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평의회[Con] 2006년 7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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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6-12 ㅣ No.35

 

Allocutio By Rev. Fr. Bede McGregor O.P.

Spiritual Director to Concilium


내 안에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


이달 꼰칠리움 회합은 부활 8부 축일 중에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 부활절에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우리 각자가 서로 알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해야 할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레지오 단원 모두는 기쁨과 희망, 무엇보다 감사로 가득 차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진실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나간 시절 우리들이 받은 세례를 새롭게 되새기면서 이 세례에 관하여 깊이 묵상해 봅니다. 세례는 정녕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수 있게 하여주는 도구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부분입니다.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헌신은 우리들이 세례로써 성별화된 삶을 보다 완전하게 살 수 있게 하여주는 가장 귀중한 방법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리아는 우리들이 그분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로서의 삶을 보다 완전하게 살도록 이끄십니다.


세례식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합니다. 남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아에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몸소 이것을 실행하셨으며 세례예식 때에 우리들은 그분의 그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우리들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들이 그분에게 한 없이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선포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몸소 베푸시는 것이며, 한이 없고 변하거나 멈출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깊이 뿌리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절대적으로 ‘모든 사랑 중에서 제일의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혹은 그분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도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베네딕토 교황 성하의 첫 번째 회칙은 우리들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다시 깨우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그러나 세례와 파스카의 신비에는 더욱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우리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생활하시게 되며 이와 같은 깊은 친밀함으로 우리들은 그분과 결합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신비체의 교의(敎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우리들에게 비유로 하신 말씀처럼 포도나무가 그 가지와 결합되듯 우리는 그분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레지오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교의와 실재성(實在性)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신비체의 교의가 레지오의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비체의 위대한 설교자이며 신학자인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바오로 성인의 위대한 외침을 더욱 간명하게 말한다면 “나의 삶이 곧 그리스도이다”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의 실재성과 진실성에 관하여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랭크 더프, 에델 퀸, 알피 램과 그밖에 훌륭한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관심은 오직 이 묵상과 기도뿐이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可視的)인 사회, 즉 건물 등 구조물들이 있거나 준수해야 할 법률 등 질서체계를 갖추거나 그 안에 이런저런 단체들이 있고 고유한 성직을 맡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동체 같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당신과 내 안에 또 교회의 모든 신자들 안에서 살고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분 입니다. 교회는 우리 마음속의 중심이 되는 진리이며 우리들 마음의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우리들 가운데 우리들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레지오의 창설자 프랭크 더프가 그토록 끊임없이 설명한 이 교의(敎義)를  이용한 사례(事例) 하나를 들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교회의 봉사에는 당신 안의 가장 좋은 것들을 우리들이 이용하는 문제만이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혹여 잃어버릴지도 모를 훨씬 더 귀중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맡길 때에’ 그분은 당신이 드리는 것을 모두 받습니다. 주님께서 거두시는 당신의 봉헌 안에 그분이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맡기는 그 봉헌으로 자신을 우리들에게 드러내십니다. 당신의 봉헌을 그분의 목적에 합당하게 신성적(神性的)으로 이용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한 ‘신성적’이란 말은 ‘우리들의 봉헌을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봉헌을 단순히 이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봉헌은 아무리 잘 보아도 미약할 뿐입니다. 나는 그 봉헌 안에 주님께서 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역사(役事)하시는 분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입니다. 페이버 신부님(Fr. Faber)의 말씀을 빌린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과 당신(우리들)을 함께 섞어버리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작은 봉헌, 작은 노고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큰 것들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선의의 보통 사람들은 그분의 권능에 그들이 잡혀 있으며 그분의 가장 귀중한 목적에 합당하게 그들이 봉헌됨을 깨닫고는 놀라워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운명은 그들의 활동에 달려 있게 마련이며 이것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공통된 생각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레지오 단원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사도직은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 신비체의 지체들인 우리들 안에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분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무한하신 권능과 사랑을 우리들의 미약한 봉헌에 보태시며 우리들은 다만 우리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몸인 교회, 즉 우리들에게 의지하십니다.


신비체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이렇게 기도, 전구합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가톨릭 교회의 지체들임을 날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측량할 수 없는 큰 선물임을 알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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