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삶과 죽음 - 6월 27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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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준 [praxis] 쪽지 캡슐

2009-06-28 ㅣ No.9735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소식

2009년 6월 27일 | 기도회 13일째 | 참사 159일째

 

6월 27일 토요일 생명평화미사는 200여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참가한 가운데 봉헌되었습니다. 미사와 함께 희망새, 극단 자갈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추모 공연도 함께 열렸습니다.

 

 

공동집전 신부님

■ 서울교구
- 이강서, 박정우-강론

■ 의정부교구
- 맹제영

■ 수도회
- 김성(복자수도회), 유이규(작은형제회), 최홍대-주례 남해윤 권여면 김연수(예수회), 박태영 서현승 이교정(예수고난회) , 황인수 한기철 김태훈(성바오로수도회)

■ 중국 길림교구
-이광필


기도를 드리는 신부님
- 강정근, 최재철, 서북원, 김형중, 나승구, 맹제영, 김진화, 문규현, 송년홍, 김상효, 김승한, 박광원, 임용환, 김훈, 김형성 신부님

 

강론-박정우 신부(서울교구)

 

억울한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는 이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마침 오늘 말씀의 전례는 우리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먼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 형제나 참으로 가까운 친구, 우리를 사랑해주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슬픔과 고통을 체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죄한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서도 분노와 슬픔을 맛보게 되고, 때로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이 가져다주는 악의 현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오늘 독서의 지혜서는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세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셨을 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님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한 처음,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늘과 땅, 별과 꽃과 나무,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생명자체 요, 생명의 충만으로서 인간이 생명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인간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현실은 죽음을 체험하고 죽음 앞에서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 이율배반적인 생명과 죽음의 신비, 생명을 주셨지만 또한 인간의 죽음을 허락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성경은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악마의 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자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유한한 자신의 욕망을 탐하는 인간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스스로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동시에 삶의 의미를 다시 물으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다시 찾도록 이끌어 줍니다. 인간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죽음의 경험을 통해 이 세상의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새롭고 영원한 생명에로 향하도록 구원의 섭리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정화되고, 자신의 유한함과 세상 욕심의 헛됨을 자각하면서,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은 재물과 권력과 쾌락의 허무함을 폭로하고 인간의 위선과 교만을 부서뜨립니다. 이렇게 죽음은 삶의 현실에서 인간이 연연해하는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죽음은 이 세상의 헛된 가치를 상대화시키고 진리이신 하느님을 희망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마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명예, 권력을 찾고, 자신이 소유한 것들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죽음 후에도 이런 것들을 하느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참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음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죽음을 너머서는 진정한 사랑, 진리, 정의와 같은 가치들입니다. 순수한 사랑으로 자신을 남에게 내어 놓는 사람은 죽음의 강한 힘 앞에서도 빼앗기지 않고 하느님 앞에 영원히 남는 것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지혜서에서도 정의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의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그 모든 불의로 인한 죽음이 무력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것을 증명해 줍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안고 이곳에서 희생된 분들의 죽음과 그 죽음의 의미를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고 보다 정의롭고 진실된 사회로 변화하는데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딸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혈병이 나은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은 바로 생명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주님은 이 용산에서 희생된 분들, 무자비한 이 정권에서 희생된 이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려주실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멀어 생명이 깃든 자연을 파괴되고 오염시키려는 악의 세력이 죽음을 가져오려고 하더라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해주실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의 한 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고 /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 이승의 순례객인 우리가 / 이기와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소서 /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 당신께 빌려 받은 것임을 / 항시 기억하게 하소서 / 벗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 당신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 먼저 주어진 처지에서 인간과 사물을 / 깊이 사랑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강론을 하시는 박정우 신부님.

 

 

 

 

  

희망새.

 

극단 자갈치.

 

노래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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