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한불자전(1880년)에 있는 납득할 수 없는 오류의 한자 표기 愛矜(애긍) 1445_ good_works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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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4 ㅣ No.2135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5.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본글에서 다루고 있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졸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works_of_mercy.htm  

(이상, 게시자 주 끝)

 

 

1. 들어가면서 및 유관 사료 분석 I

 

1-1.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지난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미사 중에 봉독되는 마태오 복음서 제5장 앞부분에 있는 진복팔단(真福八端, Beatitudes, 참행복들) 중의 제7절에서 요즈음에는 자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그러나 예를 들어, 다음의 발췌된 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기근 신부님께서 우리말로 번역한 "사사성경"이 봉독되었을 시기까지에는, 자선이라는 단어 대신에, 애긍이라는 단어가 마태오 복음서 5,7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1910년 초판 사사성경

(발췌 시작)

애긍_in_마태오5_7_in_1910_사사성경_제13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질문 1: 바로 위에 발췌된 "사사성경" 마태오 복음서 5,7애서 사용되고 있는 "애긍"은 어떤 한자 단어의 우리말 음값인지요?  "愛矜"인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결코 아닙니다. "哀矜"입니다. 

 

1-2. 그러나, 바로 위에 있는 질문 1에 대하여, 요즈음의 한국인들 중에서 그렇다고 답변할 분도 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다음에 발췌된 바 때문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1.htm

(발췌 시작)

2-2-1. 다음에 발췌된 바는, 1880년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판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인데, 우리말 "애긍"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가 ""이라고 기술하는, 그야말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심각한 오류의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애긍(한자단어_오류)_in_1880_한불자전_제16쪽.jpg

(이상, 발췌 끝)

 

2-2-2. 다음의 파란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이들 용어들을 구글에서 검색한 결과들을 접할 수 있는데, 특히, 한문 문화권 내의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 이들 세 나라들 중에서, 이들 한자 표현들이 어느 정도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神矜" "形哀矜"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神矜" "形哀矜" (오류)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訓蒙" "訓愚" "慰患" "慰愁" "寬恕" "忍侮" "愛仇" (오류)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바로 위의 2020년 11월 21일자 검색 결과들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바로 위의 2020년 11월 21일자 검색 결과들로부터, (i) "神愛矜" "形哀矜" 이들 두 한자 표현들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오로지 사용되고 있고, 그리고 (ii) "訓蒙" "訓愚" "慰患" "慰愁" "寬恕" "忍侮" "愛仇" 이들 일곱 개의 한자 표현들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오로지 사용되고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2-2:

[내용 추가 일자: 2023-11-2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에서 ‘애긍’(哀矜)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최초 출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1.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적 자선들 및 육체적 자선들 14개 항들 즉 형신애긍지행14단의 성경 출처들' 제목의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53.htm <----- 또한 꼭 필독 권고

[이상, 2023-11-23일자 내용 추가 끝]

 

(iii) 바로 위의 제2-2항에서 고찰한 바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판단에 따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한불자전(1880년)에 있는 납득할 수 없는 오류의 한자 표기 愛矜(애긍)]에서,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5.htm [주: 본글]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 (한불자전 오류) 바로 위에 발췌된 "한불자전" 중의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한 설명에서, 프랑스어 설명 "œuvres de miséricorde"은, 영어로 "the work of mercy", [즉, 한문으로, 글자 그대로(literally), "哀矜之行" 혹은 "哀矜行"] 즉, 요즈음의 우리말로 "자비의 일"에 대응하므로, 그나마 넘어 갈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바로 이 "한불자전"에서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응하는 한자 표기가, "矜"아니고, ""이라는 설명은 정말로 잘못된 것입니다.

 

질문 2: 그렇다면, 바로 위에 발췌된,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애긍"에 대한 설명에서, 대응하는 한자 표현 ""이 오류임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요?

