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성서공부

수요성서 (1 월 25 일) 부활에 대한 사두가이파 들의 논쟁 유도, 첫째가는 계명,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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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vlxj3004] 쪽지 캡슐

2006-01-24 ㅣ No.82

 

† 그리스도님 우리의 평화                                         1;25

 

십자가 제사를 향하여

주님은 멍애를 지시고 가시것만

교활하고 가증스러운 인간은 주님 멍애에 더 큰 짐

올려 놓는 망발을 일삼고 있습니다

 

인간 교만의 끝은 보이지를 않고

사탄이에 의해서 조작되고 요리 되어지는 타락한 인간은

주님을 능멸하고 멸시를 하며 주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것만

 

주님은

당신이 창조해 놓으신 작품으로 인정 하시고 인격을 존중해 주시며

주님 사랑에 섭리로 이끌고 가시기 위해

말없이 그리고 조용히

주님은 당신의 생명 내 놓을 준비를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게도 나를 사랑 하시고 데리고 사시기 위해

주님의 모든것 다 쏫아 내시니

헤아릴길 없는 은총에 감읍하며

주님 대전에 나 또한 봉헌되어 지기를 진심으로 소망 하옵니다.

 

 

※ 사두가이파 들에 의한 부활 이후에 결혼제도 논쟁 유발 ※

 

23 절

그 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삿두카이오이 레곤테스 메 에이나이 아나스타신)

처음으로 사두가이파 들의 공식적인 등장 입니다.

 

바리사이파 들과 몇가지 논쟁을 끝내셨는데 곧 바로 이어서

사두가이파 들이 부활과 관련된 결혼 제도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22 절에서 바리사이파 들이 떠났다(아펠단)라는 행동에

바로 이어서

접근하다(프로셀돈) 라는 단어를 마태오가 사용하고 있는것은

 

사두가이파 는 바리사이파가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떠나자마자

예수님께 논쟁 거리를 내 놓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한 분을 대상으로

당시의 종교계 각파들이 총동원이 되었고 헤로데 당원들 까지 합세하여

작정을 하고 예수님께 덤비는 모습 입니다.

 

사두가이파, 는

다윗 시대에 대제사장 사독의 후예 들이며

상당한 경제력이 넘쳤으며 헤로데와 로마에 경제적 이권 결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들 보다 백성 들에게 욕을 더 많이 먹었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바리사이파 들이 내세우는 구전과 유전(관습법)을 거부 하였고

구약성서 에서는 일반적인 윤리에 관한것 만 인정 하였으며

부활은 없고, 영혼도 없고, 천사들도 없다고 하면서

내세에 대해서는 일절 부인하는 현실 주의자들 입니다.

윤리와 도덕만을 강조하는 현세 만족 주의자들 입니다.

 

24 절

"선생님, 모세가 정해 준 법에는

'어떤 사람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모세가 정해 준 법에는...하였습니다,(모위세스 에이펜)

신명기 25:6 절을 근거로

그들이 인정 하고 있는 모세 5 경 중에서 계대 결혼에 대한 질문 입니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

(에피감브류세이...카이 아나스테세이 스페르마 토 아델포 아우투)

이렇게 하라고 하느님이 명령 하셨던 것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해 주셨던 기업을(유산)

후손이 없으므로

상속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계대 결혼을 인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25 절

그런데 우리 이웃에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을 하고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그 동생이 형수와 살게 되었는데

 

*칠 형제가...죽어서...살게 되었는데

 (헤프타 아델포이...에텔류테센..아페켄)

헤프타 아델포이: 7 형제 가,

 

에텔류테센,(원형,텔류타오):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아페켄,(원형,아피아미): 자신으로 부터 떠나 보내다, 허락하다,

                        용서하다, 라는 뜻으로

죽은자가 살아있는 아내에게

나 에게서 떠나 내 동생에게 들어감을 허락 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두가이파 이들이

2 명만 언급해도 충분히 자기들이 설명 할 수 있음에도 7 명을 언급한 것은

부활에 대한 교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부활교리에 대한 조롱이 들어있는 뜻입니다.

 

26 절

둘째도,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째까지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호모이오스)

똑같이, 같은 방법으로, 동일하게, 라는 뜻으로

일곱째까지 동일한 방법으로 형수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말도 않되는 억지를 쓰는 말입니다.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이들은 예수님 잡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27 절

그들이 다 죽은 뒤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아페다넨 헤 귀네)

아페다넨,(원형,아포드네스코)

자연적인 죽음을 뜻합니다

 

남편들의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고(에텔류데센)

이 여자는 막내 7 번째 까지 살고 막내가 죽은후에 이 여자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해도해도 말이 않되는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논리나 채면도 집어 던지고 갈때 까지 가 보겠다는 막가는 행동 입니다.

