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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계시]파티마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축일♬가톨릭성가 27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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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4-05-13 ㅣ No.1760

 

축일:5월13일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축일

Beata Vergine Maria di Fatima

Blessed Virgin Mary Our Lady of Fatima

 

 

파티마의 성모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1차 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비록 가난했으나 순진했고 티없이 맑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이었고, 그녀의 나이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꼬와 히야친타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 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1917년 5월 1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 첫 발현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월 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는 그 부인을 만났다. 9월 13일,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월 13일, 그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린이들은 첫 발현날인 5월 13일처럼 일찍이 그 곳을 향하였다. 약 3만 명의 대군중들이 어린이주변에 몰려 있다가 신비로운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어린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1930년 10월 13일이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 검토한 뒤에 고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 얼마뒤에 두 어린이는 선종하였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못했던 프란치스꼬는 1919년 4월 4일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따는 1920년 2월 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

 

 

1. 파티마의 메시지

파티마의 공적인 메시지는 루르드의 메시지와 거의 같다.

어린 아이들을 통하여 마리아는 죄인들을 위한 기도와 로사리오 기도 그리고 보속행위를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10월 13일의 말씀은 이렇다. "나는 생활을 개선하고, 죄로 인하여 우리 주님을 슬프게 하지말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을 권고하기 위하여 왔다.

나는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원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태도를 개선한다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비밀"도 일러 주셨는데, 루치아가 이중의 몇 가지를 전달하였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머지 않은 장래에 또 다른 전쟁이 있으리라는 예언과 함께,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에 관한 공경이 주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루치아가 받은 마지막 비밀은 요한 23세 교황님께 맡겼다.

 

루르드에서처럼, 파티마의 "발현"은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들게 하였다.

1917년 여름부터 시작된 순례는 놀라운 숫자에 달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포르투갈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도 많았다.

1931년 5월 13일, 발현에 대한 교회의 공식 인정이 있은 다름부터는 순례자들이 수백만에 이른 것이다.

교황님들도 파티마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비오 12세, 바오로 6세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순례하고 기도하였다.

교황님들의 이런 관심이 순례자의 수를 더욱 많게 하였고, 발현 장소에 성전을 짓게 된 계기가 있었다.

순례자들은 이 한적한 곳에서, 마리아께서 어린이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금 묵상하며 마리아 어머니의 말씀을 실행하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2. 파티마와 교황

 

비오 12세 : 세상을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심.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 25주년을 기하여 모여든 순례자들에게 라디오 - 메시지를 보냈다.

성모님께 감사와 충성을 드리고 기도하라고 권하신 뒤, 교황은 세상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에 봉헌하신 것이다.파티마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1946년 5월 13일, 비오 12세 교황은 파티마 성모상 대관을 위하여 라디오 -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교황은 "파티마의 장관"은 "티없이 깨끗하신 여왕이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인 자애로운 성심의 활동"이라고 하시고,

마리아의 끊임없는 보호 포르투갈에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또 교황은 마리아가 천상적이며 우주적인 여왕이심을 찬양하시며, 파티마 발현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바오로 6세 : 인간 가족을 성모님께 봉헌하심.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제 3 회기 폐막식에서, 바오로 6세는 마리아께서 만국 공의회와 교회를 축복해 주시며,

이 세상의 끝없는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도록 복되신 동정녀께 열렬히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이 천상 어머니께 전 인간 가족을 봉헌하셨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의 쇄신을 당부하셨다 :

1967년 5월 13일, 코바 다이리아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하여, 바오로 6세는 파티마로 가서 기도와 평화의 순례를 하셨다.

그때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공경과 본받음에 대한 권고를 전 교회에 보내셨는데, 이 권고의 제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여기서 교황은 어머니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다.

 

 

요한 바오로 2세 : 파티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

1982년 5월 12일,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순례하시고,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때 교황은 동정 마리아의 중재하심에 감사드리고, 세상의 만백성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새롭게 봉헌하셨다.

