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동성당 게시판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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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siyu1715] 쪽지 캡슐

1999-09-16 ㅣ No.399

길들이기

장도리를 막 사 들고 오는 아우에게

형이 말하였다.

"그것을 못을 박는 데보다는

못을 빼는 데에 먼저 쓰렴."

아우가 대꾸하였다.

"못을 치고자 해서 사 왔는데요.

못을 뺄 일은 없습니다."

형이 다가왔다.

"그렇더라도 연장은 좋은 일 하는 데

먼저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아프게 하는 데 보다는 아픔을 덜어 주는 데에."

아우가 장도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쓰임은 타고난 용도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요?"

"쓰는 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걸.

칼이 누구의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편리한 물건과 살해용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입을 다물고 있는 아우의 어깨위에 형의 손이 놓였다.

"어디에 쓰여지느냐가 중요하다.

두뇌도 인류 발전에 쓰는 사람이 있고

범죄 궁리에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길들임은 결국은 자기를 길들임이기도 한데

첫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찮은 볼펜이라도 첫 쓰임을

낙서가 아닌 '그리운 어머니'로 시작하는 편지 글로 하는 것.

새로 구입한 오디오에 올린 첫 음반을 찬미곡으로 하는 것 하며..."

아우는 집을 둘러 보다가

생나무에 질러져 있는 못을 빼는 데에

그 장도리의 첫 구실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가만히 중얼 거렸다.

"첫걸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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