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죄의 정의, 원죄, 성령을 모독/경멸(contempt)하는 죄 등에 대하여 1140_ [성령모독죄 [신앙의 신비][_죄][_원죄][악의 신비] [inegrity]

인쇄

. [110.14.3.*]

2011-12-05 ㅣ No.1141


질문:

예수님을 거스르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스르는 죄는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다 하는데,

무엇이 성령을 거스르는 것인가요???
----------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하느님 당신 자신이 무한한 선함(unlimited goodness)이시므로, 당신의 의하여 창조된 모든 것들은 완미(完美)한 선함(perfect goodness)의 상태, 즉 원 은총(original grace)의 상태, 원 의로뭄(original justice)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31).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르코 복음서 7,15)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사도행전 10,15)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다 좋은 것으로, 감사히 받기만 하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티모테오 4,4)

따라서, 하느님의 특별한 피조물인 사람과 여자는, 애초에 당연히 또한, 태생적으로 완미한 선(perfect good)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즉, 가톨릭 보편 교회는 항상, 소위 말하는, 성선설(性善說)을 지지해 왔습니다.

게시자 주
: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성선설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성선-설 (性善說)

명사」『철학』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物慾)으로 악하게 된다는 학설. 중국의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년경)가 주장하였다.
-----

참고 사항: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성악설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에서 성선설의 개념을 말씀드렸으니, 성악설(性惡說)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성악-설 (性惡說)

「명사」『철학』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므로 선(善) 행위는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학설. 중국의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년경)가 주장한 것으로, 인간은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싸움만이 일어나 파멸하기 때문에 예(禮)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

게시자 주: 따라서, 성악설(性惡說)을 지지하는 자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자신 고유의 신념(belief)을 가지고 있기에, 예를 들어, 가톨릭 보편 교회의 향주삼덕[믿음(faith), 희망(hope), 사랑(charity)]에 동의하고 이들을 받아들여 실천하지 않는 자이기에, 그 결과 가톨릭 교회의 믿음(faith)을 거부/부정하는 자이기에, 설사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껍데기는 그리스도교 신자이나, 사실은,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 사람이 될 수가 없는 자일 것입니다.

즉, 성선설 대신에 성악설을 지지하는 자는, 성악설을 참진리로 믿는 자신의 생각/성향/마음가짐을 완전하게 포기하지 않는 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하는 교우님들을 두고서, 예를 들어, 심지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등의 표현까지도 하면서, 조롱/음해/곡해/왜곡/인신공격 등을 하면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들을 완강하게 거부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창조하신 바와는 달리, 선하지 않은 것들, 선이 결여된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떠한 까닭으로 이렇게 되었는지는 누구에게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은, 1티모테오 3,16을 인용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제385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385.htm

-----
(발췌 시작)

CCC 385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모든 업적도 선하다. 그러나 아무도 고통의 경험과, 자연계의 ─ 피조물 고유의 한계성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 악을 피할 수 없으며, 특히 윤리 악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찾았으나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258) 고 말하였으며, 마침내 살아 계신 하느님께 돌아섬으로써 그의 고통스러운 탐구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악의 신비’ (2테살 2,7) 는‘경외의 신비(*)259) 로써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계시는 만연되어 있는 악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은총을 보여 준다. 260) 그러므로 우리가 악의 기원 문제를 숙고할 때, 악을 홀로 정복하신 그분께 우리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야 한다. 261)

-----
258.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 7, 7, 11: CCL 27, 99(PL 32, 739).
259. 1티모 3,16 참조.
260. 로마 5,20 참조.
261. 루카 11,21-22; 요한 16,11; 1요한 3,8 참조.
-----

-----
(*) 번역자 주: 이 우리말 번역 용어, "경외의 신비" 라는 표현에 대하여서는, 이 글을 마지막 부분에 있는 번역자의 각주 [번역 미숙/오류 지적 한개] 를 필히 참고하도록 하라.
-----

(이상, 발췌 끝)
-----

     이 궁극적 궁금증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몇 가지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여야만 하는 신학적 및 철학적 개념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들 개념들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들을 전달해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0월 14일]

다음은,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NAB)의 부록인, Bible Ditionary에 주어진 "sin(죄)"에 대한 설명입니다:

(발췌 시작)
SIN. In the Old Testament sin is not so much a wrong action in one's conscience as something which disrupts the order of the world wished by God, and particularly the covenant fixed by the law. Thus the Israelite did not search himself for deep causes or establish its relationship with original sin; it is necessary to wait for the book of Wisdom to find such an allusion (2, 24). The New Testament describes sin as relating to original sin and tells of the universal sorrow because of sin (Rom 1-5) rased by the Redemption (Rom 5-8). It describes responsibility for it. This conception of sin thus became linked with the ideas of faith and love which gave life to Christians (Rom 13, 8ff; 1 Cor 5, 9; 13, 4ff).

죄(SIN). 구약 성경에 있어 죄는, 하느님에 의하여 바라게 되는 세상의 질서(순서, order)를, 그리고 특히 율법에 의하여 정해진 계약을, 파열시키는(disrupts) 그 무엇으로서, 우리의 양심(one's conscience) 에 있어 어떤 잘못된 행위 정도가 아닙니다(is not so much). 따라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깊은 원인을 스스로 찾거나 혹은 원죄(original sin)와 그것의 관계를 확립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러한 어떤 암시를 발견하기 위하여 (지혜 2,24) 지혜서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원죄에 관련되는 것으로서 설명하며 그리고 속량(Redemption)에 의하여 지워지는 (로마 5-8) 죄로 인한(because of) 보편적 후회/뉘우침(the universal sorrow)에 대하여 말합니다 (로마 1-5). 이것은 이에 대한 책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이러한 개념 형성(conception)은, 그리스도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었던, 믿음(faith, 신덕)과 사랑(love, 애덕)의 개념(ideas)들과 관련지어지게 되었습니다 (로마 13, 8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1코린토 5,9; 13,4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2월 13일]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sin(죄)"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s/s331.htm 

(발췌 시작)
SIN

"A word, deed or desire in opposition to the eternal law" (St. Augustine). Sin is a deliberate transgression of a law of God, which identifies the four essentials of every sin. A law is involved, implying that there are physical laws that operate with necessity, and moral laws that can be disregarded by human beings. God is offended, so that the divine dimension is never absent from any sin. Sin is a transgression, since Catholicism holds that grace is resistible and the divine will can be disobeyed. And the transgression is deliberate, which means that a sin is committed whenever a person knows that something is contrary to the law of God and then freely does the action anyway. (Etym. Old English synn, syn, sin; Old High German sunta, suntea, perhaps to Latin sons, guilty.)

죄(sin)

"영원한 법(the eternal Law)(*)에 반하는 어떤 말(word), 행위(deed) 혹은 욕망(desire)"을 말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죄는 하느님의 법에 대한 어떤 고의적 위반/침범(a deliberate transgression)인데, 이것은 모든 죄에 있어서의 네 개의 본질적 요소들을 식별합니다. 어떤 법(a law)이 개입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작동하는 형이하학적 법(physical laws, 물리 법칙)들이 있음과, 그리고 인간들에 의하여 무시될(disregarded) 수 있는 윤리법(moral laws)들이 있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침범을 당하시며(is offended), 그리하여 그 결과 어느 죄로부터도 신성적 양상(樣相)(divine dimension)은 결코 결여되지 않습니다. 죄는 어떤 침범/위반인데, 왜냐하면 은총은 저항을 받을 수 있으며(resistible) 그리고 신성적 의지(the divine will)는 불순종될 수 있다고 가톨릭 교의(catholicism)는 신봉하기(holds)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침범은 고의적인데, 이것은 한 인격(a person)이 어떠한 것(something)이 하느님의 법에 상반되는 것을 알면서 게다가(and then) 어떤 식으로든 그 행동을 자유롭게 행할 때에는 언제든지 한 개의 죄가 범해짐을 의미합니다. [어원. Old English synn, syn, sin; Old High German sunta, suntea, perhaps to Latin sons, guilty.) 
 

