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영적 가난이란? - 마태오 5,3;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 #<가연중4주일복음>

인쇄

. [218.55.90.*]

2013-08-19 ㅣ No.1434


질문:

친구가 (영적 가난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물어 왔습니다.

제가 답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성경구절을 써서 답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쫌 걸립니다.

성경구절과 함께 답을 시원하게 하고 싶었는데
못했습니다.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정확한 출처부터 전달해드립니다.

1-1. "영적 가난" 이라는 표현은 영어로 "spiritual poverty", "poverty of spirit" 혹은 "poverty in spirit" 번역되는 표현의 우리말 번역 표현이며(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 발췌문의 첫 문장 참조),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44항도 또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윤리 생활의 대헌장인 예수님의 "산상 설교"의 첫 부분인 "진복팔단(여덟 개의 참행복들)"의 첫 부분인, 마태오 복음서 5,3 에서, 영어로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로 번역되는 표현이 "새 번역 성경"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여기서 "마음이" 로 번역된 표현에 대한 "새 번역 성경"의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직역: '영이' 혹은 '영으로'.

따라서, "영적 가난"이 언급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마태오 복음서 5,3이고,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항은 제544항과 제2546항입니다.

1-3. 사실,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마태오 복음서 5,3가해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5,1-12ㄴ)에 포함됩니다.

2.
2-1.
다음은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44항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544 이 나라[즉,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하고 미소한 자들, 곧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루카 4,18) 274) 파견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시는데 그것은“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 (마태 5,3) 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감추어진 것을“철부지들” 에게 드러내 보이셨다. 275)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셨다.  배고픔과 276) 목마름과 277) 궁핍을278) 겪으셨으며, 더 나아가 여러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당신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으신다. 279)

-----
274. 루카 7,22 참조.
275. 마태 11,25 참조.
276. 마르 2,23-26; 마태 21,18 참조.
277. 요한 4,6-7; 19,28 참조.
278. 루카 9,58 참조.
279. 마태 25,31-46 참조.
-----
(이상, 발췌 끝).

2-2. 다음은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2546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태 5,3) 행복 선언은 행복과 은총, 아름다움과 평화를 차례차례 알려 준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늘 나라를 소유한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을 찬양하신다. 285) 

     ‘말씀’ 께서는 인간 마음의 자발적인 겸손과 포기‘마음의 가난’
     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
     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2코린 8,9)라고 말할
     때, 하느님의 가난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286)

-----
285. 루카 6,20 참조.
286.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참행복 강론」 ,  1: Gregorii Nysseni opera,
W. Jaeger 편, 7/2권(라이덴, 1992), 83면( PG 44,1200).
-----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다음은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8W.HTM

(발췌 시작)
2546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The Beatitudes reveal an order of happiness and grace, of beauty and peace. Jesus celebrates the joy of the poor, to whom the Kingdom already belongs:

The Word speaks of voluntary humility as "poverty in spirit"; the Apostle gives an example of God's poverty when he says: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그런데,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에서 "voluntary humility"로 번역된 표현을,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에서, "자발적인 겸손" 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자발적인 겸손과 포기"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라는 생각입니다. 즉, 포기 라는 표현이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과는 달리, 다음의 주소에 있는 라틴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에는 "포기" 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http://www.vatican.va/archive/catechism_lt/p3s2c2a0_lt.htm

(2) "영적 가난"의 의미가 인간 마음의 자발적 겸손[과 포기]" 을 말한다는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6항의 발췌문에 주어진 설명만으로는 이 표현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2-3. 다음은 가해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5,1-12ㄴ)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 모두에게 진복팔단 가르침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마태오 복음서 5,3에 대한 해설인 바로 아래의 발췌문만을 읽지 마시고, 바로 아래의 출처를 클릭한 후에 차분히 읽고 묵상하실 것을 적극적으로 권고드립니다. 우리말 번역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4.htm <----- 필독 권유

(발췌 시작)
[마태오 복음서 5,3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3. This text outlines the connection between poverty and the soul. This religious concept of poverty was deeply rooted in the Old Testament (cf., e.g., Zephaniah 2:3ff). It was more to do with a religious attitude of neediness and of humility towards God than with material poverty: that person is poor who has recourse to God without relying on his own merits and who trusts in God's mercy to be saved. This religious attitude of poverty is closely related to what is called "spiritual childhood". A Christian sees himself as a little child in the presence of God, a child who owns nothing: everything he has comes from God and belongs to God.
Certainly, spiritual poverty, that is, Christian poverty, means one must be detached from material things and practice austerity in using them. God asks certain people--religious--to be legally detached from ownership and thereby bear witness to others of the transitoriness of earthly things.

