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4년 12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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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5-02-09 ㅣ No.229

                                                      레지오의 눈으로 본 성탄절


                                                                  글 / 비드 맥그리거 OP 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역 / 구자륭 토마스 아퀴나스 서울 Se. 국제서기


성탄절은 영원한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날에 우리 각자는 하느님과 영원히 지속되는 운명적인 친교를 맺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육화의 신비를 경축하는 날로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기쁨이 있는 그분의 내적 삶에 동참하게 됩니다.

성탄절은 하느님께서 주신 커다란 선물이어서 그날에 담긴 진리와 환희는 아무리 누려도 끝이 없습니다. 그날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심, 하느님과 인간의 불가분성,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가 우리 안에 머무르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참으로 성탄절은 그 무엇보다 위대한 사건이며 진리입니다.


성탄절은 불가능을 넘어선 진리

오늘 훈화에서는 주님 탄생에서 볼 수 있으며 레지오 영성에서도 빠지지 않는 세 가지 진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진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말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입니다. 이를 들으신 성모님은 확신에 차서 그 진리에 단호하게 라고 대답하시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셨습니다. 그로부터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고 스스로를 우리와 같은 죄인이라 칭하게 되면서, 온 세상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넘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삶과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습니다. 육화의 신비를 제쳐두고라도 예수님을 불가능이 없는 주님으로 믿는 성모님의 신심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에 관한 성모님의 영성을 레지오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교본은 상징적 행동에서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상징적 행동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불가능을 쳐부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상징적 행동은 믿음으로 무장된 우리의 정신 안으로 들어와서, 실제로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신적인 문제와도 극적인 싸움을 펼칠 수 있게 된다.”(39장 레지오 사도직의 주안점 4. 상징적 행동, 교본4306~10째줄)

새해에는 모든 쁘레시디움이 상징적 행동에 대한 교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상징적 행동의 화신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 쁘레시디움에는 이 상징적 행동을 실제로 수행한 사례가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의 권능과 레지오 사도직을 인간의 생각으로 가능한 정도로만 계획을 짜고 준비하고 노력해서는 안 됩니다.


성탄절의 초점은 예수님

두 번째 진리는 성탄절은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모님은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나이다.’(루카 2,46~47) 이 찬가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성모님에게 또 성모님을 통하여 모든 기적을 일으키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영성은 레지오의 수호성인이며 주님 탄생을 준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례자 성 요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요한1,29, 요한3,30, 루카3,16) 세례자 성 요한은 온전히 그리스도중심으로 사셨기 때문에 레지오의 수호성인과 모범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영성은 자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레지오의 영성도 그러해야 합니다. 레지오가 스스로의 권위나 명성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않고 다만 성모님을 통하여 큰일을 하신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런 말을 한 영성가도 있습니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시선이 그 자신에게 향하도록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하게 합니다. 만일 시선을 자신에게 머물게 하면 그것은 본질을 감추려는 것입니다. 이점은 모든 사도들이 겪는 유혹이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성탄절은 기쁨에로 초대이며 레지오의 영성도 기쁨

세 번째 진리는 성탄절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새롭게 하려는 깊은 뜻이 담긴 하느님의 초대이라는 점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처음 한 말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1,27) 였습니다. 기쁨 즉 환희는 성모님 영성 중에서 가장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지요. (묵주기도가 환희의 신비부터 시작함을 기억하세요.) 또 천사가 목동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2,10~11) 기쁨의 영성은 참 그리스도인이 성탄절을 경축하는 데서 없어서는 안 됩니다.

성 대 레오 교황은 성탄에 관하여 강론하셨습니다. 쁘레또리움 단원이나 아듀또리움 단원이 되는 은총을 받고 매일 성무일도를 바치는 단원들은 이 강론을 알고 계실듯합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이는 우리를 위한 커다란 기쁨입니다. 지금은 슬픔의 때가 아닙니다. 오늘은 생명이 태어난 날로서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고 기쁨이 생겨나고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었습니다. 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쁨을 누릴 명분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사람 모두가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시고 죽음과 죄를 끊어버리려고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왕으로 오시었으니 주님을 찬양합시다. 죄 사함이 그분께 주어졌으니 죄인들이 기쁨에 가득 차게 되었고, 이방인들도 생명에로 부르시어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성 대 레오 교황 강론, “성탄절의 기쁨을 누리세요”)

기쁨은 복음을 참으로 듣고 받아들였고, 살아있는 믿음으로 주님을 실제로 만났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봉사한다는 틀림없는 표징입니다. 기쁨은 또한 성모님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는 명백한 표징이기도 합니다. 기쁨은 진정한 사도직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목권고인 복음의 기쁨에서도 언급하셨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다른 사람들을 개종 시켜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이루어집니다라고 말입니다.(복음의 기쁨 14)

레지오 사도직의 비밀은 기쁨의 영성이며, 예수님과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교황님 말씀으로 훈화를 마치겠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의 삶과 마음을 채워줍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곳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새롭게 또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바랍니다.”(복음의 기쁨 1, 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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