-----
(*) 번역자 주: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eternal law(영원한 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글의 제2-2항에 주어져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1-1. 위의 질문은,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10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복음서 3,20-35)제28-29절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하여 고찰하기 전에, 이 질문 중에 등장하거나 직결되어 있는, 특정한 신학적 개념들을 표현하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들을 이어지는 제1항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CCCC 391.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CCC 1846-1848, 1870

하느님의 자비(mercy)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들을 시인하고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implique). 하느님 스스로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과 당신의 성령으로써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털어놓게 하시며(lays bare) 그리하여 양심의 진실성(truth of conscience)과 용서의 가망성(hope of forgiveness)을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heart_c1846.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9_c1846.htm
-----

CCCC 392. 무엇이 죄(sin)입니까?
CCC 1849-1851, 1871-1872

“영원한 법(eternal law)에 반하는 어떤 말, 행위, 혹은 욕망(desire)”이 죄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죄(sin)는 하느님의 사랑(love)(*)에 불순종하여 하느님께 맞서는 거스르는 행위(offense)입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을 해치며 인간의 연대성(human solidarity)을 손상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passion)에서 죄의 심각성을 완전히 드러내셨으며 그리고 당신의 자비로써 죄를 이기셨습니다(overcame)(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heart_c1849.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9_c1849.htm

-----
(*) 번역자 주: "하느님의 사랑"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6.htm
-----

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2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

CCCC 393. 다양한 죄들이 있는지요?
CCC 1852-1853, 1873

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습니다. 죄들은 그 대상(object)에 따라 아니면 그들이 어기는(violate) 덕(virtues)들 혹은 계명(commandments)들에 따라 구분될 수 있습니다. 죄들은 하느님, 이웃, 혹은 죄를 범하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죄들은 생각의 죄들, 말의 죄들, 행동의 죄들, 혹은 태만(omission)의 죄들로 또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

CCCC 394. 죄들은 그 심각함에 따라 어떻게 구분되는지요?
CCC 1854

대죄(mortal sin, 죽을 죄, 즉 그냥 놔두면 죽음을 초래하는 죄)와 소죄(venial sin, 가벼운 죄) 사이에 구분이 있게 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2_c1852.htm
-----

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3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

CCCC 395. 사람이 대죄를 범하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CCC 1855-1861, 1874

사람이 대죄(mortal sin)를 범하는 경우는, 중대한 사안(grave matter), 충분한 인지(full knowledge), 그리고 의지가 개입된 동의(deliberate consent), 이들 세 가지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때입니다. 대죄는 우리 안에 있는 애덕(charity)을 파괴하고, 우리로부터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을 빼앗으며, 그리고, 만약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지옥(hell)이라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대죄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3_c1855.htm
-----

CCCC 396. 언제 사람이 소죄(venial sin)를 짓게 되는지요?
CCC 1862-1864, 1875

사람이, 대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소죄를 범하는 경우는, 개입된 사안이 덜 심각하거나, 심지어 그것이 중대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인지 혹은 완전한 동의가 결여되어 있을 때입니다. 소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소죄는 애덕(charity)을 약화시키며 세상 재화(created goods, 창조된 재화)들에 대한 질서가 결핍된 애착(disordered affection)을 드러냅니다. 소죄는 덕(virtues)들의 실천과 윤리적 선(good)의 실행에 있어 영혼의 전진(progress)을 방해합니다. 소죄는 정화하는 잠벌(暫罰, poena temporalis, temporal punishment,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형벌)을 마땅히 받을 만합니다(merits)(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3_c1862.htm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이상 발췌문들로부터, 특히 가톨릭 보편 교회가 가르치는 죄(sin)정의(definition)

“영원한 법(eternal law)(*)에 반하는 말, 행위, 혹은 욕망(desire)"(성 아우구스티노)

임을 학습하였으며, 그리고 죄들의 종류들 등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한다" 함은, 죄를 범하는 자의 자유의지의 개입을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 번역자 주: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eternal law(영원한 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글의 제2-2항에 주어져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4월 1일]

게시자 주 1-1: (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mortal sin"(대죄)에 대한 설명 전문이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308.htm 

(발췌 시작)

MORTAL SIN

 

대죄(mortal sin)

 

An actual sin that destroys sanctifying grace and causes the supernatural death of the soul. Mortal sin is a turning away from God because of a seriously inordinate adherence to creatures that causes grave injury to a person's rational nature and to the social order, and deprives the sinner of a right to heaven.

 

성화 은총을 파괴하여 그리하여 영혼의 초자연적 죽음을 야기하는 어떤 현실태적 죄(an actual sin)를 말합니다. 대죄는, 당사자의 이성적 본성 쪽으로 및 사회 질서 쪽으로 중대한 상처/위해(grave injury)를 야기하는 '피조물들 쪽으로의 어떤 심각하게 과도한 집착'(a seriously inordinate adherence to creaturres)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멀어짐(a turning away)을 말하며, 그리하여 하늘(천당, heaven) 쪽으로 어떤 권리(a right)를 해당 죄인으로부터 박탈합니다.

 

The terms mortal, deadly, grave, and serious applied to sin are synonyms, each with a slightly different implication. Mortal and deadly focus on the effects in the sinner, namely deprivation of the state of friendship with God; grave and serious refer to the importance of the matter in which a person offends God. But the Church never distinguishes among these terms as though they represented different kinds of sins. There is only one recognized correlative to mortal sin, and that is venial sin, which offends against God but does not cause the loss of one's state of grace. (Etym. Latin mors, death.)

 

죄(sin)에 적용되는 죽을/죽음을 야기하는(mortal), 죽을(deadly), 중대한(grave), 그리고 심각한(serious)이라는 용어들은, 그 각각이 어떤 약간 서로 다른 암시를 가지고 있는, 동의어들입니다. 죽을/죽음을 야기하는(mortal)죽을(deadly)은 해당 죄인에게 있는 결과들에, 달리 말하여, 하느님과의 우의(友誼)라는 지위(the state of friendship)의 박탈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그리고 중대한(grave)심각한(serious)은, 그 안에서 한 인격이 하느님을 침범하는, 사안의 중대성 쪽으로 언급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들 용어들 사이에서, 마치 그들이 죄들의 서로 다른 종류들을 나타내는 것처럼(as if), 결코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죄 쪽으로 상호 관계가 있다고 인지되는 것이 오로지(only) 하나가 있는데, 바로 그것은, 하느님에 반하여 침범하나(offends against God) 그러나 당사자의 은총의 지위(state of grace)의 상실을 야기하지 않는, 소죄(venial sin)입니다. [어원. Latin mors, death(죽음).]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 그리고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venial sin"(소죄)에 대한 설명 전문이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v/v040.htm 

(발췌 시작)

VENIAL SIN

 

소죄(venial sin)

 

An offense against God which does not deprive the sinner of sanctifying grace. It is called venial (from venia, pardon) because the soul still has the vital principle that allows a cure from within, similar to the healing of a sick or diseased body whose source of animation (the soul) is still present to restore the ailing bodily function to health.