1982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첫 발현을 즈음하여 교황은 발현장소에서 미사를 거행하신 후, 75세의 가르멜 수녀이며, 발현을 증언했던

세 어린이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에게 성체를 영하여주셨다. 이때, 교황은 파티마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고 역설하였다.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  

1차 세계대전으로 온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을 때인 1917년,

포르투칼에서 루치아를 비롯한 3명의 어린이들에게 성모께서 6차례 발현하셨다.

 

찬란한 빛에 둘러싸여 나타난 성모 마리아, 죄인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의 기도를 많이 바쳐야 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남겼으며, 전쟁을 곧 끝내게 하겠다는 예언을 주셨다.(1년 뒤인 1918년에 예언대로 종전(終戰)이 됐다).

 

그런데 이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는 ’비밀의 메시지’로 유명하다.

제1의 비밀은 어린이들에게 지옥의 현장을 보여준 것으로 이는 곧 공표(公表)되엇으나,

제2의 비밀은 25년 뒤인 1942년 발표됐다. 내용은 "인류의 죄악이 계속된다면, 더 가혹한 전쟁(2차대전을 의미함)이 터질 것"이라는 예언과

"내 요청(신자들이 기도와 보속을 해야함)이 실천되지 않으면, 러시아는 회개하지 않을 것이며, 교회를 박해하고,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해 주신 것이다.

한편, 제3의 비밀은 성모의 요청으로 후대의 교황이 재량으로 공표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내용이 엄청나서인지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은, 이외에 ’태양의 기적’으로도 유명하다.

발현시 7만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10분단 태양이 기기묘묘하게 변하는 등, 광선의 잔치가 연출되었다.

1930년 10월 13일 교회는 공식적으로 발현 사실과 기적을 인정하였다.

 

파티마 성모상의 특징

양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고 있으며, 합장한 손에 묵주가 걸려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제 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칼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순박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Lucia)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Jacinta)와 9세의 프란치스코(Frnacisco)에게 발현하였습니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파티마 성모 발현 당시, 세계는 서방의 물질주의와 동방의 무신론적 공산주의 대두로 인류는 큰 위험을 직면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는 전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습니다.  

 

죄인들의 회개와 특히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보속할 것을 당부한 파티마 성모발현은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지혜라 아니할 수 없고, 1991년 8월 소련공산당의 붕괴는 이 발현의 의미를 더해준다고 하겠다.

 

 

세 어린이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루치아는 지금도 생존해 있는 데

가르멜회 수녀님으로 지금도 세상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며 살고 있다.

 

2000년 5월 세 목동 중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가 교회에 의해 시복되었다.

 

*파티마의 복자 프란치스코 축일:4월4일.

*파티마의 복녀 히야친따 축일:2월20일.게시판1626번.

 

 

 

 

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私的 )계시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사적(私的) 계시는 공적(公的) 계시의 진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전해지는 메시지가 바로 사적 계시에 해당합니다.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

CONSTITUTIO DOGMATICA DE DIVINA REVELATIONE

DEI VERBUM

 

 

그리스도께서 계시를 완성하시다

4.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신 후,

“마지막 이 시대에 와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브 1,1-2).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말씀이신 당신 아드님을 파견하셨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간 가운데 사시며 인간에게 하느님의 내면을 알려 주심으로(요한 1,1-18 참조) 모든 인간을 비추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혈육을 취하신 말씀이시며 “인간들에게 파견되신 인간”3)이시고, 이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며”(요한 3,34),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임무를 완수하신 분이시다(요한 5,36; 17,4 참조).

그래서 그분을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한 14,9 참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 현존과 출현으로 말씀과 업적, 표징과 기적으로

특별히 당신의 돌아가심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심, 마침내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계시를 완수하시고 하느님의 증거로 확고하게 하셨으니,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어 우리를 죄와 죽음의 암흑에서 구원하시며 영원한 삶으로 부활시키시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1디모 6,14; 디도 2,13 참조)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계시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다

5.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복종’을(로마 16,26; 로마 1,5; 2고린 10,5-6 참조) 드러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4)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그분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로써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 회개시키시고 마음의 눈을 여시며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

 같은 성령께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항구히 신앙을 완성시켜 주신다.