3. 이 본문은 가난(poverty)과 영혼(the soul) 사이의 관계의 윤곽들 보여줍니다. 가난이라는 바로 이 경신 개념(religious concept)은 구약 성경에 깊숙히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바니야 2,3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을 참조하라).(*)  이 절은 다음과 같이  물질적 가난보다는 하느님 쪽으로 향하는 곤궁 및 겸손으로 구성된 어떤 경신 태도(a religious attitude)와 더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 고유의 공로(merits)들에 의존함 없이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 그리고 죄에서 구제받기 위하여(to be saved)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자가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가난이라는 바로 이 신앙적 태도는 "영적 어린이 상태(spiritual  childhood)" 로 불리는 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있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아이인 어린 아이로서,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그리고 하느님께 속합니다. 확실하게,  영적 가난(spiritual poverty), 즉, 그리스도인들의 가난/청빈(Christian poverty)은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분리되어야(is detached)  하며 그리고 이들을 사용함에 있어 금욕을 실천(practice austerity)하여야 을 의미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수도회에 속하는(religious), 일부 사람들에게 소유권(owenership)으로부터  법적으로 분리되어 있을 것을 요구하시며 그리하여 바로 그것에 의하여(thereby)  속세의 것들이 일시적임을 다른 이들에게 입증합니다.

-----
(*) 번역자 주: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에 있는 글 중의 스바니야서 입문의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78.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This remnant will, as Amos and Isaiah had earlier foretold, consist of the poor, the humble and all those who put their trust in God. Clearly this teaching has a reference to the New Testament. No matter how seriously they have sinned, these humble people are being promised salvation, for the Redeemer is coming to heal them (Matt. 11:5). They are the poor in spirit referred to in our Lord's first beatitude (Matt. 5:3).

바로 이 남은 자들은, 아모스(Amos) 이사야(Isaiah)가 이미 일찌기 예언하였듯이, 겸손한 그리고 자신들의 신뢰를 하느님께 두고 있는 자들 모두(all)인, 가나한 자(the poor)들로 장차 구성될 것입니다. 분명하게, 이 가르침은 신약 성경에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심각하게 이미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들 겸손한 사람들에게 구원이 약속되고 있는데, 이는 구세주(the Redeemer)께서 그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오 복음서 11,5). 그들은 우리의 주님의 첫 참행복에서 언급되고 있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the poor in spirit)입니다(마태오 복음서 5,3).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월 20일]

(**) 번역자 주:
(1)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28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10,17-30)에 포함되는, RSVCE에서 "가난/청빈과 포기(poverty and renunciation)"라는 소제목이 붙은, 마르코 복음서 10, 23-3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28.htm <----- 필독 권고


(2)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RSVCE에서 "그리스도인의 가난/청빈과 포기(Christian Poverty and REnunciation)"라는 소재목이 붙은, 매년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마태오 19,23-3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0_tue.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
(이상, 발췌 끝).


2-4. 다음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8년 4월 20일자 교리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 [제목: 그리스도의 임무]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게시자 주: 이 글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I" (<----- 클릭하십시오)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12개의 부록들 [제목: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일반 알현 교리 교육] 중에서, 부록 4 이기도 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5.htm

(발췌 시작)
The very term "Good News" indicates the fundamental character of Christ's message. God wishes to respond to the desire for good and happiness deeply rooted in the human being. It can be said that the Gospel, which is the divine response, has an optimistic character. This, however, is not a purely temporal optimism, a superficial rational happiness. It is not the announcement of an "earthly paradise." Christ's "Good News" makes essential moral demands on the hearer; it calls for self-denial and sacrifice. Ultimately it is linked to the redemptive mystery of the cross. At the heart of the "Good News" there is the program of the beatitudes (cf. Mt 5:3-11), which makes absolutely clear the kind of happiness Christ has come to announce and reveal to humanity still on its earthly journey toward its ultimate and eternal destiny. He said,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Each of the eight beatitudes has a similar structure. In the same spirit Jesus called "blessed" the servant whom the master "will find vigilant—or busy—on his arrival" (cf. Lk 12:37). Here one can discern also the eschatological and eternal perspective of the happiness revealed and announced by the Gospel.

