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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우리들 안에 神性이 감추어져 있습니다(사순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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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4-03-08 ㅣ No.4284

사순 제 2 주일                                                            2004. 3. 7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래 전, 어느 성당에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청했습니다.

고백소에서 저는 아주 암울하게 제 안에 있는 어두움에 대해 고백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숱한 어두움이 있지만 어두움만을 크게 보려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남들이 갖지 못한 좋은 면들, 아름다운 면들도 많이 심어 주셨습니다.

그 밝은 면들도 함께 보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것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깊게 박혀있는 어두움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어두움만 바라보면 죄의식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밝음을 바라보고 그것을 더 성장시키려 노력해 가다 보면

우리는 죄의식을 떨쳐버릴 수 있고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저는 오랫동안 싸워왔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약하기만 한 제 모습을, 제 어두운 모습을 포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고백소에서 가끔씩 이런 이야기를 교우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오면 교우 분들이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고 인사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들도 장난삼아 머리 뒤쪽으로 후광이 보이지 않느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두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도 피정 중에 하느님을 만나려고 노력했다면,

하느님께서는 분명 그를 찾아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얼굴이 변하여 환하게 밝아졌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구약성서는 모세가 야훼 하느님을 뵙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감히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모세 안에 감추어진 신성은 그렇게 환하게 빛났던 것입니다.

그런 모세는 그러나 약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에집트로 내려가서 고통 당하는 동족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들은 모세는

내가 그런 능력이 어디에 있겠냐며 핑계대기에 바빴던 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들 안에는 이처럼 어둡고 약한 인간성의 모습과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눈부시고 강한 신성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순교자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복된 순교자 누구는 주님을 현양하려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피를 흘려 주님의 위대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을 증언할 강한 힘을 주셨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제는 미사 중에 예물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하나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하셨던 7 가지 말씀 중에도

인간의 약한 모습과 하느님의 강한 모습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토록 믿었던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마저 버림받은 것 같은 처절한 고독과

그로 인한 고통의 극치로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외마디 부르짖음을 토해 내십니다.

그렇기에 이 절규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드립니다!"

 

이 말씀은 고통을 이겨낸 신적 인간의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나약한 인간성을 딛고 넘어서서 인간 안에 감추어진 신성이 드러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 주일 복음과도 연결시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성은 끊임없이 유혹 받고 있고, 예수님의 신성은 그 유혹을 이겨냅니다.

 

예수님의 인간성과 신성을 깊게 묵상했던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서 이렇게 천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시며 참 하느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들은 비록 약한 인간입니다만 하느님의 생명의 숨을 쉬는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놀라운 빛의 모습으로 변화하십니다.

인간성 안에 갇혀있던 신성의 모습이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숨겨놓으신 신성의 거룩한 모습도 때가 되면 드러날 것입니다.

이 거룩한 신성이 우리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일은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빛입니다!"

 

십자가의 어둠을 통하여 부활의 빛이 드러납니다.

사순절은 연약한 인간성을 이기고 신성의 부활을 준비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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