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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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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thghk] 쪽지 캡슐

1999-03-03 ㅣ No.34

사순 2주간이 벌써 반이 넘게 지나 버렸습니다.  

모든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주님의 부활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며 짧은 생각 한 마디를 적어 봅니다.

사순시기엔 유난히 십자가가 돋보입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홀로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구원의 상징이자 약속이기에 마음 하나가득 기쁨을 갖는 것도 죄가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한가지 의문을 갖어봅니다.

왜 예수님은 아직도 십자가에서 외로운 죽음을 재현하고 계셔야 하는지?

이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필수품으로 그리고 여기저기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의 장식품으로 없으면 왠지 허전해 지는 안고 없는 찐빵처럼 중요성을 갖는 십자가.  저는 왠지 그 십자가의 예수님이 참으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들에겐 이미 하나의 멋진 장식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신앙인들에게도 그 삶을 따르는 표지가 아니라 그저 한 종교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가는 십자가.

오랜만에 십자가를 닦아보니 먼지가 뽀얗게 끼여 있었습니다. 책상위에 놓인 것이 그리 되었으니 벽에 높직이 걸린 것이야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합니다.  2000년 전에...  그것도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버림 받으며, 당신이 구원하려 했던 이들에게 매를 맞으며, 그리도 사랑하던 제자들도 모두 도망쳐 버리고 홀로 죄를 뒤집어 쓰고 고통스럽게 죽으셨다 합니다.

사순절은 이 고통을 기념하는 시기라 하지요. 그런데 저는 아직 사순시기의 아픔이 생생히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2000년 전 어느 날이며, 예수님을 죽인 것은 2000년전 유대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저는 예수님을 죽인 2000년전 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뵙지 못한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정말 크구나 하는 막연한 감상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이 2000년 전에만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으며, 예수님을 죽였다는 살인 혐의가 2000년전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짓고 그로인하여 인간은 하느님과 멀어져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죄가 무엇인간요?

저는 그것을 교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핑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아담이 이브를 고발하고 이브가 뱀을 고발하고 결국 모든 사건의 원인을 하느님께, 간교한 뱀을 창조하시고,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브를 창조하시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 아담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미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요?  하느님 탓 인가요?

모든 것을 허락받고도 단 하나를 포기못하는 인간의 욕심은?

하느님과 같이 영리해 진다는 한마디에 넘어간 인간의 교만은?

함께 죄를 범하고도 솔찍히 시인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미루는 이기심은?

이런 것은 다 누구에게서 오는 것입니까?

이 원죄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십니다. 사람들이 핑계를 대고 이기심을 드러낼 때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처벌할 때마다 원죄와 똑같은 교만의 죄들이 반복됩니다.

이 죄들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십니다.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고통에 처한 인간이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슬픔에 빠진 인간이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혼자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산에 오르셨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셨고, 왕관이 아닌 가시관을 쓰셔야 했습니다.

태초에 지은 하나의 죄 때문에 인간이 죽게 되었고, 세계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멀지 않은 2000년 전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때문에, 죄라면 죄많은 인간들을 사랑한 죄 그것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게된 인간들....

이 인간들에 '나'라는 존재가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너'나 혹은'그' 혹은 '너희들'이나 '그들' 때문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나'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죄를 짓고 살아야 하는 '나' 수없이 반복되는 나의 죄에 예수님은 저렇게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내가 구원될 날까찌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신 날은 2000년 전이 아닌 바로 오늘이며, 예수님을 죽인 자는 2000전 그들이 아닌 바로 지금의 '나' 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예수님은 사랑하고 계십니다. 제가 예수님께 드린 것은 죄로 만든 십자가 인데, 머리의 가시관이고, 손발의 못인데, 예수님은 제게 당신이 지신 십자가에는 상대도 안될 정도의 가벼운 마음가짐 만으로도 부활의 영광을 약속해 주십니다.

시간을 더할 수록 깊어가는 예수님의 고통을 이야기 하는 사순시기 십자가의 아픔이 이제는 예수님 것이 아닌 나의 것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해 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내 죄를 다 짊어지신 예수님의 곁이라도 아니 예수님의 꽁무니라도 쫓아 감으로써 예수님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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