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손 안대고 코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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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헌 [heonkim] 쪽지 캡슐

1999-08-27 ㅣ No.60

1963년 바티칸 제 2차 공의회가 끝나면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많은 사제들이 성직을 버리고 환속했다.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비록 작은 것이었지만, 사제들이 새로운 미사 전례에 대한 적응에 힘들어하였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하여도 미사는 ’제사’의 성격이 많이 강조되었기에 사제란 신자들을 대신해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제관의 성격이 강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제는 신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벽에 걸린 큰 십자가를 향해 미사를 드렸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전례 개혁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아, 미사 전례의 순서를 바꾸고 미사 거행 때에도 사제는 신자들을 마주 대하며 잔치 상에 모인 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제가 무슨 무대 위의 주인공 마냥 혼자서 모든 신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미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당시 사제들에게는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로서는 전혀 믿기가 힘든 일인데 이런 기사를 책에서 읽었다.

 

과연 사제들만 그럴까?

하느님 공동체의 미사에 봉사하는 사람은 모두 막중한 사명감을 느끼고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조심스럽게 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 이런 부담감 없이 전례에서 봉사적 의무를 수행하는 신자는 자신을 대중 앞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스타 기질이 있는 사람이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가 아닐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자, 그리스도의 몸을 전달해 주는 성체 분배 봉사자, 신자들의 기도를 하시는 분, 안내 봉사를 하시는 분, 모두가 공동체의 예배를 위해 조심스럽게 그리고 자기가 맡은 봉사를 마땅한 마음가짐으로 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례 공동체 안에서 음악으로 봉사하는 지휘자, 반주자, 성가대원, 반주자, 악기 연주자 등도 전례 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노래할 뿐 아니라 다른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심을 노래하고  성가를 통해 신앙심을 키워나가게 도와주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전례의 음악 봉사자들은 신앙으로 노래하려고 애쓰며 많은 시간을 연습에 바치게 된다.  

 

많은 본당에서 성가대와 사목자들과의 마찰이 많은 것 같다.  불행히도 성가대는 본당에서 종종 문제 단체로 찍히는(?) 경우가 많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말이 많고 시끄러운 단체로 인식되는 듯하다. 어쩌면 사목자들이나 사목위원들의 판단이 맞을지도 모른다. 또 부족한 성가대들이 이런 모습을 실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성가대원에 대한 교육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사목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 줄 모르고 성가대원들만 욕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이들 음악 봉사자들은 본당 사목자들에 의하여 그들이 제대로 봉사하기에 필요한 전례적, 영성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이런 교육의 기회를 사목자들은 주기적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전례헌장 29항).  사목자로서의 이런 자신의 임무는 전혀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또 성가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여차하면 "성가대 해체"라는 비수를 꺼내곤 한다. 성가대가 없으면 아쉬울 사람은 사목자를 비롯한 신자 공동체인데 오히려 성가대원들이 안달이다.  10여명이 모여 하는 ’레지오 마리에’ 주회에는 사제나 수녀가 들어가 ’알로꾸시오’를 해 주지만, 30-40명이 저녁도 굶고 (큰 축일 때에는 매일이라도) 연습하는 성가대에는 한번도 들어가지 않는 사목자, 수도자들이 있는 본당이  많다.  끝날 때쯤 되어 들어가서 성가대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한 마디하고  강복이라도 한번 주면 감격해할 성가대원들이 아닌가.

 

내 생각에는 결국은 성가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제가 전례에 대해 가지는 존경심과 애정이 문제인 것 같다.  사제들이 전례에 대한 애정이 없을 때 전례음악은 전례 안에서 제 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해 치워 버리는 미사일 때에는 성가대가 있으면 오히려 미사만 길어지니 귀찮은 단체일 뿐이다.  신자들로 하여금 정성껏 기도하게 하고 전례 공동체가 일치를 이루게 하며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 의식이 장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성가대와 성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관심이 없는 사목자는 결국?

