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경 본문의 무오성(inerrancy)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입장 [성경해석] 969_토미즘학습 [성경번역] [_번역] 782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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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232.2.*] 2012-10-25 ㅣ No.1279
St. Augustine: "If in these Books I meet anything which seems contrary to truth, I shall not hesitate to conclude either that the text is faulty, or that the translator has not expressed the meaning of the passage, or that I myself do not understand." 출처: [교황 레오 13세의 1893년 회칙 [제목: PROVIDENTISSIMUS DEUS] 제21항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으며, 원 출처(Ep. lxxxii., i)는 아래의 회칙에 주어져 있다] "진리(truth)" 혹은(/) "참(true)" 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별력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을 읽을 때에, 미리 알고 계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00 부터
(기원전 3-2세기경에) "칠십인역 그리스어 성경을 번역할 때에, 히브리어 성경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 히브리어 모음들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성경 본문에 그리스어 모음들이 추가된 관계로 그리스어 번역본이 약 50% 정도 더 두꺼워져, 원래의 히브리 성경에서 1권이었던 사무엘서, 역대기, 판관기 등의 책들이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2권으로 나누어졌다." "사해 사본은 [(기원후 9세기 경에 편집된) 마소라본 구약 성경보다] 칠십인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에 훨씬 더 가깝다". 41:41 부터
또한 그는, "칠십인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의 번역의 질이 나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이와는 달리, "유다교 율법학자(scribes)들이 사본을 필사할 때에, 예를 들어, 세 번 반복되는 t로 끝나는 단어들의 필사에 있어 가운데 단어인 두 번째 단어를 누락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추정컨데 약 5-10% 정도), 마소라본에 필사자들의 실수가 더러 있음을 말하면서, 마소라본 히브리 성경에 있는 이 누락 오류들을 향후 40년 동안 (한 개의 과제로서) 바로 잡을 것을 제안한다." 47:34 까지 (동영상 자료: David N. Freedman, Biblical Scholarship)
(이상, 발췌 끝). 2-2-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오리게네스(Origen, 185-254년)에 의하여 마련되었던 "Hexapla" 저서에 관한 간략한 안내입니다: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3920 (발췌 시작) HEXAPLA Origen's critical edition of the Old Testament in Hebrew and Greek in the late second century.(*) This sixfold Bible in fifty volumes is arranged in six parallel columns containing the Hebrew text in Hebrew and Greek characters, the Septuagint, and three other Greek versions. Origen wished to show the relationship of the Septuagint to the Hebrew and Greek texts. The column exhibiting the Septuagint is the only one that has survived. (Etym. Greek hexapla, six-fold.) 헥사플라(Hexapla) 3세기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오리게네스(Origen)에 의한 구약 성경의 본문 교정판(critical edition)을 말합니다. 50권들로 이루어진 이 여섯 겹의 성경은, 히브리어과 그리스어 글자로 쓰인 히브리어 본문, 칠십인 역(the Septuagint), 그리고 세 개의 다른 그리스어 본들을 포함하는 여섯 개의 병행 열(six parallel columns)들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사본들에 대한 칠십인 역의 관계를 보는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칠십인 역을 표시하는 열(column)은 살아 남은 유일한 열입니다. [어원. Greek hexapla, six-fold 여섯 겹]. ----- (*) 번역자 주: 오리게네스의 생존 시기, 그리고, 예를 들어, 이 본문 교정판이 마련된 시기가 기원후 245년 이전이라는 다음의 자료에 따라, 번역자가 "2세기말"을 "3세기"로 바로 잡았다: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64633/Hexapla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3. 오리게네스가 "Hexapla"라는 제목의 방대한 저술을 하게 된 이유는, 그 당시에 유다인들이 사용 중이던 히브리어 구약 성경(소위 말하는, "얌니아 본(Jamnian Version)"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일부 본문들과 그리스도교에서 사용 중이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이전의 시기인 기원전 300-200년경에 번역이 되었던, "칠십인 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의 일부 본문들이 상당히 다른 이유를 파악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상당한 기간 동안 일부 유다교측 성서 학자들 및 16세기 이후에 처음 등장한 개신교측의 일부 성서 학자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측에서 공인 구약 성경으로 거의 2000년 동안 사용해 온 "칠십인 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이 조악한 번역본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그러나 1947-1956년 기간 동안에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들의 발견 이후부터는, 이러한 주장이 거짓임(false)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과 출처는 위의 제2-2-1항에 있습니다. 2-3. 그 다음으로, 그러나 (ii) 번역자가 어떤 구절의 의미를 표현하지/붙잡지 못하는 경우는, 16세기 이후부터,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개신교측에서 성경 본문을 여러 지역 언어들로 점차 많이 번역하게 되면서, 이전의 어떤 시기들에서보다 그 문제점들(당연히, 여기에는 성경의 무오성이 훼손되는 경우도 포함됨)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3일] 특정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성경의 무오성이 훼손된 경우는, 예를 들어, 16세기 중반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로마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로마서 3,28에서, "믿음으로" 라고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믿음만으로" 라고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한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스콧트 한(Scott Hahn) 박사의 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04.htm (발췌 시작) 첫 번째,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것을 결코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루터가, 거기 로마서 제3장에서, 비록 그가 "만으로(alone)"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본 로마서 제3장 [3,28]에 있지 않음을 원숙하게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으로(alone)"라는 단어를 자신의 독일어 번역에서 삽입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도 성령께서 믿음만으로 우리가 구하여진다고 말하라고 성경의 저술자에게 전혀 영감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더 나아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자신의 교리적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16세기 당시까지의 그리스도교 교회의 구약 성경 경전들 중에서, 소위 제2경전로 불리는 일곱 경전들이, 자신 고유의 판단에 따라, 경건하지 않다면서 구약 성경에서 제거하려고 시도하였고, 그리고 신약 성경의 경전들 중에서 다수의 경전들(여기에는 야고보서, 히브리서, 요한 2서 요한 3서, 요한 묵시록 등이 포함됨)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시도 자체가, 마르틴 루터가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2-3-1. 