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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필독] 질투嫉妒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에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교요해략, 신수당제3각판(1615년이후)이 포함된다 1035_시기vs질투 [교차번역오류]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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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3 [121.190.18.*]

2021-03-18 ㅣ No.2189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89.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부제(副題) 1: 탈출기 20,5에 있는 질투라는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의 출처는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에 의하여 번역되어 1863년에 초간된 개신교회용 중국어본 성경이다(아래의 제2-13, 2-14항들)  

 

부제(副題) 2: 천학초함에 포함된 판토하 신부님의 칠극의 서문 칠극자서와 칠극 본문 사이에 있는 낙관(落款)이 있는 두 페이지는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이 삽입한 것이다(아래의 제2-5, 2-6, 2-7항들)

 

 

1. 들어가면서

 

1-1. 질문 1: "새 번역 성경", 탈출기 20,5에는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라는 번역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질투"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 측의 고유한 용어인지요???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예를 들어, (i)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의 부록에서 가르치는, 아담과 하와가 범한 원죄(original sin)의 결과들로서 이들의 후손들인 모든 인간들이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들을 가지고 있는, 칠죄종(the seven capical sins)들에 바로 이 "질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4-01-16]

그리고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듯이, (ii)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나열하였고, (iii)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가르침에 기 수욛된, 그리하여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특히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천주강생언행기략"(1635년)을 통하여 한문 문화권에 전달되어 그 결과, 아래의 제2-8항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안내될 수 있게 된, 셩령을 거스르는 6개의 죄들 중에 "다른 이의 영적 선에 대한 질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성령을_거스르는_행위를_하는_자들은_가장_깊은_속_내면의_성향들이_순수하지_않은_자들에_포함될_것이다_2193.htm <----- 필독 권고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blasphemy2Holy_Spirit.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24-01-16일자 내용 추가 끝]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글의 제목으로 교우님들께 보고를 드린 바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기 때문입니다.

 

1-2.

1-2-1. 우선적으로 이번 항에서는,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가,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창안된 신조어가 아님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발췌된 "한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嫉妒"라는 한자 단어의 용례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발췌 시작)

嫉妒  

 

忌妒。[졸번역: 기투(忌妒)를 말하니라].
 《楚辭‧離騷》:“羌內恕己以量人兮,各興心而嫉妒。”一本作“嫉妒”。
 王逸注:“賢為嫉,色為妒。[졸번역: 어진 자(賢, sage)를 해침()이 질(嫉)을 구성하고(為, compose), [상대방의] 몸(色, body)을 해침이 투(妒)를 구성하니라]”
 《漢書‧佞幸傳‧董賢》:“嫉妒忠良,非毀有功,於戲傷哉!”元白樸《墻頭馬上》第四摺:“恁母親從來狠毒,恁父親偏生嫉妒。”
 《古今小說‧宋四公大鬧禁魂張》:“王愷羞慚而退,自思國中之寶,敵不得他過,遂乃生計嫉妒。”
 巴金《滅亡》第六章:“不過一般小人總有嫉妒賢者的心思,因此有些不滿意他的人便造了不少的謠言來毀謗他。”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의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2-3: 이 단어가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말기인 1600-1609년 사이의 저술들인, "천주실의"(1603년), "기인십편"(1606년), 그리고 "변학유독"(1609년)에서 사용되지 않음은, 아래의 제2-1항, 제2-3항, 그리고 제2-4항을 보라.

 

1-2-2. 다음에 발췌된 바는, 바로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한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의 설명에서 등가의 의미(equivalent meaning)를 지닌 단어로서 제시된, "忌妒"(기투)라는 한자 단어의 "한어대사전"에 제시된 설명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忌妒  

 

1.明方孝孺《與鄭叔度書》之四:“宋之時司馬公、歐陽子、二程、蘇子瞻以及朱文公皆負當世重名,然為世人所忌妒,無得行其志者。”
 清魏源《聖武記》卷九:“而語及額勒登保、德楞泰屢次奏捷,則皆為將信將疑之詞,意存忌妒,以揜己老師南山,縱賊隴西之失,其心實不可問。”
 續范亭《秦檜歸來》:“宋室貴族忌妒楊家軍,把他們的隊伍指揮到絕地,不加援助,楊業糧盡援絕,困死沙漠。”
2.妒忌。對才能、名譽、地位或境遇比自己好的人心懷怨恨。[졸번역: 투기(妒忌)를 말하니라. 재능(才能), 명예(名譽), 지위(地位) 혹은 경우(境遇)가 자기(自己)에게 견주었을 때(比)에 더 나은/탁월한(好, good, excellent) 사람에 대하여(對, toward) 심장(心, heart)이 원한(怨恨)을 품음(懷)을 말하니라.]
 明方孝孺《與鄭叔度書》之四:“宋之時司馬公、歐陽子、二程、蘇子瞻以及朱文公皆負當世重名,然為世人所忌妒,無得行其志者。”
 清魏源《聖武記》卷九:“而語及額勒登保、德楞泰屢次奏捷,則皆為將信將疑之詞,意存忌妒,以揜己老師南山,縱賊隴西之失,其心實不可問。”
 續范亭《秦檜歸來》:“宋室貴族忌妒楊家軍,把他們的隊伍指揮到絕地,不加援助,楊業糧盡援絕,困死沙漠。”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의 우리말 번역 끝)

 

1-2-3. 다음에 발췌된 바는, "한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憎妒"(증투)라는 한자 단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憎妒  

 

憎恨妒忌。
 漢劉向《列女傳‧晉伯宗妻》:“盜憎主人,民愛其上,有愛好人者,必有憎妒人者。”
 南朝陳顧野王《艷歌行》:“妖姿巧笑能傾城,那思他人不憎妒。”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3: 참고로, 이 단어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천주실의"에서 사용되고 있다.

