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음악칼럼: 바흐 마태수난곡 BWV 244 중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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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27 ㅣ No.3008

[음악칼럼] 바흐 <마태수난곡 BWV 244> 중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저는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영화 보기를 좋아합니다. 영화의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떠들썩하고 현란한 액션보다는 사람이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잔잔한 영화에 더 마음이 가기에 ‘예술’이니 ‘작가주의’라는 설명이 붙은 영화도 웬만해선 지루해하지 않는 편이죠. 그런 제가 두 번이나 실패한 영화가 있습니다. 두 번 다, 정신을 차려 보니 눈을 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중간에 포기했고, 한 번은 끝까지 보기는 했습니다. 이 영화는 20세기의 가장 예술적 감독이라는 평을 받는 망명한 옛 소련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1932~1986)의 마지막 작품 <희생>이라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더러 눈을 감은 터라 얘기를 꺼낼 입장이 못 되지만, 한 가지, 이 영화 시작과 말미에 화면 가득 흐르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의 아리아는 두고두고 기억이 납니다.

 

위대한 작곡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독일)는 아시다시피 수많은 교회음악을 써서 주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그의 교회음악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마태수난곡 BWV 244(바흐작품번호 244)>입니다. 이 곡은 1727년 4월 11일, 바흐가 음악감독으로 있던 성 토마스 교회의 성금요일 예배를 위해 작곡된 음악극(수난극)으로, 총 68개의 성악곡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연주 시간이 세 시간에 달합니다. 내용은 독일어 성경의 마태오 복음 26장과 27장을 전하는 가운데, 사이사이 새로운 대본의 아리아와 합창, 당시 전해 내려오는 코랄을 첨가해서 음악적 완성도와 극적 감동을 한층 높였습니다. 대본의 작가는 피칸더(Picander)라는 필명을 가진 시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Christian Friedrich Henrici, 1700-1764)이지만 바흐도 관여했을 것으로 봅니다.

 

첫 곡인 합창 ‘오라 딸들아, 내 애도를 도와다오’로 시작한 음악은 중반 즈음, 2부에서 복음사가(에반겔리스트)가 마태오 복음 26장 75절을 레치타티보로 읊는 부분에 이릅니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이 성경 말씀에 이어 불리는 아리아가 바로 영화 <희생>에서 쓰인 곡,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입니다. 정황상 밖으로 나간 베드로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내용이지요. 여성의 낮은 음역인 알토가 부르는 이 아리아는 노래가 나오기에 앞서 1분가량 바이올린이 지극히 아름답고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는데, 이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는 노래 내내 독자적으로 연주되면서 곡에 매력을 더합니다. 아리아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의 하느님, 제 눈물을 보아서라도 불쌍히 여기소서. / 여기 보소서, 당신 앞에서 제 마음과 눈이 애통하게 우나이다. / 나의 하느님, 제 눈물을 보아서라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살면서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와 같은 순간을 얼마나 많이 겪을까요? 복음적이지 못한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마다 <마태수난곡>의 아리아 ‘불쌍히 여기소서’처럼 눈물로 주님의 자비를 구해봅니다.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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