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평의회[Con] 2006년 2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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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3-27 ㅣ No.28

Allocutio by Rev. Fr. Bede McGregor O.P.

Spiritual Director to The Concilium


영적독서와 레지오 단원의 내적 생활


교본에서 가장 귀중하고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며 지혜를 줄 뿐만 아니라 단원들의 일상에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절(節)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레지오 단원들의 내적(內的) 생활’(33장 13절)에 관하여 쓰인 것을 들겠습니다.

이 절(節)은 순수하고 진정한 성화의 방법을 우리들에게 확실히 보여주는 ‘건축물의 설계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프랭크 더프 형제께서 ‘우리가 성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저술한 소책자를 간략하게 잘 정리한 내용입니다.

‘내적 생활’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과 욕구와 애착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중심이며 우리 삶의 구석구석 모두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동기가 되시는 분입니다. 내적 생활은 바오로 성인의 말처럼 살아가는 평생의 노력입니다. 즉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신다”라고. 성모님은 내적인 생활에 영감을 주시는 분이며 우리들이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완전히 예수님께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속에 예수님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실로 우리들이 성모님과 하나가 되면 필연적으로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현세와 영원한 삶 속에서 우리들이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분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삶을 돌보시는 어머니시며,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들은 예수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우리들의 내적 삶을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어머니입니다.


우리들이 주 예수님과 그분의 어머니와 친교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 우리들이 흔히 이것을 간과하기도 하는데 - 영적인 독서를 자주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지오의 영성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실천사항 중 하나입니다. 영적 독서는 쁘레시디움과 모든 평의회의 회합 진행 순서에 들어갑니다. 쁘레시디움이 설립되고 나서 몇 년을 지내면서 단원들이 레지오의 영성적 보화들로 흠뻑 적셔지기까지 영적 독서는 교본을 이용하도록 권고받지만 물론 다른 서적들에서 영적 독서로의 읽을거리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교본을 읽고 공부하고 그 내용을 묵상하면서 한평생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 삶에 대한 새롭고 생생한 통찰력과 사도적 열정을 끊임없이 얻어낼 수 있습니다. 에델 퀸과 같은 삶을 지향하는 수에넌스 추기경은 “에델 퀸은 교본을 늘 침대 머리맡에 두고 지냈다”고 자주 이야기하십니다. 그동안 내가 관찰한 바로는 교본을 진정 사랑하고 공부하는 레지오 단원은 순수한 사도직 정신과 묵상적 태도를 겸비하고 있으며 변함없이 진정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하는 단원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은 주회합에서 영적 독서를 경청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본의 다음 내용은 우리들에게 힘을 줍니다.

“크리스천의 신념을 키우고 넓히는 노력도 그러하지만 개인적으로 영적 독서를 하면 기도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본인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 선택하겠지만 천주교의 주석서나 비평서 혹은 영성적 고전(古典)도 있고 신약성경도 영적 독서로 적당합니다.”

현명한 안내와 지도가 특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인들의 생애에 관한 좋은 책들은 우리들의 영성생활에 훌륭한 길잡이가 됩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 우리들이 ‘어떤 삶의 과제를 설정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자기 생애의 과제를 찾은 사람은 ‘미덕’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며 ‘영웅적 자질’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성인들은 그분들 개개인의 거룩함의 실례(實例)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며, 그들의 신념과 교의(敎義)를 보여준 실제(實際)의 사례(事例)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성인들에 관하여 잘 알게 되면 곧 그분들의 특성과 자질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교본에는 없지만 ‘우리가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제하(題下)의 더프 형제 저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프랭크 더프는 그 이상 더 좋은 방법으로 이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이 말은 그분의 흉금에서 우러나온 권고이며 자신의 영성생활에서 그 자신이 무척 좋아했던 생각입니다.


레지오는 그 단원의 내적 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영적 독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것은 대중매체와 정보 홍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요즈음의 사회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대중매체들의 요란한 말들이 넘쳐남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마음은 가끔 심하게 상처를 받게 됩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DVD, 신문, 인터넷, 휴대폰 문자메시지, 우편함에 넘쳐나는 원하지도 않는 인쇄물 등이 있습니다. 더욱이 잡담 등 뒷공론과 기타 형태의 통신은 우리들의 삶을 피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범이 될 만한 레지오 단원들조차도 그들의 내적 생활이 이 시대 정보문화의 혼탁함에 지나치게 노출됨으로 인해서 그들의 영성생활이 오염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텔레비전은 우리들의 사도직 열정을 약화시킬 수 있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신앙의 활력을 빼앗을 수 있으며, 우리들 생각과 행동의 방식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대중매체가 우리들의 관심을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들에 모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큰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온 세상을 복음화할 수 있는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동전화기나 이메일(e-mail)의 혜택이 엄청나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누구와 긴급히 연락을 취해야 할 경우가 그러합니다. 지금까지 새로운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여러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정보기술의 신세계가 우리 자신의 내적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제공할 잠재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종교 매체가 있고, 테이프, CD, 비디오, 영화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기술을 이용할 수 있고 매력적인 형태로 훌륭한 영성적 저작물들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여도 우리들은 여기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기술 매체들이 전달하는 저작물들에서 주장하는 천주교 신자나 기독교 신자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에 있어서는 천주교 신자의 경우든지 기독교 신자의 경우든지 어느 쪽에도 옳지 않으며, 그 내용이 영적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해로운 것처럼 영성생활에 해로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피에르 라코데는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인생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짧지만 서적(書籍)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레지오 정신을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홍수와도 같은 정보물의 격랑 속에서 마음과 가슴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좋은 영적 독서의 습관을 유지하여 우리의 영성적 건강을 돌볼 필요가 있다.”

G. K. 체스터톤은 한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실행해야 한다. 무엇이 진실로 좋은지를 알려고 하거든 그것을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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