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홍상표 신부님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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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석 [maum] 쪽지 캡슐

2001-12-03 ㅣ No.8132

홍상표 신부님께서 위암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동안 망설여 왔습니다.

 

제가 고3때 이후로 오랜동안 냉담기간을 가지다가 다시 이 화양동에 와서 청년 미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홍상표 신부님을 처음 뵙게 됐읍니다. 여기서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는 뭣하지만 사실 제가 냉담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성직자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대한 불만이었읍니다.(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읍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는 그 분들의 인간적인 고충을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 있었던 것임을 느낍니다.)

 

아뭏튼 그런 이유로 신부님에 대해 별로 기대감을 갖지 않고 그저 이 성당 보좌신부님이시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만 그 분을 뵈었읍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분이 강론시간에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읍니다.

 

신부님의 그 날 강론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읍니다. 지금은 정리돼고 없지만, 그 때는 성당 앞 내리막길 쪽에 사창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어느 자매님 한 분이 우리 성당에 다니게 되었답니다. 그 분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추하고 더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성당을 다니고 싶은데 괜찮은지 신부님께 상담을 해 오셨답니다. 신부님께서는 당연히 허락(?)하셨고, 그 분은 일요일마다 성당 미사에 꾸준히 참석을 하셨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지 그 분이 성당엘 나오지 않게 되었고, 홍신부님께서 그 경위를 알아보셨더니, 놀랍게도 그 것은 우리 성당에 다니시는 어떤 자매님들 몇 분이서 그 자매님에게 ’너 같이 더러운 것이 어떻게 성당엘 나오느냐?’고 찾아가 따지고 못 나오게 하였다는 것이었읍니다.

 

강론을 듣는 저로서도 제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읍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하셨던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아니었읍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세리나 창녀들을 가까이 두셨읍니다. 창녀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었던 장면이나, 간음한 여자를 끌고 온 사람들을 보며 "너희 중에 죄없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저 여자를 돌로 쳐 죽여라."고 하셨던 성서의 내용을 그 자매님들은 못 보셨던 것일까요?

 

 이런 불미스런 얘기를 새삼스레 다시 꺼내게 된 점 죄송스럽니다만, 저는 그 날 홍신부님이 "어쩌다 우리 신자들이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읍니까?"하시며 우시는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 분의 진실한 신심과 사랑을 느꼈읍니다.

 

그 분과는 딱 한 번 술자리를 같이 한 것뿐이라, 홍신부님께서는 저를 잘 기억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번의 수술 소식을 듣고도 한 번 찾아뵐까 하면서도 망설였던 것입니다. (청년 분들 중에는 그 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학교때문에 이 곳에 잠깐(?) 다니다가 마는 경우가 청년 중에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보면 새로운 얼굴들이 많지요.) 그래서 내심 마음은 가지면서도 ’나도 지금 해야할 일이 많은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하며 방관하여 왔읍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신재원씨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는 재원씨의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가 돼면서도 지금 화양동 청년 중에 홍신부님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설령 그런 생각을 가졌더라도 자신이 혼자 찾아가지, 멀리 수원까지 이사간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그런 소식을 얘기할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또 저 같았어도(제가 멀리 이사까지 갔는데) 제게 전화를 해서 "이전에 계시던 보좌신부님께서 위독하시니, 우리가 한 번 찾아가 뵙기라도 해야지 않을까요?"하며 누군가 얘기했다면, ’ 참 나, 그런 얘길할려고 전화했단 말야?’  내지는 ’이제와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하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고 그런 마당에 누군가 나서서 그런 얘기를 한다면 십중팔구 ’쟤 좀 오바하는구나.’하는 소리까지 들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하며 재원씨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만 가졌었읍니다.

 

그러다 오늘 재원씨를 만나서 맥주 한 잔을 하게 됐읍니다. 다른 얘기는 다 생략하고... 제가 재원씨에게 한 마디 물었읍니다.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재원씨의 대답은 너무나 간명했읍니다. " 도리죠. 그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요? "

도리, 말 그대로 사람이 해야할 바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제가 왜 지금까지 정작 외면하고 있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홍신부님에 대한 생각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지 못했읍니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 계신 신부님들을 존경하고 있고, 그 분들과 함께 담소도 나누고 상담도 하고 술자리도 함께 하지만서도 그 분들이 떠나신 다음에는 그 다음에 오시는 또 다른 신부님들과만 어울리고(?) 지나간 신부님은 이제 그만!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너무나 삭막한 것 아닐까요? 우리가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만이 친구이고, 지나간 사람들은 모두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면 그게 과연 친구였을까요?

 

저는 오늘 재원씨에게 한 수 배웠읍니다. 역시 글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었읍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원애 자매님께서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감히 한 마디 하고 싶읍니다. 물론 재원씨가 그런 표현을 한 데 대해서 분개하는 마음이 드시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고, 또한 제가 이원애 자매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것도 아닌 상황이라 이렇다, 저렇다고 판단하지는 않겠읍니다. (저도 지금의 우리 주임신부님께서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신가하는 것은 제가 얼마전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있읍니다만) 다만, 재원씨 또한 본인이 말한 대로 화양동 성당에 뜨꺼운 애착을 가진 우리의 가족입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고 해서 그 것이 전적으로 재원씨의 잘못이었던 것처럼 판단하시는 것 또한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자매님께서도 그 전후 사정은 모르시잖읍니까?)  

 

재원씨의 글에 대해 우리가 지금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이 또한 홍신부님을 위해서나 지금의 신부님들을 위해서나 아무런 도움이 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이런 글을 올리는 것 또한 사실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적어도 게시판은 우리 화양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주제넘게 이런 글을 올렸읍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일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투병 중이신 홍신부님께서 보신다면 또 얼마나 눈물을 흘리실까 생각이 드니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읍니다.

 

윤성호 신부님 이하 우리 화양동 모든 네티즌 여러분께도 또한 너무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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