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사순 제5주일]간음 녀 (요한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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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4-07 ㅣ No.155

 


 

[사순 제5주일]간음 녀 (요한 8,1-11)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새 일을 시작하려 하시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리라고 한다. (이사 43,16-21)
16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17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18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20 들짐승들과 승냥이와 타조들도 나를 공경하리니  내가 선택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내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고 한다. (필리 3,8-14)
형제 여러분, 나는 8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14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온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시고는 그 여자를 단죄하지 않고 보내신다. (요한 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사순 제5주일 제1독서(이사43,16-21)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18-19)


18-21절까지는 하느님께서 선택된 백성을 위해 베푸실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예고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느님께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며, 과거의 기억을 버리라는 명령이다.


'예전의 일들' 해당하는 '리쇼노트'(rishonoth; the former things)는 복수형 명사로서 과거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Forget the former things, do not dwell on the past.

 

 

그렇다면 '예전의 일들'이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탈출>이란 주제로 시작되는 앞의 16-17절의 출애굽 당시의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 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꺼져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16-17)


즉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구원하시고 이집트의 장자를 죽이신 사건을 비롯해 홍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고, 이집트 군대를 수장시켜 버린 사건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실 대대로 기억해야 할 일이다(탈출 12,42; 13,10).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기념비적인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우리는 이것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번째는 하느님께서 과거의 출애굽 당시에 행하셨던 구원의 역사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구원하여 주실 것임을 나타낸다.

두번째는 과거의 그 일보다 더 위대한 일, 즉 그 기적을 능가하는 기적 일으킬 것임을 나타낸다.

세번째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기에  더 이상 과거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는 문장은 반어적 수사 의문문이다.  여기에서 '그것'은 앞의 '새 일' 지칭한다. 따라서 이는 새 일 반드시 일어날 것이며,하느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친히 두 눈으로 목격하고, 모두가 그 새 일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 지니고 있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미완료 형태의 동사로서,  장래에 알게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않는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질타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본다.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19)

이것은 출애굽 사건과 다른 방식으로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실 것을 보여준다. '광야에 길을'이란 표현은 16절의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 길을 내신' 이라는 표현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끄시기 위해 홍해를 가르고 길을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에서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기 위해 그 가운데에 있는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바빌론에서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구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막에 강을'이란 표현은 바빌론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1)

하느님께서 왜 그의 백성을 이방 압제자들의 손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그들을 해방하여 고국으로 귀환하게 하시는지, 그 근본 이유를 말해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하느님만을 위한 존재이며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에 해당하는 '암 주'(am zu)' 이 백성은'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문장 성분상 목적어임에도 불구하고 문두에 위치하여 특별히 강조되어 있는데, 많은 백성과 민족 중에서 바로 이 백성만큼은 특별히 하느님 당신을 위해서 만드셨다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1)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에 대해 기대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찬양을 이방 모든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만방에 선포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 목적 바로 이것이다.

 

 

 


 

사순 제5주일 복음 (요한8,1-11)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 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창세3,8~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6)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갑자기 등장한 예수님의 존재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를 질책하고 단죄하였으며, 안식일 규정까지 어긴 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갖지 못한 이적을 행하는 권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과 사회적 입지를 흔들어 놓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성전 경비병들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요한7,45).

따라서 이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로 이루어진 유능한 이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파멸케 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이것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올가미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8,6ㄱ).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기에 이러한 계략은 결국 하느님을 시험하는 불경을 저지른 꼴이 된 것이다.  

영적 무지와 종교적 편견으로 가득찬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행하겠다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요한 복음 8장 6절의 '쓰기 시작하였다'에 해당하는 '카테그라펜'(kategraphen; started to write)'카타그라포'(katagrapho)미완료 시제로서동작의 개시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쓰거나 그리기 시작하였다'는 뜻이 된다. 이 동사는 '쓰다'는 뜻 뿐만 아니라 '그리다'(draw figures)는 뜻도 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예수님께 와서 흥분하며 조급하게 판단을 요구하는 무리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을 고소하려는 사악한 음모와 한 여인이 죽을 수도 있는 험악하고도 긴박한 상황 속에서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시며 땅에 조용히 글을 쓰시는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흥분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요한 복음 8장 7절에 나오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는 말씀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 쓰신 이 행위가 구약의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요한 복음 8장의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이야기에서 요한 복음 8장 6절과 8절에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글을 쓰신 것은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6)

'너희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7)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8)
한마디로 '그 여자를 죽이려고 돌을 든 너희들도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버린 탓입니다.'  (예레17,13)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9)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깨달음과 이해가 먼저 오는,  삶의 경륜과 지혜가 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나이가 많다는 것은 오래 살았으니 죄도 많이 지었다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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