 

질문 2: 여러분들 생각에, 바로 위에 주어진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어의(語義)를 지닌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가 하느님의 어떤 속성을 기술하는 성경 본문에서 감히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1-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차용 번역 용어들로서, "嫉妒"(질투, envy)"猜忌"(시기, jealousy)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1-4.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아무리 늦더라도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15년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교요해략"의, 초판본이 아닌, 신수당제3각판 중판에 수록된 칠죄종들의 소제목들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2. 유관 사료 분석 I

 

이번 항에서는, (i)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및 (ii) 1807년과 그 이후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한문본 개신교회 문헌들에서,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올라가면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된 용례들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이 글의 결론 7), (이 글의 결론 8), (이 글의 결론 9), (이 글의 결론 10), 그리고 (이 글의 결론 11)은, 아래에 있는 제2-13항제2-14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y) 고찰한 바들로부터 도출되는 결과들입니다:

 

(이 글의 결론 7) 만약에 미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들인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처럼, 4서5경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로), 이들이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1863년 초간의 중국어본 성경,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결코 사용할 수 없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8) 만약에 미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들인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4서5경을 깊이있게 학습한 후에 남긴, 예를 들어, "교요해략" 등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로), 이들이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1863년 초간의 중국어본 성경,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결코 사용할 수 없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9)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우리말본 성경들의 번역대본에,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 역(譯)이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0) 만약에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할 때에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 역(譯)이 그 번역대본들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면(가정법 과거완료), 그동안의 개신교회용 성경들 및 천주교회용 성경들의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1) 만약에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할 때에 번역자들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4서5경을 깊이있게 학습한 후에 남긴, 예를 들어, "교요해략" 등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로), 그동안의 개신교회용 성경들 및 천주교회용 성경들의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결코 사용되지 못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1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개신교회측의 구약 성경들 중의 탈출기 20,5에서 모두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잘못 선정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주: 개역한글 1956년]: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Parall.php?version=GAE&rdoReadType=1&book=exo&chap=20&sec=5&sec1=1

혹은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version=HAN&book=exo&chap=20&sec=5&cVersion=GAE^SAE^&fontSize=15px&fontWeight=normal#focus 

 

게시자 주 2-14: (1) 따라서,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우리말본 성경들의 번역대본에, 본글의 제2-13항에 안내된,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E. C. Bridgman,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M. S. Culbertson, 1819-1862년) 역(譯)이 포함됨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그런데, (I)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E. C. Bridgman,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M. S. Culbertson, 1819-1862년) 역(譯)(II) 1900년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크게, "천문리", "심문리", "관화", 이렇게 세 판본들로 구분된다고 알려져 있는, "文理和合譯本"(문리화합역본)을, 1930년대와 그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우리말본 성경들이 마련 될 때에, 특히 차용 번역 용어들로서 성경 용어들의 선정 및 확정 시에예를 들어, 본글의 제2-13항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수행하였듯이,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제대로 참조하였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文理和合譯本"(문리화합역본)에 대한 안내의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intro2_1890년이후_문리화합역본.htm <-----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2-13 끝)

 

2-1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807년 이후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한문본 구약 성경들 중의 탈출기 20,5에서, 위의 제1-2항에서 이미 확인하였듯이 타인을 해친다는 의미가 그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어의에 포함되어 있는, 따라서 하느님께는 매우 부적절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잘못 선정되어 사용된 판본은, 오로지 미국의 개신교회 장로회(Presbyterian)에서 중국에 파견한 선교사들에 의하여 번역되어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 역(譯)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기피홀_질투_열기_기사_등_in_개신교회측_한문본_성경들_탈출기_20_5.htm  <----- 필히 클릭하여 확인하라

 

특히,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E. C. Bridgman,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M. S. Culbertson, 1819-1862년) 역(譯)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잘못 선정되어 사용되었음은, 1900년 이후에 출판된 소위 말하는 "文理和合譯本"(문리화합역본)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 대신에, "邪"(사)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음으로부터,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질투_in_탈출20_5_in_1863_브리지만(裨治文)&칼버트슨(克陛存)_역_중국어본_구약성경.jpg


게시자 주 2-13: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미국인들인 裨治文(브리지만, E. C. Bridgman,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M. S. Culbertson, 1819-1862년) 이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특히 당신의 한 속성이 "jealous"이라고,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 스스로 밝히고 있는 탈출기 20,5와 그 전후 문맥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예를 들어, 

 

(i) 1850년대 중반에 중국어로 번역이 완료된, 소위 말하는, "委辦譯本"(위판역본)[즉, 대표역본, "위원회역본"]을 따르지 않은 점,(#) 

 

(ii) 위의 제1-2항에서 이미 확인하였듯이 타인을 해친다는 의미가 그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어의에 포함되어 있는, 따라서 하느님의 어떤 속성을 기술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한자 단어가 "嫉妒"(질투)라는 단어임을 전혀 몰랐다는 점,

 

(iii) 비록 국적(nationality)은 다르지만,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이 중국 본토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를 반갑게 맞아준 동일한 장로회 소속의 영국인인 로버트 모리슨(1782-183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822년에 초간된, 그리고 그 방대함 때문에 그 이후 시점에 상당한 기간에 걸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 사이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전으로서 널리 알려졌던 로버트 모리슨5거운부 사전들에 포함되는, "영중사전"을 또한 많이 참조하였을 것이 매우 분명하나, 그러나, 본글의 제2-12항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듯이, 바로 이 "영중사전"에서 그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 때문에 하느님의 어떤 속성을 기술하기 위하여 결코 사용될 수 없음이 분명한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에 등가로 대응하는 성경 용어가, 그 어원이 열정(zeal)의 어원과 정확하게 동일한 단어인 "jealousy"아니고"envy"이라고 제시된 설명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그리고 더 나아가,

