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성당 게시판

노령에서 보는 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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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만 [kjm0417] 쪽지 캡슐

2002-11-01 ㅣ No.3540

안녕하십니까?

저는 33지역에 사는 곽주만니콜라오입니다.

가정 평안하시고 하시는 일도 주님안에서 형통하시길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임오년 원단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이니 세월이 화살같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날씨도 조석으론 싸늘합니다.감기 조심하십시오.

엊그제 퇴근길에 성당에 가니 바람은 을씨년스럽게 불고, 인적도 없는 성모동상 주위에는 낙엽이 쌓이고, 외로운 성모님의 모습에 잠시 로사리오기도를 바치며 님을 향한 마음을 화살기도로 바쳤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우리 본당이 아닌 시골 무주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이 무주리조트에서 1박2일 모임을 갖게 되어 토요일날 무주로 떠납니다.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에 만나지만 잠시 그때뿐이고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고 살지만 , 어려울 때 가장 먼저 그립고 의지하고 싶은 대상은 부모님과 형제뿐인 것 같습니다. 메말라가는 시대적인 인심속에서 가족공동체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끈끈한 혈육의 정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자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무주는 삼국시대의 나제통문이 있고 고려말 조선의 신하되기를 거부하고 은둔하고 살았던 구천동,멀리 백두대간이 조령을 넘어 남도 지리로 가는 노령 줄기의 덕유산

산세가 험하여 산행하기엔 힘드지만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준의 스키장이 있고, 삼림욕을 할 정도의 맑고 아름다운 산,그리고 구천동계곡의 맑은 물은 여름에도 신발을 벋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차가운 것으로 유명합니다.사계 가운데 겨울 덕유의 설경은 절경입니다.리프트를 타고 스타트라인 인근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녹두지지미에 동동주 한 사발, 낭만과 사랑을 가까이서 서로를 안아주는 곳....

요즈음 성당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고 무거운 심연으로 가득한 것은 무엇인지 너무 괴롭고 쓸쓸합니다.제가 순수한 마음으로 올렸던 글들....

"사랑하는 나의 님을 보셨나요?"에서 "가을은 깊어지는데"까지 사심없는 마음의 글을 올렸지만, 저의 글이 본연의 의미가 변질되고 왜곡되지 않았나 싶어 힘들었습니다.행여라도 저의 글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분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저의 본심은 시중 잣대처럼 왔다갔다 하지는 않습니다.성당을 다니면서 본당공동체를 사랑하고,신부님을 존경하고 교우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저의 본심입니다.

 

1995년 2월 아내 가밀라의 전교로 가정소공동체를 이루고자 월계성당 외짝교리반1기로 입교하여 그 해 12월19일 송재남알퐁소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니콜라오라는 본명으로 주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교리중에도 지역 형제모임에 초대해 주셔서 베풀어 주신 형제님들의 사랑은 이방인으로 살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처럼 저를 환히 밝혀주고 깊은 감동을 주었고, 천주교에 입교하기를 정말 잘했구나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멀리 계신 한경철라파엘대부님이 지역장으로 일하실 때 부지역장으로, 다음 지역장으로 5년간 봉사하며,레지오 "우리 즐거움의 원천"에 1996년 2월 입단하여 평단원으로 회계,서기 등 4간부로 5년간 매주 주회합에 참석하여, 로사리오 기도와 친교로 지내온 시절은 빈부와 계급의 격차도 없고 허물도 감싸주고 친 형제처럼 지냈던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1999년 11월 28일 불의의 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 아내를 위로해주며 쾌유를 비는 묵주기도와 화살기도를 바쳐주신 지역 식구들,레지오 단원들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기 직전의 꿈 지금도 생생합니다.

망각의 강 저편의 땅은 돌아올 수 먼 나라 , 뒤돌아 바라보니 살아온 날들이 카메라의 필름 한 컷 한 컷 되어 지나 가고 이젠 망각의 강을 건너 나는 가는구나 ......

잠시 눈물에 젖어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음성  니콜라오형제,눈을 뜨니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아내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 뿐 무엇으로 뜨거운 은총을 표현하겠습니까? 저는 아내의 기도를 주님이 받아 들이시어 다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퇴원 후 뇌수술 후라 성당에 바로 가지 못하고 2000년 이맘때쯤 짧은 머리로 인해 모자를 쓰고 2층에서 12시미사를 봉헌할 때 마지막에 들려주는 라우다떼성가대의 특송 "평화의 노래"는 너무 장엄하고 고귀한 선율을 가슴에 안겨 주었습니다. 가정의 평화;부부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의 중심이 되고, 아내는 남편을 슬기와 인내로 남편을 내조하고,자녀는 건강하게 자라고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이것이 참평화가 아닐런지요!

그 해 겨울 성가대에 입단하여 베이스파트를 맡아 봉헌하는 12시 미사는 일주일을 기다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화요일 성가 연습과 주일날 함께 하는 성가는 기쁨이고 삶의 촉매제였습니다.다음 해 회사일로 평일 이틀을 뺄수가 없어 레지오는 협조단원으로 전환하고  성가대활동만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70년대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분열과 갈등의 시기는 아닙니다.

21세기는 세계가 한 가족이고 성당공동체의 우리는 떼어놓을 수 없는 핵가족입니다.

주님! 우리 성당에 평화를 주시고 삼삼한 시절에 삼삼한 사람끼리 만나 삼삼한 일을 하며 불타올랐던 33지역 소공동체 일으켜주시고 깨어나게 하소서!

 12시미사에 다시 우리 성가대가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십시오.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무주성당에서 저는 서울을 향해 기도하렵니다.

본당에서 드리는 다음 미사가 약해지는 저의 심령에 주님이 함께 해주시어, 믿음이 반석처럼 굳건하게 해 주소서.감사합니다.

 

                                     2002.11.1  곽주만니콜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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