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7월호 [향기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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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07-03 ㅣ No.58

대구 세나뚜스 교육위원 방경홍 가브리엘 형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ꡒ제가 일곱 살 때 남산동 성모당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모님을 보는 순간 너무 황홀하여 그 기억을 늘 간직하고 살아왔어요. 어쩌면 그때 본 성모님이 저를 40년이 지난 후 성교회로 인도하셨다고 생각돼요ꡓ라면서 성모님과의 첫 번째 만남에 관한 기억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조상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대구 남산동에서 이름난 무속인으로 40년 동안 모씨보살이란 이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신의 폐단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친구들의 조롱도 많이 받으면서 커온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교사가 되었다. 성인이 되면서 가정을 미신으로부터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게 되었다. 집안에 환란을 초래한다면서 강력하게 개종을 반대하시던 어머니 몰래 10년을 권유해온 친구의 이끔으로 1987년 12월에 대구 수성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후 무속인 어머니도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 사연이 놀랍다. 아들이 성당에 나가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두문불출하였고 온몸이 가려운 피부병이 생겨서 병원의 약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는, 새벽기도 중에 성수가 어머니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본당에 있는 성수 한 병을 떠다가 어머니 몸에 발라드리며 주님의 기도를 속으로 바쳤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켰다. 예기치 못한 일에 너무 당황하여 아내와 교리교육을 받던 아들딸을 방으로 불러 어머니를 보호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는데, 묵주기도를 마치고 돌아가 보니 어머니는 평온해져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ꡒ과연 성신(성령)이 있구나! 내가 40년 무당을 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얘야, 나도 성당에 갈란다ꡓ 하시며 스스로 성당에 나가셨다. 그 후 교리공부 하시던 어머니는 갑자기 병환이 악화되어 먼저 세례를 받게 되었다. 40년 마귀사슬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자녀로서 첫영성체를 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세례받은 지 사흘 만에 어머니는 문병 온 신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다가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으며, 이 어머니의 일이 가브리엘 형제에게 하느님 계심을 확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레지오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세례받은 후 23일 만인 1988년 1월 13일에 주임신부님의 지시로 신영세자 10명으로 구성된 ꡐ성실하신 동정녀ꡑ 쁘레시디움 창단에 관여, 단장을 맡으면서였다. 10명의 단원이 모두 신영세자라서 쁘레시디움 주회합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라 선배 단원들에게 배우고, 심지어는 이웃의 범어성당에까지 가서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참석하여 배워 와서 어렵게 레지오 활동을 해 나갔다고 한다. 8년 간 연속으로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ꡐ성실하신 동정녀ꡑ 쁘레시디움을 본당에서 가장 활동적인 막강한 레지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끔 튼튼한 조직으로 키웠다.

그러면서 단계교육을 받게 되고, 단계교육 후 3개월 뒤 자신이 봉헌한 봉헌문이 송부되어 읽어보았더니 그 속에 교본에 충실하는 레지오 단원이 될 것을 맹세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벌써 8년이나 연임하고 있는 것은 교본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단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바로 그날 새로운 쁘레시디움이 하나 결성되었는데 단장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하여 가브리엘 형제가 지명되어 1996년 7월 4일 ꡐ인자하신 어머니ꡑ 쁘레시디움 창단 단장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ꡐ인자하신 어머니ꡑ는 ꡐ하늘의 모후ꡑ ꡐ천지의 모후ꡑ ꡐ성교회의 어머니ꡑ 등의 쁘레시디움을 2년마다 하나씩 분단시키는 놀라운 활동력을 보여 왔다.

가브리엘 형제는 꼬미씨움 서기, 부단장, 단장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꼬미씨움 단장 11년을 봉직하였는데, 올해부터는 신설된 대구 ꡐ의덕의 거울ꡑ 세나뚜스의 경주, 포항지역 통신원 겸 세나뚜스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전국 각지를 돌며 선교체험 강연과 레지오 단원교육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행한 각종 강연 및 교육만도 200회를 넘는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 만 18년 동안 주회합에 결석한 적이 없고 항상 성모님의 순명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매년 15명 이상 세례받도록 인도하고, 대자도 40명이 넘는다고 하니 선교 열성을 가히 짐작할 만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자신이 봉직하던 학교에서 학생들을 입교시킨 활동이라고 한다. 어느 해 가브리엘 형제가 담임을 맡은 반에 호감이 가는 학생이 있어서 여러 차례 입교 권면을 하였는데, 그 학생이 ꡐ여호와의 증인ꡑ 신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 학생의 영혼을 구해주려고 열심히 권면하였지만 그 학생의 마음은 굳어질 대로 굳은 상태여서 개종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이 실패를 통해서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이 헛된 신앙에 물들기 전에 참된 종교를 알려 주어야겠다는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기회만 주어지면 학생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수업시간 전후나 필기 시간을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짤막짤막하게 전교를 하였다. ꡒ예수님 이야기하느라 수업을 등한히 한다ꡓ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전보다 더 열심히 가르쳤고 본당 교리반 개강을 두 달여 앞두고부터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교회로 이끌기 위해 틈만 나면 묵주기도를 바치고 시간마다 주님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단원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방과 후 학생들을 차에 태워 오고 집에 갈 때도 차를 태워 주는 등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한 학급이 족히 될 정도의 많은 제자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세례받게 한 학생들이 지금은 장성하여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거나 수녀님이 된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본당에서는 전 신자 위원장직을 맡아 선교와 냉담자 회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선교열은 식을 줄을 몰라 지금도 며칠 남지 않은 예비신자 입교식 때 한 명이라도 더 입교시키려고 선교책자와 팸플릿 등을 손수 제작하고 봉사자들을 교육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다. 입교권면 대상자들의 명단이 빽빽하게 적힌 선교노트를 보여주면서 부단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상자들을 관리하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점(포인트)이라고 강조한다.

ꡒ요즘 젊은 단원들은 하기 쉬운 활동거리만 찾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주회합 등의 레지오 회합도 예전에 비해 열의가 떨어지는 쁘레시디움을 많이 봤어요.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레지오 조직 자체가 큰 위기에 봉착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회가 각박하고 살기 어렵다고 편리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교본정신에 충실하고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ꡓ라며 후배 단원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도 잊지 않으신다.

ꡒ주님 제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ꡓ 라며 어떤 일에도 순명하며 성모님께 의지하며 살아온 그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과 건강이 허락되는 때까지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형제에게 더 많은 봉사를 허락해주시기를 기원해 본다.

_김의도․헤르메네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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