 

성화 은총(sanctifying grace)을 해당 죄인으로부터 박탈하지 않는, 하느님에 반하는 어떤 침범(an offense against God)을 말합니다. 이 죄는 (라틴어 venia, 관서/용서(pardon)으로부터 유래하는) 소(venial)이라고 불리는데 왜냐하면 당사자의 영혼이, 그 활기(活氣, animation)(영혼(soul))의 원천(source)이 앓고 있는(ailing) 신체적 기능을 건강 쪽으로 회복시키고자 여전히 현존하고 있는 어떤 병자 혹은 병든 몸의 치유와 유사하게, 그 안쪽에서부터 어떤 치유를 허락하는 바로 이 생명의 원리(the vital principle, 즉, 성화 은총)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Deliberate venial sin is a disease that slackens the spiritual powers, lowers one’s resistance to evil, and causes one to deviate from the path that leads to heavenly glory. Variously called “daily sins” or “light sins” or “lesser sins,” they are committed under a variety of conditions: when a person transgresses with full or partial knowledge and consent to a divine law that does not oblige seriously; when one violates a law that obliges gravely but either one’s knowledge or consent is not complete; or when one disobeys what is an objectively grave precept but due to invincible ignorance a person thinks the obligation is not serious.

 

고의적 소죄(deliberate venial sin)는 한 개의 병(a disease)인데 이 질병은 영적 힘들을 느즈러떠리고(slackens), 악(evil) 쪽으로 당사자의 저항을 낮추며(lowers), 그리하여 당사자로 하여금 천상 영광(heavenly glory) 쪽으로 인도하는 길로부터 벗어나도록(deviate) 야기합니다. "일상의 죄들"(daily sins) 혹은 "가벼운 죄들"(light sins) 혹은 "덜 중한 죄들/소죄들"(lesser sins)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의 어떤 다양성 아래에서 범하게 됩니다: (i) 한 인격(a person)이, 심각하게 의무 지워지지 않는 어떤 신법(a divine law) 쪽으로, 충분한 혹은 부분적 인지 및 동의와 함께, 침범할 때; (ii)어떤 자가, 중대하게 그러나 당사자의 인지 혹은 동의가 완전하지 않은, 의무지워지는 한 개의 법을 어겼을 때; 혹은 (iii) 어떤 자가 한 개의 객관적으로(objectively) 중대한 규범(grave precept)인 바를 불순명하나(disobey) 그러나 극복할 수 없는 무지(invincible ignorance)에 기인하여(due to) 한 인격(a person)이 이 의무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The essence of venial sin consists in a certain disorder but does not imply complete aversion from humanity’s final destiny. It is an illness of the soul rather than its supernatural death. When people commit a venial sin, they do not decisively set themselves on turning away from God, but from overfondness for some created good fall short of God. They are like persons who loiter without leaving the way.

 

소죄(venial sin)의 본질(essence)은, 인류(humanity)의 최종 운명의 관점에서(from) 완전한 혐오(complete aversion)을 의미하지 않는, 어떤 특정한 무질서(a certain disorder)를 그 주된 부분으로서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죄는, 당사자의 영혼의 초자연적 죽음(supernatural death)이라기 보다는, 당사자의 영혼의 한 개의 질병(an illness)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소죄를 범하였을 때에,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결정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다만 어떠한 창조된 선(some created good)에 대한 지나친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from overfondness) 하느님에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fall short of). 그들은 [하느님쪽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the way)을 떠나는 행위 없이 어떤 곳에서 빈둥거리는/지체하는(loiter) 사람(persons)들 같습니다(like).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2022년 4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1-2. 다음은 죄들 중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 의한 첫 번째 죄, 즉 원죄(original sin)정의(definition) 및 이 원죄의 결과들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참고: 특히 가톨릭 보편교회가 가르치는 믿음(faith)에 동의하고 이 믿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임에 있어, 원죄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및 이성적/논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므로, 원죄의 정의(definition)를 반드시 숙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
(발췌 시작)

CCCC 76. 원죄(original sin)가 무엇인지요?
CCC 404, 419

모든 인간들이 그 안에서 태어나게 되는 원죄는 원래의 거룩함과 의로움(original holiness and justice)을 상실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죄는 우리에 의하여 ‘범해진(committed)’ 죄가 아니라 ‘감염된(contracted)’ 죄이며, 그리고 이 죄는 어떤 인격적 행위(a personal act)가 아니라 출생의 상태(a state of birth)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들의 원래의 단일성(original unity) 때문에, 이 죄는 ‘모방(imitation)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번식(propagation)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전달은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a mystery)로 남아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4.htm

-----

CCCC 77. 다른 어떠한 결과들이 원죄로부터 비롯되는지요?
CCC 405-409, 418

원죄의 결과로 인간의 본성(human nature, 인성)은, 완전히 타락됨 없이, 그 본성적 힘(its natural powers)들에 있어 상처가 나게 됩니다(is wounded). 인간의 본성은 무지(ignorance)에,  고통(suffering)에, 그리고 죽음의 지배(dominion)에 복종하게 되며 그리고 죄를 향하여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성향은 사욕편정[concupiscence, 偏情](*)이라고 불립니다(엮은이 번역).

(*): ‘사욕편정[concupiscence, concupiscentia, 偏情]’ 용어는 다음의 설명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5.htm
-----

-----
[내용 추가 일자: 2012.12.17]

(*) 번역자 주: 현재까지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사용중인, 영어로 "concupiscence"로 번역되는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의 번역 용어인 "慾偏情"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제2-2-4항제2-2-5항반드시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월 4일]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제1독서(창세기 3,9-15.2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단히 좋은 내용이므로, 필독을 권고합니다.

[이상, 2012년 1월 4일자 내용 추가 끝].


게시자 주이상의 발췌문들로부터, 우리는 원죄(original sin)의 정의(definition)와 이 원죄의 결과들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학습하였습니다.

다음은, 죄의 결과로서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발생하게 되는 바인, 악(evil)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1-3. 여기를 클릭하시면, <----- 반드시 필독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악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악의 정의(definition)를 잘못 이해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를 들어, 마니교에서 주장하였던 바와 같은, "선(good)과 악(evil)에 대한 이원론적 혹은 양비론적 사고"에 빠져들어, 그리하여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의 효능들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대단히 심각한 혼란/오류의 상태에 빠져들게 되므로, 반드시 필독하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

2. 성령을 거스르는 죄

2-1.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나해 연중 제10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3,20-35)의 제28-30절에 대한 해설입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모든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은 예외(exception)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결코 간과되어서는 아니 된다.48) 다음은 실제로 성령에 반하는 6 개의 죄들이다:(*)
     1)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자포자기(절망, 단념, despair).
     2)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한 주제넘은 추정(망망, presumption).
     3) 신앙의 진리에 대한 부정(denial)/저항(resisting).
     4) 임종 직전의(final) 뉘우치지 않음(impenitence).

     5) 하느님께 귀의하는 것에 대한 거부/완고함(obstinacy).