 

28 절

칠 형제가 모두 그 여자와 살았으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엔 테 아나스타세이...티노스...에스타이 귀네)

이 땅에서 7 형제와 연이어 살다가 모두 죽었다면

부활때 과연 8 명이 다 살아 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묻고 있는것이며

부활이 있다면 부활 이후에도 결혼 관계가 유지되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인데 과연 부활이 있겠느냐,

있다면 7 명의 형제 부인이 된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논리 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교리를 강조하는 입장 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알량한 지식으로 그것도 질문 이라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오만불손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장면 입니다.

 

29 절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너희는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플라나스데 메 에이도테스 타스 그라파스 메데 텐 뒤나민 투 데우)

플라나스데,(원형,플라나오)

길을 잃다, 정도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으로

 

너희 사두가이파 들이 생각하고 있는것은

성서에서 가르치는 본래의 뜻에서 부터, 진리로 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뜻입니다.

 

그라파스,(원형,그라페): 성서, 구약성서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신명기 25:5, 6 절의 내용을 인용하여

말을 보태서 이야기를 하였는데 31, 32, 절에는 분명히 부활의 증거가 있다,

이것을 너희들이 모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고

 

텐 뒤나민 투 데우: 하느님의 권능,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문장으로써

 

너희들이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체험적인 신앙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교리를 갖게 된 것이라고 지적 하시면서

그들의 무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음 절 에서 지적을 하십니다.

 

30 절

부활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가르 ...우테 가무신 우테 가미존타이)

 

하느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혼자 있는것이 보기 않좋으셔서

아담의 외로움을 해소 시켜 주시기 위해 이브를 만드셨고(창세기2:20)

번성하라고(1:27,28) 하신것은

하느님이 만드신 신성한 결혼 제도 인데

 

부활한 후 에는

영원히 사는것이기 때문에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두가이파 들은

새로운 세상도 현세상과 같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천사들은 살과 뼈가없는 영적존재 입니다

▲루가복음24:39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가 부활한 후의 몸의 상태는

새로운 몸으로 갈아입는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44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이 신령한 몸은 손으로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상태 입니다

(루가복음 24:39)

 

여기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 후에 천사같이 된다는 말씀의 뜻은

천사들 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며 결혼하지 않는다는 뜻의 말씀 입니다.

그리고

부활 후에 변화된 우리의 몸이 가지는 성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31 절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본 일이 없느냐?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하여(페리 데 테스 아나스타세오스 톤 네크론)

톤 네크론: 죽은 자들, 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죽게 되어 있는 모든자들, 입니다.

 

영적인 무지에 대해서는 두 말 할 여지도 없거니와

성서에 대해서 전혀 기초적인 지식 조차도 없는 사두가이파 들에게

구체적인 예를 드시면서 가르쳐 주시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토 레덴 휘포 투 데우 레곤토스)

마르코, 루가, 복음 에서는

가시나무에 사건에서(출에급기3:6) 하느님이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

하셨던 내용을 인용 하신것을 명기하고 있는데

마태오는 생략했습니다.

 

*아직 읽어본 일이 없느냐,(우크 아네그노테)

권력과 결탁하고 현실주의에 만족하며

하느님이 내려주신 말씀도 멋대로 해석하고

그러면서도 종교 지도자라고 자처 하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백성의 등을 파먹는 너희가

하느님의 말씀도 제대로 읽어 보지도 못 하였거니와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갖고 있는 신앙의 지식은

성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정도 이기에

그 얄팍함을 갖고

내게 지금 물어 보는것이 무슨 뜻인줄은 알고 묻고있는 것이냐,  

라는 말씀 이십니다. 

 

32 절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이사악의 하느님이요,야곱의 하느님이다.'

하시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 이다(에고 에이미 호 데오스 아브라암..알라 존톤)

모세의 가시나무 사건 이외에도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자주 자칭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 부터 이 말씀을 들을 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미 죽은지 오래 되었던 시점으로

하느님이

죽은 그들의 조상을 언급 하시면서 모세에게 말씀 하신것은

그 조상들이 죽은것으로 인생과 영혼이 마감한 것이 아니고

 

부활하여 하느님 옆에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되는데

(변모산에서 나타났던 모세와 엘리야)

 

어떻게 부활이 없다는 논리를 펼 수 있는 것이냐

그러고도 너희가 성서를 읽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러므로 너희 사드가이파의 교리적인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천사도 있고 성령님도 계시고 영혼도 있고 죽음 이후에 부활도 있는것이다,

성서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거라,

라고 말씀 하시는 뜻입니다.

