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경 본문의 무오성(inerrancy)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입장 [성경해석] 969_토미즘학습 [성경번역] [_번역] 78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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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 ㅣ No.1279


[추가 일자: 2013년 8월 3일]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이상, 추가 끝].

 


+ 찬미 예수님!

0.
다음은, 널리 알려진,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성경 본문의 무오성(inerrancy)에 대한 입장입니다:

St. Augustine: "If in these Books I meet anything which seems contrary to truth, I shall not hesitate to conclude either that the text is faulty, or that the translator has not expressed the meaning of the passage, or that I myself do not understand."

성 아우구스티노: "만일 이들 성스러운 책(Books)들에서 진리에 상반되는 것같은 어떤 것을 제가 만난다면, 그 사본(the text)이 결함이 있거나, 혹은 번역자가 그 구절의 의미를 표현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셋 중의 하나라고 결론내리는 것을 망서리지 않을 것입니다." (엮은이 번역).

출처: [교황 레오 13세1893년 회칙 [제목: PROVIDENTISSIMUS DEUS] 제21항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으며, 원 출처(Ep. lxxxii., i)는 아래의 회칙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l-xiii_enc_18111893_pd_en.htm

게시자 주: 교황 레오 13세1893년 회칙[제목: PROVIDENTISSIMUS DEUS] 본문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위의 성 아우구스티노의 입장이 받아들여져 수용되었기 때문에, 성 아우구스티노의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에 대한 바로 이러한 입장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인준을 받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2일]

(i) 위에 발췌 인용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성경 본문의 무오성에 대한 입장은, 그가 405년에 성 예로니모(St. Jerome)에게 보낸 다음의 서신 lxxxii, i, 3(82, 1, 3) 에서 밝히고 있는 바입니다. 위의 영문 번역본과 아래의 영문 번역본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fathers/1102082.htm

(발췌 시작)
"And if in these writings I am perplexed by anything which appears to me opposed to truth, I do not hesitate to suppose that either the manuscript is faulty, or the translator has not caught the meaning of what was said, or I myself have failed to understand it."

"그리고 만일 이들 저술들에서 저에게 진리에 상반되는 것같은 어떤 것에 의하여 제가 혼란케 된다면, 그 사본(the manuscript)이 결함이 있거나, 혹은 번역자가 말해진 바의 의미를 붙잡지 못하였거나, 혹은 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셋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망서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ii) 다음은, 1965년 11월 18일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제11항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문장의 근거 문헌으로서, 위의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성 예로니모(St. Jerome)에게 보낸 서간문의 82, 1, 3이 또한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사실은, 성경 본문의 무오성(inerrancy)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입장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으로 수용되었음을 확실하게 말해 준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우리말본)

(발췌 시작)
그러므로 영감 받은 저자들, 또는 성경 저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경에 기록되기를 원하신, [바로 그]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르침이 없이(without error) 가르친다고 고백해야 한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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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 아우구스티노, 「창세기 축자 해석」, 2,9,20, PL 34,270-271;  CSEL
28,1, 46-47과「서간집」, 82,3, PL 33,277; CSEL 34,2,354; 성 토마스
데 아퀴노, 「가톨릭 신앙의 진리」, q.12, a.2, C.; 트리엔트 공의회, 정경에
관한 결정, Dz 783(1501); Providentissimus Deus, EB 121.124.126-
127; 「성령의 영감」, EB 53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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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영어본)

Therefore, since everything asserted by the inspired authors or sacred writers must be held to be asserted by the Holy Spirit, it follows that the books of Scripture must be acknowledged as teaching solidly, faithfully and without error that truth which God wanted put into sacred writings (5) for the sake of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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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f. St. Augustine, "Gen. ad Litt." 2, 9, 20:PL 34, 270-271; Epistle 82, 3: PL 33, 277: CSEL 34, 2, p. 354. St. Thomas, "On Truth," Q. 12, A. 2, C.Council of Trent, session IV, Scriptural Canons: Denzinger 783 (1501). Leo XIII, encyclical "Providentissimus Deus:" EB 121, 124, 126-127. Pius XII, encyclical "Divino Afflante Spiritu:" EB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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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iii) 그리고, 다음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86년 8월 28일자 교황 교서 [AUGUSTINUM HIPPONSENSEM(히포의 아우구스티노)],IV 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아래의 발췌 부분 및 각주들을 또한 참고하십시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It is well known how much Augustine loved Sacred Scripture, proclaiming its divine origin,(266) its inerrancy,(267) its depth and inexhaustible riches;(268) and it is well known how much he studied Scripture.

