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예수의 몸과 피 (마르 14,12-16.22-26)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6-03 ㅣ No.106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예수의 몸과 피 (마르 14,12-16.22-26)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주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계약의 피라고 한다. (탈출   24,3-8)
그 무렵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는 대사제로서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다고 한다. (히브 9,11-15)
형제 여러분,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음식을 드시면서,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며 당신의 몸과 피라고 하신다. (마르 14,12-16.22-26)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탈출24,3~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8)

 

모세는 탈출기 24장 6절에서 희생의 제물에서 받아 낸 '그 피'의 절반은

대접에 받아 놓고, 절반은 제단에 뿌린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창세9,4.5), 각종 제사와 계약 체결에

필수적인 요소였다(히브9,22).

 

그런 맥락에서  모세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희생의 피를 취한 것은 생명을 담보하고 그 계약을 기필코 준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반영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모세가 새로 세운 제단 위에 피의 절반을 뿌린 행동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결속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피를 통해서 계약의 백성들이 거룩하여지며,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계약 체결에 있어서 피를 뿌리는 것은 계약을 지키지 않을 때는

죽음으로써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은 반드시 계약을 지키겠다는 굳은 약속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희생의 피 절반을 거룩한 제단에 뿌렸던(6절) 모세는 이제 여러 대접에

담아 두었던 그 나머지 절반을 다시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게 된다.

 

이같은 행위는 하느님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속의 의미를 갖는 피와 접촉하게 함으로써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백성 개개인이 하느님과 계약 당사자가 된다는 자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며, 그리고 계약을 위반할 경우, 피 곧 생명으로써 그 값을 치르게 된다심판의 사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한편 생명과 거룩을 상징하는 피는 자기 죄로 죽었던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성혈을 예표하기도 한다(1요한1,7).

 

진실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모든 영혼들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고, 죽음 가운데서 벗어나

살아나며 구속의 은혜를 얻어 입게 된다(히브10,3~14).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이는'으로 번역된 '힌네'(hineh)는 원어상으로는 '보라'(behold)의 의미가 있는

불변사로서, 아래에서 언급되는 말들이 매우 중요하므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모든 말씀대로' 특별히 '이것들'(these)이라는 의미의 지시 형용사 '엘레'

(elle)란 표현까지 사용하여 이번 계약의 기초와  내용이 되는 것이, 곧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모세에게 명하셨던 바로 그 계약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탈출20,22~23,33).

 

이어서 '임마켐'(immakem; 너희와)'~와 함께'(with)란 뜻이 있는 전치사

'임'(im)과 2인칭 남성 복수 어미인 '켐'(kem)이 결합한 형태로서 '너희와 함께'

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계약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상호간에

'쌍방적인 계약'임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는 말이다. 

 

따라서 이 계약 체결식에 참여하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각자 자신이 지금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있다는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맺으신'이라고 번역된 '카라트'(karath)'자르다', '베어 버리다'

(탈출4,25)는 일차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계약'(언약)을 뜻하는 '베리트'(berit)와 함께 사용될 때에는

'계약을 맺다'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통상적으로 희생 제물을 죽이고

그 제물을 둘로 잘라 그 제물 사이로 함께 지나갈 뿐만 아니라 그 제물을

서로 나누어 먹었던 풍습을 반영하는 표현이라 하겠다(예레 34,18참조).

 

이어서 '계약의 피다'라고 번역된 '담 합베리트'(dam habberit) '계약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준하고 그 효력을 발생시키는 피'라는 의미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계약을 체결할 경우에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피를 먹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희생 제물이 된 짐승의 피(심지어 계약 당사자 양측 사람의

피를 나누어 마시기도 함)를 서로 마시거나 뿌림으로써 계약의 체결을 확고히 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서 계약 당사자는 피로써 맺어진 관계임을 공식화했고,

만일 계약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계약을 깨뜨렸을 경우, 계약 파기자의

운명이 피흘리고 죽은 그 짐승의 운명처럼 될 것이라는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당시 모세가 뿌린 희생의 피는 훗날 십자가상에서 인류의 죄악을 속량하시고, 인류에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시기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구속 성혈을 예표한다(히브10,12~14).

 

인류는 바로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로 인해 모든 죄와 허물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고, 또 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 담대히 나아가 그분과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마태26,28; 루카22,20; 히브10,10).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시기 전날 밤에

십자가상에서 바쳐지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 영혼의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기 위해 최후의 만찬 때에 성체 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탈출기 24장 8절의 말씀을 당신께 적용하신다.