 

1-3. 바로 위에 제시된 질문 2에 대하여, 이번 항에서처럼, 적어도 두 개의 답년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3-1. (질문 2에 대한 첫 번째 답변) 

"사사성경", 마태오 복음서 5,7에 등장하는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가 ""이 결코 아니고, "哀矜(애긍)"인 것은,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처럼,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1.htm

(발췌 시작)

2-6.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년-1642년에 초간된, 전례 성경인, "천주강생성경직해"에서 발췌한 바인데, 마태오 복음서 제5장 앞부분에 있는 "진복팔단"에서 哀矜(애긍) 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성경직해", 권13_6_제성첨례/제성인지첨례_318-338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십시오) [11월초1일, 마태오 복음서 5,1-12ㄴ(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복음 말씀)] [주: 여기서 (i) 영어로 "kingdom of heaven (regnum cælorum)" 으로 직역 번역되는 표현이, "천국(天國)"으로 직역 번역되는 대신에, "천상국(天上國)"으로 잘못 번역되었고(번역 오류), 그리고 (ii) 영어로 "heaven (cælis)" 으로 직역 번역되는 표현이, "천(天)"으로 직역 번역되거나 혹은 "천당"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 번역이 되는 대신에, "천국 (즉, kingdom of heaven)" 으로 잘못 번역되었는데(번역 오류), 그러나 여기서의 이러한 번역들은, 예를 들어,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Douay-Rheims Version, 1611년판 "KJV(King James Version)", "RSV(Revised Standard Version)", "NAB(New American bible)", "공동번역성서" 그리고 "새 번역 성경" 등을 포함하는 지역 언어본 성경들의 마태오 복음서 5,1-12ㄴ 에서의 번역문들과 일치하지 않는, 명백한 번역 오류들임. 다른 한편으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이들 번역오류들은 "성경직해"의 저자인 엠마누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바로 여기(즉, "성경직해")에서 처음 발생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며, 그러나 이들 번역 오류들은,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에 의한 중국어본 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 5,1-12ㄴ에서 바로잡아짐. 그러나,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안토니오 드 푸아로 신부님(1735-1813년)에 의한 중국어본 "고신성경", 신약, 마태오 복음서 5,1-12ㄴ을 읽을 때에는, 이미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천상국(天上國)"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이 "천국(天國)" 과 등가인 차용(借用) 번역 표현임을 꼭 상기하도록 하라.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성경광익"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소속의 모이리악 드 메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출판된 한문본 "성경광익"이 연중 주일과 축일의 복음성서 해설이며 성서의 본문은 한문본 "성경직해"에서 취하였다고 안내되어 있는데, 그러나 이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한문본 "성경광익"에 제시된 이 제성첨례일의 성경 본문은, 한문본 "성경직해" 권13_1_성인첨례(즉, 모든 성인 대축일)에 제시된 복음 말씀인 마태오 복음서 5,1-12ㄴ의 중국어 번역문이 아니고, 한문본 "성경직해"의 본문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은, 모든 성인 대축일의 제1독서인 요한 묵시록 7,2-4.9-14의 중국어 번역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문본 "성경광익" 어디에서도, "산상설교"로 불리는 그리스도교 윤리 생활의 핵심 내용들이 제시되고 있는 마태오 복음서 제5장-제7장의 가르침의 시작 부분인, "진복팔단"에 대한 "묵상"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주된 이유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엠마누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직해", 제성첨례일의 복음 말씀인 마태오 복음서 5,1-12ㄴ의 중국어 번역문이, 위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은, 명백한 번역 오류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명백한 번역 오류의 문제는, 여기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화면 제공의 우리말본 "성경직해"(1938년 출판) 자료에서, 원문 보기 > vol : 권 2, 본문 제486쪽에서부터 시작하는, 우리말본 "성경직해", "제성첨례성경", 성사마두제오편(즉, 마태오 복음서 5,1-12ㄴ)에서, 영어로 "kingdom of heaven" 으로 직역 번역되는 용어가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한문본 "성경직해"에서 "천상국(天上國)"으로 번역되었던 명백한 번역 오류가, "천국(天國)"으로 올바르게 바로잡아졌고(마태오 복음서 5,3과 5,10애서) 그리고 영어로 "heaven"으로 직역 번역되는 용어가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한문본 "성경직해"에서 "천국(天國)"으로 번역되었던 명백한 번역 오류가, "하늘[즉, 천(天)]"로 올바르게 바로잡아졌음(마태오 복음서 5,12에서)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번역 오류의 지적과 관련하여, 이제 남은 과제들 중의 몇 개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i) 이 우리말본 "성경직해"의 본문에서, 과거의 어느 시점에 그리고 누구에 의하여 이렇게 올바르게 바로잡아졌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일. (ii)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중국 가톨릭의 용어 사전인 "天主敎英漢袖珍辭典"에 실린 "heaven" 에 대한 설명에 "천국" 또한 번역 용어로서 실려 있는 번역 오류를 바로잡는 일, 이 때에,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중국 그리스도교(천주교와 개신교 포함) 용어사전 "基督宗敎外語漢語神學詞典"에 실린 "heaven"[즉, 하늘]에 대한 설명에서는 "천국" 이 등가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 제시되지 않음을 또한 참고하라. (iii)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그동안의 글들 중에서, 바로 위의 제(ii)항의 용어 사전 등에 의존하여, "천당(즉, 하늘, heaven)"과 "천국"을 동일시하였던 오류(error)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ohn_Paul_II4Kingdom_of_heaven.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2017년 1월 4일) 주: 마태오 복음서 5,9; 5,10 각각의 잠들의 각주(제23쪽 및 제33쪽)에서 "천주의자(義子)" = "하느님의 입양 자식"이라는 번역 용어가 각 한 번씩 사용되고 있음. 그러나 이 각주들은 세례/영세와 관련지어 말하지 않음.] [(2017년 1월 6일) 주: 제6쪽 본문과 제21쪽 잠에서 "화목", "천주지자"라는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제21쪽과 제25쪽 각주들에서  "천주의자(義子)" = "하느님의 입양 자식"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제25쪽 각주에서 "복지"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말하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애긍矜_in_마태오5_7_in_1642_성경직해_권13_6_제성첨례_제5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 그리고 다음의 파란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에 접속하면, "천주강생성경직해" 본문에서 哀矜(애긍)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된 부분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권9_43_성모왕헌야소or성모헌야소우주당첨례_154-160 [주: 제일 마지막 페이지를 보라]