 

33 절

이 말씀을 들은 군중은 예수의 가르침에 탄복하여 마지않았다.

 

*가르침에 탄복하여 마지않았다(엑세플렛손토 에피 테 디다케 아우투)

엑세플렛손토,(원형,에크플렛소)

깜짝 놀라는 상태가 당분간 지속된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들은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의 종교 지도자 들이나

율법교사들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으시며 권위가 있으시고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지혜를 들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계명 중에서 제일 첫 번째 가는 으뜸 계명 은

               다윗과 그리스도에 대한 예수님의 역 질문 ※

 

34 절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막아버리셨다는,(호티 에피모센)

에피모센,(원형,에피모오)

재갈을 물리다, 말 못하게하다, 침묵 시키다, 입 다물게하다, 조용하게하다, 라는 뜻으로

 

사두가이파의 핵심 교리인 부활이 없다는 논리에 대해서

두번 다시 꺼내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셨습니다.

 

성서를 올바로 읽고 해석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에 의해서 내려진 생명의 말씀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해석하여

이단의 교리화 하는것을 경고 하셨습니다.

 

생명과 영혼은 영원한 것이며

사두가이파들 교리 처럼

물질과 사회적인 풍요로움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것이 아니라

 

생명을 버리므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영원한 생명으로 진입 되는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얄팍한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을 대항 하려는 교만을 꺽으시고

믿음 위에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함과

겸손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라고 하는 뜻의 단어가

에피모센, 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호이 데 파리사이오이 아쿠산테스....쉬네크데산)

40 절 까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내용 입니다.

 

사두가이파 들이 예수님께 꼼짝 못하고 물러 갔다는 말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사두가이파 들에 대해 쾌재를 부르면서

 

자기들은 예수님께 대항해서 이길 수 있다는 당당함으로

모사를 꾸미기 위해 또 작전을 짜려고 모였습니다, 라는 뜻의 단어가 쉬나고, 입니다.

 

쉬나고,

흩어져 각자 살고 있다가 어떤 일을 하기위해 뭉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바리사이파 들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를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마태오는

생생하게 우리에게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35 절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카이 에페로테센 헤이스 엑스 아우톤 노미코스 페이라존 아우톤)

 

*15 절에서는

바리사이파 들이 그들의 제자들을 보내어 납세에 대한 모사를

꾸몄다가 그들의 제자들이 참패 하자마자

 

사두가이파 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 무식한 논쟁을 끝내고 나시니까

바리사이파 스승급들 중에 똑똑하다고 인정되는 율법학자들을 뽑아

제자들 처럼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들 나름대로 고상하고

난해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재 도전을 하고있는 장면 입니다.

 

그들을 일일히 대하시는 예수님도 무척 바쁘셨습니다.

이러한 논쟁을 하고있는 날은

계속된 성주간 화요일에, 해당되는 날 입니다. 

 

*노미코스: 율법 지식에 박식한 자,

율법 학자들 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키는 전문가들 이며

율법적인 논쟁에 대해서는 이들과 겨를 수 없는 뛰어난 사람들 입니다.

 

페이라존,(원형,페이라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시험 하거나 실험 하는것을 뜻합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사용될 때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좋은 의미로 확인하는 것이고

 

부정적인 측면으로 사용될 때는

음해 하려는 목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알아내는것 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 학자들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예수님께 온것 입니다.

 

36 절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디다스칼레 포이아 엔톨레 메갈레 엔 토 노모)

 

*디다스칼레, 디다스칼로스 의 호격 으로

삶의 도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유대교의 선생님들을 부를때

사용되는 호칭 입니다.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목적은

그들이 묻는 질문에 정답변을 못하면 더 큰 실패감을 주기위한 술수로

의도적 존칭을 하는 부름 입니다.

 

메갈레: 어떤 대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것, 입니다.

엔톨레: 모세의 율법 중에서도 세분화된 각 계명들 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체 율법은 613, 가지이고

613 가지 중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율법은 248, 가지 이며

덜 중요한 것은 365, 가지라고 분류를 시켜 놓았습니다.

 

바리사이파 자기들 끼리도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기준을 놓고 언제나 의견들이 분분 했습니다.