 

(iv) 위의 제1-3항에 안내된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듯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윤리 교육 교리 내용에 포함된 칠죄종(seven capital sins)들 중의 한 개인1583년과 그 이후에 충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嫉妒"(질투)"로 번역이 된, 라틴어 단어 "invidia" 대응하는 영어 번역 용어가 "envy"[주: 이들 두 단어들의 음값이 매우 유사함에 또한 주목하라]전혀 몰랐다는 점, 

 

등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

(#) 게시자 주: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87.htm

(발췌 시작)

1843년: 이들 다섯 항구들의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이 번역 작업을 수행하여, 소위 말하는, 중국어 대표본/대표역본 성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메드허스터(Medhurst, 麥都思, 1796-1857년) 등은 중국 홍콩에서 한 번 회합을 가졌음. 
[참조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1847년부터_대표역본_번역_당시_사정들_in_1852_신약전서_입문.jpg
[참조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DelegatesVersion.pdf; "委辦譯本" "Delegates version" "1855年" "舊約全書/ 新約全書 (共四)"]

(이상, 발췌 끝)

-----

 

[내용 추가 일자: 2024-01-14]

(v) 특히,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탈출기 20,5에서 "zelotes"라는 라틴어 단어가 사용된 점:

http://www.latinvulgate.com/verse.aspx?t=0&b=2&c=20 

 

더욱더 특히,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그리스어 칠십인역 탈출기 20,5에서, 영어로 "jealous"로 번역되는 "ζηλωτής"라는 그리스어가 사용된 점:

https://en.katabiblon.com/us/index.php?text=LXX&book=Ex&ch=20&interlin=on  

 

더더욱 더더욱 특히,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코린토 1서 13,4에서 우리말본 성경들에서 "시기"로 번역되는 용어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단어 "ζηλοῖ"라는 그리스어 단어가, 그리스어 칠십인역 탈출기 20,5에서, 영어로 "jealous"로 번역되는 "ζηλωτής"라는 그리스어단어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는 점:

https://biblehub.com/greek/2206.htm 

 

등을 미국인들인 裨治文(브리지만, E. C. Bridgman,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M. S. Culbertson, 1819-1862년)이 몰랐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 특히, 아래의 제2-12항에 발췌된 바를 이들이 전혀 몰랐거나 혹은 전적으로 무시하였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vi) 그리고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유관 자료들도 또한 꼭 살펴보십시오:

 

탈출기 20,4: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Exodus+20.5&fromdoc=Perseus%3Atext%3A1999.02.0060 [주: Vulgate: zelotes]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4.0057:entry=zhlwth/s 

2. jealous, θεὸς ζ. LXXEx.20.5. 시기하는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4.0059:entry=zelotes 

I.one that loves with jealousy, one that is jealous (eccl. Lat.); “of God, Tert. adv. Marc. 1, 28; 4, 25; Vulg. Exod. 20, 5 al. 시기하는

 

http://www.perseus.tufts.edu/hopper/morph?l=zelotes&la=la&can=zelotes0&prior=fortis&d=Perseus:text:1999.02.0060:book=Exodus:chapter=20:verse=5&i=1 

-----

 

1코린토 14,3: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abo:tlg,0031,007:13:4&lang=original [주: 그리스어본]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1+Corinthians+13.4&fromdoc=Perseus%3Atext%3A1999.02.0060 [주: Vulgate: aemulatur <----- zelotes 대신에 aemulatur이 번역 용어로 사용되었음]

 

참고로,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신약 성경성 예로니모(St. Jerome)께서 당시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으로부터 직접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주소에 있는 그리스어 사전 설명에 의하면, 여기서의 전후 문맥 안에서, aemulatur의 의미는 through jealousy이라고 합니다.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4.0057:entry=zhlo/w 

Ep.Cor.13.4; “ζηλώσαντες through jealousy, Act.Ap.7.9.

 

따라서,바로 위의 그리스어 사전 설명 및 위의 제(v)항에서 또한 이미 고찰한 유관 그리스어 어근 정보로부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1코린토 14,3에서 zelotes 대신에 aemulatur 번역된 것이 번역 오류는 아님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지적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1979년에 초간된 "새 대중 라틴말 성겯"(Nova Vulgata), 1코린토 1,4에서 aemulatur 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으로부터 확인된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ovum-testamentum_lt.html  

https://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t_epist-i-corinthios_lt.html#13 

(발췌 시작)

4 Caritas patiens est, benigna est caritas, non aemulatur, non agit superbe, non inflatur,

(이상, 발췌 끝)

 

(vii)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어디서 애초에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의 문제가 처음으로 발생하기 시작하였는가 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영국 성공회 측에서 소위 말하는 개신교회 용 영어본 성경인 1611년 초판 "King James Version"을 마련할 때에 많이 참조한 것으로 얄려진,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가 영어로 번역된, 가톨릭용 영어본 성경인 "Douay-Rheims Bible"이 마련될 때에, 1코린토 1,4에서 jealous로 번역되는 대신에, "charity envieth not"으로 잘못 번역이 되었고, 그리고 바로 이 번역 오류1611년 초판 "King James Version"에 그대로 묻어 들어간 데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두 개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지금 지적한 바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latinvulgate.com/verse.aspx?t=1&b=7&c=13 

(발췌 시작)

caritas patiens est benigna est caritas non aemulatur non agit perperam non inflatur

 

Charity is patient, is kind: charity envieth not, dealeth not perversely, is not puffed up,

(이상, 발췌 끝)

 

그리하여 그 결과, 그 이후 작금에 이르기까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개신교회 측의 일부 영어본 성경들의 1코린토 14,3에 아직도 이 번역 오류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s://biblehub.com/1_corinthians/13-4.htm 

