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14년 12월 세나뚜스 지도신부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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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5-01-02 ㅣ No.227

성가정 축일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님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가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성탄 대축일 다음의 주일에 지내는 성가정(聖家庭) 축일도 이런 맥락 속에 있습니다. 성가정이란 예수, 마리아, 요셉께서 이루신 가정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도 그 가정을 본받아서 성가정을 이루고자 다짐하는 데에 이 축일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가정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배처럼 잘 되어 갔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은 보통 가정보다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가정의 성립부터 순탄하지가 않았습니다. 요셉이 자기 약혼녀 마리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결혼 전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파혼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천사는 마리아의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려주었고 요셉은 이 말을 믿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마태 1,18-25).


이렇게 힘들게 결혼이 성사된 후에도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칩니다. 마리아는 예수 아기를 여행 중에, 그것도 여관방이 없어서 초라한 마구간에서 낳아야 했습니다(루카 2,1-7). 또 요셉은 예수 아기를 죽이려는 헤로데 왕의 손길을 피해서 멀리 이집트로 가서 그곳에서 얼마간 타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마태 2,13-15).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키우는 데에도 그야말로 속 썩는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나던 해에 가족 전체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고 사흘 동안 애태우며 찾아다니다가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하고 있는 아들 예수를 겨우 찾게 됩니다(루카 2,42-52). 이처럼 성가정이라고 해서 어려움과 고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보통 가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예수, 마리아, 요셉은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성가정인 이유는 그들이 이렇게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신앙인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귀를 기울였고 그 뜻을 기꺼이 따랐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을 받고서 비록 그 전갈의 의미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하느님께 굳건한 신뢰를 지니고 보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십니다. 또 성모님은 열두 살의 예수님을 예루살렘 순례의 귀환 길에서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 아들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들었지만, 그 말을 무시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루카 2,51). 성모님은 비록 하느님의 뜻을, 아들의 말을 다 파악할 수 없어도 무시하거나 내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 ‘내가 지금 이해하지는 못해도 뭔가 드러나지 않은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는 생각으로 그러셨을 것입니다. 이는 인내와 겸손의 태도입니다. 성모님은 인내와 겸손의 태도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시고, 그런 태도로 아들을 기르신 것입니다.


요셉 역시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결혼 전에 약혼녀인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서 분명 당황하였고 고민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고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마리아를 흔쾌히 아내로 맞아들입니다(마태 1,24). 또한 천사의 지시대로 위험에 처한 가족을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밤길을 나서서 멀리 피신하고, 다시 천사의 지시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나자렛으로 돌아갑니다(마태 2,13-15. 19-23).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가족을 위하여 어려움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이는 자비와 헌신의 태도입니다. 요셉 성인은 자비와 헌신의 태도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육친의 부모를 잠시 떠나 성전에 머무르셨지만, 다시 마리아와 요셉을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순종하며”(루카 2,51) 지내셨습니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인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씀에 충실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에 대한 충실, 육친의 부모님께 대한 효도로써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 마리아와 요셉, 그분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어려움과 고민이 있었고 속이 상하는 일도 있었으며 미처 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우선으로 하면서, 그 뜻을 구체적으로는 인내와 자비, 헌신, 충실의 모습으로 실천하면서 가족 서로를 감싸주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모두 세례 받고 성당 다닌다고 해서 성가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자주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예수, 마리아, 요셉 성 가정이 하신 바를 실천할 때 성가정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태는 성가정이 사신 바와는 정반대로 가는 기류가 아주 강합니다. 그러기에 성가정은 더욱 더 중요하게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도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서 가족끼리 인내로 참아주고, 관대하고 대하며, 자신을 쪼개주려고 하고, 가족 간의 도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바로 성가정을 닮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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