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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카나의 혼인 잔치 (요한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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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1-20 ㅣ No.140

 

[연중 제2주일]카나의 혼인 잔치 (요한 2,1-11)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을 두고, 민족들이 그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그의 영광을 보리라고 한다. (이사 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고 한다. (1코린 12,4-11)
형제 여러분,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표징을 일으키신다. (요한 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10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연중 제2주일 제1독서 (이사야62,1-5)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을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4)

 

시온이 주님의 축복을 온전하게 회복함을 예언하는 이사야서 62장 2-5절 가운데서, 62장 4절과 5절시온에 대한 주님의 축복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축복된 순간인 혼인에 비유되어 묘사된다.

 

그 가운데 4절은 과거 시온을 버리운 자로 칭해지거나(이사54,6.7) 스스로 그런 존재로 여겼였지만(이사49,14), 주님의 회복된 은총을 받은 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과거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말미암아 그들을 바빌론의 손에 넘겨주고, 또한 약속의 땅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셨지만,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키루스를 통해 당신 백성을 회복시키셨으며, 나아가 그 민족을 통해 메시아가 나오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셨다.

 

본문에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다시는'에 해당하는 '오드'(od)가 쓰여 과거와 달라진 시온의 면모를 한층 더 강조해 준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란 표현에도  역시 부정어 '로'(lo)와 부사 '오드'(od)가 사용되어, 하느님의 백성과 더불어 그들의 땅 역시 과거의 황폐한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축복을 누릴 것을 강조한다.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이 누리는 축복이 총체적 축복임을 동일한 형식의 문장을 반복 사용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시온 백성이 다시는 버리운 자, 또한 그 땅이 다시는 황무지라 불리지 않을 것임을 언급 한데 이어, 그들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며 그 이름으로 불릴 것을 선언한다.

 

여기서 '내 마음에 드는 여인'에 해당하는 '헤프치 바흐'(hephtsi bah)'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My delight is in her)라는 의미이다. '헤프치'(hephtsi)의 원형 '하파츠'(haphats)는 원래 간절히 염원하거나 기뻐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바흐'(bah)는 전치사 '뻬'(be)에 '그녀'라는 여성 3인칭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의 표현이다. 여기서 여성 3인칭은 이사야서 62장 1절의 시온을 지칭한다.

 

시온이 하느님의 뜨거운 기쁨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에 기인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새롭게 당신의 거처로 세우실 교회가 메시아의 구원사업 근거하여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될 것임을 나타낸다.

또한 '혼인한 여인'에 해당하는 '뻬울라'(beullah)는 원래 '혼인하여 주인이 되다'는 의미의 동사 '뻬알'(baal)의 수동태 분사 여성형으로서,혼인을 하여 남편의 소유가 된 여인을 의미한다.

 

위의 '헤프치 바흐'(내 마음에 드는 여인)'뻬울라'(혼인한 여인)는  이사야서 62장 4절 후반절에서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와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으로 해설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과거에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 버렸던 땅(이사54,6)에 다시 그 영광이 돌아와 옛 지위를 회복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에제43,2-5).

'헤프치 바흐'(빨리 읽어서 '헵시바')와 '뻬울라'(빨리 읽어서 '쁄라')는 이사야서 62장 2절에서 예언되었던 '새로운 이름'과 관련되어 시온의 회복이 완전할 것임을 보여준다.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이 '헵시바'로 칭해지며, 그 땅이 '쁄라'로 일컬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마음에 들어 하시고'에 해당하는 '하페츠'(haphets)완료 시제로 되어 있고,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에 해당하는 '팁바엘'(thibbael)미완료 시제로 묘사되어 있다. 문맥적으로 볼 때 여기의 시제는 미완료가 타당하다.

 

그렇다면, 완료 시제로 된 '하페츠'(haphets)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님께서 언제나 시온을  마음에 들어하신다는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시온을 돌이키실 일이 비록 미래의 일이지만,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마치 과거에 이루어진 일처럼 표현되었다는 해석이다.

 

문맥상 여기서 사용된 완료 시제는 예언적 완료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쁨을 표현한 '헵시바'라는 칭호는 시온이 받을 새로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과거 얼마의 기간동안 시온은 주님의 기쁨을 잃어버렸지만, 훗날 메시아 구원 사업의 결과로 새로운 이름인 '헵시바'로 칭해짐으로써, 그의 기쁨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시온을 마음에 들어하시는 시점은 이 예언이 주어진 시점보다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물독에 주님을 가득 채우며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십니다(2,1-2). 그분께서는 사랑과 일치, 창조와 생명이 시작되는 기쁨의 잔치에 함께 참여하신 것입니다. 그 잔치에는 혼인 당사자뿐 아니라 세리와 어부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제자들, 예수님의 어머니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혼인 잔치의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해서 혼인이 성사되지 않는 일은 없겠지만 기쁨의 분위기가 식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단지 흥이 깨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감으로써 혼인 잔치집이 텅 비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나서서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합니다(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 하며 거절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메시아로서 와 계시므로 이미 구원의 때가 와 있음에도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다 이루시는 그때는 지금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마리아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2,5). 마리아는 이미 잉태 고지를 받을 때부터 아들이 구세주로 왔음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믿으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고(2,7),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십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물을 신랑이 처음에 내놓았던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로 바꾸어주심으로써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십니다(9-1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교회, 가정, 수도공동체는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분께서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삶의 축제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과 부자, 권세가와 사회적 약자들 모두가 차별 없이 초대받았습니다. 

포도 없이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없듯이 이렇게 함께하는 것은 불편하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분과 함께한다면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 기쁨과 축제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정관념과 선입견,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빈자리에 그분을 모셔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이 표징에서 물과 포도주 사이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세상사, 일상의 만남 등 우리의 모든 일이 일종의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포도주 곧, 모든 이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선을 불러일으키는 선물과 의미로 바꿔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개인과 사회라는 물독에 사랑과 관심의 물, 정의와 평화의 물, 공감과 공생의 물을 가득 채워 모든 관계를 기쁨과 생명이 꿈틀거리는 축제로 바꿔놔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들어 높임을 받게 되는 것이 영광이라 생각하지만, 참된 영광은 이미 주님에게서 받아 자신 안에 간직한 영광이 피 흘림을 통하여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주님에게서 받는 ‘영광’이란 곧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을 받으면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자신의 뜻을 죽여 ‘피’를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하는 모든 순종의 행위가 곧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피 흘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은,

포도주가 피가 되는 주님께 참영광을 드릴 십자가 수난의 예고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었는데,

이로써 교회는 새로 태어나고 순결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오늘 복음의 포도주가 순결해지기 위한 “정결례” 용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동이가 여섯 개인 이유는, 창조 여섯째 날,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듯,

오늘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낳고 새 이름으로 부르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과 그 백성과의 혼인 관계를 이야기하며,

교회가 메시아의 “영광”을 보게 되면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고 예언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신랑의 피 흘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냄을 통하여 탄생되고 순결하게 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상징하는 구원의 신비를 종합한 표징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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