권14_7_사념성교선인첨례_365-368 [주: 세 번째 페이지를 보라]

(이상, 게시자 주 2-6 끝)

 

2-7.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최초의 한문본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발췌한 바인데, 마태오 복음서 제5장 앞부분에 있는 "진복팔단"에서 哀矜(애긍) 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권3_1_산중성훈_50-57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십시오) [마태오복음서 제5장-제7장] [마태오 복음서 5,1-12(가해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13-16(가해 연중 제5주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17-19(매년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20-26(매년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27-32(매년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33-37(매년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17-37(가해 연중 제6 주일 복음 말씀; 5,38-42(매년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43-48(매년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5,38-48(가해 연중 제7주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6,1-6.16-18(매년 재의 수요일; 매년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6,7-15(매년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6,19-23(매년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6,24-34(가해 연중 제8주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7,1-29; 7,1-5(매년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7,6.12-14(매년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7,7-12(매년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7,15-20(매년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마태오 복음서 7,21.24-27(매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마태오 복음서 7,21-29(가해 연중 제9주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17.20-26(다해 연중 제6주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20-26(매년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27-38(다해 연중 제7주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36-38(매년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39-42(매년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39-45(다해 연중 제8주일 복음 말씀); 루카 복음서 6,43-49(매년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주: 여기서 "진복팔단"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사용됨] [주: 마태오 복음서 5,3과 5,10에서 "천상국(天上國)" 으로 차용(借用) 번역된 표현은, "천당(heaven)" 에 등가인 차용(借用) 번역 표현이 아니고, "천국(天國)[즉,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 나라(kingdom of God, 신국, 神國)]" 에 등가인 차용(借用) 번역 표현이다. 이 지적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은, 위에 있는, 권2_13_훈책3도_43-43 (루카 복음서 9,57-62) 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주에 있으니 이 주를 꼭 읽도록 하라] [(2017년 1월 6일) 주: "진복팔단", "천주지자" 등의 번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평화" 대신에 "화목"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2017년 3월 21일) 주: 마태오 복음서 6,9-13에 있는 한문본 "주님의 기도"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저서로서 1615년에 초간된 "교요해략"에 수록된 "천주경"을 거의 그대로 발췌한 것임: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교요해략_권지상_1_천주경_8-13.htm ] [(2017년 4월 14일) 주: 비과(肥果)(라틴어 ficus; 이탈리아어 fico) 이탈리아어 fico) = 무화과, fig (마태오 복음서 7,16)] [(2018년 5월 22) 주: 제2쪽에서 "교법(教法)"[주: 요즈음 용어로 (모세) 율법(the Law)을 말함]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상주"(heavenly Lord, 높은 하늘에 계신 주님, 즉, 성부 하느님)[주: 소 괄호 ( ) 안에 추가한 날짜: 2018년 8월 8일]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산중성훈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3_1_산중성훈_제1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3-1: 바로 위에 제시된 질문 2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은,