아우구스티노(Augustine)가 얼마나 성경 본문을 사랑하였기에, 그 결과 그 하느님의 원천(266), 그 무오성(inerrancy)(267), 그 깊이와 다함이 없는 풍부함을 [그가] 선언하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그가 성경 본문을 얼마나 학습하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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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Cf.Enarr. in Ps 90, d. 2, 1 : PL 37, 1159-1160.
267. Cf. Ep. 28, 3, 3: PL 33, 112; 82, 1, 3: PL 33, 277.
268. Cf. Ep. 137, 1, 3: PL 33,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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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3일]

(iv)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의 저자인 Hardon 신부님의 글 [제목: The Catholic Understanding of the Bible]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입장을 수용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며, 영어 가능한 분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Sacred_Scripture/
Sacred_Scripture_015.pdf


(발췌 시작)
..., the Catholic position is uncompromising. It is synthesized in a famous statement of St. Augustine, writing to St. Jerome: “If in these books of the Bible, I meet anything which seems contrary to truth, I will not hesitate to conclude either that the text is faulty, or the translator failed to express the meaning of the passage, all(*) that I myself do not understand” (Letter 77,1).

..., 가톨릭 입장은 단호합니다. 이 입장은 성 예로니모(St. Jerome)에게 서신을 써서 보내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의 유명한 진술(statement)에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성경의 이들 책들에서 진리에 상반되는 것같은 어떤 것을 제가 만난다면, 그 사본(the text)이 결함이 있거나, 혹은 번역자가 그 구절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에 실패하였거나, 혹은 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셋 중의 하나라고 결론내리는 것을 망서리지 않을 것입니다." (Letter 77,1).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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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동일한 문장에 대한 위의 두 개의 영어본들과 비교하면, 여기서 "all" 은 "or" 의 오기임 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보듯이, "Letter 77, 1" 도 정확한 출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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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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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성 아누구스티노의 글에서,

1.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진리(truth)" 혹은(/) "참(true)" 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true)" 혹은 "진실" 이라고 받아들일 때가 어떠한 경우인지,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는 참(true)의 종류들이,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가지가 있음에 대한 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별력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을 읽을 때에, 미리 알고 계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2. 성 아우구스티노는, 위의 제0항의 발췌문에서, 원 저자가 하느님이신 성경 본문의 무오성에 대하여 상당히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만일 이들 성스러운 책(Books)들에서 진리에 상반되는 것같은 어떤 것을 제가 만난다면,

(i) 그 사본(the text/manuscript)이 결함이 있거나, 혹은

(ii) 번역자가 그 구절의 의미를 표현하지/붙잡지 못하였거나, 혹은

(iii) 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셋 중의 하나라고 결론내리는/생각하는 것을 망서리지 않을 것입니다."

2-1. 여기서, (iii) 자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성경 본문 중의 특겅 구절 자체가 너무 어려운 경우, 혹은 독자의 이해력 등의 지적 능력이 아직은 성경 본문 중의 특정 구절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유다교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그리스도왕 대축일 제1독서(에제키엘 34,11-12.15-17) 입문.

(발췌 시작)
성 예로니모(St. Jerome)가, 에제키엘서에 대한 자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註)를 단(notes) 것은 흥미롭다: 어떠한 자도, 그의 나이가, 사제들이 그들의 직무를 시작하는 바로 그 나이인, 나이(30살)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 책의 시작 부분과 끝 부분[그리고 또한 창세기의 시작 부분과 아가(Song of Songs) 전체]을 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라삐의 전통(rabbinic tradition)에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 구절들에 있는 제재(題材, material)에 의하여 요청되는 바와 같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완미한 지식(perfect knowledge)과 신비적 영감에 의한 이해(mystical understanding)를 위하여 인성(human nature)의 충분한 성숙(full maturity)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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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신학적 용어인 "완미한(perfect)"과 일상의 용어인 "완전한(complete)"의 차이점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4.htm

(2) 신학적 용어들인 "신비한(mysterious)"와 "mystical"의 차이점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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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리고 (i) 사본이 결함이 있는 경우는, 다른 이가 읽어주는 성경 본문을 필사자가 듣고서 받아 적는 경우, 혹은 성경 본문을 혼자서 필사할 때에 발생하는 문제로서, 지금과 같은 인쇄술이 잘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 즉 적어도 16세기 이전의 시기에 더러 발생하였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몇 가지들을 말씀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2-2-1. 다음은 Anchor 성경 주석서의 책임 편집자 David N. Freedman의 언급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60.htm <----- 필독 권유

(발췌 시작)
 참고 사항으로, 개신교 측 성서학자로서 Anchor 성경 주석서의 책임 편집자인 David N. Freedman은, 사해 문서들에 대하여 강연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언급을 하였습니다:

30:00 부터
(기원전 3-2세기경에) "칠십인역 그리스어 성경을 번역할 때에, 히브리어 성경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 히브리어 모음들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성경 본문에 그리스어 모음들이 추가된 관계로 그리스어 번역본이 약 50% 정도 더 두꺼워져, 원래의 히브리 성경에서 1권이었던 사무엘서, 역대기, 판관기 등의 책들이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2권으로 나누어졌다.

