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밤에 뭔 일이 있었수? (노암동 성당)

인쇄

김요셉피나 [xone2] 쪽지 캡슐

2002-09-12 ㅣ No.3897

 

 낮에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알뜰한 동생의 부탁으로 성남 모란 시장으로 기름을 짜러 가자고 해서 한창

 

 참기름의 고소한 맛을 코로 느끼고 있을 때 손 전화의 벨이 울렸다.

 

 목요일 새벽 아침에 떠나기로 한 수해 위문품이 갑자기 일정 변경으로 밤에

 

 떠난다는 연락이 온것이었다.

 

 어쩌나..7시에 떠난다는데 나는 아무리 빨리 해도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냥

 

 포기 선언을 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는 남태령은 어찌 그리 차가 밀리는지...

 

 제부는 가고 싶으면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라고 했지만 먼저 못 갈것 같

 

 다고 선언을 한바에야...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현장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아쉽기만 했다.

 

 8시가 되어 집에 돌아와 혹시나 ~ 하고 이상경 가브리엘 형제님께 전화를

 

 해보니 지금 용산인데 갈 마음이 있으면 차를 다시 돌려 오겠다는 ...

 

 그래 ! 딱 한번만 뻔뻔 해지자 , 미안해 보자! 하고 가고 싶다는 말로

 

 못 간다는 말을  뒤 엎어 버렸다.

 

 8시 40분 .... 다시 출발

 

 정규화 프란치스코 , 유열종 , 이상경, 이번에 꾸르실료를 다녀오신

 

요셉형제님, 나 다섯명이 되었다 .

 

 짐은 이미 트럭으로 출발을 시켜 놓으셨다고 했다.

 

 천호대교를 지나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잘못들어 16키로를 다시

 

 돌아오는데 운전석 뒤에 앉아 속도판을 보니 " 엄마 무셔라! 150KM와 160KM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게 아닌가 ..

 

 너무나 달려도 속도감을 모르는가보다 ..

 

 나도 모르게 우리의 힘! 묵주를 꺼내들고 "주여~` 은총이..가득한..

 

 칠흙 같은 밤이라 수해의 피해는 보이지 않았고 길 거리 거리 마다 쌓여진

 

 쓰레기더미와 일어 나 헤쳐진  길가 보도블럭으로 그냥  피해를 갸름 할

 

뿐이였다.

 

 강릉 입구에 들어서니 우선 눈에 뛴게 많이 걸려진 현수막이였다.

 

 " 각 가전제품회사에서 걸어 논 "수해 복구 특별 써비스"와 "XX 부대 장병

 

 고맙습니다" 라든가 "자원 봉사자님들 고맙습니다"도 걸려있고 길가에 천막의

 

  급식소 모습이 여기가 수해지역입니다 라고 말해주는것 같았다.

 

 12시 경이 되어서 노암동 성당에 도착을 하니 우리 성당 만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높은 자리에 성전이 있었고 제법 큰 성당이였다.

 

 정기원 미카엘 신부님과 사무장님이 우릴 반겨 맞아 주셨고 사무장님의 자판기

 

커피 접대로 운전을 하고 오신 분이나 타고 온 우리 모두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 참, 많이도 가져 오셨네요..감사합니다.. 하시는 신부님을 자세히 보니

 

 앞 머리가 없으셔 우리 보좌 신부님이 연상 되었고 얼굴은 좀 얼큰이셨다.

 

 얼마나 반가움인지 급하심인지 잠바를 뒤집어 입고 나오셔서 우릴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셨다.

 

 유열종 형제님께서 신부님이 주신 금일봉을 전달하며 우리 용산 성당에 60주년

 

기념 교육관을 짓느냐고 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적지만  신부님의 성의로 받아

 

달라는 말에 신부님께선 농담으로 봉투의 두께를 갸름하시며 금액을 맞추시는

 

것 같아 모두 함께 웃었다.

 

 "너무나 감사 하고 꼭 주임 신부님께  감사의 전화를 드리겠다고

 

하시며 낮에  동네에 겨우 몸 만 빠져 나온 분을 찾아 다니며 신부님도

 

 조금씩 수재민들에게 나누워 주셨다고 했다.

 

 사망자가 백명이나 되고  지금도 시체가 발굴 되고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시는 것이였다.

 

  성당 한편 교실엔 먼저 온 위문품들이 널려 있고 " 모든 물건을 자유로이

 

선택 하시면서 타인 생각도 ....

 

 물건은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가져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도 타인도 좀 생각하자는 글 귀가 있어 서로 양보를 하는지

 

    좋은 물건? 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성전 입구엔 큰 다라가 있었는데 물이 안나와 빗물을 받아 썼다는 통이였다.

 

 물 난리가 났지만 물이 없어 난리라니.......

 

 5톤 트럭의 물건을 다 내리고 보니 한 시!

 

 당신의 처가집 동네의 성당이라 당신 일 처럼 생각이 드는지 열심히 일한

 

 이상경 형제님이 그냥 갈 수 없쟌아 하면서 경포에 가서 오징어회를

 

사주신다고 해서 우린 갔다.

 

 올때는 유열종 형제님이 운전을 하기로 하고 ... 일배 일배 부일배.

 

 힘든 일을 잊는것은 그져 술 한잔이... 아울러 시인 고은씨가 말한 요즘 술

 

들을 안 먹어 시인들이 가슴으로 시를 쓰는게 아니라 머리로 시를 쓴다는 말의

 

 첫 머리 운을 떼며 한잔! 한잔!

 

 3시 40분에 서울로 추울발!!!!

 

 안개가 낀 길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좁혀 드는 일차선 차선도 있었고

 

 차안에 남자 기쁨 조들은 60년대 부터 시작한 가요사를 시작하여 90년도

 

 가요까지 아니 최신 노래 박강성의 "문밖의 있는 그대라던가..."

 

 노래가 안되면 악으로 한다?  정말 멀쩡한 사람도 잠이 깰 정도의 음악성!

 

  가사만 음미하면서 노랠 들었다.. 나중에 술 깨면 더 잘 부를수 있다고 장담

 

 하였지만....

 

 

 유열종 형제님은 운전을 어찌하나?

 

 

 처음엔 80km로 달리더니 나중에는 조셨다고 고백을 하셨시며 내가 운전한게

 

 아니라고 했다.

 

 역시 유 형제님도 평균 120Km 로..

 

 우리 정확히 6시5 분 쯤에 용산 성당에 도착.

 

 차 한잔을 마시고 해단식...

 

 역사는 밤에 이루워진다는 말을 실감.

 

 밤에 우린 아무도 모르게 일을 헤치우고 돌아왔다!

 

 

 

 

 

 

 

 

 

 

 

 

 

 

 



12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