     6) 다른 이의 영적 선에 대한 질투(envy)


-----

(*)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들에 대한 더 자세한 학습을 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2) 특히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
48)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864항의 가르침이다: 
 


CCC 1864.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1). 하느님의 자비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뉘우침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기를 일부러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죄의 용서와 성령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물리치는 것이다. 이러한 완고함은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게 하고  영원한 파멸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1864.htm
-----

2-2.
여기를 클릭하면, <----- 나해 연중 제10주일 제1독서(창세기 3,9-15)에 대한 해설이 대단히 좋으므로, 또한 필독을 권유합니다.

위의 졸저서의 인터넷 각주로 제공되고 있는, 나해 연중 제10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3,20-35)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다음에 발췌한, 연중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마르코 3,28-30)에 대한 해설(출처 1 혹은 출처 2)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루카 12,8-12)에 대한 해설은 참고 1에 있습니다:

-----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0.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참고 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8_sat.htm [또한 필독 권고]

(발췌시작)
28-30. 예수님께서는 한 개의 기적을 방금 행하셨으나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이것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었다' 라고 이미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제10절).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 기적의 주관자(author)이심을 인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에는, 하느님 당신 자신에 의하여 수행되었던 선한 일들의 원인을 악의 우두머리(the prince of evil)인 사탄(Satan)의 탓으로 돌리는, 성령에 맞서는 모독(blasphemy)이라는 특별한 중대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자 누구든지, 의사(doctor)에 대한 신뢰를 이미 상실하여 그 결과 의사를 마치 원수인 것처럼 거부하고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medicine)을 독(poison)으로 간주하는, 병든 자처럼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음과 같이 왜 우리의 주님께서 성령에 맞서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죄들을 용서하실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가,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눈 먼 상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가르침과 당신의 기적들을, 거부하며, 그리고 성령의 은총들을, 마치 이 은총들이 자신을 속이기(trap) 위하여 고안되었던 것처럼, 경멸하기 때문입니다. [cf. "성 비오 5세 교리서 (St. Pius V Catechism)", II, 5, 19;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II-II, q. 14, a. 3].
(이상, 발췌끝)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0월 21일]

그리고 다음은 루카 복음서 12,1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입니다:

출처: 위의 참고 1.

(발췌 시작)
10. 성령에 반하는 모독은 하느님을 그들의 원천으로서 가지는 행위들을 악의적으로(maliciously)(*) 악마에게 귀속시킴을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행하는 자는 하느님의 용서가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며, 바로 이것이 왜 그가 용서를 얻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12,31; 마르코 복음서 3,28-30을 참조하라). 예수님께서는 어떤 윤리적 잘못(a moral mistake)을 저지르는 자(a person)의 나약함(weakness)을 이해하시고 너그러이 봐 주시나(excuses), 그러나 성령께서  행하시는 경이로운 일(the wonderful things)들에 대하여 자신의 눈들과 자신의 심장 (heart, 본심)을 닫는 자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관대하지 않으시며, 그리하여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베엘제불(Beelzebul)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던 바리사이들이 행동하였던 그 방식이었으며,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위업(work) 안에서 하느님의 선함(goodness)에 대한 한 개의 표징(a sign)을 보는 것을 거부하(refuse),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제시하는 초대를 거절하는(reject) 그리고 바로 이것에 의하여(thereby) 구원의 범위 바깥에 자기 자신들을 배치하는(put),  믿지 않는(unbelieving)(*)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히브리 6,4-6; 10,26-31을 참조하라). 마르코 복음서 3,28-30에 대한 주석을 보라.

 

-----
(*) 번역자 주:
(1) "악의(malice)" 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63.htm

(2) 그리고 "어떤 자가 악의를 가진 자"인지에 대한 충분 조건은 다음의 글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63.htm

(**) 번역자 주: "unbelief(불신/회의)"와 "disbelief(거부)"의 차이점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3.htm 
-----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따라서

(i) "성령을 거스름""거부(disbelief)"에 포함되고, 그리고

(ii) "거부(disbelief)""불신/회의(unbelief)"에 포함될 것이다.  
-----


2-2-1. 다음은 마태오 복음서 12,31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이 어려운 말씀을 현재의 문맥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려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신다(22절). 이 기적을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의 힘으로 일으키신다(28절). 이러한 사실은 바리사이들에게도 명백하였을 것이다(27절).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이 하신 이 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악의로 그것을 사탄의 일로 돌린다. 이로써 그들은 진리를,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적이며 악의에 찬 거부는 용서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용서를 전혀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 발췌 끝).

2-2-2. 다음은 마태오 복음서 12,32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이 절의 강조점은 후반부에 있다. 이 절은 곧 앞 절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아직 신비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분에 관한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일으키는 기적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은 오해받을 수가 없다 (바로 앞의 각주 잠조). 그래서 그분에 관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전반부를 예수님의 부활 이전, 후반부를 성령께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부활 이후와 관련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부활 이후 곧 성령의 시대가 결정적인 때로서 회개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아무튼 31-32절에 되풀이되는 '용서받다'라는 동사의 수동태는 용서의 주체이신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가리키는 표현 방식이다. 용서의 주님은 나느님뿐이시라는 것이다.
(이상, 발췌 끝).

2-2-3. 다음은 마르코 복음서 3,28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좁은 의미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은 직접적으로 하느님이나 그분의 이름(탈출 22,27; 레위 24,11-16), 또는 그분의 권능이나 특권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2,7과 병행구; 14,64와 병행구; 요한 10,33-36). 신성 모독은 또한 하느님에게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나(사도 6,11), 거룩한 제도를 대상으로 살 수도 있다(에제 35,12; 1마카 7,38). 그래서 복음서들에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 분이신 예수님에 대한 독설과 관련해서 '(하느님을) 모독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다(15,29와 병행구; 루카 22,64-65; 23,39).
(이상, 발췌 끝).

2-2-4. 다음은 마르코 복음서 3,29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직접적인 문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수행하시는 일들을 사탄의 것으로 돌려, 예수님을 통하여 활동하시는 권능의 주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거부는 용서에 직접적으로 배치된다(마태 12,31-32 각주 참조).
(이상, 발췌 끝).

2-2-5. 다음은 루카 복음서 12,10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이 말씀에 관해서는 마태 12,32 각주 참조. 루카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용서 가능한 모욕과 "성령"에 관한 용서 불가능한 모독을 구분하여,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명을 수행하시는 시기와(이때는 예수님을 죽이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23,34; 사도 3,17; 13,27),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이스라엘이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교의 시기를 대조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사도 2,38; 3,19; 13,46; 18,6; 28,25-28 참조). 마태 12,32와 마르 3,22-29에서는 이 말씀이 다른 맥락에서 배치되기 때문에 의미가 달라진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에 있어, 당신의 부활 이전의 시기 전반에 걸쳐, 아직까지는 당신께서 원죄(original sin)없는 완미한 사람(perfect man)이시고 또한 하느님이심이 완전하게 드러내어지지 않았기에, 당신의 말씀들이 참진리임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처음으로 그나마 이해하기 시작하는 삼위일체 교의(dogma)를 예수님 공생활 당시의 대다수의 유다인들이 이미 이해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라고까지 추정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특히 당시의 유다인들이 구약 성경 본문을 통하여 이미 잘 알고 있었던, "하느님의 영"에 거슬러 말하는 자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당시의 유다인들이 틀림없이 잘 알아 들었을 것임에 주목하라.
 