 

(viii) 그러나,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1611년에 초간된 King James Version을 현대 영어 어법에 맞게 개정하면서 또한 일부 오류들을 바로 잡아1960년대에 들어와 출판된 Revised Standard Version의 경우에, 확실하게 바로잡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3.htm [주: 탈출기 20,5: jealous(시기하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4.htm [주: 1코린토 13,4: jealous(시기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라나라 안에서 1969년부터 마련되어 1970년대 초반애 초간된 "공동번역성서", 탈출기 20,5에서, "시기하는" 대신에, "질투하는"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2005년에 초간된 "새 번역 성경", 탈출기 20,5에서도 또한, "시기하는" 대신에, "질투하는"으로 번역되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ix) 그리고, 우라나라 안에서 1969년부터 마련되어 1970년대 초반애 초간된 "공동번역성서", 탈출기 20,5에서, "시기하는" 대신에, "질투하는"으로 번역된 이유는, 위의 제2-14항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고 있습니다.

[이상, 2024-01-14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게시자 주 2-13 끝)

 

2-12. 다음은, 1807년에 개신교회 측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영국의 개신교회 장로회(Presbyterian) 소속의 로버트 모리슨(1782-183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822년에 초간된 "영중사전"에서 발췌한 바인데, 영어 단어 "envy"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가, "猜忌"(시기)아니고"嫉妒"(질투)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5거운부_p2_ch03_영중사전_1822.htm

(빌췌 시작)

envious_envy_in_1822_5거운부_p2_ch03_영중사전_제143쪽.jpg

(이상, 발췌 끝)

 

2-11.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샤바냑 신부님(1670-1717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18년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진도자증"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70-1717_랑그로이_드_샤바낙/1718_진도자증.htm 

(발췌 시작)

권4_1_1_경교(經教)요문_45-47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20년 9월 6일) 여기서 "景教"(경교)가 아니라 "經教"(경교)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經教"(경교)란, 불교 용어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성경의 가르침"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의 의미는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40년쯤에 초간된 "천주강생인의", 상권에서 사용된 동일한 의미의 번역 용어들, 경교(經敎)(scriptual teaching)/서교(書教)/고교(古教)의 의미, 즉, "구약 성경 중의 옛 가르침들인 모세 율법의 가르침"과 결코 동일하지 않음에 또한 주목하라.]
권4_1_1_1_향천주3덕
권4_1_1_2_천주10계 [(2017년 7월 12일) 주: 여기에 나열된 "천주십계"는, 미카엘 루지에리 신부님(1543-1607년)"천주성교실록"에 수록된 "조전천주십계"와 동일하지 않으며 그리고 특히 바로 여기에 정하상 성인이 작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재상서"에 수록된, "천주십계"가 "만물 위에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으로 "총귀"된다는 기술이 주어져 있음. 그리고 동일한 기술이 또한 예수회 소속의 제이오 몬테이로 신부님(1602-1648년)의 저서로서 1655년에 초간된 "천학략의", 제27쪽 오른쪽 면에 주어져 있음]
권4_1_1_3_4추덕
권4_1_1_4_8진복
권4_1_1-5_7죄종 <----- 여기를 보십시오
권4_1_1-6_극죄7덕
권4_1_1-7_애긍지행
권4_1_1_8_성사7적
권4_1_1_9_만민4종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부터 보라. 

(이상, 발췌 끝)

 

출처 2: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354608#p56 

(진도자증 중의 유관 부분 발췌 시작)

罪宗七端:一、驕傲。二、嫉妒。三、貪吝。四、忿怒。五、迷飲食。六、迷色。七、懶惰。 

(이상, 발췌 끝)

 

2-10.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말해지고 있는, 1635-1647년 사이에 출판된, 개정된 "천주교요"(B)에는,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래에 발췌된 바에 있는 출처를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7.htm

(발췌 시작)

2-2. 다음은,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610년)에 의하여 1605년에 저술되었다는 "천주교요"아닌, 프란치스코 푸르타도(Francisco Furtado, 즉, 부범제, 傅泛際/傅汎際) 신부님부관구장(Vice_Provincial)으로 계셨던 1635-1641년 사이 혹은 1646-1647년 사이에 출판된 것이 분명한, 당시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함께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천주교요", 제4b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35-1647_야소회사_공역/치회부범제준_천주교요.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시작)

原文性薄羅 共具也 ....

 

[라틴어] 원문은 성박라(性薄羅)라고 불렸으며, 번역하면 공구[共具, 즉, 함께 하는/공통의(common) 길(道, way)/명문(明文, provision)]를 말하니라.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2: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值會 傅汎際 准"(치회 부범제 준) 이라는 표현에서  "值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9.htm <----- 필독 권고


(2) (이 글의 결론 1) 1583년부터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기도서들 중에서, 1650년에 이르기까지, 바로 위에 발췌된 바와 같은 설명이 "신경"이라는 번역 용어에 부착된 기도서는 개정된 "천주교요" 하나뿐임을, 그동안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유과 사료들의 본문 분석 경험들에 근거하여,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9: (1) 바로 위의 제2-8항에 발췌된 바에서 말해지고 있는, 1635-1641년 사이 혹은 1646-1647년 사이에 출판된 것이 분명한, 당시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함께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개정된 "천주교요"(B)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저작권 문제 때문에루지에리 신부님"천주성교실록"의 경우처럼마태오 리치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05년에 초간된 "천주교요"(A)에 수록된 바의 전부 혹은 일부를 그대로 제시하면서, 다만 바로 이 "천주교요"(A) 중의 일부 한자 용어들이, 아무리 늦더라도, 1647년 이전의 당시에 기 확정된 천주교 한자 용어들로 교체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본글의 제2항의 전체 문맥 때문에,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은 이어지는 제3항, 유관 사료 분석 II에서 별도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2-9 끝)