 
좋은 소식”이라는 바로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근본적 특성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안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선함과 행복에 대한 바람(desire)에 화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의 응답인 복음은 낙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순전히 일시적인 낙관주의, 어떤 피상적인 이성적 행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지상의 낙원(earthly paradise)”에 대한 선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은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윤리적 요구(essential moral demands)를 합니다: 이 복음은 자기 부정 그리고 희생을 요청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복음은 (당신의) 십자가 수난이라는 구속 신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의 중심(the heart)에 참 행복들(마태오 복음서 5,3-11)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참 행복들은, 여전히 궁극적이고 영원한 자신의 운명을 향하여 지상에서 여행 중에 있는 인류에게 선포하고 드러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바로 그러한 종류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만듭니다. 당신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덟 개의 참 행복들 각각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꼭 같은 정신으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와서 볼 때까지 깨어있는 종들을 “행복하여라”라고 부르셨습니다(루카 복음서 12,37을 참조하라). 여기서 우리는 이 복음에 의하여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리고 선포된 이 행복의 종말론적이고 영원한 관점을 또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The beatitude about the poor in spirit brings us back to the beginning of Jesus' messianic activity. Speaking in the synagogue of Nazareth he said,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Lk 4:18). He means not only the materially poor, but all those who are spiritually open to God's gift of truth and grace as the gift of his love, a gratuitous gift (gratis datum), because they are interiorly detached from material things and are willing to use and share them with others according to the demands of justice and charity. For this condition of God's poor (anawim) Jesus "gives praise to the Father," because "he has hidden these things (that is, the great things of God) from the wise and the learned and revealed them to the childlike" (cf. Lk 10:21). Therefore it is not said that Jesus dismisses from his company those who are better off financially, like the publican Zacchaeus who climbed a tree to see him (cf. Lk 19:2-9), or those other friends of Jesus whose names we know from the Gospels. According to Jesus' words, it is the poor in spirit (cf. Mt 5:3) and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serve it (cf. Lk 11:28), who are blessed.
 
영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관한 참행복은 우리를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활동의 시작으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나자렛 지역의 회당에서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루카 복음서 4,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뿐만이 아니라, 또한 무상의 선물(gratis datum)인 당신의 사랑이라는 선물로서의 진리와 은총인 하느님의 사랑에 영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모든 이들을 뜻하는데, 이는 그들이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내적으로 분리되어 있기에 그 결과 정의(justice, 의덕)와 사랑(charity, 애덕)의 요청들에 따라 이 물질적인 것들을 기꺼이 다른 이들과 함께 사용하며 나누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God's poor, anawim)이라는 바로 이러한 조건에 대하여 “성부께 감사를 드리는데”, 이는 “성부께서는 이런 것들을 (즉 하느님에 기인하는 훌륭한 것들을)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어 보이시기”(루카 10,21을 참조하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행들로부터, 당신을 보기 위하여 나무 위에 올라갔던 세리인 자캐오(Zacchaeus)(루카 복음서 19,2-9)처럼, 혹은 그들의 이름들을 복음서들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다른 친구들처럼, 재정적으로 부유한 자들을 내쫓는다고 말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들에 따르면, 영적으로 가난하여 (마태오 복음서 5,3을 참조하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준수하는 자들이(루카 복음서 11,28을 참조하라) 바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월 20일]

(*) 번역자 주:
(1)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28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10,17-30)에 포함되는, RSVCE에서 "가난/청빈과 포기(poverty and renunciation)"라는 소제목이 붙은, 마르코 복음서 10, 23-3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28.htm <----- 필독 권고


(2)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RSVCE에서 "그리스도인의 가난/청빈과 포기(Christian Poverty and REnunciation)"라는 소재목이 붙은, 매년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마태오 19,23-3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0_tue.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끝)

3.
3-1. 다음은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NAB)의 부록인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poor" 라는 성경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발췌 시작)
poor Originally, this word had merely an economic and social meaning. Gradually, it took on the meaning of humble, modest, small, the little people often oppressed by the rich and powerful but who remained faithful to God (Am 2, 6-7). It was in this sense that Jesus said: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Mt 5, 3).