 

율법 전체를 지키는것을 인생 전체적인 비중을 두었고

율법을 내려주신 하느님의 의는 내 팽게친체

그들끼리 율법의 자구적인 기준을 잣대로 삼고

하느님께 대한 신심은 온데 간데가 없어졌습니다.

 

37 절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아가페세이스 퀴리온 톤 데온 수 엔 흘레 테 카르디아 수 카이 엔

  흘레 테 프쉬케 수 카이 엔 흘레 테 디아노이아 수)

직역: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 입니다.

 

원어 성서의 번역 으로는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라는 것에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서 수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가페세이스,(원형,아가파오)

하느님께 향한 감사와 복종과 지속적으로 드리는 경의가 있는 상태로

하느님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계속 갖고있는 의미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4 장 21 절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요한 1 서 5 장 3 절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사랑 이라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먼저 사랑 할 것을 강조 하신 후에

신명기 6:5 절을 인용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 했으며

쉐마, 라고 명칭 합니다.

 

엔 흘레 테 카르디아: 가식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카이 엔 흘레 테 프쉬케: 각자에게 주신 생명을 가진자는

                        호흡을 할 때마다,

카이 엔 흘레 테 디아노이아 수: 이해하고 느끼며 갈망하는 마음으로,

 

마음, 목숨, 뜻, 을 다 하라시는 것은

우리의 전 인격을 다 동원해서 하느님을 사랑 하라시는 뜻입니다.

 

38 절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하우테 에스틴 헤 메갈레 카이 프로테 엔톨레)

 

*카이 프로테: 시간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에서도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것, 입니다.

               삶의 어떤 상황과 처지 에서도 최고의 우선 순위를

               의미 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 하시고 사람에게 바라시는 바램은

▲ 전도서 12: 13 절,

들을 만한 말을 다 들었을 테지만,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그의 분부를 지키라는 말

한마디만 결론으로 하고 싶다. 이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우리에게 내려주신 생명의 말씀을 지키는것

이것이 인생들이 해야 하는 본분 입니다.

 

설사 나에게 불이익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면

최우선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을 말씀 하시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은 불이익적인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일을 행하면

모든것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결단코 우리에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하여주실 것이며

 

설사 불이익이 왔다고 하더라도

모든것에 최우선하는 하느님 섬김은

변질이 되서는 않된다는 단어가 프로테, 입니다.

 

39 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듀테라 데 호모이아 아우테 아가페세이스 톤 플레시온 수 호스 세아우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못지않게 중요하다

(호모이아 아우테 아가페세이스 톤 플레시온 수)

호모이아 아우테: 38 절 에서의 언급하신

                 하느님 사랑 하는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인데, 라는

                 뜻입니다.

호모이아,(원형,호모이오스)

모양, 힘, 능력, 권세, 등이 동등한 두 사물을 비교할때 사용되는 단어로써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라는 둘 째 계명도

첫 째 계명 못지않게 중요 하다는 말씀 이십니다.

 

바리사이파의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이 내려주신 계명을 어느것은 중요하고 어느것은 덜 중요 하다고 가르쳤는데

그런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을 아울러 하고 계시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 하듯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고

두 가지 의무에 대한 통합적인 실천을 강조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 요한1서 4:7-21 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 할수밖에 없다는 말을 합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40 절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엔 타우타이스 타이스 뒤신 엔톨라이스 홀로스 호 노모스 크레마타이

 카이 호이 프로페타이)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홀로스 호 노모스 크레마타이 카이 호이 프로페타이)

호 노모스: 모세 5 경,

호이 프로페타이: 예언서,입니다.

 

유대인의 성서는 구약 39 권을 3 가지로 구분을 했는데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 입니다.

 

크레마타이,(원형,크레만뉘미)

매달다, 걸다, 입니다.

번역상 골자,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 하는것은

마음을, 뜻을,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듯

이웃 에게도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을 해야 한다는 뜻의 말씀을

예수님은 하셨는데

 

율법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모든 말씀은 

하느님이 주장 하시는 사랑에 귀결이 되는것 이므로

 

모든 행동은

사랑 이라는 잣대에 기준을 두고,

사랑에 의지하고,

사랑으로 결론을 지어서,

 

우리에게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우리의 사랑으로 화답하여 드리는것을

하느님은 지극히 원하신다는 뜻이 크레마타이, 입니다.

 

▲ 로마서 13:10,8, 절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41 절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쉬네그메논 데 톤 파리사이온 에페로테센 아우투스 호 이에수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 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다윗과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 입니다.

