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06년 4월 30일 세나뚜스 월례회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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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5-10 ㅣ No.30

훈화

(세나뚜스 월례회의-2006년 4월 30일) 윤병길 세례자요한 지도신부 

 

 

 

찬미 예수님,

부활 축하드립니다. 모두 기쁘고 의미 있는 부활을 맞으리라 믿습니다.

올해도 저에게는 특별한 부활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주간과 부활을 성지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왔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월간지 4월호에서 보셨듯이 성지에서의 성주간과 부활절은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더욱이 올해에는 작년에 영성피정을 하신 꼬미시움 간부님들과 레지오 단원들 30명이 함께했고 모두가 생전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지에서 성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하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느끼게 되는 하느님의 체험과 은총을 간직하게됩니다.

어떤 경우는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게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좀 멀리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면 느낄수록 내 자신이 보잘것없고 부끄럽고 죄스럽다는 체험을 하게됩니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 앞에 내가 드린 것은 너무도 작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의 작은 마음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사랑은 철철 넘치고 그분의 자비로우심은 더할수 없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체험을 하고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보잘것 없는 모습이라 실망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도 하느님의 크고도 깊은 사랑을 체험한 후에 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는 은총이 큰 곳에 늘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번민과 갈등도 늘 우리 주위에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기도하셨던 겟세마리에는 작은 동굴이 있습니다.

그곳은, 제자들이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기다렸다고 하는 장소인데, 그곳의 제대 밑에는 두 개의 조각이 있습니다.

두 명의 제자가 졸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2년 전 예루살렘에서 지낼 때 그곳에 가면 많은 위로를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급박한 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나는 어떠한가?

나의 부족함을 위로해주는 제자들의 모습과 그럼에도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족한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 부복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우리를, 그리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굳게 믿으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모자람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우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드리는 솔직한 우리의 마음이야 말로 겸손된 봉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민과 갈등에 휘둘리지 말고 굳센 믿음과 용기를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영적 독서 : 번민 (준주성범 2권 9장)

 

 

1. 하느님의 위안이 있으면 모든 인간의 위안을 천히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것은 사람의 위로나 하느님의 위로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런 고독을 참아 견디며 무슨 일에든지 자기 자신을 찾

   지 아 니하고 잘한 일이 있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은총을 받아 즐거워

   지고  열심해지는 것은 그리 위대한 것이 못 된다. 이런 시간은 누구나 탐하는 바

   이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끌려가면 누구나 즐겨 나아간다. 전능하신 손이 붙들어

   주고 최선의 안내자가 지도해주면 아무 것도 어려운 줄 모르니 이상할 것이 없다.

 

2. 우리는 무엇에나 위로받기를 즐기고, 자기 편익을 도모하지 않기는 어렵다.

    순교자 라우렌시오 성인은 그가 섬기던 제관과 같이 세상을 초월했으니 그가 이

    세상에 좋다는 것을 다 경천히 볼 줄 안 연고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던 하느님의 제관인 식스도와 작

    별하는 것까지도 참아 견디었다. 그렇게 그는 조물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인간

    사랑을 초월했고, 사람의 위안을 받는 것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랐다. 그러니 너도

    하느님 사랑에 친밀하고 사랑하는 벗이라도 떠나야 할 때는 작별할 줄을 알라.

    우리는 결국 서로 작별할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니 친구를 떠나게 된다고 그리 마

    음 상하지 말 것이다.

 

3. 자신을 오롯이 이기는 법을 배우고 하느님께만 모든 정을 돌리게 되자면 자신과

    의 큰 충격마저 이겨야 한다. 사람이 자기를 믿고 살면 오래지 아니해서 인간의  

    위안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고 덕을 삼가 닦으려는 사람은 인간 위로를 믿

    지 아니하고, 쾌락을 찾지도 아니하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려운 일과를 잘 행하

    고, 가혹한 일이라도 참아야 한다.

 

4. 그러니 하느님이 영적 위안을 주시거든 감사로이 받아들이고, 다만 이는 네가 잘

    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 거저 주시는 예물로 알라.

    위안을 받는다고 너 스스로 높이 생각지 말고, 따로 즐거워하지도 말며, 과분하게

    너를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은혜를 받고도 겸손되이 생각하고, 네 행동 거

    지에 주위를 더 가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라. 이런 시간이 언제 지나갈지

    모르고 유혹을 당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위로가 없어진다고 곧 실망하

    지 말고, 겸손되이 또 항구하게 하느님 다시 찾아주실 때를 기다리라. 하느님은

    더 큰 위안을 주실 수도 있으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

    이 새롭지도 않고 이상하게 보이지도 아니한다.

    위대한 성인들과 옛날 예언자들도 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다.


5. 어떤 사람이 은총이 그에게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풍족히 살고 있으니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시편30,6) 그

    러다가 은총을 잃고는 자기가 당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내게서 당신 얼굴을 돌리시니 나는 번민이 심해졌나이다.”(시편30,7)

    그래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 열렬히 주께 이런 기도를 했다.

    “오! 주여, 나는 당신께 부르짖으며 내 하느님께 구원의 기도를 올리나이다.”

    (시편30,8) 결국은 그가 그 기도의 효과를 얻고, 하느님이 그 간구함을 들어주심

    을 증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나를 들어주시고 나를 불쌍히 보아주시어 나를 도와주시었다.”

    (시편30,10) 어떻게 주께서 보아주셨는가. “당신은 내 근심걱정을 즐거움으로 변

    하게 하시고 행운 중에 살게 하셨나이다.”(시편30,11) 위대한 성현들도 이렇게 살

    았으니 약하고 궁한 우리가 때로는 열렬히, 때로는 냉냉하게 산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다. 성령은 당신 좋으실 대로 오시기도 하고 떠나가시기도 한다.

    그래서 욥 성인은 이런 말씀을 했다. “당신은 아침 일찍 찾아주시더니, 얼마 안 가

    서 그를 시험하시나이다.”(욥7,18)


6. 그러니 나는 무엇에 희망을 두고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

    하느님의 크고 크신 자비만을 믿고 천상 은총을 바라고 사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내가 바로 착한 사람들을 알고, 열심한 형제들과 살며, 충실한 벗들과 사귀

    고, 거룩한 책을 읽고, 고상한 처세를 배우고, 즐거운 노래와 시를 부른다 해도 은

    총을 잃어 궁지에 놓여있으면 그것이 별스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런 때에는 참아 견디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극기하는 도리 밖에 없다.


7. 나는 아무리 열심하고 신심있게 살아도 때로는 은총이 물러가고 열정이 감소되지

    아니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느 성인이나 아무리 고상한 관상에 탈혼되고 총 명해졌다고 해도 멀지 아니하

    여 유혹을 당했다. 그것은 하느님을 고상하게 관상할 자격이 되자면 하느님을 위

    해서 어떠한 곤란이라도 겪어 단련되어야 함이다.

    유혹을 당하는 것은 위안이 따라올 징조이다.

    이는 유혹을 당해 시련을 겪은 사람에게 천상 위안이 약속되어 있음이다.

    주 말씀이 "이겨 나간 그에게 나는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게 해 줄것이다."

    (묵시 2,7)하셨다.

 

8. 천상 위로를 주시는 것은 사람이 역경을 잘 참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유혹이 따라오는 것은 사람이 잘했다고 오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암가는 자고 있지 아니하고, 육체는 아직 죽지 아니했다. 그러니 너는 거침없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원수는 네 바른편과 왼편에서 쉬지 않고 쳐들어오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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