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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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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권 [doijkwon] 쪽지 캡슐

2010-03-27 ㅣ No.11040

 

 

 [법정스님 입적] “법정 스님께…”

 -이해인 수녀-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

 

법정 스님!

 

성북동 문학기행 중 길상사에서 여러 번 스님의 설법을 들었지요.

가슴에 새긴 법문 중의 하나

"경내에 있는 저 꽃들을 보세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마음이 아름다우면 보이는 것마다 다 아름답습니다."

그 말씀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한데...

그립습니다! 법정 스님!

.........

 

대원각과 길상사 그리고 도이

 

대원각은

어머님의 회갑연을 성대하게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어머님은 올해 팔순을 맞이하신다.

 

대원각의 경영자 자야 김영한 여사가

재북시인 백석 백기행 선생을

한평생 그리워했듯

백석 선생 또한 북에서 자야 여사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생전의 김영한 여사(1916~1999 법명: 길상화吉詳花)는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년의 자야는 백석의 시를 조용히 읽는 게 가장 큰 생의 기쁨이었다 한다. 자야는 '내 사랑 백석'에서 "백석의 시는 자신에게 있어 쓸쓸한 적막(寂寞)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라고 술회한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해 첫눈 내리는 날 길상사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난히 눈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백석 시인을 못 잊어서일까. 그녀에게 바쳐졌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의 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낭만적인 유언이기도 하다.

  김영한 여사는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 원을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도록 했다. 시집을 대상으로 한 백석문학상은 1999년부터 수상을 하고 있다. 또한, 평생 번 돈 120여억 원을 과학영재 육성에 써 달라며 한국과학기술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요정정치의 본산이었던 '대원각'의 경영자 김영한 여사, 비운(悲運)의 시인 백석과 비련(悲戀)의 사랑을 한 '진향(眞香)', 백석의 情人으로 시 속의 주인공이 된 '자야(子野)', '나타샤' 김영한 여사는 어느 날『무소유』라는 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 감동하여 성북동의 땅과 건물을 생면부지의 스님께 "조건 없이 시주할 테니 절로 만들어 달라" 간청하였다.

 

김영한 여사: 나의 전 재산을 스님께 시주할 테니 받아주세요.

법정 스님: 나는 받을 수 없으니 다른 분한테 기증하십시오.

 

 "받으세요" "못 받겠다"하는 실랑이가 무려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오랜 기간 거절해 오던 법정 스님은 1995년에 마침내 이를 수락하고는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하였다. 당시 대원각은 7,000여 평으로 시가 1,200억 원을 호가한다고 했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회주: 법정 스님)가 1997년에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김영한 여사의 전 재산을 송광사에 기증함으로써 법정 스님은 법정 스님대로 '무소유'를 지키고, 김영한 여사는 김영한 여사대로 요정을 절로 만드는 소원을 이루었다. 그리움과 통한의 세월 속에서 고결한 길상화의 영혼은 마침내 송광사의 분원인 '길상사'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도이 김재권 시인, 길상사 제5대 주지 덕조 스님

 

2006년 5월 28일

"도이 김재권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기행" 

글 사랑방 '성북동 문학기행' 중

경남 양산의 여류시인과의 인연으로

길상사 제5대 주지 덕조 스님을 만나다.

 

-천주교 서울대주교 수유1동 성당 대건성가대 테너 도이 김재권 다니엘-

http://blog.naver.com/doij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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