 

쉬네그메논,(원형,쉰아고)

모으다, 소집하다, 라는 뜻으로

 

어떠한 일을 하기위해 소집을 해놓고 있는 상태 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기 위해 바리사이파 들은 또 소집이 된 상태 입니다.

 

에페로테센,(원형,에페로타오)

~ 에게 다가가서 질문하다, ~ 에 대하여 묻다, 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음해키 위해 모여있는 바리사이파 들에게 가셔서

역공으로 질문을 하시려고 합니다.

최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 입니다.

지금 질문 하시려는 내용으로 그들은 입을 다물게되는 마지막 논쟁

이십니다.(46절)

 

42 절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다윗의 자손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티 휘민 도케이 페리 투 크리스투)

크리스투,(원형,크리스토스)

기름 부음을 받은자, 라는 뜻 으로

 

예수님의 질문 형식은

직접 화법으로 단도 직입적으로 질문을 하시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왕, 예언자, 제사장, 을 임명할때

기름을 머리에 붓게 되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에 의해서 기름 부음을 받은자 로써

유대땅에 내려오실 분이며 강력한 정치적인 힘을 갖고계신 메시아

이시다, 라는 인식으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메시아, 그리스도 라는 개념 입니다.

이러한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강한 인식이 있기에

그 인식에 대한 예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려는 의도로 질문을

던지시는 뜻입니다.

 

이 질문의 요지는,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강력한 정치적인 메시아라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라는 지적을 하시는 것이며

 

성서에서 밝힌 메시아는,

다윗 혈통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는 인간 메시아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이 전 인류를 구원해 내기 위하여

직접 사람이 되시어 내려 오시는 것이다.

 

오시는 메시아는

다윗 보다도 먼저 계시는 하느님으로써

너희들 앞에 서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아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의 자손이겠느냐...다윗의 자손입니다

(티노스 휘오스 에스틴....투 다위드)

루가는 율법학자들의 대답에 대해서 생략 하였고

마르코 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반면에 마태오는 생생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티노스 휘오스: 누구의 자손이냐, 조상이 누구냐, 입니다.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인간 메시아로 여겼습니다

(시편 110:4, 이사야11:1,10,)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칭해서 말씀 하시는 휘오스 투 안드로프, 라는

사람의 아들 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실때 마다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는 강한 반감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도 다윗의 후손으로 정치적으로 강한 힘을

갖고있는 사람인데

당신을 보는 우리의 눈은 사람인데

사람인 주제에 어찌 하느님 이라고 자칭 할 수 있느냐, 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가 오는것은 확실하다 마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는 인간 메시아가 아니고

조상들로 부터 예언된 성서 말씀을 이루기 위해

다윗의 족보를 이용해서 온 것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 이시며

 

성서에 기록 되어 있는데로

다윗이 오실 메시아를 부를때 주님 이라고 불렀는데

어찌 메시아가 다윗 후손 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다윗 후손으로 인간 메시아를 기다리는 너희의 개념이 잘못된 것이고

너희 앞에 서있는 내가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메시아의 자격으로 이 땅에 내려온

성자 하느님,  바로 나(에고 에이미), 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 뜻입니다.

 

43 절

예수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성령의 감화를 받아,(엔 퓨뉴마티)

퓨뉴마티,(원형,프뉴마)

바람, 생기, 영, 숨, 의 뜻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 3 위의 하느님임을 나타내는 성령님 이라는

단어 입니다.

 

엔, 은 ~ 안에, 라는 뜻으로

 

구약 인물인 다윗이

메시아로 세상에 내려 오시는 제 2 위의 성자 하느님을 뵙고

시편의 예언시를 쓸때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 성령님 안에서, 고백하지 않았느냐, 라는

뜻의 단어가 엔, 입니다.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칼레이 아우톤 퀴리온)

퀴리온,(원형,퀴리오스)

주인, 소유자, 주권자, 우주의 통치자, 라는 뜻으로

 

너희들이 생각하는 역대의 왕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다윗이

그 시대에

성령님의 감화로 오실 메시아를 보면서

온 우주를 통치 하시는 하느님으로써, 본인의 주님 이라고,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 하였고, 

오실 메시아를 퀴리온(주님) 이라고 불렀는데

오실 메시아가 왜 사람 이라고 생각 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44 절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신 말씀,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고 다윗이 읊지 않았느냐?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신 말씀...읊지 않았느냐

   (에이펜 퀴리오스 토 퀴리오 무)

시편 110:1 절의 말씀을 인용 하십니다.