 

또 사목자는 전례 음악 봉사자에 대해서도 투자를 해야 한다.  우선 아래 글에서 언급된 반주자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교회음악 전통이 약한 우리 한국 교회는 전례음악 봉사자들의 질(質)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든다면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미사 중에 독서를 할 수 있는 자격자라고 생각하지 구태여 음성이 똑똑하고 신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독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굳이 오르간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같은 건반 악기인 피아노를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미사 중에 오르간으로 반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 피아노를 칠 줄 알면 굳이 전공을 했건 잘 하건 상관하지 않고 미사 때에 반주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과연 공동체의 기도를 이끌고 가는 반주자의 몫이 그렇게 아무한테나 맡길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열심하고 자발적인 교회의 이런 인적 자원을 잘 도와서 전례음악 봉사자로서 양성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목자들이 잘만 꼬시면(?) 자기 돈주고 음악 공부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려는 사람이 많은 한국 교회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례 음악 봉사자로 양성되기 위해서 필요한 무엇 하나 도우지 않는 본당이 너무나 많다. 결국 본당을 위해 봉사할 사람들인데도...  그냥 일반 음악가로서가 아니라 전례음악가로서 봉사할 수 있도록 어떤 모양으로든지 도와야 하고 이런 인재들을 계속해서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짜만 좋아해서 투자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인가?

 

아래의 글은 굿 뉴스 어린이 게시판에 어떤 어린이가 쓴 일기의 한 대목

이다. 아마도 음악을 담당한 교리 교사가 이 어린이에게 반주자들이 결석할 때 반주해 줄 것을 부탁한 모양이다. 일기는 아래와 같이 계속된다.

 

    "그래서 올해는 좀 무서운 해가 될 것 같다.  반주하기가 무섭다.

 신부님도 계시고 수녀님도 계시고 아이들도 있고, 내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다니 엄청 무섭다. 그래도 약속을 했다. 참 나처럼 바보도 없을 것이다. 반주를 안 해도 연습은 하기로 했다. 올해 반주를 하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 반주자는 힘든 것이다. 반주자를 안 하는 것, 올해 안 하는 것이 소원이다. 아무래도 피아노연습은 하는 것이 좋으니 연습만  하고 반주할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아마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어린이 미사이니까 어린이가 반주하는 것이 좋고, 그 어린이는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잠깐 생각해 보자.  이제 10살 난 어린이가 전례를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음악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악기 연주로써 공동체의 기도를 이끌고 갈 능력이 얼마나 있겠는가?  여러분은 아마 피아노만 치면 된다고 하겠지만 이 어린 반주자의 반주에 따라 공동체가 기도한다고 생각할 때 이 어린이는 바로 우리 공동체의 기도를 이끌고 가는 지도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기도를 이렇게 어린이에게 맡길만큼 우리는 성숙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일까?  어린이들에게 이런 막중한 책임을 지우고 이 어린이에 맞추어서 기도를 하자는 발상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다. 위에서 보듯 이 어린이도 얼마나 자신의 역할이 부담스럽고 힘든 것으로 느끼는가. 반주 안하는 것이 올해의 소원이라고 한다. 앞의 도입부에서 말했듯이 사제들도 신자들과 마주보며 미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 않는가?  음악을 전공하고 남을 이끌 수 있는 나이가 된 분이 전례를 이끌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길어졌다.

많은 사목자들이 전례의 집전자나 복음선포자 보다 교회의 운영자 혹은 관리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교회의 많은 설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운영자로서는 성가대를 위해 투자되는 돈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돈 버는 법을 가르쳐 드릴까?  간단하다. 전례를 제대로 행하는 것이다.  잘 준비된 사제의 강론이 있고 성가대의 잘 준비된 성가가 있으면 신자들은 주머니를 쉽게 연다는 것이 내가 제공하는 비밀이다.  성탄이나 부활 때를 생각해 보라. 평상시 어느 때보다 사목자들이 전례 책이라도 한편 살펴보면서 전례를 준비하고, 보다 나은 강론을 준비하고 성가대가 이런 때만큼 열심히 준비하는 때가 있는가?  속는 셈치고 해 보자. 사목자는 열심히 좋은 강론 준비하고 성가대가 좋은 찬미의 기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한번 해 보시라.  매 주일의 헌금이 부활 때나 성탄 때만큼은 충분히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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