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검불에도 향기가 있다(정채봉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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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옥 [whitestar63] 쪽지 캡슐

2000-01-19 ㅣ No.863

 

 

풀잎은 왜 나는 지천에 널려있는 평범한 존재냐고 투정

하지 않았다.

풀잎은 왜 나한테는 꽃을 얹어 주지 않았느냐고 불평하

지 않았다.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이슬방울 목걸이에 감사하였다.

때로는 길 잃은 어린 풀무치의 여인숙이 되어 주는 것에

만족하였다.

 

 

가을이 오자 풀잎은 노오랗게 시들었다.

그리고 실낱같은 미미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리는 신세가

되었다.

검불이 된 풀잎은 기도하였다.

’’비록 힘 한낱 없는 저입니다만 아직 쓰일 데가 있으면

쓰여지게 하소서.’’

 

 

어느날 산새가 날아와서 검불을 물어 갔다.

산새는 물어 간 검불을 둥지를 짓는데 썼다.

그리고 거기에 알을 낳았다.

산바람이 흐르면서 검불의 향기를 실어 갔다.

무지개에 까지.

 

 

작은 풀잎이 가을이 되어 마른 모습으로 떠도는 것을 ’검불’

이라 합니다.

이런 미약한 검불에도 향기가 있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

있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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