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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 및 일용할 양식은 무엇을 말할까요? [성경공부] [_주님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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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ㅣ No.945

 
 
질문: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좋은 소개 내용을 읽고,
두가지 묵상 내용을 질의코자 합니다.
 
1.'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에서  '아버지의 뜻'은?
2.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일용할 양식'의 구체 또는 추상적인 의미는?
 
우문일줄로 여겨집니다만,
그래도 '뜻' 과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어야 될 것 같기에
혹시나하는 맘으로 질문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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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1.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591항 및 각주로 주어진 해당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822-2827, 2860항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II, 연중 제33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591. 주님의 기도에서 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는지요?
2822-2827, 2860

성부의 뜻(will)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1티모테오 2,4).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위하여, 즉 성부의 구원 의지를 완전하게 구현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부이신 하느님께,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인들의 모범을 쫒아, 우리의 뜻이 당신 아드님의 뜻에 결합되게 해 주실 것을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이 애정 있는(loving) 계획이 이미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완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청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로마 12,2)를 식별할 수 있고 또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인내(steadfastness)”(히브리 10,36)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기도를 통하여서입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33_c2822.htm (클릭하여 읽어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2.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592항 및 각주로 주어진 해당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828-2834, 2861항들 그리고 제593항 및 각주로 주어진 해당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835-2837, 2861항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다해-II, 연중 제20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592.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청원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CCC 2828-2834, 2861

하느님께, 자녀들의 자식으로서의 신뢰와 함께(with the filial trust of children), 우리에게 필요한 날마다의 자양분을 간청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모든 선함을 넘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정의와 연대(justice and solidarity)가 어떤 이들의 풍요로움이 다른 이들의 곤궁(needs)을 개선하는 것(remedy)을 가능하게(allow) 하고자,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은총을 간청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20_c2828.htm (클릭하여 읽어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CCCC 593.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this day)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청원에 대한 구체적인 그리스도교적 의미가 무엇인지요?

CCC 2835-2837, 2861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에(마태오 복음서 4,4), 이 청원은 성령에 대한 갈망(hunger for)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에 대한 갈망성찬례에서 받게 되는 그리스도의 성체(Body)에 대한 갈망에도 꼭 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오늘(today)”인 오늘(this day)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함께 이 양식을 간청하며 그리고 이 양식은 무엇보다도, (예수 재림의 날에) 장차 있을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즉 하늘 나라]라는 잔치(the banquet of the Kingdom)를 미리 현실태화 하는(anticipates)(*) 성찬례에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엮은이 번역).
 
(*): ‘anticipate’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다음의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라틴어 어원 설명을 따랐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w/u_d.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20_c2835.htm
 
 
 
특히 바로 위의 파란색을 클릭한 후에, 다음의 설명이 주어져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861항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861 In the fourth petition, by saying "give us," we express in communion with our brethren our filial trust in our heavenly Father. "Our daily bread" refers to the earthly nourishment necessary to everyone for subsistence, and also to the Bread of Life: the Word of God and the Body of Christ. It is received in God's "today," as the indispensable, (super-) essential nourishment of the feast of the coming Kingdom anticipated in the Eucharist.
 
2861 이 네 번째 청원에서, "저희에게 주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과의 하나 됨(친교, 통공, communion) 안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자녀로서의 우리의 신뢰를 표현한다. "우리의 매일의 빵"은 모든 이의 생존에 필요한 이 세상의 자양분을 말하며, 그리고 또한 다음과 같은 생명의 빵을 말한다: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그리스도의 몸. 이 생명의 빵은, 성찬례에서 예상되는 도래하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잔치를 위한 필수적인 (최상의) 핵심적인 자양분으로서, 하느님의 "오늘"(**) 안에서 받아들이게 된다(엮은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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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CCC 제2859항을 참조하라.
(**)
 여기서 하느님의 "오늘"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이루어진 미사(Mass)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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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1 네 번째 청원에서“저희에게 주소서.” 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형제들과 일치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자녀다운 신뢰를 표명한다.“우리의 양식” 은 모든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이 세상의 양식을 가리키며, 또한 생명의 빵하느님의 말씀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킨다. 하느님의‘오늘’우리는, 성찬례가 미리 맛보게 해 주는 하늘 나라 잔치에 반드시 필요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신다(기존의 cbck 홈페이지 제공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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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총 6권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저의 졸저서들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의 인터넷 각주로 제공 중인 (주일, 대축일, 및 주간 독서들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의 해설(영어)들 중에서 다음의 해설들을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해설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엮은이가 한 것입니다: 
 
11. In making this fourth petition, we are thinking primarily of our needs in this present life. The importance of this petition is that it declares that the material things we need in our lives are good and lawful. It gives a deep religious dimension to the support of life: what Christ's disciple obtains through his own work is also something for which he should implore God--and he should receive it gratefully as a gift from God. God is our support in life: by asking God to support him and by realizing that it is God who is providing this support, the Christian avoids being worried about material needs. Jesus does not want us to pray for wealth or to be attached to material things, but to seek and make sober use of what meets our needs. Hence, in Matthew as well as in Luke (Luke 11:2), there is reference to having enough food for every day. This fourth petition, then, has to do with moderate use of food and material things--far from the extremes of opulence and misery, as God already taught in the Old Testament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feed me with the food which is needful for me, lest I
be full, and deny Thee, and say, 'Who is the Lord?' or lest I be poor, and steal, and profane the name of my God" (Proverbs 30:8).