 

만약에, 바로 위에 제시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입수하여 학습할 수 잇었더라면,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가 哀矜(애긍)임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답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가정법 과거 완료)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1-3-1 끝)

 

1-3-2. (질문 2에 대한 두 번째 답변) 

"사사성경", 마태오 복음서 5,7에 등장하는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가 ""이 결코 아니고, "哀矜(애긍)"인 것은,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처럼,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1.htm 

(발췌 시작)

2-3.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샤바낙 신부님(1670-1717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18년에 초간된 "진도자증"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70-1717_랑그로이_드_샤바낙/1718_진도자증.htm

출처 2: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354608#p59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권4_1_1_경교(經教)요문_45-47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20년 9월 6일) 여기서 "景教"(경교)가 아니라 "經教"(경교)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經教"(경교)란, 불교 용어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성경의 가르침"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의 의미는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40년쯤에 초간된 "천주강생인의", 상권에서 사용된 동일한 의미의 번역 용어들, 경교(經敎)(scriptual teaching)/서교(書教)/고교(古教)의 의미, 즉, "구약 성경 중의 옛 가르침들인 모세 율법의 가르침"과 결코 동일하지 않음에 또한 주목하라.]
권4_1_1_1_향천주3덕
권4_1_1_2_천주10계 [(2017년 7월 12일) 주: 여기에 나열된 "천주십계"는, 미카엘 루지에리 신부님(1543-1607년)"천주성교실록"에 수록된 "조전천주십계"와 동일하지 않으며 그리고 특히 바로 여기에 정하상 성인이 작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재상서"에 수록된, "천주십계"가 "만물 위에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으로 "총귀"된다는 기술이 주어져 있음. 그리고 동일한 기술이 또한 예수회 소속의 제이오 몬테이로 신부님(1602-1648년)의 저서로서 1655년에 초간된 "천학략의", 제27쪽 오른쪽 면에 주어져 있음]
권4_1_1_3_4추덕
권4_1_1_4_8진복
권4_1_1-5_7죄종
권4_1_1-6_극죄7덕
권4_1_1-7_애긍지행
권4_1_1_8_성사7적
권4_1_1_9_만민4종
권4_1_2_진복팔단해략_부_47-49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권4_1_2_1_논진복
권4_1_2_2_팔복분류
권4_1_2_3_결어 

 

애긍지행_in_1718_진도자증_권4_1_1_경교요문_제11a쪽.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3: (1) 이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는 178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 조선에 전래되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포함하여, 당시의 다수의 유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책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2) 이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에서는 "애긍지행"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또한"형애긍7단", "신애긍7단"이라는 두 개의 주석들 아래에 각각, 요즈음 소위 말하는, "물적 자선" 7개"영적 자선" 7개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3) 특히,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들 중에서,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아는 한 유일하게,

 