 

 

 

계시  啓示

영어 divine revelation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과 인류를 위한 당신의 구원계획을 드러내시는 것.

가톨릭 신학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된 진리의 몸체(’신적 계시’)와 특히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것을 계시하신 과정을 구분하기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를 완성하시고, 계시가 선포하는 것을 하느님의 증거로 확고하게 하셨다."(「계시헌장」 4항)

이 하느님의 계시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발견된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특별히 교도권을 통하여 계시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그것을 새로운 세대에 전수하는 일이다.

(교리서 74-79)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

저자: 요제프 라칭거(신앙교리성 장관.추기경)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2000년 6월 26일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에 관한 ’파티마 메시지’(The Message of Fatima)"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작성한

’신학적 해설’ 부분에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의 신학적 위치 그리고 사적 계시의 인간학적 구조에 관한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파티마 메시지’에 실린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에 관한 내용을 널리 소개하도록 하였습니다.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 - 신학적 위치

교회의 가르침은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를 구분한다. 이 두 가지는 차원과 본질이 다른 것이다.

’공적 계시’라는 말은 인류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 행위를 일컬으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모두 그 문학적인 표현이 발견된다.

’계시’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점차적으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알리시며,

마침내는 직접 사람이 되시어 강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을 당신께 이끄시고 결합시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지적 통교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생명수여 과정의 문제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하느님 신비에 대한 사고와 이해에 관계되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이는 인간의 이성은 물론 인간 전체를 포함하는 과정이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므로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하는 역사 또한 하나이다.

계시는 언제나 유효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곧 당신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신약성서에 선포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비가 완성됨으로써 끝이 났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계시의 궁극성과 완전성을 설명하려는 뜻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글을 인용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주실 다른 말씀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 아드님 전체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예언자들에게는 부분적으로 말씀하셨던 것들을 당신 아드님 안에서는 전체적으로 말씀하셨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동시에 그리고 한 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 다시 그분의 말씀을 문제시하려고 하거나 또는 어떤 환시나 계시를 바란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눈을 돌리지 않고

그분과는 다른 것이나 어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가 그리스도와 신약성서에 기록된 그분께 대한 증언으로 완성되었으므로,

교회는 교회 역사의 이 특별한 사건과 그것을 보장하고 해석하는 성서 말씀에 의지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교회가 이제 과거만을 바라보며 단조로운 되풀이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하여도 그것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시대를 살아가며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66항).

사건의 유일성과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 교회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하신 고별 말씀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주님께서는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를 이끄시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6, 12-14)하고 말씀하셨다.

한편 성령께서는, 이전에는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밝혀 주시는 안내자로 활동하신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무한한 넓이와 깊이이다.

다른 한편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에서 그 무한한 깊이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 무한한 깊이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 대 그레고리오의 심오한 말을 인용한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읽는 사람은 더불어 성장한다."(94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시고 이로써 말씀이 성장하는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을 지적한다.

이는 곧 신자들의 명상과 공부로써, 영적인 것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인식을 통하여 쌓이는 경험으로써,

"주교직 계승을 통하여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이들의" 설교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로소 ’사적 계시’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사적 계시란, 신약성서의 완성 이후에 있었던 모든 환시와 계시를 일컫는다.

파티마의 메시지도 이렇나 사적 계시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른바 ’사적’ 계시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교회의 권위가 인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의 한 시대에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불과한 것이다."(67항). 이로써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하여진다.

 

 

1. 사적 계시의 권위는 결정적인 공적 계시의 권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다.

공적 계시는 신앙을 요구하며, 사실 하느님께서는 공적 계시 안에서 인간의 언어와 활기찬 교회 공동체의 중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신앙은 다른 어떤 인간적인 믿음이나 신뢰나 소신과는 다르다.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확신은 내가 진리 자체와 접하고 있음을 보장해 준다.