 

2-9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1642년 사이에 초간된, "천주강생성경직해", 권12[주: 1642년]에서 발췌한 바인데,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성경직해", 권12_24_성마두종도_겸성사첨례_292-298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9월21일, 마태오 복음서 9,9-13(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10주일 복음 말씀)] [마두 = 마태오] 

 

질투_in_1642_성경직해_권12_24_성마두종도_겸성사첨례_제24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의 첫 번째 줄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8

2-8-1.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중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발췌한 바인데, 성령에 거스르는 6가지 죄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주석에서, "嫉妒"(질투) 대신에, "嫉妒"(질투)와 등가인(equivalent) 의미를 가지고 있는 "忌"(투기)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출처 2: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256377&searchu=%E5%A6%92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천주강생언행기략", 권3_6_축마유이단_60-61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마태오 복음서 12,22-32) [주: 권지3 제12쪽에, 성령을 거스르는 여섯 개의 죄들이 각주에 나열되어 있음]. ["상주"(heavenly Lord, 높은 하늘에 계신 주님, 즉, 성부 하느님)[주: 소 괄호 ( ) 안에 추가한 날짜: 2018년 8월 8일]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성령에_거스르는_죄_6개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3_6_축마유이단_제12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열(column)의 첫 번째 줄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8-2. 다음은 또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중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발췌한 바인데,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성경 용어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언행기략", 권6_11_도성성적_122-123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마태오 복음서 21,14-16) [주: 칠십인역 시편 8,3을 인용하고 있다는 마태오 복음서 21,16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을 반드시 읽도록 하라]

 

질투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6_11_도성성적_제7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8-3.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중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발췌한 바인데, "猜忌"(시기)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성경 용어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언행기략", 권1_12_야소피거액일다국_30-31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마태오 복음서 2,13-23(매년 12월 28일 복음 말씀; 가해 성 가정 축일 복음 말씀)] [액일다 = 이집트, 백릉 = 베들레헴, 납잡륵 = 나자렛, 아슬아(阿瑟亞) = 호세아 (주: 호세아 11,1이 마태오 복음서 2,15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음)] [(2016년 7월 30일) 주: 짧은 이 복음서 본문에 이어서, 각주임을 밝히는 "안서사(즉, 서양 역사를 생각할 때에)"로 시작하는, 성경 본문 이외의 내용이 한 페이지에 걸쳐 주어져 있음. 그리고 본문 바깥에 배치되어야 하는 바가 본문의 한 부분으로서의 바로 이러한 추가는, 필자의 생각에, 조판공/식자공의 오류(error)라는 생각임.] 

 

시기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1_12_야소피거액일다국_제12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7.

2-7-1. 다음은, 1629년에 그 당시까지 중국 본통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문헌들 중에서, 중국인인 평신도 학자로서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한분몬 저술 작엄을 도와 준 이지조(李之藻, 1565-1630년)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서 출판한, "천학초함", 제2책에 수록되어 있는, 판토하 신부님의 수덕서인 한문본 천주교 문헌인 "칠극(七克)" 본문 직전에 삽입된 두 페이지들을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천주교요언죄종7단_in_칠극_in_1629_천학초함_제2책_제715쪽.jpg

 

게시자 주: 비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주: 제2-7-1항 참조] 및 첫 번째 열(column) 아랫 부분에 있는 낙관/인장[주: 제2-7-2항 참조]을 보라.

 

천주교요언죄종7단_in_칠극_in_1629_천학초함_제2책_제716쪽.jpg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의 제715쪽의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에서, "天主教要"가 그 다음에 나열된 "칠죄종"들에 대하여 기술하고, 그런 다음에, 이들 일곱 개의 우두머리 죄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부분의 기술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15년에 초간된 "교요해략"(즉, "천주교요해략")의, 초판본이 아닌, 신수당제3각판 중판에 수록된 바와 낱글자 수준에까지 동일하나, 다만, 이들 7개의 죄들의 나열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1629년에 출판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七克)" 본문 직전에 삽입된 두 페이지들에서 "嫉妒"(질투)가, "칠극(七克)" 본문에서 나열된 순서와 동일하게, 두 번째로 나열되고 있으나, 그러나, "교요해략"(즉, "천주교요해략")에서는 여섯 번째로 나열되고 있음 등의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1629년에 초간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七克)" 본문 직전에 삽입된 두 페이지들에서 말해지고 있는 "天主教要"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05년에 초간된 "天主教要"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1629년보다 이전에 출판된, 1615년에 초간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교요해략"(즉, "천주교요해략")(i) 초판본, (ii) 신수당제3각판 중판, 혹은 (iii) 그 이전 판본(즉, 신수당제3각의 초판 혹은 이 초판보다 더 이전 판본),(*1) 이들 셋 중의 하나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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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러한 상세한 구분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宗徒信經에서 聖神相通功이 諸聖相通功으로 교체된 시점은 교요해략 신수당제3각의 초판과 중판 사이이다" 제목의 글/논문[게시일자: 2017-08-12]의 작성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 때문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5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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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는, 1629년에 출판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 한분몬 저서인 "서학범" 첫 페이지인데, 바로 이 페이지에 찍힌 낙관/인장이 위의 제2-7-1항에 발췌된 바, 즉,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칠극자서""칠극"의 본문 시작 직전의 자리에 삽임된 바에 찍힌 인장정확하게 동일함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출처: "서학범" 첫 페이지 in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29_천학초함/천학초함_전6책.htm  

(발췌 시작)

서학범_첫_페이지_in_1629_천학초함_제27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 (1)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본글의 제2항의 전체 문맥 때문에, 제2-7-1항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은 이어지는 제3항, 유관 사료 분석 II에서 별도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바로 위의 제2-7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한 바로부터 도출된, 아래의 제4-5항에 있는, (이 글의 결론 5)를 읽도록 하십시오.