"사해 사본은 [(기원후 9세기 경에 편집된) 마소라본 구약 성경보다] 칠십인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에 훨씬 더 가깝다".
 
41:41 부터
그는, "칠십인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의 번역의 질이 나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이와는 달리, "유다교 율법학자(scribes)들이 사본을 필사할 때에, 예를 들어, 세 번 반복되는 t로 끝나는 단어들의 필사에 있어 가운데 단어인 두 번째 단어를 누락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추정컨데 약 5-10% 정도), 마소라본에 필사자들의 실수가 더러 있음을 말하면서, 마소라본 히브리 성경에 있는 이 누락 오류들을 향후 40년 동안 (한 개의 과제로서) 바로 잡을 것을 제안한다."
47:34 까지 

(동영상 자료: David N. Freedman, Biblical Scholarship)
(이상, 발췌 끝).

2-2-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오리게네스(Origen, 185-254년)에 의하여 마련되었던 "Hexapla" 저서에 관한 간략한 안내입니다: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3920

(발췌 시작)

HEXAPLA

Origen's critical edition of the Old Testament in Hebrew and Greek in the late second century.(*) This sixfold Bible in fifty volumes is arranged in six parallel columns containing the Hebrew text in Hebrew and Greek characters, the Septuagint, and three other Greek versions. Origen wished to show the relationship of the Septuagint to the Hebrew and Greek texts. The column exhibiting the Septuagint is the only one that has survived. (Etym. Greek hexapla, six-fold.)

헥사플라(Hexapla)

3세기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오리게네스(Origen)에 의한 구약 성경의 본문 교정판(critical edition)을 말합니다.
50권들로 이루어진 이 여섯 겹의 성경은, 히브리어과 그리스어 글자로 쓰인 히브리어 본문, 칠십인 역(the Septuagint), 그리고 세 개의 다른 그리스어 본들을 포함하는 여섯 개의 병행 열(six parallel columns)들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사본들에 대한 칠십인 역의 관계를 보는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칠십인 역을 표시하는 열(column)은 살아 남은 유일한 열입니다. [어원. Greek hexapla, six-fold 여섯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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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오리게네스의 생존 시기, 그리고, 예를 들어, 이 본문 교정판이 마련된 시기가 기원후 245년 이전이라는 다음의 자료에 따라, 번역자가 "2세기말"을 "3세기"로 바로 잡았다: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64633/Hexap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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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3. 오리게네스가 "Hexapla"라는 제목의 방대한 저술을 하게 된 이유는, 그 당시에 유다인들이 사용 중이던 히브리어 구약 성경(소위 말하는, "얌니아 본(Jamnian Version)"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일부 본문들과 그리스도교에서 사용 중이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이전의 시기인 기원전 300-200년경에 번역이 되었던, "칠십인 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의 일부 본문들이 상당히 다른 이유를 파악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상당한 기간 동안 일부 유다교측 성서 학자들 및 16세기 이후에 처음 등장한 개신교측의 일부 성서 학자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측에서 공인 구약 성경으로 거의 2000년 동안 사용해 온 "칠십인 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이 조악한 번역본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그러나 1947-1956년 기간 동안에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들의 발견 이후부터는, 이러한 주장이 거짓임(false)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과 출처는 위의 제2-2-1항에 있습니다.

2-3. 그 다음으로, 그러나 (ii) 번역자가 어떤 구절의 의미를 표현하지/붙잡지 못하는 경우는, 16세기 이후부터,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개신교측에서 성경 본문을 여러 지역 언어들로 점차 많이 번역하게 되면서, 이전의 어떤 시기들에서보다 그 문제점들(당연히, 여기에는 성경의 무오성이 훼손되는 경우도 포함됨)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3일]

특정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성경의 무오성이 훼손된 경우는, 예를 들어, 16세기 중반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로마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로마서 3,28에서, "믿음으로" 라고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라고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한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스콧트 한(Scott Hahn) 박사의 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04.htm

