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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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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동성당 [chang4] 쪽지 캡슐

2011-12-03 ㅣ No.5108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31866


[특별기고] 사회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불의가 만연한 세상에 주님의 향기 전해지길”
발행일 : 2011-12-04 [제2773호, 3면]

 ▲ 박정우 신부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은 공장제 공업과 기계화는 ‘새로운 사태’를 야기했다. 국가의 방임과 자본의 횡포로 노동자들은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환경,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러한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독일의 가톨릭교회는 1800년대 중반부터 노동자 보호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영국, 미국으로도 운동이 확산됐다. 이러한 흐름은 마침내 1891년 5월 레오 13세 교황이 「새로운 사태」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사회교리 회칙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노동자들의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 단체결성권, 적정한 임금, 노동자를 보호할 국가의 책임, 재화의 나눔, 사유재산권의 옹호 및 계층 간의 화합 등에 관한 가르침을 선포했다.

「새로운 사태」를 시작으로 2009년 발표된 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120년 동안 가톨릭교회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 정치, 경제, 인권, 노동, 평화, 환경, 생명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복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석해 줄 의무’를 다해 왔다(사목헌장 4항). 사회교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간의 발전과 해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사명을 드러내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을 표현하며 참으로 인간다운 사회, 사랑이 최고의 규범이 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시하고 있다 (사회교리 582항).

사회교리는 한국교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1960년대 노동운동을 시작으로, 70∼80년대 군사독재에 대항하며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회 활동의 밑바탕이 됐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의 대사회적 발언의 핵심은 사회교리의 목적인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인간의 해방과 발전’이었다. 비인간적인 억압과 폭력을 행사하던 독재 치하에서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활약은 한국 국민들에게 신뢰심과 희망을 주었고, 한국 가톨릭교회의 위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낙태 등 생명문제를 제외하고 교회의 대사회적 발언은 90년대 들어 주춤해졌지만 최근 4대강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핵발전소 건설 등 한국 사회에 갈등을 주는 요소들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함께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심각한 대립을 반영하듯이 많은 신자들이 교도권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는 대신 자신의 개인적인 소신이나 계급적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당파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 정의와 평화라는 복음적 가치를 기준으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므로 신자들은 교도권의 판단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사회교리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세상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당연히 세상 문제에 대한 판단, 성찰, 실천의 원리와 지침을 제공해주는 사회교리를 배우고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신자들이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물신(物神) 숭배의 광기와 온갖 거짓과 불의,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참된 복음적 가치를 잊어버리고 세속의 논리에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기 쉽다. 한국 주교회의가 올해부터 해마다 ‘사회교리 주간’을 제정한 이유는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교리를 더 잘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더 성숙하고 깨어있는 신앙인이 돼 혼탁한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다. 개인의 평안과 복락만을 청하는 기복적인 신앙으로는 세상의 복음화와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자는 교회의 사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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