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앞으로 나란히 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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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6-08 ㅣ No.369

언제 어떤 드라마의 누가한 대사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말... 어젯밤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모두 앞으로 나란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초등학교때 줄을 맞춰서 서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팔을 앞으로 뻗어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앞사람의 어깨를 향해 서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이 말이 왜 그렇게 가슴 아프게 들리던지... 짝사랑이나 외사랑 보다도 더 가슴 아픈건 앞사람을 향해 팔을 벌린채 서서 자기 앞의 사람이 돌아보아주기를 기다리는 내 앞사람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겠지... 지금 내가 누군가를 향해 팔을 벌리고 서 있는건 아니지만 뒤돌아보면 누군가 서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땐 내가 돌아서서 뒷사람의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될텐데... 이성간의 사랑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내가 앞으로 나란히 하고 있는듯 속이 상하고 가슴이 저릴 때가 있다. 가까운 이들의 어깨만 보다가 팔이 아파 그만 내리고 싶어도 저 앞에서 다시 팔을 똑바로 올리고 있으라는 호통이 들리는듯 하다. 차라리 더 많이 힘들고 지쳐도 꼭 안고 있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바보처럼 뒷덜미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란히 한 채로 살게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건 좋은 짝꿍 만나서 그 긴 대열에서 빠져나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공기놀이하고 수다 떨고 싶기 때문이지만 오늘도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 목 마른 사람이 갈증을 잊도록 마시라고 준비된 커다란 주전자가 플라스틱 컵을 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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