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마지막 편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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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cmchey] 쪽지 캡슐

2002-12-26 ㅣ No.2244

略하옵고,

우리집에서 저는 마당쇠입니다. 마당도 쓸고 동전도 줍고 제법 짭짤합니다.

회사에서는 머슴이구요, 직원들 위,아래로 모시고 삽니다.

과장,부장 중역이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고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합니다. 이제는 대쪽이 아니고 갈대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성당에서는 죄를 안고사는 죄많은 주님의 종입니다.

    *    *    *

연탄피우고, 셋방이지만 아랫목이 따뜻하던 그 시절, 그사람과 저는 연탄가스 맡고 주인집 동치미로 해결하고, 살림이 어렵다고 그 사람이 결혼반지를 가지고 전당포에 갔다가 돈이 안되는 반지라고해서 무색하여 그냥 왔노라고, 6개월 뒤 잠자리에서 그 말을 하는데 어두워서 다행이지 참으로 무안했습니다.

 

마지막 달력을 넘기니 벽만 보입니다.

흐르는 세월, 멈출수도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30년이 흘렀습니다.

    *    *    *

12월 29일에 혼인갱신식이 있습니다.

그사람이 1캐러트 다이아 반지를 해줄수 있느냐구 해서 물론 농담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역시 지금도 18k 묵주반지입니다. 미안합니다.

참 한마디 더 드리겠습니다. 40년전 가평 용추폭포가 있는 산속에서 대학입시공부할때   그사람 처음 만났습니다. 눈이 크고 고운모습의 여학생이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불렀던 모습이 그림같이 지금도 눈에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불량소년,소녀 아니냐고? 그 아이들이 결혼해서 잘지내고 있습니다.

그사람 정말 애썼습니다. 우리 4형제 식구 모두 성당다니고 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것들이 안 믿으면 우연이고 믿으면 섭리 아니겠습니까?

    *    *    *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줄 알고

사랑은 사랑안에서 커간다고 합니다.

저는 그사람의 사랑을 내내 받아왔으니 이제 저도 사랑을 조금은 할줄 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    *

장자는 천지를 하룻밤 묵고 가는 여인숙으로,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여행길이 머니 저의 짐이 가벼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도 편해질것입니다.

내년 계미년에는 좋은일,궂은일 나의 이웃과 함께하고 성전건립의 꿈★을 이루고싶습니다.

 

지금 Auld Lang Syne(old long since : 석별의 정)의 음악이 들리는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연이 아닙니다.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무대뒤로 옮길 준비를 시작할때인가 봅니다.

이제 이 마당쇠는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를 부르면서 단막극 3막5장을 징치고 막 내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새해 계미년에는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두손모아 기도드립니다.

                                                             임오년  2002년 끝에

<주님 하나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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