다른 한편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으신 분이 바로 하느님뿐이심을 당시의 유다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유다인들이 알고 있는 바로 이 "하느님의 영"이 또한 성삼위의 제3위격이신 "성령 하느님"이심을 가르치고 계시는 중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말씀드린 바는,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복되신 성삼위(the Blessed Trinity)" 제목의 글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번역 미숙/오류 한 개]

여기를 클릭하면,

RSV(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는 신약 성경 본문에서 성삼위의 제3위격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인 "Holy Spirit(성령)"라는 번역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를 클릭하면,

RSV(Revised Standard Version)와는 달리, NAB(New American Bible) 본문 중에서는, 성삼위의 제3위격을 나타내는 "Holy Spirit(성령)" 라는 표현 대신에, "holy Spirit(거룩한 영)" 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즉, 1960년대의 공동 번역 영어 성경인 RSV 에서 "Holy Spirit(성령)"로 번역되었던 표현을, 1970년 이후 교황청 공인 영어 성경인 NAB 에서 "holy Spirit(거룩한 영)"바로잡았음을 직접 확인하였다.

따라서, "새 번역 성경"의 본문에서도, NAB에서 "holy Spirit"라고 번역되는 표현을, 성삼위의 제3위격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인 "성령"이라고 번역 하는 대신에,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1 끝)

게시자 주 2: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에는 위에서 말씀드린 바처럼으로만 이해를 하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성삼위 하느님이심을 우리가 알기에, "성령께 거스르는 죄"는 또한 "성부께 거스르는 죄", 그리고 또한 "성자(예수 그리스도)께 거스르는 죄"일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세 위격들은 구분은 하되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성 비오 5세 교황님의 교리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을 거스르는 죄"가 용서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믿음(faith, 신덕)에 반하는 죄인 "불신/회의(unbelief)의 죄"가 한층 더 깊어져,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눈 먼 상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가르침과 당신의 기적들을, 거부하며, 그리고 성령의 은총들을, 마치 이 은총들이 자신을 속이기(trap) 위하여 고안되었던 것처럼, 경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죄(original sin)에 따른 벌(punishments)들 중의 하나인 (육의) 나약함(weakness)에 기인하는 (윤리적) 죄에 비교하였을 때에, "성령에 맞서는 죄", 즉 "악의(malice)에 기인하는 죄"는 하느님의 의지에 맞서는 죄이기에, 하느님의 은총 자체가 그러한 자 안에 있는 버티고 있는 악의(malice)라는 장애물 혹은 방해물 때문에 그러한 자에게 도달 할 수가 없게 되어 그리하여 그러한 자의 "심장(본심, heart)이 굳어져/완고(obstinacy)하게 되어", 깊이 뉘우치면서 하느님의 의지에 맞서는 악의(malice)를 스스로 제거하지 않는 한,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가르침이라는 생각이다.
 
다른 죄와는 달리, "성령을 맞서는/거스러는/모독하는 죄"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악의(malice)에 기인하는 성령 하느님에 대한 경멸(contempt)"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i) 믿음(faith, 신덕)의 반대인 "불신/회의(unbelief)" 안에 "거부(disbelief)"가 포함되어 있고, 그리고

(ii) "거부(disbelief)" 안에 "성령 맞서는/거스러는/모독하는 죄", 즉 "성령 모독죄"가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제2-3항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과 그리고 이 가르침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아래의 제2-4항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986년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제2부(제목: 죄에 관하여 세상을 납득시키시는 성령), 제6항(제목: 성령을 거스르는 죄), 제46-48조를 필히 읽도록 하라.

게시자 주 3: 여기를 클릭하면,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성령에 맞서는 죄들"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이외에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4 에 주어진 설명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
 
2-3. 위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마르코 복음서 3,28-30에 대한 간략한 요약 해설은, 예를 들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II-II. q. 14, a. 3 을 참조하라고 하는데,

여기를 클릭하면, <----- 대단히 좋은 내용이므로, 필독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의 약 600여 개에 달하는 각 문항(Questions)들에 대한 "압축된 바꾸어 말하기"인 Paul J. Glenn 몬시뇰(1893-1957)의 저서: "A Tour of the Summa(신학대전여행)"의 IIa IIae q14 성령에 맞서는 죄 전문(영문 및 우리말 번역문) 및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IIa IIae  q14 성령에 맞서는 모독 전문(영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섯 종류의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들이 있음을 IIa IIae q14 a2 에서 또한 설명하고 있기에, 필독하실 것을 강력히 권고드립니다. 

참고: 위의 제2-1항에 나열된 성령을 거스르는 죄들은 다섯 개인데, 이들에다 "다른 이의 영적 선에 대한 질투(envy)"를 추가하면, 위의 제2-3항에서 안내되고 있는 신학 대전의 해당 문항에서 성 아우구스티노가 구분하였다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언급하고 있는, 여섯 개의 성령 모독죄들과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2-4.

2-4-1. 다음은 1997년에 라틴어본 정본이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864항의 가르침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1864.htm

CCC 1864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12,31) 100) 하느님의 자비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뉘우침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기를 일부러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죄의 용서와 성령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물리치는 것이다. 101) 이러한 완고함은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게 하고 영원한 파멸로 이끌어 갈 수 있다.

 

-----
100. 마르 3,29; 루카 12,10 참조.
101. 요한 바오로 2세, 회칙「생명을 주시는 주님」 , 46항: AAS 78(1986), 864-865면 참조.
-----

게시자 주: 이 가르침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단 한 개의 항으로 파악이 되고 있으며,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6년 회칙인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 을 참조하고 있기에, 언뜻 보기에 위의 제2-3항에서 안내해 드린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서의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한 가르침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6년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제2부(제목: 죄에 관하여 세상을 납득시키시는 성령), 제6항(제목: 성령을 거스르는 죄), 제46-48조의 가르침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IIa IIae, q14, a3 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위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6년도 회칙Dominum et vivificantem 의 영문본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이 영문본 회칙의 제2부 6항 제46-48조 전문 및 우리말 졸번역문입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굵게하고 색깔을 입힌 것은 이 글의 게시자가 한 것입니다:

-----
(발췌 시작)

PART II - THE SPIRIT WHO CONVINCES THE WORLD CONCERNING SIN

제2부 - 죄에 관하여 납득시키시는 성령

(중간 부분 생략)

6. The Sin Against the Holy Spirit

6. 성령에 맞서는 죄

46. Against the background of what has been said so far, certain other words of Jesus, shocking and disturbing ones, become easier to understand. We might call them the words of "unforgiveness." They are reported for us by the Synoptics in connection with a particular sin which is called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This is how they are reported in their three versions:

46. 여태까지 말해졌던 바를 배경으로 하여, 충격적이고 불안하게 하는 말씀들인, 예수님의 특정한 다른 말씀들은 이해하는 것이 더 쉽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용서받을 수 없음"이라는 표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거스르는 모독죄" 라고 불리는 어떤 특별한 죄와 관련하여 공관 복음서들에 의하여 우리를 위하여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들이 공관 복음서들의 세 개의 판(versions)들에서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 바입니다:

 

Matthew: "Whoever say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whoever speak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either in this age or in the age to come."180

마태오 12,32: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80) 

 

Mark: "All sins will be forgiven the sons of men, and whatever blasphemies they utter; but whoever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never has forgiveness, but is guilty of an eternal sin."181