가난한/가난한 사람들(poor). 원래, 이 단어는 단지 어떤 경제적 및 사회적 의미만을 가졌습니다. 점진적으로, 이 단어는 겸손한(humble), 온건한(modest), 평범한/변변찮은(small), 부자들 및 힘센 자들에 의하여 자주 억압을 받는 그러나 하느님께 충실하게 남아 있는 하찮은/미소한/작은 사람(the little people)들의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모스 2,6-7). 예수님께서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태오 복음서 5,3) 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였습니다.(*) 

 

-----
(*) 번역자 주: 마태오 복음서 5,3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위의 제2-3항을 필독하라.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20일]

게시자 주: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이탈리아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주제별 색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주제별 색인에 주어진 "가난/가나한 사람" 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적 권고(evangelical counsels)들 중의 하나인 "영적 가난"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을 학습하고자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같아 또한 추가로 안내해 드립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가난/가난한 사람
(라)Paupertas/ Pauperes
(영)Poverty/ Poor
마음의 가난은 재물에 대한 초연함 2544-2545;
그리스도는 가난한 분 517, 525, 544, 1351, 2407;
가난한 사람들을 해치는 군비 경쟁 2329;
성체성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지운다 1397;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709, 716, 1716, 2544-2547;
복음적 권고인 가난(청빈) 915;
그리스도와 교회의 길인 가난 544, 786, 852;
하늘 나라와 가난한 사람 544;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유한 나라들의 의무 2439-2440;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배려, 사랑 886, 1033, 1435, 1586, 1825, 1932, 1941, 2208, 2405, 2443-2449.
(이상, 발췌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3-2.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 (<--- 클릭하십시오)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5,1-12ㄴ)의 제3절 및 이 절에 대한 해설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오늘의 제1독서가 보여주듯이, 신앙적 개념의 가난은 구약 성경에 깊이 뿌리가 내려 있다. 이 절은 물질적 가난보다는 곤궁(needliness)에 대한 신앙적 태도와 하느님에 대한 겸손을 더 많이 다루고 있다. 가난(poverty)에 대한 신앙적 태도는 '영적 유년기(spiritual childhood)' 라고 불리는 것과 매우 관련이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작은 아이로 이해한다.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모두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3-3. 끝으로,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532항 전문인데, 지금까지 전달해드린 바에 비추어 보면, 훨씬 더 쉽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va2005cccc.htm

(발췌 시작)
CCCC 532. What does Jesus call for in poverty of spirit?

 
CCC 2544-2547, 2556
Jesus calls his disciples to prefer him to everything and everyone. Detachment from riches – in the spirit of evangelical poverty – and self-abandonment to divine providence free us from anxiety about the future and prepare us for the blessedness of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Mathew 5:3).

CCCC 532. 영적 가난(poverty in spirit)에 있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CCC 2544-2547, 255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모든 것과 모든 자보다 당신을 선호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복음적 청빈/가난(the evangelical poverty)(*)의 정신 안에서, 부(富, 재물, riches)에 대한 초연함/무관심(detachment)과 하느님의 섭리에 스스로를 내맡김(self-abandonment)은 미래에 관한 근심(anxiety)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 의 축복받음을 준비하게 하는데, "이는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5,3).  

-----
(*) 번역자 주: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evangelical poverty"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5675

(발췌 시작)
POVERTY EVANGELICAL

A Christian counsel by which a person voluntarily renounces all or part of his right to the ownership of material things.


복음적 청빈/가난(evangelical poverty)


그것에 의하여 한 인격이 물질적 사물들의 소유권에 대한 자신의 권리의 모두 혹은 부분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그리스도의 권고 한 개(a Christian counsel)를 말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번역자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공생활 초기에 개시하신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예수 재림의 날까지, "하늘(Heaven, 천당, 천국)" 과 동일하지 않음에 대한 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20일]

가톨릭 그리스도교 영성 신학의 전통적 핵심 가르침들의 중의 하나인, 그리고 소위 말하는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인, "영적 가난"에 대한 성경에 근거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다음에 있는, 가해 연중 제4주일 제1독서(스바니야 2,3; 3,12-13) 및 복음 말씀(마태오 5,1-12ㄴ)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을 함께 연결하여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4.htm <----- 필독 권유

[이상, 내용 추가 끝].

결언: 아무쪼록 많이 부족한 죄인에 의한 위의 전달 내용들이, 질문을 주신 분 그리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께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 부 록 >>

게시자 주: 다음은 추가 읽을꺼리들 입니다:

부록 1: http://www.vatican.va/holy_father/francesco/speeches/
2013/march/documents/papa-francesco_20130322_corpo-diplomatico_en.html


부룩 2: http://www.newadvent.org/cathen/12324a.htm

부록 3: http://haydock1859.tripod.com/id19.html

부록 4: http://www.corneliusbiblecommentary.faithweb.com/5matth.htm

부록 5: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cuu.htm#nn
        http://dhspriory.org/thomas/CAMatthew.htm#5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5시간

 



2,001 5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