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및 기사모음

전 바티칸 담당기자가 본 요한 바오로 2세

인쇄

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5-04-05 ㅣ No.66

전 바티칸 담당기자가 본 요한 바오로 2세
[중앙일보 2005.04.05 08:32:35]

[중앙일보 한경환] "카롤룸(카롤의 라틴어식 발음) 카르디널룸(추기경) …."1978년 10월, 즉위 한달여 만에 서거한 요한 바오로 1세를 이을 차기 교황이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교황청 담당기자들은 아연실색했다. 팔순이 넘어 현직에서 이미 은퇴한 이탈리아의 카롤로 콘팔리오네니 추기경이 선출된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기자단에선 ''오 노''(Oh, no)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잠시 뒤 "…카롤 보이티와가 교황에 선출됐다"는 교황청 발표가 나왔다.

AP통신 로마주재 특파원으로 교황청을 담당하면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구삼열(62.현 아리랑 TV 사장)씨는 4일 이같이 회고했다. 구 사장을 포함한 기자들은 긴급기사 송고를 위해 차기 교황 후보 수십 명의 인적사항을 미리 준비해 놨지만 카롤 보이티와(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의 것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잘 들어보지도 못했던 추기경 이름이었다. ''보이티와가 누구냐''고 교황청 관리들에게 급하게 물어서 기사를 쓸 정도였다. 뜻밖에 폴란드출신인 데다 바르샤바도 아닌 크라코프 대주교라 더욱 놀랐다."보이티와가 선출된 뒤 많은 이탈리아인의 얼굴에는 실망의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교황을 배출했던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이티와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와 군중에게 "우리의 이탈리아어로 말하자"며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인사말을 하자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고 구 사장은 회상했다.

구 사장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이을 265대 교황에도 이런 이변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예상했다. "이탈리아 출신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있지만 아무도 알 수 없으며 결국 ''성령이 이끄는 대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3세계 출신 추기경이 다음 교황이 되려면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적어도 이탈리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교황은 이탈리아 로마의 주교직도 겸하고 있다. 여러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추기경이 유리하다는 전망이다. 구 사장은 "요한 바오로 2세는 모국어인 폴란드어를 비롯해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어 등 12개 국어를 구사했다. 그중에서도 영어는 좀 못하는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구 사장은 78~87년 바티칸을 출입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일거수 일투족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전의 교황들은 여성적이었다. 스키를 즐기고 산악인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만큼 남성적이고 활기에 넘친 교황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즉위 당시 8억 명이었던 전 세계 가톨릭 인구를 11억 명으로 늘린 것은 요한 바오로 2세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사양 종교라는 느낌을 주었던 가톨릭에 유럽과 제3세계의 젊은이들이 다시 모여들게 한 것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인적인 매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교리에는 그 누구보다 보수적이었지만 사회정의에서만큼은 가장 리버럴한 교황이었다"고 구 사장은 평가했다. 로마와 유럽의 가톨릭을 전 세계의 가톨릭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무엇보다 반(半)신격화된 교황을 버리고 따스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역대 교황들은 절대왕정 시대의 제왕들처럼 자신을 말할 때 ''We''(우리)라고 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일반인과 같이 ''I''(나)라고 말해 일반과의 거리를 좁혔다"고 평가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이전의 교황들이 세계를 순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바오로 6세가 유엔과 미국을 방문한 정도였다. "관습상 교황이 ''배고프다''거나 ''졸립다''는 말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순방국에서 ''졸려 죽겠으니 자자''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며 요한 바오로 2세의 진솔하고 서민적인 면모를 전했다. 순방국에 도착하면 ''땅에 입맞춤''하는 것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전매특허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수요일 일반인 알현 시간에 수천 명의 손을 잡았다. "1~2초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의례적인 악수가 아니라 강렬한 눈빛으로 온 마음을 줬다"고 구 사장은 회고했다. 누구라도 한 번만 그의 손을 잡으면 그 감격을 영원히 간직하려 했다는 것이다. 구 사장은 "교황을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자신을 저격한 터키인을 면회한 자리에서 서로 마주 보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할 때였다"고 회고했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중앙일보 & Joins.com-



22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