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터

짓무르신 사랑의 눈(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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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희 [seongangela] 쪽지 캡슐

2008-06-08 ㅣ No.1513

 
 



잘 알면서도, 정말 그럴 리가 없으시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세상의 부조리가 마치도 당신 탓인 양,
눈에 힘을 주며 불평을 늘어 놓는 무례함은
순전히 감정의 물결에 촐랑대며 가슴에 울리는 침묵의
소리에 귀 막아버리는 미숙아적 소행임을 알게 됩니다.  

제 분수를 모르는 철부지,
아무려면 세상을 누가 더 사랑하는지 분간도 못하고
천방지축 휘돌며 제 길만 옳다, 저만 바르다
억지부리는 일상이 죄송합니다.

카우치에 길게 누워 자연스레 눈이 머무는 벽난로 위,
커다란 그림 <돌아온 탕자>를 바라보면서
부분부분 조명하여 하나로 울려준 종소리(hanabell)가
새삼 메아리 쳐 울려 옵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우리 본당의 여성 피정.
밀밭 사이사이 새로 익힌 얼굴들.
나눔을 통하여 닿을 수 있었던 마음들, 그 갈증과 허기짐.
그리고 덤으로 친정 어머니와 함께 함으로 더 감사로운
시간들은 피정비까지 부담하여 마련해 주신 배려의 덕분입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이라는 벗어 버릴 수 없는 숙제를
돌 하나 톡 차듯이 가볍게 던져 주실 때는 그 물음표의
무게로 마음의 호수가 순간 출렁거렸습니다.  

그러나 숨을 고르는 자연 속에서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맨발로 바쳐드린 걸음걸음,
작은 쉼표가 모인 듯한 앙증스런 풀꽃과
낮게 피어 밟히면서도 해맑은 들꽃들의 미소가
침묵으로 익혀 주었습니다.
  
무르익은 영성의 심오한 필치로 하늘을 만나게 해 준
빛의 화가 램브란트와 그의 혼이 되살아 온듯한 사제,
헨리 뉴엔의 감동적이고 영적인 해설을
우리에게 편하게 접목 시켜주신 중재자 신부님!

그렇게 또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각자 새롭게 창조되어
조금씩 진화하며 완성된 예술품이 되어지고
있음을 굳게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부성과 모성으로 품어 안은 아들의 등에 얹은 두 개의 손,
집 나간 아들이 행여나 돌아올까 먼 길목에
시선을 꽂고 기다리다 지친 눈이 사시되어
짓물러버린 아버지의 노안(老眼),
그렇도록 애타게 기다리신 그 사랑이 헤아려져
가슴이 싸르르 아파옵니다.

오늘 아침엔 일찍 출근하여 문을 여는데
부지런한 이웃 스티브 아저씨가 자기 건물 앞에서
손 인사를 하며 2층으로 올라 갔습니다.

잠시 후, 응급차가 와서 한참이나 불을 깜박이며 서 있다
경찰차가 서너대 연달아 모여 오고 수선스런 바깥 풍경이
무슨 일이 있음을 말해 주더니,

달포 전에 길 건너 가구점에서 술 때문에 해고당한
건장하고 젊은 빌이  아마도 며칠 전인 듯, 숨을 끊었다 합니다.  

어쩌면 이럴 수가…파르르 떨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다가 가슴이 덜컹 내려 앉습니다.  

10여년을 이곳에서 바뀌는 이웃을 보며 일을 하였지만
과연 어머니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는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 주었던가?  

가라 앉았던 설익은 물음들이 요동을 치며 속을 휘젓고
쓸쓸한 가슴에 불어오는 더운 바람이 갈증을 몰고 옵니다.  

가련한 자식을 품에 안고서도
내려다 볼 수조차 없이 상하신 성심이여,

우리들의 갈증, 그 고독은 바로
당신의 상하신, 참담한 그 사랑의 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암닭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너를 부르며 얼마나 품어 안으려 했더냐?”
탄식하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 까닭입니다.

너무나 잘 알면서도 짓무르시는 당신 사랑의 눈을 피해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버린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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