(i) 그 위의 본문에서 우선적으로 명확하게 기술된 [마태오 복음서 제5장의 첫 부분에 있는] "진복팔단"에서 사용된 차용 번역 용어인 "哀矜"(애긍)이라는 속적 개념(generic concept)에 포함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여야 하는 구체적인 윤리덕(moral virtues)들로서, 이들 "형애긍7단", "신애긍7단"을 이어지는 본문 중에서 일목요연하게 나열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ii) 한 개의 부록인 "真福八端解略"(진복팔단해략) 소제목 아래에서, 바로 이 "진복팔단"이 예수님의 수훈(垂訓, 즉, 후세에 남기는 가르침)임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제시된 14애긍들은, 당시의 조선의 일부 유학자들 및 천주교 신자들에게 상당히 유의미하게 다가왔을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3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3-2: 바로 위에 제시된 질문 2에 대한 두 번째 답변은,

 

(i) 만약에, 요즈음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들처럼, 마태오 복음서 제5장 앞부분에 있는 여덟 개의 참행복들을 두고서 "진복팔단"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또한,

 

(ii) 만약에,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진도자증"에 제시된 "진복팔단"에서 열덟 개의 항들의 나열에서 등장하는 "애긍"에 대하여, 바로 이 나열 직후에 곧바로 이어서 제시된 "형애긍7단", "신애긍7단" 설명이 제시되어 있음을, 한문본 "진도자증"의 학습을 통하여 알고 있는 분들이었더라면,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응하는 한자 단어가 哀矜(애긍)임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답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가정법 과거 완료) 생각입니다.

 

-----

(#) 게시자 주: 이 사실은, 예를 들어, 다음에 파란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구글 검색을 통하여,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복팔단"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십시오

-----

(이상, 게시자 주 1-3-2 끝) 

 

2. 유관 사료 분석 II

 

질문 3: 그렇다면, 위의 제1-2항에 발췌된,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 있는 이 오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2-1. (질문 3에 대한 답변)

2-2-1. 당시에 이 사전의 편잔 작업에 관련된 모든 분들[주: 여기에는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로서 우리나라 조선에 파견된 분들과 이 사전의 편찬 작엄에 투입된 상당히 유식하였을 평신도들 모두를 포함함]이, 진복팔단에서 "애긍"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은 잘 알고 있었는데, 바로 이 사실은, 다음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81_텬쥬셩교공과/1881_텬쥬셩교공과_권4_일본_요코하마_출판.htm  

(발췌 시작)

애긍_in_진복팔단_in_1881_천주성교공과_권4_제32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대단히 애석하게도, 당시에 이 사전의 편잔 작업에 관련된 모든 분들이, 진복팔단에서 사용된 우리말 단어 "애긍"에 대응하는 올바른 한자 단어가 "哀矜"임을 까마득히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작성 중입니다.

 

장 바쎄 신부님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 5,7에서 哀矜(애긍)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러나, 로버트 모리슨부터 이를 따르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중국 개신교회 측의 한문본 신약 성경들의 마태오 복음서 5,7에서는, "애긍" 대신에, "긍휼", "자비"(귀츨라프) 등의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음: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0&chap=5&sec=7 

 

그리하여,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개신교회 측의 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 5,7에서도 또한 "애긍" 대신에, "긍휼", "자비" 등의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version=GAE&book=mat&chap=5&sec=7&cVersion=HAN^SAE^&fontSize=15px&fontWeight=normal#focus

 

 

작성 중입니다. 

 

"사향가" "배티성지" "류한영" <----- 여기를 클릭하라 

 

다음에 발췌된 바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매우 심각한 오류의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m.blog.daum.net/jjc4012/15645225?np_nil_b=-2 

출처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liams&logNo=140006732778 

출처 3: http://thomas.or.kr/?act=board&bbs_code=rk-0078_press&page=14&bbs_mode=view&bbs_seq=179  

(배티성지 주임신부였던, 2002년 3월 8일부터 2020년 5월 10일까지 한국순교자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총무였던, 류한영 베드로 신부사향가 해설에서 발췌 시작)

[원출처: 회보 <배티 성지> 제12호 : 2000년 12월 15일 발행]

신애긍은 잘못한 이를 훈계함, 몽매한 이를 가르침, 환난 당하는 이를 위로함, 근심하는 이를 돌봄, 남의 결점에 대해 관대함, 모욕에 초연함, 원수를 사랑함이다.

(이상, 발췌 끝)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성경직해_권7_46_성신강림후제12주일_53-65.ht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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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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