11. 이 네 번째 청원을 하면서, 우리는 이 현재의 삶 안에서 우리의 필요들에 대하여 
주로 생각합니다. 이 청원의 중요성은 이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것들은 선하며 그리고 합법적임을 선언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청원은 
생명에 대한 지지에 깊은 신앙적 차원을 제공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신 
고유의 일을 통하여 얻는 바가 또한 그가 그것을 얻고자 하느님께 애원하여야만 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선물로서 감사를 드리면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삶에 있어 우리의 지주(support)
이신데, 이는 하느님께 그를 지지해 주실 것을 요청함으로써 그리고 이러한 지지를 
마련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물질적인 
필요한 물건들에 대하여 염려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부(wealth)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 혹은 물질적인 것들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나, 그러나 우리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바를 추구하고 건전하게 사용할 
것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루카 복음서(루카 복음서 11,2) 뿐만이 아니라 마태오 
복음서에, 날마다를 위한 충분한 음식을 가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네 
번째 청원은, 하느님께서 이미 구약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듯이, 풍부와 
빈곤이라는 극단들로부터 멀리, 음식과 물질적인 것들의 온건한 사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잠언 30,8).


The Fathers of the Church interpreted the bread asked for here not only as
material food but also as referring to the Blessed Eucharist, without which our spirit cannot stay alive.

교부들은 여기서 요청되고 있는 이 빵이 단지 물질적인 음식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이것 없이는 우리의 영(spirit)이 살아 있을 수 없는, 복된 성체(the Blessed 
Eucharist)
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하였습니다. 


According to the "St. Pius V Catechism" (cf. IV, 13, 21) the Eucharist is called our daily bread because it is offered daily to God in the Holy Mass and because we should worthily receive it, every day if possible, as St. Ambrose advises: "If the bread is daily, why do you take it only once a year [...]? Receive daily what is of benefit to you daily! So live that you may deserve to receive it daily!" ("De Sacramentis", V, 4).

"성 비오 5세 교리서"(cf. IV,13,21)에 따르면 성체는 우리의 매일의 빵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거룩한 미사에서 매일 하느님께 봉헌되기 때문이며 그리고, 성 암브로시오(St. Ambrose)가 다음과 같이 권고하듯이, 가능한 한 매일, 우리는 합당하게 이것을 모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빵이 매일 있다면, 왜 그대는 오직 한 해에 한 번만 이것을 영하는가 [...]? 날마다 그대에게 유익한 바를 날마다 영하라! 그리하여 이것을 날마다 영할 자격이 있도록 살아가라!" ("De Sacramentis", V, 4).


 
3. The Tradition of the Church usually interprets the "bread" as not only material bread, since "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from the mouth of God" (Matthew 4:4; Deuteronomy 8:3). Here Jesus wants us to ask God for "what we need each day for soul and body [...]. For our soul we ask God to sustain our spiritual life, that is, we beg Him to give us His grace, of which we are continually in need [...]. The life of our soul is sustained mainly by the divine word and by the Blessed Sacrament of the Altar [...]. For our bodies we pray for what is needed to maintain us" ("St. Pius X Catechism", 302-305).

3. 교회의 전통은 통상적으로 이 "양식(bread)"을 단지 물질적인 양식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오 복음서 4,4; 신명기 8,3)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영혼과 몸을 위하여 매일 필요한 바’를 요청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유지하도록(sustain) 청합니다, 즉 우리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당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빕니다(beg) [...]. 우리 영혼의 생명은 거룩한 제대에서의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the divine Word)복된 성체(the Blessed Eucharist)에 의하여 주로 유지가 됩니다 [...]. 우리의 몸들을 위하여, 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바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성 비오 10세 교리서(St. Pius X Catechism)", 3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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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I (출판사: 가툴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7주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1,1-13) 중의 제3절에 대한 다음의 해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위의 나바르 주석 성경의 루카 복음서 11,3에 대한 해설과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여기서 ‘양식’으로 번역한 표현을 NAB에서는 ‘bread(빵)’로 번역하였다. 교회의 전통은 보통 이 ‘양식’을 단지 물질적인 양식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오 복음서 4,4; 신명기 8,3)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영혼과 몸을 위하여 매일 필요한 바’를 요청하는 것을 원하신다.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유지하도록(sustain) 청하는데, 즉 우리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당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빈다(beg). 우리 영혼의 생명은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the divine Word)성체(the Eucharist)에 의하여 주로 유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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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미사(Mass)는 (1) ‘말씀 전례(Liturgy of the Word)’와 (2) ‘성찬 전례(Liturgy of the Eucharist)’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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