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어릿광대(퍼옴)

인쇄

김선희 [sunheek] 쪽지 캡슐

2007-12-02 ㅣ No.4117

글쓴이: 류해욱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



  대림시기입니다.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벌써 12월,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남겨 놓고 모두들 많은 상념들이 오갔으리라 생각합니다. 12월, 어느 때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때입니다. 새해를 맞으며 다짐했던 계획이나 결심을 얼마만큼 충실히 실천하며 살았는지 돌아보며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 그렇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끝은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과거에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합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한해의 시작인 대림 시기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보고 잠에서 깨어나 준비해야 하는 때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이라는 유명한 우화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덴마크를 순회하던 어느 서커스단에서 공연 준비 중에 불이 났습니다. 급한 김에 단장은 관중 앞에 나설 준비를 끝낸 광대를 이웃 마을에 지원을 청하러 보냈습니다. 때는 지금처럼 초겨울, 가을 추수가 끝나서 전답에 불씨가 옮아 번졌다가는 그 마을에도 불이 옮겨 붙을 위험이 많았습니다.

  광대는 급히 그 마을로 뛰어가 마을 사람들에게 서커스장의 진화작업을 호소하였습니다.

“불이요! 불이 났어요! 불이 번지면 이 마을도 위험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광대의 이러한 호소를 구경꾼을 끌어들이려는 기발한 수법으로만 생각하고 손뼉을 치며 폭소를 터뜨릴 뿐이었습니다. 광대에게는 울 일이지 웃을 일이 아니었지요. 우리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광대가 자기 말이 진담이지 장난이나 익살이 아니라고, 정말 불이 옮겨 붙고 있다고 아무리 애걸하듯 설득하여 보았으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아니, 호소를 거듭할수록 이번에는 제대로 웃길 줄 아는 광대가 왔노라고 더욱 더 흥겨워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불길은 마을에까지 번져서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마을은 온통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우화를 여러분 나름대로 묵상해보십시오. 한 때 [그리스교 신앙-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을 쓴 유명한 신학자이자 지금은 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는 이 우화를 광대에게 초점을 맞춰 신앙인들 특히 신앙을 전하는 사람들 즉 사제나 수도자 또는 신학자들의 처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황님은 현대의 물질문명을 사는 사람들, 즉 교회의 전통과 언어와 사상에 젖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X세대, 신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도가 생뚱맞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처지가 마치 광대 옷을 입고 불이 났다고 외쳐대는 광대의 모습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우스꽝스런 광대 옷을 입은 광대를 진지하게 대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광대가 진실을 전하려 해도 사람들은 그가 광대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연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황님의 지적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우화에서 광대보다는 불길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여기서 불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잠시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도덕과 인륜이 무너지고 이기주의와 탐욕이 만연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을 해치는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시대입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불의가 넘쳐나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극도의 물질 만능주의가 낳은 무신론, 도덕의 타락, 낙태, 마약, 살인 등의 범 등 오늘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광란의 몸짓들이 바로 마을을 향해 번져 오는 불길입니다.

  이렇게 불길은 시대의 징조이며, 광대의 호소는 이 시대 예언자의 외침이고, 마을 사람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 입니다. 왜 진실을 보지 못할까요?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직도 우리는 잠을 자고 있나요?


  대림 시기를 맞으며 복음에서 예수님은 “늘 깨어 기도 하여라” 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시대의 징조를 알아보고 예언자의 외침을 알아듣기 위해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깨어 있다는 것은 불의가 현존함을 직시하고 이에 항거하여 정의를 추구함을 의미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함을 의미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어둠과 고난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나아가서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됨을 의미합니다. 작은 촛불 하나가 어둠을 깨뜨리듯, 우리는 이 시대에 작은 촛불이 되어야 합니다.


  대림 첫 주일, 교회전례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주님이 우리 안에 오시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참다운 정의와 평화 그리고 진정한 개혁이 실현되고, 당선되기 위해 내거는 기치가 아닌 실제 좋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원하며, 우리 다 함께 깨어 있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청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남을 깨울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깨어있어야 합니다. 시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한 사람인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부터 사랑을 실천하고 우리부터 우리 자신을 나누고, 우리부터 정의를 추구하고, 우리부터 남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변화될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깨어있을 때 우리 마을로 번져오는 물질만능주의의 불길을 진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심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오신 그분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다림은 이미 만남입니다. 바로 오시는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6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