마르코 3,28-29: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181) 

 

Luke: "Every one who speak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he who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182

루카 12,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82)

-----
180. 마태 12,31-32.
181. 마르 3,28-29.
182. 루가 12,10.
-----

Why is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unforgivable? How should this blasphemy be understood ? St. Thomas Aquinas replies that it is a question of a sin that is "unforgivable by its very nature, insofar as it excludes the elements through which the forgiveness of sin takes place."183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blasphemy)는 왜 용서받을 수 없을까요? 이 모독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이 질문은, "바로 그것을 통하여 죄의 용서가 발생하는 바로 그 요소들을 죄 [그 자체]가 배제하는(excludes) 한, 죄의 바로 그 본질에 의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질문이라고 답변합니다. 183)

According to such an exegesis, "blasphemy" does not properly consist in offending against the Holy Spirit in words; it consists rather in the refusal to accept the salvation which God offers to man through the Holy Spirit, working through the power of the Cross. If man rejects the "convincing concerning sin" which comes from the Holy Spirit and which has the power to save, he also rejects the "coming" of the Counselor-that "coming" which was accomplished in the Paschal Mystery, in union with the redemptive power of Christ's Blood: the Blood which "purifies the conscience from dead works."

그러한 한 개의 주석에 따르면, "모독죄"는 말들로 성령에 맞서 거스르는 것을 고유하게(properly) 본질적인 혹은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는(consist in)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죄는, 성 십자가(the Cross)의 힘을 통하여 작용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제공하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본질적인 부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성령으로부터 오며 그리하여 구하는 힘을 가진, "죄에 관하여 납득시킴"을 거부한다면, 그는 또한 보호자(Counselor)의 "오심"도 거부하는데, 바로 이 "오심"은 파스카 신비 안에서, "죽은 행위(dead works)들로부터 양심을 정화하는" 성혈(Blood)인, 그리스도의 성혈의 구속하는 힘(redemptive power)과의 결합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We know that the result of such a purification is the forgiveness of sins. Therefore, whoever rejects the Spirit and the Blood remains in "dead works," in sin. And the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consists precisely in the radical refusal to accept this forgiveness, of which he is the intimate giver and which presupposes the genuine conversion which he brings about in the conscience. If Jesus says that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cannot be forgiven either in this life or in the next, it is because this "non-forgiveness" is linked, as to its cause, to "non-repentance," in other words to the radical refusal to be converted. This means the refusal to come to the sources of Redemption, which nevertheless remain "always" open in the economy of salvation in which the mission of the Holy Spirit is accomplished. The Spirit has infinite power to draw from these sources: "he will take what is mine," Jesus said. In this way he brings to completion in human souls the work of the Redemption accomplished by Christ, and distributes its fruits.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then, is the sin committed by the person who claims to have a "right" to persist in evil - in any sin at all - and who thus rejects Redemption. One closes oneself up in sin, thus making impossible one's conversion, and consequently the remission of sins, which one considers not essential or not important for one's life. This is a state of spiritual ruin, because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does not allow one to escape from one's self-imposed imprisonment and open oneself to the divine sources of the purification of consciences and of the remission of sins.

우리는 그러한 정화의 결과가 죄들에 대한 용서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the Spirit)과 성혈(the Blood)을 거부하는 자 누구든지, 죄 안에서, "죽은 행위"들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는, 정확하게(precisely), 당신께서 그것의 친밀한 제공자이시고 그리고 당신께서 양심 안에 불러일으키시는 참된 회심(genuine conversion)을 전제로 하는(presupposes), 바로 이러한 용서를 받아들임에 대한 근본적 거부(radical refusal)를 본질적인 부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consists in).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는, 이 세상의 삶 혹은 저 세상에서의 삶, 둘 다에 있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용서받을 수 없음"이, 그 원인에 관하여, "회개하지 않음"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여, 회심하게됨(to be converted)에 대한 근본적 거부에 연계되어(is linked)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속(Redemption, 속량)의 원천(sources)들로 다가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데, 이 원천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성령의 사명이 성취되는, 구원 계획 안에서 "항상" 개방된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다음과 같이 이들 원천들로부터 끌어당기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 나의 것인 바를 가지실 것이다" (요한 복음서 16,15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던 구속의 위업을 인간의 영혼들 안에서 완성하시며, 그리하여 그 열매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는, 어떠한 죄에 있어서든지간에, 악을 끝까지 고집하는 어떤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 그리하여 그 결과 구속(Redemption, 속량)을 거부하는 자에 의하여 범해지는 죄입니다. 그러한 자는 죄 안에 자기 스스로를 폐쇄하여, 그 결과, 그러한 자가 자신의 삶을 위하여 본질적이지 않거나 혹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회심을 불가능하게 하며, 그리하여 그 결과로 죄들의 사면(remission)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이것은 영적 황폐의 상태인데, 왜냐하면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는 그러한 자가 자신에 의하여 스스로가 수감된 감옥으로부터 탈출하여 그리하여 양심들의 정화와 죄들의 사면과 관련된(of) 신성적 원천(divine sources)들 쪽으로 스스로를 개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183.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 II a-IIae, q.14, a.3; 성 아우구스티노, Epist.  185,11,48-49:  PL 33,814-815  참조;  성 보나벤투라, Comment.  in  Evang.  S.  Lucae.  제14장,  15-16:  Ad Claras Aquas, VII, 314-315면.
-----

47. The action of the Spirit of truth, which works toward salvific "convincing concerning sin," encounters in a person in this condition an interior resistance, as it were an impenetrability of conscience, a state of mind which could be described as fixed by reason of a free choice. This is what Sacred Scripture usually calls "hardness of heart."184 In our own time this attitude of mind and heart is perhaps reflected in the loss of the sense of sin, to which the Apostolic Exhortation Reconciliatio et Paenitentia devotes many pages.185 Pope Pius XII had already declared that "the sin of the century is the loss of the sense of sin,"186 and this loss goes hand in hand with the "loss of the sense of God." In the Exhortation just mentioned we read: "In fact, God is the origin and the supreme end of man, and man carries in himself a divine seed. Hence it is the reality of God that reveals and illustrates the mystery of man. It is therefore vain to hope that there will take root a sense of sin against man and against human values, if there is no sense of offense against God, namely the true sense of sin."187

 

47. 구원을 초래하는 "죄에 관한 납득시킴"을 향한 진리의 영[즉, 성령]의 작용은 이러한 조건에 있는 자 안에서, 마치 그것이, 어떤 자유로운 선택 때문에 고착된 것으로서 설명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 말하자면 양심의 이해할 수 없음인, 내면의 저항(interior resistance)에 직면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본문에서 통상적으로 "심장의 굳음(hardness of heart, 완고함)" 184) 으로 불리는 바입니다. 우리들 고유의 시기에 있어 마음(mind)과 심장(heart)의 이러한 태도는 아마도 죄에 대한 감각의 상실에 반영되어 있을 것인데,이에 대하여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ation)인 "화해와 참회(Reconciliatio et Paenitentia)"는 많은 페이지들을 할애합니다. 185)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이 세기의 죄는 죄에 대한 감각의 상실입니다" 라고 선언하셨으며, 186) 그리고 이러한 상실은 "하느님에 대한 감각의 상실"과 함께 손을 마주잡고 나아갑니다. 방금 언급된 교황 권고에서 우리는 다음을 읽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기원이시며 그리고 최상의 목표(end)이시며, 그리고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 신성적 씨앗(a divine seed)을 가지고 있습니다(carry). 따라서 사람의 신비(the mystery of man)를 드러내고(reveals) 그리고 예증하는(illustrates) 것은 바로 하느님의 실재(reality)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하느님에 반하는 위반(offenses)들에 대한 아무런 감각들이, 즉 죄에 대한 참된 감각이, 없다면, 사람에 반하고 그리고 인간의 가치들에 반하는 죄에 대한 감각이 장차 뿌리를 내릴(take root) 것이라는 희망은 공허한 것입니다." 187)