(아상, 게시자 주 2-7 끝)

 

2-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15년에 초간된 "천주교요해략"(즉, "교요해략")의, 초판본이 아닌신수당제3각판 중판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15_교요해략.htm

(발췌 시작)

교요해략_권지하_10_죄종7단_79-89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7죄종들과 그 해설들] 

 

 

 질투_in_1615_교요해략_권지하_10_죄종7단_제14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그런데, 위의 출처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위에 발췌된 "교요해락"의, 1615년 초판본이 아닌신수당제3각판 중판에서, "칠죄종들"을 나열할 때에는 "嫉妒"(질투, invidia)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그러나 정작에 "invidia"에 대하여 기술할 때에는, "嫉妒"(질투) 대신에, 오로지 낱글자 ""(투)에 대하여만 그 의미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2-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1629년에 이지조에 의하여 출판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七克)"에서 "invidia"에 대하여 본문에서 기술할 때에는, "嫉妒"(질투) 대신에, 오로지 낱글자 ""(투)에 대하여만 그 의미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29_천학초함/천학초함_전6책.htm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689쪽부터 제1126쪽까지 들여다보도록 하십시오. 

 

2-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609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변학유독"에서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만약에 1605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천주교요"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도입되어 사용되었더라면,  "嫉妒心"(질투심)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었어야 할 자리에(가정법 과거완료), 대신에"忌心"(투기심)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667173#p153 

 

2-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608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기인10편"에서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만약에 1605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천주교요"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도입되어 사용되었더라면,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었어야 할 자리에(가정법 과거완료), 대신에"嫌"(혐투)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614785#p274 

 

2-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605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천주교요"가, 델리아 신부님께서 들여다본 이후인 20세기의 어느 시점에, 분실되었다는 내용의 주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85.htm

(발췌 시작)

4-6. 바로 위의 제4-5항에 발췌된 바를 대충 읽어보면, "한문 문화권"에 속하는 일본 지역과 중국 지역 둘 다의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에 많은 노력을 하셨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 중에서,

 

(i) 특히 마태오 리치 신부님께 그리스도교 신학을 가르친 분이셨던 분으로서,

 

(ii) 마카오를 거점으로 하여 일본과 중국을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 대상으로 삼아, 장상으로서"한문 문화권" 내의 예수회의 운영을 주관하셨던, 발리냐노 신부님(Valignano, Alessandro(1539~1606)을 주목하게 되므로,

 

(iii) 발리냐노 신부님께서 저술한 천주교 관련 저서들 중에서 혹시라도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저서인 "천주실의"에 영향을 끼친 책들이 있는지를 찾아 보는 과정에서, 다음의 중요한 논문 한 편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39-1606_발리냐노/2013_Overlooked_connection_between_Riccis_천주실의_and_Valignanos_Catechismus_Japonensis.pdf

(발췌 시작)

     The Catechimus japonensis includes a total of twelve conferences (talks) or conciones (eight in the first part and four in the second part) while the Tianzhu shiyi has eight chapters. The structure is almost identical. The first section of both books expounds the philosophical approach; the first seven chapters of the Tianzhu shiyi correspond to the first five conferences of the Catechismus. Following the philosophical section, the Catechismus presents the history of salvation in the last three conferences of the first part and in the four conferences of the second part. Ricci purposefully limited his dealing with revelation to the last chapter of his Tianzhu shiyi, mentioning briefly Christ’s incarnation.5 He gives the complete dogmatic treatise for the use of the Chinese converts in a separate book, the Tianzhu jiaoyao 天主教要 (Doctrine of the Lord of Heaven; 1605).6

 

-----

5. In table 1, I have not used underlining in this case since there is no literary connection.

6. See D’Elia 1942, vol. 2, section 708, 289. For more on the Tianzhu jiaoyao, see Criveller 2010, 56. The 1605 edition was seen and described by Pasquale D’Elia, but the copy has now disappeared. We know how the text must have looked like thanks to D’Elia’s description. In 1615 Alfonso Vagnone[알퐁소 바뇨니](#1) published a revised edition of the text with the title Jiaoyao jielüe 教要解略; see Chan 2002, 101–3. Some topics can be addressed through natural reason or dogma. For example, Valignano mentioned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ast judgment in the dogmatic section, but Ricci had it in his sixth chapter, considering the existence of paradise and hell as a necessity of reason and morality. However, we have to admit that Ricci went beyond reason in describing the pains of hell and the pleasures of heaven.

 

-----

(#1) 바로 이 신부님께서 또한, 이 글의 제3항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책인 "수신서학"을 저술하셨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

 

[...]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2: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본글의 제2항의 전체 문맥 때문에,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은 이어지는 제3항, 유관 사료 분석 II에서 별도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1.

2-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603년에 공식적으로 그 초판이 출판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천주실의"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5%AB%89%E5%A6%92 

 

2-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1603년에 공식적으로 초판 출판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천주실의"에서,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嫉"(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어야 할 자리에, 대신에"嫌"(혐투)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938302#p127 

 

2-1-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1603년에 공식적으로 초판 출판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천주실의"에서,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嫉"(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어야 할 자리에, 대신에, "憎"(증투)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938302#p278  

 

3. 유관 사료 분석 II

 

3-0. 이번 항에서는, 위의 제2-2항, 제2-6항, 그리고 제2-9항의 게시자 주들에서 말씀드린 바, 즉, 1629년에 초간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七克)" 본문 직전에 삽입된 두 페이지들에서 말해지고 있는 "天主教要"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05년에 초간된 "天主教要"(A)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1615년에 초간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교요해략"(즉, "천주교요해략")의, 초판본이 아닌, 이후 판본을 말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음에 대하여, 가능한 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다음에 발췌된 "天主教要(二 )"는, 그 저술 연대가 1650년경 이후이기 때문에1629년에 초간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七克)" 본문 직전에 삽입된 두 페이지들에서 말해지고 있는 "天主教要"를 말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출처: http://heron-net.be/pa_cct/index.php/Detail/objects/10214  

(발췌 시작)

天主教要 (二 )

 

Identifier:
000002302

 

Author:

Anon. (S.J.)