이것은 인간적인 이해 방식을 통한 입증을 초월하는 확신을 주며, 나는 이러한 확신 위에 생을 설계하고 죽을 때에도 나 자신을 맡기게 된다.

 

 

2. 사적 계시는 이러한 신앙을 돕는 것이며, 결정적인 공적 계시로 나를 이끌어 줄 때 그 신빙성이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나중에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된 프로스페로 람베르티니 추기경은 뒤에 시복식과 시성식의 규범이 된 그의 고전적인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톨릭 신앙의 동의는 이렇게 승인된 사적 계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러한 계시는 신중함이 요청되는 인간적인 동의를 추구한다. 이는 이러한 계시를 가능하고 신빙성 있는 신심으로 우리 앞에 제시한다."

이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플랑드르의 신학자 E. 다니스는 사적 계시에 대한 교회의 승인이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간단히 진술한다.

그것은 신앙이나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메시지, 합법적 공표, 신자들이 그 계시를 신중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교회 권위의 허가이다.

그러한 메시지는 복음을 이해하고 특별한 시점에서 복음을 더 잘 실천하는 데 참된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적 계시를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사적 계시는 도움이 되라고 제공하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활용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적 계시의 진실성과 유용성의 기준은 그것이 그리스도를 지향하는가이다.

사적 계시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면, 또한 그리스도와 무관하거나 심지어 또 다른 더 나은 구원 계획으로,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제시된다면,

그것은 분명 성령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는 우리를 복음 속으로 더 깊이 인도하시는 분이지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 말은 사적 계시가 새로운 강조점을 제시하지도, 새로운 신심 형태를 탄생시키지도, 오랜 신심 형태를 심화하거나 전파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위한 변함 없는 구원의 길인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커 가야 한다.

사적 계시는 흔히 대중 신심에 길을 열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성체 성혈 대축일과 예수 성심 대축일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적 계시가 전례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어떤 관점에서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의 관례가 전례와 대중 신심의 관계 안에서 나타난다.

전례는 기준이며 교회 전체의 살아 있는 예법으로서, 복음에서 직접 자양분을 얻는다. 대중 신심은 하나의 표징이다.

곧 신앙이 일상 생활 속에 파고듦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박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징인 것이다.

대중 신심은 신앙 ’토착화’의 가장 우선적이고 근원적인 형태이다.

대중 신심은 언제나 전례에서 갈 길을 찾고 방향을 잡아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신앙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적 계시에 대하여 처음에는 불가피한 다소 부정적인 설명에서 시작하여 점차 긍정적인 경위로 넘어 왔다.

사적 계시를 성서와 관련하여 올바르게 분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적 계시는 어떠한 신학적 범주에 드는가?

보존된 성 바오로의 평지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 곧 신약성서 본문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가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1데살 5, 19-21)하고 말한다.

교회는 모든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받아 왔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조사하여야 하지만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성서적 의미의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설명하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하는 사람은 미래를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뿐이다.

진정한 예언자는 의지와 이성을 일깨우고자 호소하며, 하느님의 뜻을 현재에 대한 암시와 요구로서 선포한다.

이러한 경우에 미래에 대한 예언은 이차적인 중요성을 띤다. 중요한 것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자기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결정적인 계시의 실현이다.

예언의 말씀은 경고나 위로 또는 두 가지 모습을 다 띤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언의 은사와 ’시대의 징표’의 범주 사이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새롭게 조명한 어떠한 연계성이 있다.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는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은 왜 알지 못하느냐?"(루가 12, 56)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시대의 징표’ 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로 이해되어 한다. 결국 그것은 예수님 자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앙의 빛 안에서 시대의 징표를 해석하는 것은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승인한 사적 계시에서 - 파티마의 계시도 마찬가지이지만 - 핵심은 이것이다.

곧 그러한 사적 계시는 우리가 신앙 안에서 시대의 징표를 이해하고 거기에 올바르게 부응하도록 도와 준다는 것이다.

 

 

사적 계시의 인간학적 구조

이 성찰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사적 계시의 신학적 위치를 규명하고자 노력하였다.

