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5동성당 게시판

안토니오 신부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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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nstar7] 쪽지 캡슐

2003-11-30 ㅣ No.2684

김성현 안토니오 신부님을 보내며

 

감자같은 신부님 두 분 계시던 어느 날

고구마같은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초짜라고 하더군요.

아! 힘든 우리 성당

관록있는 분을 원하였건만....

그러나 고구마는 은은한 미소와 따스함으로

되새길수록 단 맛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던 두 해 동안 고구마는

우리네 부실한 고구마를 실한 고구마들로 무성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주보를 보면서 고구마의 이동을 보았습니다.

신부님 작별 인사 때 앞 좌석 할머니의 흐느낌을 보았습니다.

들썩이는 어깨와 눈물을 훔치시는 그 분

그리고 그 분을 책망하는 할아버지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음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왜 우리를 울립니까?

아마도 지난 두 해가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우리의 힘이 되어 주었고,

꿋꿋함으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준 사랑에 대한 유일한 보답입니다.

 

우리는 두 해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오늘 우리 본당의 안정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미소짓는 아주 큰 감자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님의 자애를 듬뿍 갖고 계신 데레사 수녀님

우리네 동생이요 누님같은 온화한 모습의 마리아 수녀님

그래서 성당을 들어서면 그곳이 우리의 집 같음을 느꼈습니다.

 

여러 본당을 거치면서 많은 신부님·수녀님을 보내드리면서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려니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하느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데....

조금은 더 계셔도 되는데....

 

미사가 끝나고 나오며 당신과 눈 맞춤을 않았습니다.

또 다시 흐를 것만 같은 눈물 때문에

그러나 차를 타고 오며 자꾸 뒤돌아 보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오늘 일은 정녕 아닌 것 같습니다.

빌려 탄 멜키아데스 차를 여러 장애물이 자꾸 가로막는 것은

아마도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아는 듯 합니다.

 

가야하는 길이라면, 막을 수 없으면

당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이곳에 첫 정을 퍼부으셨다고 하셨지요.

우리도 당신을 사제 이전에 인간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구청의 명령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원당을 거쳐서 아주 먼 훗날

아마도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그 날

천당을 가실 그 때까지도

이 곳 사당5동에서 가졌던 사랑만 갖고 사신다면

당신은 진정 오늘 송가의 노랫말처럼

영원한 착한 목자이리라 생각합니다.

 

당신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오래토록 많은 사랑을 베푸시려면

담배와 소주를 줄이셔요!!!!

 

떠나시는 그 날

뒤돌아 보지 마세요.

눈물 흘리는 자매님들 위로하지 마셔요.

다 남편있는 사람들입니다.

매달리는 청소년들 보듬어 주지 마셔요.

다 짝 찾아 갈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없어도 우린 주임신부님과 새로 오실 신부님

두 분 수녀님과 더욱 재미있게 살거예요.

그냥 웃으며 가세요. 다시 뵙겠노라고.

대신 우리 성당과 우리들 모두의 간절한 사랑만은

가슴에 꼬-옥 간직하세요.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당신을 의지하였듯이

당신이 어려울 때 이 곳 우리의 사랑은

당신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위로해도

우리는 웃으며 당신을 보낼 수 없습니다.

흐르는 눈물 가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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