왜냐하면, 4세기에 성 다마소 교황의 명에 의하여, 성 예로니모(St. Jerome, 342-420년)가 그리스도교의 공인 성경인 라틴어본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을 마련한 이후로, 1960년대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미사 중의 독서들 (여기에는 복음 말씀도 포함)로 읽히는 것이 승인된, 그리스도교의 공인 성경은, 소위 말하는, "대중 라틴어본 성경"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2-3-2.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가톨릭 보편 교회이 교도권은,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갑자기 대두된 한 개의 사조인 세속의 양성평등 사상의 교회 안으로의 침투 시도 등으로 인하여 더욱 더 복잡해진 바로 이 자국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서인 듯, 전례문, 성경,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교회의 핵심 문헌들의 자국어로의 번역시에 준수하여야 하는 사항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지침서"를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2001년에 공지하였습니다. 2-3-3.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 지침서의 출처를 참고하시고 또 이 지침서로부터의 발췌문(제41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0.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1일] 3. 그리고 가톨릭 보편 교회는, 16세기 중반쯤의 마르틴 루터 이후에 등장한 개신교측과는 달리, "성서 자유 해석주의" 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들"의 근거 구절들인 성경 본문들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은 교회법적으로 개인들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4. 그리고 간혹 어떤 분들이, (i)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하는 용어 번역 오류와 (ii) 성경 본문의 해석(interpretation)을 동일시 하고 있는데, 이들 둘은 대단히 다른 것이니 부디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권은,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에만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5, 890, 2033항). 그러나 언어 장벽 및 문화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어느 특정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 오류/미숙의 문제는, 발견 즉시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바로잡도록 해당 지역 교회의 구성원들이 성실하게 노력하여야 하는 문제이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과 "해당 지역 교회의 교도권"과 무관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이 개발하여 적용하고 있는 직역 번역의 원칙들 및 방법론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3일] 그리고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 성경바로알기 에서 과거에 공개로 제공되었던 게시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6150&bid=13000394 (발췌 시작) 성서가 무오하다고 성서 번역본도 무오하지는 않습니다. (성서의 무오성 또한, 자구적 무오성은 아닙니다) 어떤 번역도 완전할 수 없으며, (이건 오탈자 문제가 아닌, 번역 자체의 문제입니다) 더욱이 오탈자는 처음 몇 판에는 당연히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개신교 성서공회나 천주교의 성서 출판 기관 역시 다 그렇습니다. 용납 못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느님입니까?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의 발췌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관련하여 말씀을 드리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평소에 정밀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분야는, 언어 장벽과 문화 장벽 때문에 발생하는 개념 전달 장애(걸림돌)(sbumbling block)/미숙(immaturity)/실패(failure)에, 그리하여 그 결과,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의 용어 번역 오류/미숙에, 한정(限定)/국한(局限)되어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29일] 그리고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 오류는, 예를 들어, (i) 번역 대본에서 다루고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신학적 개념들 그 자체들과 그리고 (ii) 애초에 번역 대본이 기록된 지역의 해당 민족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필수적으로 요구함에 주목하십시오. 이들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확보되지 않을 때에는,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설사 번역자들이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더라도, 번역 오류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초벌 번역 과정에서 개념 전달 장애에 기인하는 심각한 번역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초벌 번역자와 동일한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동시대인들이 예를 들어, 이 초벌 번역본을 백 번에 걸쳐 성실하게 윤독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개념 자체에 무지하기 때문에 발행하는 개념 전달 장애에 기인하는 번역 오류는 제대로 찾아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말씀드리는, 언어 장벽과 문화 장벽 때문에 발생하는 개념 전달 장애(걸림돌)(stumbling block)/미숙/실패의 의미입니다.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께서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지금 지적한 바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서,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여러 번 잘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4.htm <----- 필독 권고 특히 바로 위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중대한 번역 오류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또한 꼭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1 1,78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