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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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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4-28 ㅣ No.158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31)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나자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난다. (사도 5,12-16)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13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 가운데에 끼어들지 못하였다.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14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
15 그리하여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16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는데, 그들도 모두 병이 나았다.


요한 사도는 파트모스섬에서, 그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묵시1,9-11ㄴ.12-13.17-19)
9 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10 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1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
12 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
13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17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나타나시어,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하시며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다. (요한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제1독서 (사도5,12-16)

 

"그리하여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15)

 

 

'그리하여'에 해당하는 본문은 '호스테 카이'(hoste kai)이다.

접속사 '호스테'(hoste)'그러므로'라는 뜻으로

본문에서는 결과를 나타내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즉 '호스테'사도들이 행한 표징과 이적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떠한 반응과 결과를 나타내게 했는지를 결론적으로 진술하고 있음을 가리켜 준다.

 

 

여기서의 '호스테'는 앞의 사도행전 5장 12절과 13절의 내용과 연결하여

사도들의 표징과 이적이 많이 일어났고, 이것은 백성 가운데

사도행전 5장 15절과 16절의 결과를 낳게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사도들이 행한 표징과 이적으로 말미암아 심지어 사람들이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 지나가도 치유될 것으로 믿고 나올 정도가 되었고,

실제로 사도행전 5장 16절에서는 병든 자들이 모두 나음을 얻은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것은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의 역사(役事)의 위대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베드로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과 유사한 경우를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이나(마태9,20-22 ;마르코6,56) 사도 바오로의 수건이나

앞치마를 통해서 병이 낫고 악령들이 물러나는 경우(사도19,11.12)에서도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의 경우 그 사람과 관련된

사소한 것을 통하여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의 이러한 소박한 믿음을 실제로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할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의 그림자나 수건등을 통해서라도 병을 치유받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한편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병자들이 제대로 된 의사들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살았는지를 암시한다.

 

별다른 희망이 없었던 그들 앞에 치유자가 나타나자

그들은 지금 치유받지 않으면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복음(요한20,19~31)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28~29)

 

요한 복음 1장 34절에서 세례자 요한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라고 한 외침이나, 요한 복음 1장 49절에서 나타나엘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한

고백과 함께 요한 복음 2장 28절'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담겨진 신앙 고백이다.

 

특히 요한 복음 2장 28절은 예수님의 부활과 관계된 문맥에서 고백된 내용이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낸다.

 

요한 복음사가는 요한 복음 1장 1절에서 본서의 첫 시작'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고 하였고, 본서의 종결부

요한 복음 20장 28절에 와서는 '저의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이것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개개인의 구원자가 되셨다는 요한 복음의 강조점을 드러낸다.

 

한편, 요한 복음 20장 28절에서는 '저의'에 해당하는 '무'(mou; my)라는

단수 소유 대명사가 두 번이나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전에는 토마가 예수님께 대하여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분이 하느님의 진정한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체험하여 깨달았음을 보여 준다.

 

특히 원문에는 '~이시며''~이십니다'로 번역되는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희랍어 '에이미'(eimi) 동사가 생략되었고, 각 단어들 앞에 각각 관사 '호'(ho)

사용되어서 예수님의 유일성과 신성(神性; 천주성)이 더욱 강조된다.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런 뉘앙스를 살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My Lord and my God)라고 번역했다.

 

토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보게 되자 창자국와 못자국을 직접 만져 볼

필요도 없이(요한20,28) 그의 모든 의심들이  눈 녹듯이 모두 사라졌고,

이 고백의 말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잘 정리된 신앙 고백이라기보다는 놀라움에 찬 탄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 토마가 이전에 자신이 함께했던 예수님과

부활하신 주님을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의심많은 토마와 같은 사람에게도 능력을 발휘하는

영혼의 부활이요, 육체의 부활이며,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부활이었다.

 

토마가 체험한 이 부활의 능력은 그를 의심많은 제자에서 참된 신앙을

고백하며 결단하는 제자로 바꾸어 놓았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29)

 

요한 복음 20장 27절에서는 '믿음 없는 자'('아피스토스'; apistos)

'믿는 자'('피스토스'; pistos)가 서로 대조되었고, 요한 복음 20장 29절에서는

토마로 대표되는 '보고 믿는 자들'('헤오라카스 ~ 페피스튜카스';

'heorakas ~pepisteukas)'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호이 메 이돈테스

카이 피스튜산테스'; 'hoi me idontes kai pisteusantes)이 서로 대조되었다.

 

첫번째의 대조는 불신앙을 버리고 신앙을 촉구하는 요한 복음서의

기록 목적(요한20,31)을 반영한다.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의 선택 당시 등장 인물들에게 부과된 선택이었을

뿐만 아니라 요한 복음서의 일차 독자들인 초대 교회 신도들이나, 오늘날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에게도 계속해서 던져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그러나 두번째 대조성경의 어떤 인물들도 당시까지 다다르지 못한,

수준 높은 신앙에 대한 촉구이다.

 

토마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조차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그들의 눈으로

보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지 못했었다

(루카24,10.11).

 

그러나 예수님의 승천 이후의 시대에 태어나 예수님을 받아들인 자들은

모두 보지 않고서도 믿는 자들이다.

 

코린토 1서 15장 5절과 6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은 모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서야 믿은 자들이다.


얼핏 보기에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더 복있는 사람들인 것 같지만,

요한 복음 20장 29절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더 복된 사람들이다.

 

'믿음 없는 자'(apistos)보다는 보고서라도 믿은 자들이 더 복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들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고, 또한 지금도 직접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이 부활의 진리를 믿는, 예수님 승천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더 복된 사람들인 것이다(로마10,9).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믿음으로 이끕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과 토마스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층 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 층 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모든 문이 닫혀 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그들 가운데에 서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삶의 물질적인 것들에 좌우되지 않으십니다. 굳게 닫힌 문들은 그분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원하시면 어디든지 가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와 기쁨과 선교 열정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이런 평화는 불안과 초조함과 두려움에 싸인 제자들에게 매우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샘인 당신의 상처, 곧 두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분의 상처는 모든 악과 장애를 물리치신 무한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부활 시기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부활 팔일의 전례는 복음 환호송으로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117〕,24)를 반복해서 외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 부활의 기쁨보다 더 큰 이유가 따로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교 열정도 불어넣어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특별한 능력의 시작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전하고자 주님과 그분의 부활을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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