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날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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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9-30 ㅣ No.476

내게 주어진 날개는...


하느님께서 여러 동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창조된 모습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새가 하느님을 찾아 왔어요.
그리고 말합니다.

“하느님, 불공평합니다. 뱀은 독이 있고, 사자는 이빨이 있고,
말에게는 말굽이 있어서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데,
우리 새들은 아무것도 없이 당하기만 합니다.
우리에게도 뭔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을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도 생각해보시니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그래서 새가 가지고 있었던 손을 날개로 만들어 주셨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다시 새가 하느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새로 만들어주신 이 날개 때문에 너문 무거워서
전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고, 손으로 하던 일을 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불편해졌습니다. 왜 날개를 만들어서 저희를 더 힘들게 하십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호통을 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새야! 너에게 준 날개는 지고 다니라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늘을 높이 날아올라 적으로부터 피하라고 준 것이다.”

새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날개의 사용법을 몰랐던 것이지요.
단순히 내게 주어진 하나의 짐으로만 생각했기에,
그 사용법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바로 지금 내게 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끔 했던 것들이
바로 내가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하는 날개가 아니었을까요?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날개’를 만들어주셨는데,
우리들은 그 사용법을 잘 몰라서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질책은 단 두 가지의 경우뿐입니다.

하나는 위선을 일삼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질책하셨지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많은 은혜를 입고도 배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입니다.

이번 경우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베푸셨고 또한 그런 은혜를 받은 만큼
자신의 이웃을 위해서 그 사랑을 쏟아 부으라고 했건만,
갈릴래아의 유명한 도시인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은
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세 도시는 랍비들의 종교교육이 가장 성행하던 종교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만과 자기도취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했던 것이지요.
즉, 날개를 달아주었으나 그들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주님께 달아주신 날개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나요?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주신 그 날개의 효과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빠다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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