Hence the Church constantly implores from God the grace that integrity of human consciences will not be lost, that their healthy sensitivity with regard to good and evil will not be blunted. This integrity and sensitivity are profoundly linked to the intimate action of the Spirit of truth. In this light the exhortations of St. Paul assume particular eloquence: "Do not quench the Spirit";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188 But above all the Church constantly implores with the greatest fervor that there will be no increase in the world of the sin that the Gospel calls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Rather, she prays that it will decrease in human souls - and consequently in the forms and structures of society itself - and that it will make room for that openness of conscience necessary for the saving action of the Holy Spirit. The Church prays that the dangerous sin against the Spirit will give way to a holy readiness to accept his mission as the Counselor, when he comes to "convince the world concerning sin, and righteousness and judgment."

따라서 교회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양심들의 손상되지 않고 잘 정렬되어 있는 상태(integrity of human consciences)(*)가 상실되지 않도록, 선악과 관련하여 그들의 건전한 감수성(sensitivity)이 무디게 되지 않도록, 은총을 하느님으로부터 간청합니다. 이러한 손상되지 않고 잘 정렬되어 있는 상태(integrity)와 감수성(sensitivity)은 진리의 영[즉, 성령]의 친밀한 작용에 근본적으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 안에서 성 바오로의 권고들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수사법을 당연한 것으로 채택합니다(assume):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1테살로니카 5,19);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에페소 4,30). 188)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는 이 세상에, 복음이 "성령에 맞서는 모독죄"로 부르는, 죄의 증가가 없도록 가장 큰 열정과 함께 지속적으로 간청합니다. 더 기꺼이(rather), 그녀는 이 죄가 인간의 영혼들 안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 자체의 관례(forms)들 및 체계(structures)들 안에서, 감소하도록, 그리하여 이 죄가 성령의 구하시는 작용을 위하여 필요한 양심의 바로 그 개방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도록 기도합니다. 교회는 성령에 맞서는 이 위험한 죄가, 당신께서 "죄에 관하여, 그리고 의로움(righteousness, 정의) 및 심판(judgment)(요한 복음서 16,8 참조)에 관하여 납득시키기 위하여" 오실 때에, 보호자(Counselor)로서의 당신의 사명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어떤 거룩한 준비됨에 굴복하도록(give way to) 기도합니다.

 

-----
184. 시편 81[80],13; 예레 7,24; 마르 3,5 참조.
185. 「화해와 참회」 , 18항.
186. 비오 12세, 교리 교수에 관해서 보스톤에서 열린 미국 전국 대회에 보낸 라디오 담화(1946.10.26.), Discorsi  e  Radiomessaggi, VII(1946), 228.
187. 「화해와 참회」 , 18항.
188. 1데살 5,19; 에페 4,30.
-----

-----
(*) 번역자 주: 영어로 "integrity"로 번역되는 라틴어 "integritas"를 "손상되지 않고 잘 정렬되어 있는 상태"로 번역한 것은, Merriam 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integrity" 단어의 설명과 다음에 발췌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가르침에서의 "integrity"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을 따른 것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w/u_d.htm

(발췌 시작)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aud19860903en.htm 

In this self-dominion and equilibrium he had the "integrity" (integritas) of existence, in the sense that man was intact and well-ordered in all his being.

이러한 자아-통제(self-dominion) 및 균형 안에서 그는, 사람이 자신의 있음 모두에 있어 손상되지 않았으며(intact) 그리고 잘 정렬되어있었다(well-ordered)는 의미에 있어, 존재의 "integrity" (integritas)를 가졌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발 번역 끝).
----- 

 

48. In his farewell discourse Jesus linked these three areas of "convincing" as elements of the mission of the Paraclete: sin, righteousness and judgment. They mark out the area of that mysterium pietatis that in human history is opposed to sin, to the mystery of iniquity.189 On the one hand, as St. Augustine says, there is "love of self to the point of contempt of God"; on the other, "love of God to the point of contempt of self."190 The Church constantly lifts up her prayer and renders her service in order that the history of consciences and the history of societies in the great human family will not descend toward the pole of sin, by the rejection of God's commandments "to the point of contempt of God," but rather will rise toward the love in which the Spirit that gives life is revealed.

48. 당신의 고별 설교(farewell discourse, 즉 요한 복음서 제14-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Paraclete)의 사명의 요소들로서의 "납득시킴(convincing)"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들을 결합하셨습니다: 죄, 의로움 그리고 심판. 그들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 죄에 반하는, 악의 신비(the mystery of inequity)에 반하는, 바로 이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의 신비(mysterium pietatis, the mystery of piety)(*), 189) 영역을 [분명하게 보여질 수 있도록] 선들을 그어 표시합니다(mark out). 한편으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가 말하듯이, "하느님에 대한 경멸의 단계까지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love of self)"이 있으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의 단계까지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190) 교회는, 커다란 인간 가족 안에서 양심들의 역사 및 사회들의 역사가, "하느님에 대한 경멸의 단계에까지" 하느님의 계명들을 거부함으로서, 죄의 극(the pole of sin)을 향하여 하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오히려 그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드러내어지는 바로 그 사랑을 향하여 일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올리고 그리고 자신의 봉사를 제공합니다. 

 

-----
(*) 번역자 주:
(1) 다음에 있는, 1티모테오 3,16을 포함하는, 홀수해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제1독서(1티모테오 3,14-16)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필히 참고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4_wed.htm

(2) 다음은, 1티모테오 3,16을 인용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세 개의 항들이다. 또한 필히 참고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38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c463.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c2641.htm 
-----

Those who let themselves be "convinced concerning sin" by the Holy Spirit, also allow themselves to be convinced "concerning righteousness and judgment." The Spirit of truth who helps human beings, human consciences, to know the truth concerning sin, at the same time enables them to know the truth about that righteousness which entered human history in Jesus Christ. In this way, those who are "convinced concerning sin" and who are converted through the action of the Counselor are, in a sense, led out of the range of the "judgment" that "judgment" by which "the ruler of this world is judged." 191 In the depths of its divine-human mystery, conversion means the breaking of every fetter by which sin binds man to the whole of the mystery of iniquity.

