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늘 예쁜 추억으로 남게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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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리 [uree] 쪽지 캡슐

2002-11-26 ㅣ No.4141

 

 

왜 그렇게 "추억"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머리 속에 남는 건지?

 

15년쯤 전에 한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더랬습니다.

  "선생님, 여전하시네요.

엊그제 테레비에서 또 선생님을 뵈었어요.

가끔 저는 테레비를 통해서 선생님을 뵈었거든요.

뵈올 때마다 선생님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바쁘신 선생님을 뵙는다는 것이

도리어 선생님 일에 방해가 될까봐

차마 그런 말씀 못 드렸습니다.- - - - - -"

그 며칠 후, 우리는

제 근무처인 출판사 근처 대치동의 한 다방에서

고대했던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이 제자는 특히

인상깊은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그 토끼 눈같이 예쁘고 초롱초롱한 눈,

그 오똑한 코,---)

제 머리 속엔 하나의 예쁜 소녀 얼굴이

채색까지 곁들여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 그 제자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찹찹했을까요?

 

그 날의 ’만남’이 아니라면

제 머리 속에는 그 옛날 소녀의 모습이

하나의 예쁜 그림으로 계속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 그러나,  - - -.

이제는 두 아이 어머니가 된 30대 중반 주부의 모습으로

내 눈 속에 안겨 들어온 그 제자는

그 옛날 그 제자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이산 사제와 만나던 날"

              <새교실>이라는 한 월간지(교사들의 교양지)에

              이런 제목으로 제 글이 실린 것은 그 한 달쯤 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키 작은 남자인 ’배우리’지만 젊었을 때는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낫게(?) 본 사람이 있었겠지요.

 

그 날의 제자는 그래도 저보다는

’모습’으로 인한 실망의 무게가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아마, 20년의 가까운 세월이었지만

영상 매체 등을 통해서 가끔씩 모습을 보아 왔기 때문이겠지요.

자라는 아이를 늘 옆에서 보면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늙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늘 보면

늙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아, 이제

제 머리 속에도 하나의 멋진 그림을

또 입력해 놓아야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늘 웃음으로 대하는 젊은 신부의 모습,

그 부드러운 웃음과 자근자근한 말소리를

제 작은 머리 속에 심어 놓아야 되나 봅니다.

 

그러나,

그 멋진 그림은 제가 자주 출력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있다면

수십 년이 지난 먼 훗날에도

그 그림이 결코

빛바랜 모습으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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