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성가의 참맛: 가톨릭 성가 115번 수난 기약 다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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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27 ㅣ No.3009

[성가의 참맛] 가톨릭 성가 115번 「수난 기약 다다르니」(Au sang qu’un Dieu va répandre) (상)

 

 

하느님께서 피를 흘리시니,

아! 적어도 함께 울어요, 그리스도인들이여,

고통 가득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세요

우리의 잘못을 위하여 하느님께선 오늘 고난을 겪으시니

그의 수난을 통하여 삶도 죽음도 함께 할 거예요.

 

성가 「하느님께서 흘리실 피」(Au sang qu’un Dieu va répandre)는 1680년경 프랑스 캉브래 대교구의 주교 프랑수아 드 살리냑 드 라 모테-페넬롱(François de Salignac de La Mothe-Fénelon, 1651-1715)이 작사한 성가 가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려 13절에 달하는 이 가사는 페넬롱 대주교가 젊은 시절 영성 지도를 하던 파리의 여자 수도공동체를 위해 만든 기도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위한 가사였지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직설적이면서도 친근하게 풀어낸 이 프랑스어 가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후에 페넬롱 대주교의 관할 지역에서 출판된 성가책 「성 쉴피스의 영적 성가들」(Cantiques spirituels de Saint Sulpice)의 1765년 출판본이 이 성가의 가사와 악보가 함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데요, 여기에 기록된 선율은 당시 여러 지방에서 유행하던 민요 가락들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오베르냐 지방에서는 「알반 선율」(D’air d’Albanese), 니스 지방에서는 「프로방스의 성탄절」(Nouvé dai ciripicieu), 브레타냐 지방에서는 「우리 죄를 생각하며」(O soñjal en hon pec’hejoù)라는 그웰츠 민요와 유사하고, 특히 이 곡의 후렴부는 옥시타니 지방의 동요로 유명한 「잘가요, 가여운 카나발」(Adieu paure Carnaval)과 일치합니다. 재의 수요일 전날인 참회의 화요일(Mardi Gras)까지 지냈던 사육제(謝肉祭)를 마무리하는 곡이었지요. 무엇보다 「수난 기약 다다르니」의 원곡 「하느님께서 흘리실 피」와 가장 비슷한 노래는 「상냥한 소원들」(Les Tendres Souhaits)이란 곡인데, “나는 무엇일까요? 화초지요.”(Que ne suis-je la fougère)라는 가사로 프랑스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노래입니다.

 

「상냥한 소원들」은 18세기 시인이자 가수인 샤를-앙리 리부테(1708-1740)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인데요, 저명한 바로크 작곡가 지오바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1710-1736)와 에지디오 쥬세페 안토니오 알바네제(1729-1800) 중 한 명이 이 곡의 작곡가로 여겨집니다. 이후 3세기 동안 아랍어와 그리스어를 포함하여 다양한 언어들로 번안되어 불렸다 하니 이 곡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7면, 까뮤(이새론 안토니오, 이운형 마리아, 김구환 루까)]

 

 

[성가의 참맛] 가톨릭 성가 115번 「수난 기약 다다르니」(Au sang qu’un Dieu va répandre) (하)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곧 다가올 주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는 부속가(Sequentia)를 낭송합니다. 예스러운 4·4조의 운율을 가지고 있어 귀에 쏙쏙 들어오지요. 지난주에 이어 소개하는 「슈난 긔약 다다르니」의 성가 가사 또한 4·4조의 운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신자들은 배움의 기회가 없어 대부분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한국 천주교회의 보물이 탄생하는데, 바로 『천주가사』(天主歌辭)입니다. 마치 ‘조선시대의 생활성가’라고 할까요?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가사’라는 시노래(詩歌) 형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참된 길을 알려주는 천주교 교리와 윤리가 운율을 타고 흐르는 천주가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쉽게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슈난 긔약 다다르니」의 기원은 『천주가사』 중 〈삼세대의〉 제175행부터의 내용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체포부터 무덤에 모시는 수난 과정의 성경 내용이 총 10절에 걸쳐 4·4조의 운율을 가진 가사에 담겨 있는데, 이 성가가 1924년 최초의 가톨릭 성가책인 『조션어 셩가집』에 수록되었습니다. 1886년 조선과 프랑스의 수호통상조약 이후 천주교 신자가 늘어남에 따라 공식 성가책이 필요해졌고,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의 도움으로 조선인들을 위한 성가책이 처음으로 출판되었지요.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 성가들이 이때 본격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이후 1956년 전국 주교회의의 결의에 따라 출판된 『정선 가톨릭 성가집』에도 수록되면서 현재 사랑받는 4절 가사의 사순 성가가 되었습니다.

 

페넬롱 대주교의 「하느님께서 흘리실 피」(Au sang qu’un Dieu va répandre)는 예수님의 수난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며 대중적인 어투에 담았습니다. 『천주가사』 또한 멀게만 느껴질 수 있는 서양의 ‘그리스도교’에서 조선의 ‘천주교’로의 탄탄한 다리를 놓아주었지요. 18세기 프랑스 생활성가였던 「하느님께서 흘리실 피」가 19세기 조선의 생활성가였던 「슈난 긔약 다다르니」와 만났고, 우리는 올 사순시기에도 이 성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까뮤도 최근 대구대교구 창작성가 공모전에서 입상하였는데요, 한국 가톨릭의 새로운 성가들이 모여 내일을 만들어가는 여정에 발걸음을 함께할 수 있어 무척 벅차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끝으로 1975년에 나온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의 서문으로 이번 <성가의 참맛>을 마무리합니다.

 

“신앙의 생활화를 위하여 모두 다 함께 쉽고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우선적으로 채택하였습니다. (…) 젊은이들을 위해 현대적 감각이 담긴 보다 발랄한 성가들을 따로 마련한 점입니다. (…) 우리는 이 책이 한국 성가 발전의 지름길이라든가 지침서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운 시도가 요청되는 현 시점에서 하나의 제시이며 교회 성가 발전의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2년 4월 3일 사순 제5주일 의정부주보 7면, 까뮤(이새론 안토니오, 이운형 마리아, 김구환 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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