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평의회[Con] 2006년 5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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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5-04 ㅣ No.31

 

Allocutio by Rev.Fr. Bede McGregor O.P.

Spiritual Director to Concilium


교본의 ‘금욕’ 과 ‘극기’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꼰칠리움의 마지막 회합입니다. 그래서 교본의 내용대로 ‘금욕’ 과 ‘극기’의 정신과 이것을 실천하는 행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재 일반적이고 관심을 모으는 주제는 못되는 것 같고,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논제(論題)일는지 모릅니다. 금욕과 극기는 우리들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혹은 보다 가치 있는 그 무엇을 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삶)의 어느 일면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친교관계에 해가 되거나 그 친교관계에 방해가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본은 금욕과 극기를 자기수련, 혹은 자기훈련이라고 합니다.

이 자기수련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특별한 행위’입니다. 금욕과 극기의 행위는 우리들의 원죄 때문에 필요합니다.

이 원죄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리들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우리들이 죄에 쉽게 빠지게 합니다.

레지오 단원의 일상생활에서 이 금욕은 무슨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까?

순수한 개인적 기도의 습관을 예로 들어 봅시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 중에  누가 하느님과 개인적이며 친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즉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기도보다 더 큰 특전이 그에게 있겠습니까. 기도는 우리가 예수님과 개인적 친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여주는 힘, 사람 몸에서 박동하는 심장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레지오 사도직의 영혼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우와 사정이야 어떻든 사실 자칫하면 우리가 하느님과 대화와 묵상으로 채우는 좋은 기도의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금욕 행위는 예수님과 혹은 어머니 마리아와의 친교 및 사랑의 기도, 그리고 천사와 성인들에게 하는 기도에 혼자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성체성사에 참례하면서 예수님의 현존에 관해서 믿습니다.

러나 실제로는 그분에게 감사를 드리거나 또 우리들이 만나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자주 그분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금욕행위는 영성체 예식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순절 동안 매일 미사와 영성체 참례 시에 모든 종류의 크고 작은 극기행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삼위께서는 은총을 통해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과 함께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되려면 역시 자기 절제와 금욕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에 우리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까.

하느님과의 대화와 묵상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단 몇 분 동안의 짬을 내기도 어렵다고 느낍니까?


금욕의 정신이 있어야 영혼 구원사업과 사도직 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의 귀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한없는 인내와 끈기, 친절과 상냥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레지오 단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우리들은 단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끝없는 근심 걱정과도 맞설 준비가 정말로 되어 있습니다.

쁘레시디움 회합과 상급 평의회의 회합에서 상당한 정도의 극기행위나 금욕행위, 또 소박한 희생 등의 문제를 다루어볼 수 있습니다. 권태가 생길 수도 있고 서로 사랑하고 돕는 행동이 점차 약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게으름, 짜증, 이기심의 유혹을 극복하는 데에는 금욕이 필요합니다.

충실하고 성실한 삶을 살려고 하거나 인내와 끈기를 가지려면 역시 많은 금욕행위로서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금욕과 극기 행위를 하는 주된 목적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보다 충실하고 보람있는 크리스천의 삶과 레지오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우리가 금욕과 극기를 실천하면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죄에 대하여 속죄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본은 교회의 정신적 유산이 주는 귀중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몇 줄의 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분과 협력해야 한다. 죄 없으신 분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다면 죄인인 우리들은 당연히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범하는 죄의 증거와 흔적은 명백하며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협력하는 보속적 행위를 적극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레지오 단원들은 총체적 레지오 시스템을 통하여  금욕과 보속 활동의 값진 훈련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이 고통은 모든 사람들 삶의 본질입니다. 십자가를 피하는 길은 없으며, 십자가에는 은총과 생명이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이 주는 삶의 십자가, 속박과 실망스러운 일들 모두가 자신의 성화와 영혼들의 구원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고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위대한 증표이며 그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배당된 고통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풀톤 쉔 대주교님은 자주 “우리들은 삶 속에서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자신이 성화되고 사도직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태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경자 에델 퀸은 레지오 단원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 성화, 즉 예수님을 닮고자 하려면 삶의 십자가를 기꺼이 그리고 자진하여 받아들이는 은총을 구합시다.”


사순절 동안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소속 교구에서 적극 봉사와 협조 활동에 나섭니다. 우리들은 사순절의 기본정신으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행동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을 빌려 소박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으며 그리스도 때문에 산다.”

죄로 인한 죽음의 고통이 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환희를 보다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삶, 이 양면성(兩面性)의 믿음 안에서 살려면 성모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죄 없으신 분’ 성모님은 죄와의 싸움, 안일과 평범한 삶에 대한 유혹과의 싸움에서 항상 우리들을 도우십니다.

우리들에게 있어 구원의 기쁨은 성모님으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이 살 수 있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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