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성복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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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새벽 6시 30분경 효자동 일대에서 경찰의 살수차 진압에 의해 "반 실명 상태"에 처한 김영권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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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이 여기까지 들리네요.
답답하시죠? 가슴이 먹먹하시죠? 억울하시죠?
저도 그래요.
아주 미치겠어요.
우리가 외쳐도 세상은 변하는게 없는것만 같아요.
사람들의 관심은 식어가고 심지어 우리를 비웃네요.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지쳐 앉아있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잠시 태국으로 눈길을 돌려볼까요?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던 탁신 치나왓 전(前) 태국 총리가 또다시 망명을 선언했습니다.
태국에서 반정부, 반탁신 시위가 일어나고 약 두 달만의 일.
탁신 총리의 망명은
비리로 점철되어 썩어빠진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 저항이 빛나는 승리였습니다.
그들은 외쳤습니다. "나라를 구한다" 라는 노란띠를 두르고.
"한국의 촛불 집회가 전 내각의 사표를 제출할만큼 위대한 힘을 보여줬다"
"힘을 내라,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위안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진실은 멀지않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의 3%였습니다.
조선인구중 고작 3%는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무인사관학교를 만들어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일본 군을 상대로 승전을 거두었습니다.
대대적인 일본과의 전쟁을 앞두고 원폭이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3%의 힘으로 독립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한때 이 나라에서 광주는 빨갱이들이 사는 폭도들의 도시였습니다.
이제 광주는 더 이상 폭도들의 도시가 아닌 민주화의 성지입니다.
역사는 우릴 어떻게 기억할까요?
과연 저 위의 사람들, 소위 쏘쿨족들은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그들은 잊혀질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말은 하겠죠.
"어, 아빠(엄마)도 거기에 나갔었어~ 진짜야!"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역사앞에 떳떳할 것이고, 역사의 당당한 일원입니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어코 승리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은 냉정하죠. 쏘쿨은 여전히 쏘쿨. 명박은 여전히 명박.
딴나라도 여전히 딴나라고 또라이트도 여전히 또라이트.
그러나 우리의 촛불집회가 태국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이었듯,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과 위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힘냅시다!!!♡
소라방에 맞지 않는거라면 말해주긔 ㅠㅠ
나는 소심하다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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