝나면 레지오를 그만둘까?’ 이런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엄청난 악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으며, 엄청난 은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삶의 매 순간순간이 이런 갈림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영적 독서는 이런 갈림길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나약한 우리의 삶에서 어느 한 순간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자기의 입장에서만 보려고 하기에 주님의 손길이 언제 어느 순간에 나에게 다가왔는지를 모르고 놓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좌신부였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아이들이 잘 따르지 않을까?’

‘나는 잘 준비하였는데 왜 교사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저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나는 항상 칭찬을 받아야 하고, 나는 항상 잘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잘 될 거야.’ 등등의 착각에 빠져서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를 드리던 제 등 뒤에 십자가가 느껴졌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칭찬과 호의에 현혹되어 자기 잘난 줄로만 생각했던 저의 모습이 부끄럽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초라한 모습 뒤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참으로 불쌍한 듯이 저를 바라보시는 것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하느님의 완전함과 거룩함에 일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착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착각 속에 머물지 말고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이 착각의 허물을 벗고 하느님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의 주님 앞에서 부끄럽고 초라한 우리의 모습을 올바로 바라봅시다.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겸손된 모습으로 살았던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하고 고백했던 시편 저자와 같이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우리 자신을 봉헌합시다.

우리 안에 흘러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감사와 찬미의 기도로 응답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참된 도구로 다시 일어서는 레지오 단원이 됩시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아멘.

 

 

영적 독서 : 예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적음(준주성범2권11장)


1.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천국은 많이 찾으나, 그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적다. 그의 위안을 받으려는 자는 많으나, 어려움을 참아 가려는 자는 적다. 예수의 제자들처럼 그와 같이 음식을 나누려는 자는 많으나, 그와 같이 재를 지키려는 사람은 적다. 누구나 다 그와 같이 즐기려 하지만, 그를 위해서 무엇을 참아 견디려고 아니한다. 예수를 따라 떡은 나누어 먹으려 하지만, 그 수난의 잔을 마시려는 사람은 적다. 그가 하신 업적은 존경하는 자 많지만, 그 십자가의 모욕을 따르려는 자는 적다. 많은 사람은 어려운 일이 없을 때까지는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어떤 위안을 받을 때까지는 그를 찬양하나, 예수께서 잠시 숨어 그들을 떠나시면 그들은 혹은 원망하고 혹은 실망에 떨어진다.

2. 그러나 예수를 사랑하되 그를 위해서 사랑하고 무슨 위안이나 받으려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렵고 고통이 심한 때라도 큰 위안을 받는 때나 다름없이 예수를 찬양한다. 예수께서 그에게 전혀 위로를 주시지 아니해도 그는 예수를 언제나 찬양하고 그에게 언제나 감사한다.

3. 오! 예수를 사랑함이 자기 유익이나 자기 사랑에 기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깨끗하랴. 사랑에서 언제나 위안만 찾으면 그것은 품팔이하는 격이 아니냐. 언제나 자기 편리나 유익만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아무 보수 없이 하느님을 섬기려는 사람을 어디서 만나보겠는가.

4. 정말 모든 것을 다 버렸다 할 만큼 그렇게 영혼사정에 착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말 마음으로 가난하고 조물에 애착을 끊어버린 사람을 어디서 만나 보겠는가. 그 말씀은 멀리서 들려오고 먼 해안에서 불려온다. 사람이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내놓아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신극기를 많이 해도 이것은 적은 일이다. 사통팔달의 지식이 있어도 아직 멀었다. 덕이 많고 신심이 두터워도 또 하나 요구되는 바가 있으니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것을 떠난 연후에 또 자신을 떠나고, 자신에서 온전히 이탈되어 자기 사랑에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아니하는 것이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 하고도 자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함이다.

5. 비록 무슨 장한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을 가지고 장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자기는 쓸데없는 종이라고 자백하라.

“너는 네가 명을 받은 모든 일을 다 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루가 17,10)라고 하신 진리의 말씀과 같이 하라. 그러면 그는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것이고, 시편 말씀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독하고 가난한 자로소이다.”(시편 25,16) 그와 같이 자기와 모든 것을 버릴 줄 알고 자기를 꼴찌에 두려한다면 그처럼 부요한 자가 없고, 세력 있고 자유로운 자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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