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끌려나오시는 수녀님(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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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경 [cho3395] 쪽지 캡슐

2009-06-29 ㅣ No.9772

이 수녀원이 위치한 조용한 어촌마을에 2007년 10월 느닷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STX가 선박블록
 
공장을 세우면서 나는 소리였다. 마산시가 당초 택지였던 곳의 용도를 바꿔 조선소 공장에게 판 것이었다. 주민동의도 없었다.

홍합과 굴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380세대, 1천여 명의 주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산시와 STX에게 항의를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생계 터전을 빼앗기게 된 마을 주민들은 수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정당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음이다”

그러나, 스스로 봉쇄를 자처한 수녀원들이 세상밖으로, 그것도 싸우기 위해 나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다.

김은정 스텔라(41) 수녀는 “외출을 하려면 세계 180여개 트라피스트수도회를 총괄하는
 
로마 총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며 “문화적 차이로 인해
 
대화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총회를 오가기를 수차례. 설득 끝에 180여개 공동체의 장상들이 모여 투표까지 실시한 결과 투쟁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수녀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도 컸다.8시 취침 새벽 3시30분 기상이 정해져 수도원에서, 새벽 2~3시가 넘도록 토론을 했다. “봉쇄 안에 머무는 것이 옳은 것인가?”, “봉쇄 수도원인데 사회문제에 뛰어 들어야하는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론은 “이 마을의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함께하는 것이 예수님이 원했던 복음적 가치에 맞다.”

■경찰에 끌려가는 수모에,
 
천막농성까지


2007년 11월 4일.장 요세파 수도원장(53)은 수도원을 지키는 최소의 인원을 두고 17명의 수녀들과 함께 처음 세상밖으로 나왔다. 서울 법제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논리를 앞세운 기업과 행정 앞에 생계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수도원이 움직이자, 비로소 STX와 마산시가 반응을 보였다.

STX는 몰래 수녀원을 찾아 회유하기도 했다.장 요세파 수녀원장은 “주민들과 손을 잡지 못하도록 수도원만 이주해주겠다는 호의가 있었고, 몰래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장은 그러나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고 살 길 찾아 나서는 것이 수도자의 모습이겠는가?”라며 “우리의 껍데기가 깨지더라도 주민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세계 180여개 트라피스트수도회를 총괄하는 로마 총원 총장이 직접 마산을 찾아왔다. 총장은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수녀원이 마을주민이 받지 못하는 혜택은 받지 않을 것”을 지시하고, 실무담당자 3명을 선출하도록 했다.장 요세파 수녀원장이 2008년 3월 마산시청 앞에서 9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이기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찬반 양측 주민들간의 갈등도 빚어졌고,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도 있었다. 공장이 들어설 경우 심각한 환경파괴와 공해문제가 발생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나 6월 5일, 경상남도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는 수녀원과 주민들의 뜻을 외면한채 공장부지에 대한 산업단지 지정을 가결했다. 심의위원회 회의록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6월 8일에는, 수정마을 주민들과
 
도청에 모여 김태호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웃옷을 벗으며 항의하자 비로소 도지사실 문이 열렸지만, 대화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경찰이 들어와 주민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연행했다. 장요세파 수녀원장도 경찰들에게 들려 끌려나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수녀원은 산업단지 지정이 가결된 지난 5일부터
 
천주교 마산교구청에서 2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밥도, 잠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김은정 스텔라 수녀는 “먹고 자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사회는 힘없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 어느 누구도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소수의 가난한 자는 어떻게 되도 전체적인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며 눈물을 글썽였다.

■“수녀원이 아무리 소중해도, 마을주민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김은정 스텔라 수녀는 “어쩔 수 없다면, 적어도 바다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던 홍합 까서 벌은 일당만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계획도 없고 대처만 할 뿐이다.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이라는 기약도 없지만 싸움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자신과의 싸움, 상황과의 싸움, 1천명의 생명을 우습게 아는 세상과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장 요세파 원장은 “세상에 나와보니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장 요세파 원장은 “동네 주민 380세대 중 200세대가 바닷에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주보상이 이루어져 집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먹고 살게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주민들은 어디 간다는 것 자체가 죽음이다. 삶의 터전자체를 빼앗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 요세파 원장은 “봉쇄수녀원이 중요하다고해도 마을주민 1천 명의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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