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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부님의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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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보 [ridia99f] 쪽지 캡슐

2001-06-25 ㅣ No.1005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며 말씀하시는 첫 마디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마태 4, 17)라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은 우리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오셨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성령 강림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성령께서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증언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 복음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하여야 하는 걸까요? 루가 12장 35절에서 4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준비하는 종의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보면 주인이 모든 재산을 종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이 때에 불충실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려니 하고 다른 종들을 때리고 술에 취하여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충실한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게 다른 종들을 돌보고 맡은 바를

 

행해 나갑니다.

 

저는 이 "준비"라는 것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우리들의 신앙에 대해 한번 생각

 

해보고자 합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준비", 이 "준비"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흔히들 준비라고 하면 구원을 받기위한 각자의 신앙에 대한 노력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하는 모습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본당의 신자들의 경우 주일미사나 대축일 미사를 빠지지 않고 참례한다거나,

 

본당의 레지오나 성모회 등의 단체활동을 열심히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나름대로

 

준비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준비가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혹시 준비라는 개념이

 

우리가 먼 훗날에 탈 보험금처럼 구원을 생각하고 이에 매달내야하는 할부금처럼

 

신앙에 대한 열심을 그 "준비"로써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거저 주신 은총으로 복음을 전달받았습니다.

 

또한 복음서가 증언하듯이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일치의 약속이며

 

이를 통한 구원입니다.

 

그렇기에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준비라는 것은 구원을 전달받기위한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내가 이러이러한 준비를 하였으니 하느님께서 꼭 구원을 주어야한다고

 

요청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하는 준비란 무엇이겠습니까?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불충실한 종이란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종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이 요청하는 준비는 세속적으로 종들을 다스리고 종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공포의 주인의 대리자로서의 모습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께서 삶에서 보여주시듯이 남을 섬기도록 가르치시고 실제로 수난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종으로서의 준비입니다.

 

그렇기에 주인은 종에게 다른 종들에 대한 다스림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할 것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을 볼 때 주인이 종에게 요청하는 준비란 바로 다른 종을 사랑하는 진정한

 

주인의 모습으로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이며,

 

이는 주인의 원래 모습, 즉 우리를 사랑하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그러할 때 주인이 돌아와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준비란 구원을 받기위한 조건이라기 보다는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일치,

 

임마누엘의 약속에 맞같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구원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얻는 것임을 생각할 때 머나먼 구원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삶에서 주인과 똑같이 살아가는,

 

그렇기에 하느님과 똑같은 삶을 살아감으로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구원의 현재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대로 종으로서 살 때 이로서 구원을 현재화하여 살 때 우리는

 

그 준비를 다 한 종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의 소식을 들은 자로서, 하느님과 일치된 자로서 구원을 현재화하여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래서 구원을 먼 훗날에 다가올 피상적인 것으로만 여기고 산다면

 

우리는 주인의 뜻을 제대로 알지못하는 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충실한 종입니까? 불충실한 종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예수님이 보여준 종의 모습으로 일치하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우선적으로 내 삶의 부유함을 위하여 살아갑니까?

 

여러분은 현재의 삶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구원을 기뻐하며 살아갑니까?

 

머나먼 구원을 위하여 보험금처럼 삶을 살아갑니까?

 

 

                              김태현 마태오 신부님의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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