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진 자료실

[성당]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본당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3-05-31 ㅣ No.969

 

[주교좌 성당을 찾아서] 수원교구 조원동 본당

온몸으로 화살기도, 어머니 성당

 

 

수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여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 "평화를 주고 간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덧붙인다. 그 끝자락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 일어나 가자"(요한 14,31).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 일어나 가자'였다.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675-6번지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수원종합운동장을 끼고 돌아 들어선 성당 입구엔 잠든 신앙을 일깨우는 예수님 말씀, '자 일어나 가자'가 걸려 있었다.

 

성당 외양 자체도 '일어나는' 형상이다. 지붕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높게 솟아있다. 막 하늘로 쏘아올려지는 화살촉을 닮았다. 하늘을 향한 신앙인들의 부활 희망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또 성당 외양에서 최근 급속한 신자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일어나 뛰고 있는' 수원교구의 모습이 연상됐다.

 

기울어진 지붕을 빼면 성당 전체 외양은 '튀지 않는' 소박한 모습이다. 높지 않은 천장, 성당 건물과 별도로 위치한 종탑, 창문을 최소화한 설계 …. 정자동 주교좌 성당(평화신문 722호, 5월4일자 보도)이 한껏 멋을 낸 아가씨라면 조원동 주교좌 성당에는 화려함이 배제된 단아함과 차분함이 엿보였다.

 

깊은 묵상이 곁들어진 설계임이 분명했다. 짐작이 맞았다. 사무실에서 건네받은 룗조원동 주교좌 성당 25년사료엔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 남도광(南道光) 호노라도 밀레만(Honoratus Millemann) 신부(1988년 선종)가 설계한 것으로 나와 있다. 평생 나환우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한 남 신부.그는 말 수가 적었으며 늘 차분함 속에서 묵상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두고 '성인 신부'라고 부른다. 이 성당을 설계하면서 얼마나 많은 묵상을 했을까.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장데글라 목걸이 1개, 김석창 금반지 1개 ….' 1976년 조원동성당 주보를 보면 매주 성당 신축기금 헌납자 명단이 나와 있다. 총 434명. 이들은 1976년 11월18일에 본당이 설립된 후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1977년 5월18일 남도광 신부의 묵상과 그림을 현실로 만든 주인공들이다.

 

그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대지 4353평 건평 395평 500~600여석 규모의 성당은 28년 역사를 지닌 성당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2000년 설립 25주년을 맞으면서 제대와 감실 강론대 독서대를 새로 교체한 탓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일어남'의 의미가 더 강하게 와 닿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솟아 있는 천장 탓에 가만히 있어도 몸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빛은 한쪽만 허락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오른쪽 벽에만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온뒤의 흐린 날씨 탓에 아름다운 '빛의 신비'는 감상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으로 빛의 향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제대 정면의 예수님은 독특했다.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이 아니다. 두 팔을 벌리고 부활하고 계신다. '솟구치는', '일어나는' 모습의 성당 전체 분위기와 어울려 보였다. 부활 예수상 뒷쪽  화려한 타일 모자이크도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고해, 성품, 성체, 병자, 혼인, 견진, 세례성사를 각각 의미한다. 부활 예수상 위의 그림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한다.

 

30여분이 흘렀을까. 취재를 마치고 성당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성당에서 '어머니'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다시 성당에 들어가 좌석에 앉아 그 편안함을 만끽했다.

 

그래설까. 수원 교구민들은 조원동 성당을 '어머니 성당'이라고 부른다.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2000년 10월, 조원동 성당 25주년 기념 축사에서 "주교좌로서 교구 신자들의 마음의 고향 역할을 해온 조원동성당은 수원교구의 어머니 본당"이라고 말했다. 12명의 사제와 1명의 수사, 20명의 수녀를 봉헌한 본당. 어머니가 딸을 시집 보내듯 한살림씩 나누어준 본당도 4개나 된다.

 

차에 올랐다. '주교좌 성당을 찾아서' 기획의 마지막 성당. 전국 15개 교구의 여정을 접어야 할 시간이 됐다. 그 아쉬움에 성당을 다시 돌아보았다. 성당 입구에 걸린 '자 일어나 가자'가 잠든 신앙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빗속으로 성당이 멀어지고 있었다.

 

<평화신문, 제723호(2003년 5월 11일), 우광호 기자>



35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