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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맞으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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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2 ㅣ No.263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맞으며]
새 교황 탄생의 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희망 잃은 세상, 위로해 줄 목자를 기다렸다





▲ 13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새 교황을 보기 위해 몰린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성 베드로 광장.


3월 13일 저녁 7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10만여 명 신자들의 시선은 모두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을 향해 있었다. 첫 번째 투표가 있었던 전날 3월 12일 저녁에 이어 이날 오전 11시 40분에 이미 또 한 차례의 검은 연기가 올랐고, 오후 6시가 넘도록 흰 연기가 오르지 않아 네 번째 투표에서도 새 교황을 선출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다섯 번째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흰 연기가 오르는 첫 순간을 놓칠까 봐 모두 굴뚝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며 5분이 막 지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굴을 드는 순간 굴뚝에서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검은 연기? 하며 의심을 하는 순간, 흰 연기가 뚜렷하게 굴뚝 밖으로 나와 하늘로 퍼져 올라갔다. 한 시간 넘게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하던 사제 한 분도 일어섰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각자 사진기를 들어 굴뚝에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찍었다. 아무도 어느 분이 뽑혔는지 묻지 않았다. 새 교황님을 뽑았다는 사실만이 광장의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광장 중앙으로, 중앙에서 교황님을 더 잘 볼 수 있는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을 죽여 기다렸다.

성 베드로 대성전의 중앙 발코니(Loggia central) 뒤편 '축복의 방'(Sala di Benedizione)에 불이 켜졌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이제 곧 발코니 문이 열릴 것이다.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커튼 뒤로 비쳤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수석 부제 추기경(Jean-Louis Tauran)이 나타나 새 교황 선출을 알렸다.

"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큰 기쁨을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우리는 교황님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새로 선출된 교황님은 "… Bergoglio"이고,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하셨다고 했다. Bergoglio? 어느 분이시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 교황님이 누구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른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해 어느 분이신지 확인했다.

추기경들은 왜 이분을 선택하셨을까? 새 교황님이 로마와 세계 사람들을 향한 첫 강복 전에 하신 짧은 말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소박하고 짧은 말씀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Voi sapete che il dovere del Conclave era di dare un vescovo a Roma. Sembra che i miei fratelli cardinali sono andati a prenderlo quasi alla fine del mondo… ma siamo qui… Vi ringrazio dell'accoglienza. La comunit? diocesana di Roma ha il suo vescovo: grazie!"(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콘클라베의 의무는 로마에 주교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내 형제 추기경들은 그 주교를 데리러 거의 세상 끝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환영에 감사합니다. 로마교구 공동체는 자기 주교를 갖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씀에 놀랐다. 교황을 뽑았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로마의 주교를 뽑았다고 하셨다. 이어서 하신 말씀에서도 로마교구의 신자들을 독려하시고, 그 자리에 로마교구 총대리 추기경을 대동하시어 "대단히 아름다운 이 도시의 복음화를 위해 여기에 함께 계신 저의 총대리 추기경께서 저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교가 백성에게 축복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먼저 당신을 강복해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자기 주교를 위해 주님의 강복을 청하는 기도를 부탁하시고, 백성이 침묵 중에 기도하는 동안 머리를 숙이셨다.

감동이 밀려왔다. 어느 주교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ma prima - prima"(먼저… 여러분이 먼저…) 하시는 데서는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주교와 백성은 하나가 됐다.

새 교황님은 1936년 12월 17일생이시다. 76살을 넘기셨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사임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어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의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고, 활기차게 일하실 수 있는 '젊은' 분을 교황으로 선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스티나 성당의 추기경들은 예상을 뒤엎고 연로하신 분을 선출했다. 전문가들도 전혀 뜻밖이어서 하느님의 섭리를 헤아릴 수밖에 없다고들 했다. 그러나 새 교황님의 말씀과 태도를 되새기다 보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분을 교황으로 뽑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베네딕토 16세 사임 이후 세계의 추기경들은 유례 없는 이 '대사건'을 겪어내면서 현대 사회와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추기경들은 베네딕토 16세께서 교회는 사명을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정화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말씀도 기억했다.

사도좌가 공석이 됐지만 콘클라베를 서둘러 시작하지 않고 열 차례나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에서도 다섯 차례의 진통을 겪으면서 베르골료 추기경을 교황으로 뽑았다.

새 교황님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당신의 이름으로 선택하셨다. 여기에서 이분을 교황으로 선출한 의미가 드러난다. 새 교황님은 엄격하시다고 하지만 소박한 아파트에 사시며 버스를 타고 다시신다. 로마에 오셔서도 늘 그러셨다고 사람들이 알려준다.

교황에 선출되고 처음으로 신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실 때에도 흰 수단 차림으로만 나오셨다. 교황의 권위를 드러내는 붉은 어깨보나 망토를 입지 않으셨다. 추기경들이 열 차례 회의에서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새 교황님 선출로 미루어 그 내용을 감히 짐작해 본다. 그 모든 염려와 진단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가장 적절히 잘 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이분'이라고 확신하시어 이분을 우리 교회 최고 목자로 세우셨다.

세상에는 아직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잘못 되고, 무엇이 옳고 그릇된 것인지, 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줄 분도 필요하다. 올바른 양심과 윤리를 가르쳐 줄 분도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은 피곤에 지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해 줄 분을 기다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분이 세상을 위로해 주실 분이 아닐까?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김종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 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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