 

Pinyin title:

Tian zhu jiao yao (2)

 

Date:

between c. 1650 and 1700

 

Description based on:

ARSI (Archivum Romanum Societas Iesu, Rome)
- shelf: Jap.Sin. I, 57a

 

Description based on:

耶穌會羅馬檔案館明清天主教文獻
- vol. 1, pp. 307-374

 

Physical description:

33 fols. (6/11)

 

Contents:

 

 

[01] (fol. 1a1) 'Tian zhu jiao yao' 天主教要 (that is, the introduction: God, creation, remuneration), reproduced in Xu Zongze, 'Ti yao' (1949)*, p. 161
[02] (fol. 1b4) 'Sheng hao jing' 聖號經
[03] (fol. 2b2) 'Tian zhu jing' 天主經
[04] (fol. 3b1) 'Sheng mu jing' 聖母經
[05] (fol. 4b3) 'Xin jing' 信經 (with short explanations)
[06] (fol. 8b2) 'Tian zhu shi jie' 天主十誡
[07] (fol. 10a1-11b2) 'Yao li liu duan' 要理六端
[08] (fol. 12a1-12b3) 'Hui zui gui wen' 悔罪規文
[09] (fol. 13a1) 'Sheng jiao ding gui you si' 聖教定規有四
[10] (fol. 13b5-14b5) 'Shen er fu jing' 申爾福經 (Salve regina)
[11] (fol. 15a1) 'Zong zui you qi' 宗罪有七
[12] (fol. 15b3) 'Ke zui qi de' 克罪七德
[13] (fol. 16a5) 'Sheng jiao sa ge la meng duo you qi' 聖教撒格辣孟多有七
[14] (fol. 19a5) 'Bo fan sheng shen zhi zui you liu' 悖反聖神之罪有六
[15] (fol. 20a2) 'Yu tian zhu jiang fa zhi zui you si' 籲天主降罰之罪有四
[16] (fol. 20b3) 'Shu zui san gong' 贖罪三功
[17] (fol. 21a1) 'Ai jin zhi xing you shi si' 哀矜之行有十四
[18] (fol. 22b1) 'Zhen fu you ba' 真福有八
[19] (fol. 24a1) 'Ren chou you san' 人讎有三
[20] (fol. 24a5) 'Ren mo you si' 人末有四
[21] (fol. 24b4) 'Jie zui jing' 解罪經
[22] (fol. 26a3) 'Jiang ling sheng shui wen da' 將領聖水問答
[23] (fol. 29a3) 'Xiang tian zhu zhi de you san' 向天主之德有三
[24] (fol. 29b1) 'Xiang tian zhu xing wu bai li' 向天主行五拜禮
[25] (fol. 30b1) 'Xie tian zhu xing wu bai li' 謝天主行五拜禮
[26] (fol. 31a6) 'Hui zui jing' 悔罪經
[27] (fol. 32b5) 'Sheng ti zan' 聖體讚
[28] (fol. 33a2-4) 'Sheng mu zan' 聖母讚

 

[...]

(이상, 발췌 끝) 

 

3-2. 다음에 발췌된 바는, 델리아 신부님(1890-1963년)의 저술인 "Fonti Ricciane", Vol 2, N. 709, 제292a쪽에 기술되어 있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에 의하여 저술된 1615년 초판 "천주교요해략"의 소제목들 입니다:

 

(발췌 시작)

1615_천주교요해락_소제목들_in_Fonti_Ricciane_Vol_2_N_709_제292a쪽.jpg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칠죄종들"(seven capital sins)제9)항의 소제목으로서 언급되고 있음에 주목하십싱오.

 

3-3.

3-3-1. 다음에 발췌된 바는, 델리아 신부님(1890-1963년)의 저술인 "Fonti Ricciane", Vol 2, N. 709, 제290b쪽에 기술되어 있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에 의하여 저술된 1605년 초판 "천주교요"의 소제목들 입니다:

 

(발췌 시작)

1605_천주교요_소제목들_in_Fonti_Ricciane_Vol_2_N_708_제290b쪽.jpg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칠죄종들"(seven capital sins, 일곱 개의 우두머리 죄들) 대신에"칠대죄들"(seven mortal sins, 일곱 개의 대죄들)1605년 초간 "천주교요", 제10a쪽에 소제목으로서 기술되어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3-2. 그런데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바에서 이미 지적하고 있듯이, 1605년 초간 "천주교요"가, 델리아 신부님께서 그 본문을 들어다보면서 위의 제3-3-1항에 기술된 해설을 남긴 이후인, 20세기 초반의 어느 시점에 분실되어, 지금까지 그 본문을 확인할 수 없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1605년 초간 "천주교요"에서 "칠대죄들"(seven mortal sins, 일곱 개의 대죄들)이 무엇을 말하는 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우 1: "칠죄종들"(seven capital sins, 일곱 개의 우두머리 죄들)


경우 2: 마태오 리치 신부님적응주의 선교 방식에 따른 한 개의 토착화 접근으로서, 당시의 중국인 사회에 다반사였던 일곱 개의 대죄들[예를 들어, 여기에는 살인, 낙태, 도둑질 등 십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들이 포함될 것임].