파티마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전에, 먼저 사적 계시의 인간학적(심리학적) 특징을 간단하게마나 설명은 할 필요가 있다.

이 영역에서 신학적 인간학은 자각 또는 ’환시’ 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곧 의식이 있는 환시로서 신체적인 외적 지각, 내적 지각

그리고 영적 환시(visio sensibilisimaginativa - intellectualis)이다.

루르드, 파티마, 그 외 여러 곳의 환시에서 그것은 일반적이고 외적인 의식 지각의 문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보이는 모습과 형태는 예를 들어 나무와 집처럼 어떠한 공간 안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파티마의 첫째 ’비밀’에 묘사된) 지옥의 환시나 셋째 ’비밀’에 묘사된 환시와 관련하여 볼 때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다른 환시들에서도 매우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특히 같이 있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본 것이 아니고 ’환시를 본 사람들’ 만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더욱 고차원적인 신비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영상이 없는 마음속의 ’환시’와 관련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므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중간 범주, 곧 내적인 지각이다. 환시를 보는 사람에게는 이 지각도 물론 감각의 외적인 현현과 맞먹는 현존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내적 환시는 주관적인 상상의 표현에 불과한 환상과는 다르다.

내적 환시는 영혼이, 감각을 초월하는 것,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내적 감각’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내적 환시는 영혼에 와 닿는 실제적인 ’대상’과 관계가 있다. 물론 이 ’대상’이 우리의 평소 감각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내적인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적 깨어 있음은 외적인 실재와 영혼을 채우고 있는 오만가지 생각과 표상(image)들의 강한 압력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인간은 순전히 외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에 이끌리며 실재의 더 깊은 차원과 접하고, 그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이러한 발현의 주된 수신자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어린이들의 영혼은 아직 혼란을 겪지 않았으며, 그들의 내적 지각 능력은 아직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호산나!"하고 외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비난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젖먹이들 그 입에서마저 어엿한 찬송을 마련하셨나이다."

(3절)라는 시편 8의 말씀으로써 대응하셨다(마태 21. 16참조)

 

’내적 환시’는 환상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참되고 유효한 확인 수단이다. 그러나 내적 환시 또한 한계가 있다.

외적 환시에서도 주관적인 요소는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해석 작용을 하는 감각이라는 여과기를 통하여 보게 된다.

이것은 내적 환시의 경우에 더욱 분명하다. 특히 그 자체가 우리의 지평을 초월하는 실재인 경우에 그러하다. 환시를 보는 주체는 더욱 강력히 몰입하게 된다.

그는 자기 능력의 한도 안에서, 그에게 가능한 표상과 인식의 형태로 본다. 내적 환시의 경우에 해석 과정은 외적 환시에 비하여 훨씬 더 광범위하다.

발현하는 것의 형상을 만드는 데 본질적으로 그 주체가 가담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능력과 가능성의 한도 안에서만 그 표상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시는 다른 세계에 대한 단순한 ’사진’이 아니며, 지각하는 주체의 잠재 능력과 한계에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성인들의 모든 위대한 환시에서도 입증되며, 물론 파티마 어린이들의 환시에 대해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묘사하는 표상은 결코 단순한 환상의 표현이 아니라, 더욱 높고 내적인 기원을 실제적으로 지각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러한 환시를, 마치 다른 셰계에 드리워진 베일이 일순간 벗겨져서, 우리가 어느 날 하느님과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때 보게 되기를 희망하는

그 하늘나라가 순수한 실체로 나타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표상들은, 말하자면, 높은 곳에서 오는 자극과 그러한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주체,

곧 환시를 본 어린이들의 능력이 종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환시를 묘사하는 언어는 상징적이다.

이에 대하여 소다노 추기경은 "(환시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의 세부 사항을 사진처럼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분명하게 연속되고 지속되는 시간을 통하여 펼져치는 사건들을 한 가지 배경을 두고 종합하고 집약한다."하고 말하였다.

