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아버지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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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숙 [clara250] 쪽지 캡슐

1999-06-20 ㅣ No.750

주말이면 경기도에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나는

최근 몇 주간은 그러지 못했다.

어제는 오랫만에 집에가 맛있는(?)비빔국수를 해드렸다.

 

오늘 아침 집을 나오면서 새 주민등록증 발급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읍사무소에 들렀다.

 

읍사무소에 가려면 육교를 건너야 한다.

나는 평지를 걸을 때와 다를 바 없이 계단을 밟고 올라갔지만

아버지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올라오시겠거니 하고 빼꼬미 옆을 봤지만

몇 걸음 뒤에서, 그것도 육교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올라오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무 내색없이 걸었다.

조금씨 속도를 늦추면서...

 

육교를 내려와 평지를 걷으며

다리 많이 아프세요하며 묻자

조금 쉬어가자하시며 걸음을 멈추시고는

허벅지 뒤를 살짝 치시면서

주변을 둘러보셨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부모님앞에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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