 

3-3-3. 그런데, "칠죄종들"(seven capital sins, 일곱 개의 우두머리 죄들)을 두고서 무작정 이들을 일곱 개의 대죄(seven mortal sins)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통적 그리스도교 교리적으로 어불성설이므로, 경우 1은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식탐"(gluttony)은 통상적으로, 즉,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식탐을 추구하고자 하느님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대죄(a motal sin)가 아니고 소죄(a venial sin)이기 떄문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IIa, IIae, q148, a2를 읽도록 하십시오:

https://isidore.co/aquinas/summa/SS/SS148.html#SSQ148A2THEP1 <----- 필독 권고

 

3-3-4. 그러나,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IIa, IIae, q36, a3에 의하면,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invidia"(영어: envy)는 또한 한 개의 대죄(a mortal sin)입니다:

https://isidore.co/aquinas/summa/SS/SS036.html#SSQ36A3THEP1 <----- 필독 권고

 

4. 본글의 결론들


4-1. 우선적으로, 제2-1항, 제2-3항, 제2-4항, 그리고 제3-3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에 의하여 저술된 1605년 초판 "천주교요"에 대죄인 "invidia"(영어: envy)에 대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2. 다만, "invidia"(영어: envy)에 대응하는 차용 번역 용어로서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를 마태오 리치 신부님이 도입하여 사용하셨는지 여부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며, 이에 대하여 본글의 제2항제3항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모순(contradiction)에 의한 입증] 만약에 1583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에 의하여 저술된 1605년 초판 "천주교요"에서 대죄(a mortal sin)인 "invidia"(영어: envy)에 대한 기술에서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를 마태오 리치 신부님이 도입하여 사용하셨더라면(가정법 과거), 중국 예수회 관구장/장상이셨던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 선교 방식에 따라1605년과 그 직후의 시기에마태오 리치 신부님 본인뿐만이 아니라, 동시대을 살아온 예수회 소속의 후배 신부님들인, 판토하 신부님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께서, 또한 자신들의 저술들에서 "invidia"(영어: envy)에 대한 기술에서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를 또한 사용하셨을 것이나, 그러나, 왜냐하면 위의 제2-1항. 제2-3항, 제2-4항, 그리고 제2-5항에서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는 전혀 그렇지 아니하기 때문에, 따라서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에 의하여 저술된 1605년 초판 "천주교요"에서 대죄인 "invidia"(영어: envy)에 대한 기술에서, 이 단어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로서, "嫉妒"(질투)라는 한자 단어 대신에, 낱글자 ""(투) [혹은 천주실의에서 사용된 "憎"(증투) 혹은 "嫌"(혐투)]가 도입되어 사용되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3. 바로 위의 제3-5항에서 도출된 (이 글의 결론 2)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3) "칠죄종들"에 포함되는 라틴어 단어 "invidia"에 대응하는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는, 이지조에 의하여 "천학초함"이 출판된 1629년보다 이전의 시기에 출판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교요해략"의, 1615년 초판본이 아닌신수당제3각판 중판 혹은 그 직전 판(신수당제3각의 초판 혹은 이 초판보다 더 이전 판본)의, 본문이 아닌, 소제목에서, 처음으로/최초로 도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4. (이 글의 결론 4) 위의 제2-7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칠죄종들"에 포함되는 한 개의 개념을 나타내는 라틴어 단어 "invidia"에 대응하는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는, 이지조에 의하여 "천학초함"이 출판된 1629년보다 이전의 시기에 한문 문화권의 천주교회의 고유한 차용 번역 용어로서 도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1807년에 이르러야,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가 중국 본토에 처음으로 입국하였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4-5. 위의 제2-7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5) (i) 위의 제2-7-1항에 발췌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칠극자서""칠극"의 본문 시작 직전의 자리에 삽임된 바에 찍힌 인장과, (ii) 위의 제2-7-2항에 발췌된, 1629년에 출판된 "천학초함"에 포함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 한분몬 저서인 "서학범" 첫 페이지에 찍인 인장, 이들 둘이 정확하게 동일한 한 개의 실증적 증거(a positive evidence)로부터, "천학초함"에 포함된 "칠극""칠극자서""칠극"의 본문 시작 직전의 자리에 삽임된, "천주교요"로 시작하는, 두 페이지를 그자리에 삽입한 당사자가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이셨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5. (이 글의 결론 6) 위의 제1항제2항, 그리고 제3-3-4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탈출기 20,5에서 결코 사용되어서는 아니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6. 위의 제2-13항제2-14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y) 고찰한 바들로부터, 위의 제2항 두 번째 단락에서 이미 말씀드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7) 만약에 미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들인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처럼, 4서5경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로), 이들이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1863년 초간의 중국어본 성경,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결코 사용할 수 없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8) 만약에 미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들인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4서5경을 깊이있게 학습한 후에 남긴, 예를 들어, "교요해략" 등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로), 이들이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1863년 초간의 중국어본 성경,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결코 사용할 수 없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9)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우리말본 성경들의 번역대본에,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 역(譯)이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0) 만약에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할 때에  1863년에 초간된 裨治文(브리지만, 1801-1861년)、克陛存(컬버트슨, 1819-1862년) 역(譯)이 그 번역대본들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면(가정법 과거완료), 그동안의 개신교회용 성경들 및 천주교회용 성경들의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1) 만약에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할 때에 번역자들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4서5경을 깊이있게 학습한 후에 남긴, 예를 들어, "교요해략" 등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로), 그동안의 개신교회용 성경들 및 천주교회용 성경들의 탈출기 20,5에서 "嫉妒"(질투)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결코 사용되지 못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4-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차용 번역 용어들로서, "嫉妒"(질투, envy)"猜忌"(시기, jealousy)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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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현재까지 약 6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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