한 가지 표상 안에 시간과 장소를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 환시의 모든 요소가 틀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환시이며, 세부 사항은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진 표상을 바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표상의 중심적인 요소는 그것이 그리스도교 ’예언’의 초점인 것과 일치하는 곳에서 드러난다.

그 핵심은 환시가 하느님의 뜻에 대한 권고와 길잡이가 되는 곳에서 발견된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가톨릭성가 270번 로사리오의 기도

 

 

 

 

 

 

 

 

 

 

 

 

 

 

 

 

 

 

 

 

 

 

 

 

 

 

 

 

 

 

 

 

 

 

 

 

Beata Vergine Maria di Fatima

 

13 maggio - Memoria Facoltativa

 

 

 

Oggi si celebrano le apparizioni della Vergine Maria a Fatima, in Portogallo nel 1917. A tre pastorelli, Lucia di Gesu, Francesco e Giacinta, apparve per sei volte la Madonna che lascio loro un messaggio per tutta l’umanita. Il vescovo di Leiria, nella sua lettera pastorale a chiusura del cinquantenario, ha affermato che messaggio di Fatima "racchiude un contenuto dottrinale tanto vasto da poter certamente affermare che non gli sfugge alcuno dei temi fondamentali della nostra fede cristiana...".

 

 

 

Il 5 maggio 1917, nel perdurare della prima guerra mondiale, il papa Benedetto XV invito i cattolici di tutto il mondo a unirsi in una crociata di preghiera per ottenere la pace con la intercessione della Madonna. Otto giorni dopo la B. Vergine recapitava agli uomini la sua risposta, apparendo il 13 maggio a tre pastorelli portoghesi, Lucia di 10 anni, Francesco di 9 e Giacinta di 7. La Madonna diede loro l’appuntamento in quello stesso luogo, una localita in aperta campagna, denominata Conca di Iria, per il 13 di ogni mese. Lucia, la piu grandicella, raccomando ai due cuginetti di non dir nulla a casa. Ma Giacinta si lascio sfuggire il segreto e il 13 giugno successivo i tre. pastorelli non erano piu soli all’appuntamento.

Il 13 luglio Lucia esito ad andare all’appuntamento, perche i genitori l’avevano bistrattata; poi si lascio convincere da Giacinta e fu proprio durante la terza apparizione che la Madonna promise un miracolo perche la gente credesse al racconto dei tre fanciulli. Il 13 agosto i tre veggenti, rinchiusi in carcere, non poterono recarsi alla Conca di Iria. Il 13 ottobre, ultimo appuntamento, settantamila persone gremivano il luogo delle apparizioni e furono testimoni del miracolo annunciato: il sole, roteando paurosamente, sembro staccarsi dal cielo, ingigantendo tra fiamme multicolori. La Madonna, in momenti successivi e in un crescendo di prodigi per dare credibilita al suo messaggio, aveva voluto dare la sua risposta che impegna tutti i cristiani: "Recitate il rosario tutti i giorni; pregate molto e fate dei sacrifici per i poveri peccatori, molti dei quali vanno all’inferno perche non c’e nessuno che si curi di pregare e di fare sacrifici per loro... La guerra sta per finire, ma se non si smette di offendere il Signore, non passera molto tempo prima che ne cominci un’altra peggiore... Eliminate il peccato dalla vostra vita personale e lavorate ad eliminarlo dalla vita degli altri, collaborando alla redenzione del Salvatore". L’avverarsi della minaccia, con la seconda guerra mondiale, ha fatto ricordare ai cristiani il messaggio di Fatima. Nel 1946, in presenza del cardinale legato, tra una folla di ottocentomila persone, avvenne l’incoronazione della statua della Vergine di Fatima. Nel 1951 Pio XII stabili che la chiusura dell’Anno santo si celebrasse al santuario di Fatima.

Il 13 maggio 1967, per il 500 anniversario delle apparizioni della Madonna, il papa Paolo VI giunse a Fatima, dov’era ad attenderlo, con un milione di pellegrini, che avevano trascorso la notte all’addiaccio, Lucia, la veggente sopravvissuta.

 

 

Autore: Piero Bargel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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