성령에 의하여 자기 자신들을 "죄에 관하여 납득하게" 되도록 허락하는 자들은 또한 자기 자신들을 "의로움과 심판에 관하여" 납득하게 되도록 허락합니다. 인간들이, 인간의 양심들이, 죄에 관한 진리를 알게 되도록 도와주시는 진리의 영[즉, 성령]께서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역사에 들어온 바로 그 의로움에 관한 진리를 그들이 알게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죄에 관하여 납득하게 된" 그리하여 협조자의 작용을 통하여 회심하게 된 자들은, 어떤 의미에 있어, 바로 그것에 의하여 "이 세상의 우두머리 [즉, 사탄]가 심판받는" 191) 바로 그 "심판(judgment)"인 "심판"의 범위로부터 인도되어 나오게 됩니다. 바로 이 신인의 신비(its divine-human mystery) 안에서, 회심(conversion)은, 그것으로써 죄가 사람을 악의 신비 전체에 묶는, 모든 속박(fetter)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Those who are converted, therefore, are led by the Holy Spirit out of the range of the "judgment," and introduced into that righteousness which is in Christ Jesus, and is in him precisely because he receives it from the Father,192 as a reflection of the holiness of the Trinity. This is the righteousness of the Gospel and of the Redemption, the righteousness of the Sermon on the Mount and of the Cross, which effects the purifying of the conscience through the Blood of the Lamb. It is the righteousness which the Father gives to the Son and to all those united with him in truth and in love.

그러므로, 회심하게 된 자들은 "심판"의 영역으로부터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어 나오게 되며,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여(exactly), 성삼위의 성성(聖性, holiness, 거룩하심)의 반향(a reflection)로서, 그분께서 성부로부터 그것을 받으시는 이유 때문에 192) 그분 안에 있는, 바로 그 의로움으로 인도됩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성혈을 통하여 양심의 정화를 결과로서 가져오는, 복음 및 구속의 의로움, 산상 설교 및 십자가의 의로움입니다. 이것이 성부(the Father)께서 성자(the Son)께 주시고 그리고 진리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그분께 결합된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바로 그 의로움입니다.

 

In this righteousness the Holy Spirit, the Spirit of the Father and the Son, who "convinces the world concerning sin," reveals himself and makes himself present in man as the Spirit of eternal life.

바로 이 의로움 안에서, "죄에 관하여 이 세상을 납득시키시는", 성부와 성자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영으로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리고 당신 스스로를 사람 안에서 현존하게 하십니다.

-----
189. 「화해와 참회」 , 14-22항.
190. 성 아우구스티노, 「신국론」 , XIV, 28: CCL 48,451.
191. 요한 16,11 참조.
192. 요한 16,15 참조.
-----

(이상 발췌 끝).
----------

게시자 주:

여기를 클릭하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6년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영문 요약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사항 한 개: 끝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6년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제2부(제목: 죄에 관하여 세상을 납득시키시는 성령), 제6항(제목: 성령을 거스르는 죄), 제46-48조의 우리말 번역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쁘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이 기존의 우리말 번역문과 위의 졸번역문이 얼마나,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서로 다른지를 비교/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오류/미숙 지적 한 개:

라틴어로
mysterium pietatis 로 표현되고, 그리고 영어로 the mystery of piety, the mystery of godliness(DRV, 1티모테오 3,16), the mystery of religion(RSV, 1티모테오 3,16), the mystery of devotion(NAB, 1티모테오 3,16) 등으로 표현되는 용어의 우리말 번역 용어가, 예를 들어,

(i)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1986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 제48항의 우리말 번역문에서는 "충실성의 신비"로 번역되었고,

(ii)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1997년에 라틴어 정본이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385항에서는 "경외의 신비"로 번역이 되었고,

(iii)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자의 교서 "하느님의 자비(Misericordia Dei)"에서는 "사랑의 신비"로 번역이 되었고, 그리고

(iv) 2005년에 발행된 "새 번역 성경"1티모테오 3,16에서는 "신앙의 신비"로 번역이 되었는데,

조속한 시일 내에, 라틴어로 mysterium pietatis 로 표현되는 용어에 대응하는 동일한 신학적 개념을 표현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 한 개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개인적 생각을 말씀드리면,  "신앙의 신비(1티모테오 3,16)" 혹은 "경외의 신비(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85항)"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공경)의 신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1) mysterium fidei(the mystery of faith)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직역 번역하면 "신앙의 신비" 이며, 그리고 

(2)"신앙의 신비" 라는 번역 용어 자체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처럼, 성찬 예식 중에 제대에서 사제에 의하여 행해지는 성변화 신비(mystery of transubstantiation)에 대한 또다른 포괄적 언급이나, 그러나 자구 해석에 익숙한 독자들에 의하여, 미사 중의 성찬 전례에서의 이러한 고유의 의미와는 달리, 자칫 자의적/임의적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신앙(믿음, faith)초자연적 덕들인 향주삼덕(theological virtues)들 중의 한 개의 덕이나,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공경)(piety)자연적 덕들인 사추덕(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윤리덕인 의로움(justice, 정의)에 속하는 한 개의 덕이며 그리고 성령칠은(성령의 일곱 가지 선물)들 중의 한 개의 선물도 또한 "piety" 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0월 8일]

(*) 게시자 주: 여기서 또한 "공경" 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piety/pietas" 라는 단어의 자구적 어의(語義)/의미(literal sense)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concept_error.htm

[이상, 내용 추가 끝].

(4) 그리고 예를 들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85항에서는, 라틴어 mysterium pietatis

虔敬奧跡(건경오적)

로 번역하였고, 그리고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신약 성경 1티모테오 3,16에서는

虔敬的奧蹟(건경적오적)

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들 두 번역 표현들은 나타내는 내용에 있어 동일하다는 생각이며, 그리고 이 중국어 번역 용어는, 우리말로 번역된 "신앙의 신비" 혹은 "경외의 신비"라는 번역 용어의 자구적 의미보다는, "경의(敬意)와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공경)의 신비" 라는 우리말 번역 용어의 자구적 의미에 월씬 더 가까운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5) 끝으로, 200주년 신약성서 1티모테오 3,16에서는 "경외의 신비"로 번역하였습니다만, 성령칠은에서, 덕(virtue)이 아닌, 영어로 "fear"로 번역되는 표현을, "경외"로 번역하고 있으며,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여 살펴보면 쉽게 추론(reasoning)할 수 있듯이, mysterium fidei(the mystery of faith, 신앙의 신비)라는 용어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공경)(piety)"이 나타내는 개념과 동일하지 않은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용어라는 생각입니다.
-----

특히, 위의 우리말로 번역된 문헌들에서, "충실성의 신비" 혹은 "사랑의 신비"로 번역된 것은 상당히 잘못된 번역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상, 번역 미숙/오류 지적 끝).
----------

안내 1매일(주일 및 대축일 포함) 미사 독서들에 대한 강론 혹은 묵상 원고를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하여 그 집필이 시작되어, 교황청립 스페인 나바르 대학교 신학과 교수진에 의하여, 2000년 대희년에 즈음하여 영어본 초판이 발행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성경해석을 매우 충실하게 따르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로부터 발췌된 매일미사용 영어본 독서(RSV 발췌)들 및 이들에 대한 해설들을, 총 6권으로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 출판사, 엮은이: 소순태)의 각 과의 마지막 페이지의 각주로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주소인

http://ch.catholic.or.kr/pundang/4/update/....htm

에서, 사용하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편집하여 제공해 드리고 있으니, 유용하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안내 2: 여기를 클릭하면, 지난 달인 11월 27일에 시작된, 2012년 나해 대림 첫 주일부터 약 6개월간, 주일 미사 및 대축일의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에 대한 구입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안내 3:
여기를 클릭하면, 이 책들이 교회의 출판 허가를 득한 후에 출판된 배경 설명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55시간 (참고 및 인용 자료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포함)



4,104 3

추천

성령모독죄,절망,자포자기,단념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