(발췌 시작)
첫 번째,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것을 결코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루터가, 거기 로마서 제3장에서, 비록 그가 "만으로(alone)"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본 로마서 제3장 [3,28]있지 않음을 원숙하게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으로(alone)"라는 단어를 자신의 독일어 번역에서 삽입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도 성령께서 믿음만으로 우리가 구하여진다고 말하라고 성경의 저술자에게 전혀 영감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더 나아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자신의 교리적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16세기 당시까지의 그리스도교 교회의 구약 성경 경전들 중에서, 소위 제2경전로 불리는 일곱 경전들이, 자신 고유의 판단에 따라, 경건하지 않다면서 구약 성경에서 제거하려고 시도하였고, 그리고 신약 성경의 경전들 중에서 다수의 경전들(여기에는 야고보서, 히브리서, 요한 2서 요한 3서, 요한 묵시록 등이 포함됨)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시도 자체가, 마르틴 루터가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2-3-1. 왜냐하면, 4세기에 성 다마소 교황의 명에 의하여, 성 예로니모(St. Jerome, 342-420년)가 그리스도교의 공인 성경인 라틴어본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을 마련한 이후로, 1960년대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미사 중의 독서들 (여기에는 복음 말씀도 포함)로 읽히는 것이 승인된, 그리스도교의 공인 성경은, 소위 말하는, "대중 라틴어본 성경"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2-3-2.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가톨릭 보편 교회이 교도권은,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갑자기 대두된 한 개의 사조인 세속의 양성평등 사상의 교회 안으로의 침투 시도 등으로 인하여 더욱 더 복잡해진 바로 이 자국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서인 듯, 전례문, 성경,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교회의 핵심 문헌들의 자국어로의 번역시에 준수하여야 하는 사항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지침서"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2001년에 공지하였습니다.

2-3-3.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 지침서출처를 참고하시고 또 이 지침서로부터의 발췌문(제41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0.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1일]

3.
그리고 가톨릭 보편 교회는, 16세기 중반쯤의 마르틴 루터 이후에 등장한 개신교측과는 달리, "성서 자유 해석주의" 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들"의 근거 구절들인 성경 본문들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은 교회법적으로 개인들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4. 그리고 간혹 어떤 분들이,

(i)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하는 용어 번역 오류

(ii) 성경 본문의 해석(interpretation)

동일시 하고 있는데, 이들 둘은 대단히 다른 것이니 부디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권은,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에만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5, 890, 2033항).

     그러나 언어 장벽 및 문화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어느 특정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 오류/미숙의 문제는, 발견 즉시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바로잡도록 해당 지역 교회의 구성원들이 성실하게 노력하여야 하는 문제이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해당 지역 교회의 교도권"과 무관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이 개발하여 적용하고 있는 직역 번역의 원칙들 및 방법론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3일]

그리고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 성경바로알기 에서 과거에 공개로 제공되었던 게시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6150&bid=13000394

(발췌 시작)
성서가 무오하다고 성서 번역본도 무오하지는 않습니다.
(성서의 무오성 또한, 자구적 무오성은 아닙니다)

어떤 번역도 완전할 수 없으며,
(이건 오탈자 문제가 아닌, 번역 자체의 문제입니다)

더욱이 오탈자는 처음 몇 판에는 당연히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개신교 성서공회나 천주교의 성서 출판 기관 역시 다 그렇습니다. 용납 못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느님입니까?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의 발췌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관련하여 말씀을 드리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평소에 정밀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분야는, 언어 장벽과 문화 장벽 때문에 발생하는 개념 전달 장애(걸림돌)(sbumbling block)/미숙(immaturity)/실패(failure), 그리하여 그 결과,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의 
용어 번역 오류/미숙에, 한정(限定)/국한(局限)되어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29일]

그리고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 오류는, 예를 들어,

(i) 번역 대본에서 다루고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신학적 개념들 그 자체들과 그리고

(ii) 애초에 번역 대본이 기록된 지역의 해당 민족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필수적으로 요구함에 주목하십시오. 이들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확보되지 않을 때에는,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설사 번역자들이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더라도, 번역 오류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초벌 번역 과정에서 개념 전달 장애에 기인하는 심각한 번역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초벌 번역자와 동일한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동시대인들이 예를 들어, 이 초벌 번역본을 백 번에 걸쳐 성실하게 윤독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개념 자체에 무지하기 때문에 발행하는 개념 전달 장애에 기인하는 번역 오류는 제대로 찾아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말씀드리는, 언어 장벽과 문화 장벽 때문에 발생하는 개념 전달 장애(걸림돌)(stumbling block)/미숙/실패의 의미입니다.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께서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지금 지적한 바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서,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여러 번 잘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4.htm <----- 필독 권고

특히 바로 위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중대한 번역 오류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또한 꼭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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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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