성령님의 감화를 받고 기록한 시편의 저자 다윗은

오실 메시아께서

메시아가 세상에서 어떠한 일을 하실지에 대해 예언을 하고 있는 대목 입니다.

 

에이펜,(원형,에포)

이르신 말씀, 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대화를 다윗은 목격을 하였고

목격한 내용을

시편에 기록해 놓치 않았느냐, 라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는 인간 메시아가 아니라

너희들이 위대한 왕 이라고 생각하는 다윗왕이

주님 이라고 고백한 성자 하느님 이며

 

성부 하느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말씀 하시며

세상 에서의 메시아의 할 일에 대한 대화를 다윗은 듣고 목격 하면서

시편에 예언을 해 놓았는데

 

오실 메시아가 어찌 다윗의 후손 일 수 가 있겠느냐,

그 메시아는 하느님과 동일한 신성을 갖고있는 같은 하느님인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헤오스 안 도 투스 에크두루스 수 휘포카토 톤 포돈 수)

 

에크두루스,(원형,에크드로스)

적, 원수, 대항자, 적의가 있는, 사이가 나쁜, 의 뜻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이신 메시아에 대항하며 악의를 갖고 있는자

(루가복음19:27, 사도행전13:10, 필립보서3:18)

즉 사탄이를 뜻합니다.

 

휘포카토 톤 포돈 수: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입니다.

 

사탄이가 제일 자랑으로 내 세울 수 있는것은

죽음과 사망과 죄,인데

이것들을 빌미로

죽음과 사망과 죄의 종으로 전락 시키는 전체 원인을

그리스도이신 메시아 께서는

 

성부께 드리는 십자가 제사를 통하여 죽음과 사망과 죄를 말살 하셨고

악의를 갖고 있는 사탄이를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발 밑에 밟혀

완벽한 승리를 메시아는 거두실 것이며

사탄은 영원한 형벌 속으로

영원한 패배에 이를것 이라는 뜻입니다.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카두 에크 덱시온 무)

 덱시온,(원형,덱시오스)

받다, 영접하다, 수용, 신뢰, 의 뜻으로

 

영이신 하느님은 공간을 초원 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느님 오른쪽 이라는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과, 권위, 위엄,

 

그리고

하느님이 성자에게 주시는 끝없는 신뢰와

전 우주를 다시리시는

동반자로써 의 지위를 환원 시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느님의 영광을 내 놓으시고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고

지극한 겸손으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고 성부의 뜻을 이루어 드렸기에

성부 하느님은

우리 주님께서 전에 누리셨던 성자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카데마이, 는 앉아 있어라, 라는 뜻입니다.

현제 명령법 시제 이므로

 

오늘 이 시간에도 여전히 온 우주를 통치 하시는

성자 하느님 이심을 나타내는 진행형인 것이며

세상 마지막 날에 사탄이를 영원히 갇우시기 까지 공의로움 으로 통치 하신다는 뜻입니다.

 

45 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포스 휘오스 아우투 에스틴)

포스: 어떻게,

상대방의 논지를 강하게 반박할 때 사용하는 단어 입니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논지 그대로 반박 하시는

화법을 사용 하시고 계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다윗 후손으로 인성을 갖고 오는 메시아 라고 너희들은 인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너희조상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의 시를 기록 했듯이

다윗이 오실 메시아를 부를 때

주님 이라고 불렀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오실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46 절

그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날부터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데 에톨메센 티스...에페로테사이 아우톤 우케티)

 

우데 에톨메센: 두려워하지 않을수 없었다, 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박 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찾을 수가 없었고

우케티: 더이상 ~ 이 아닌, 뜻으로

감히 예수님께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었으며

 

그들 스스로도 풀기 어려운 신학적인 문제도

예수님은 쉽고 논리 정연하게 말씀 하시는 핵심의 답을 들을 때

예수님의 권위에 눌려 두려움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이상 올무에 빠뜨린다는

자신들의 계략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 하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학문적인 각도에서 만  평가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질문을 잠재우신 예수님은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 가셔서(41절)

그들이 벌렸던 논쟁의 핵심, 즉 메시아관에 대해

 

다윗도 메시아를 주님 이라고 불렀던 역사적인 사실을 들으시고

모든 논쟁의 종지부를 찍으시는 역 질문을 통해

내가 메시아 임을 선포 하시며 반론을 두번 다시 못하게 정리를 말끔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준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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