 

"모두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태26,28)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22,20)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1코린11,25)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계약의 피를 의지하며 성체를 영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지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일치하는 것이며, 구원과 은혜를 입어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복음(마르14,12~16.22~26)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2~25)

 

마르코 복음 14장 22~25절까지는 유월절 식사를 하시던 도중에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의 신비적 일치를

보여 주는 그리스도교 성사의 절정이기에 공관 복음서 모두 기록하고 있으며

(마태26,26~29; 루카22,17~20), 사도 바오로도 코린토 교회의 잘못된 영성체

(모령성체)를 지적하며 성찬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언급하고 있다

(1코린11,23~26).

 

여기서 '받아라'에 해당하는 '라베테'(labete; take)의 원형 '람바노'(lambano)

앞 문장의 (빵을)'들고'로 번역된 '라본'(labon; took)의 원형과 동일하며

'손으로 잡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복수 2인칭 명령형으로 사용되어 '너희는 각자가 받아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날 십자가상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바쳐질 당신의 몸을

이렇게 성체성사를 제정하여 영혼 생명의 양식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여기서 '몸'으로 번역된 '소마'(soma; body)'시체', '살아있는 몸',

'죄에 속박된 몸' 등의 다양한 의미로 신약에서 쓰이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인 신체와 더불어 '전인'(the whole person)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내 몸이다'에 해당하는 '투토 에스틴 토 소마 무'(touto estin to soma

mou; this is my body)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누룩없는 빵이

예수님의 실제 몸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찬례때 하신 이 말씀을 신품권<神品權 ;신권(神權); 사제권;

성화권>받은 사제가 미사성제때 그대로 재현했을 때,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으로 '이는 내 몸이다'고 말하는 순간에 '빵이 예수님의 몸'(성체; 聖體)이 되는

성변화<聖變化; 실체(實體)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십자가상에서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바쳐진 예수님의 몸이 성체성사 안에서 실체적으로 현존하게 되어

미사성제안에서 사제의 거양(exaltation)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다시 바쳐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 중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셔서 당신께서 죽어

부활 승천하셔도 그 제자들과 계속 함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22,19) 하심으로써 후에도

성체성사를 통해 빵을 떼어 먹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임재,

그리고 당신의 구속 사업에 동참하고 재현하는 것임을 계시하신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14장 22절에서는 '찬미를 드리신 다음'에 해당하는

'율로게사스'(eulogesas; and blessed)가 사용되고, 마르코 복음 14장 23절에서는

'감사를 드리는 다음'에 해당하는 '유카리스테사스'(eucharistesas; gave thanks)

사용되었는데, 원형인 '율로게인'(eulogein) '유카리스테인'(eucharistein)

여기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원래의 뜻을 살펴보면, '감사'(eucharistia; 여기서 '성체성사'라는 말이

유래하였음)는 받은 은혜에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고, '찬미'(eulogia)

그런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밖으로 드러내어

외적 영광을 기린다 뜻으로서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편, 마르코 복음 14장 24절의 원문에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제외하면

'이것은 ~나의 피 곧 계약의 피다'에 해당하는 '투토 에스틴 토 하이마 무 테스

디아테케스'(touto estin to haima mou tes diathekes; 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로 나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포도주가 계약을 확정짓기 위하여

그 표시로 흘리는 예수님 당신 자신의 피라는 말이다.

 

구약에 모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계약을 중재하면서

소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24,8)라고 선언하였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는 것을

확정하는 계약을 세우면서,확정의 표로서 소의 피가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속하신 구속주(구원자)이신 예수님

당신 자신과 그 구속의 계약에 동참하는 사람 사이에 그 구속의 계약을

확정하는 표로서 당신 자신의 피를 언급하신다.

 

여기서 '피'에 해당하는 '하이마'(haima; blood)라는 단어는 계약을 확정짓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예수님 당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일이 따른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실 미사성제의 성찬의 전례 안에서 '빵''포도주''예수님의 살(몸)과 피'

따로 축성하는 자체가 몸과 피의 분리라는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한다.

 

신품권을 가진 사제가 성찬의 전례 안에서 '이는 내 피'라고 하는 순간에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으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성혈)로 실체 변화가

이루어져 다시 아버지 하느님께 거양되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14장 24절'많은 사람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휘페르 폴론'

(hyper pollon; for many)에서 '많은 사람'으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의 원형 '폴리스'(polis)는 '다수의'라는 의미의 형용사이지만,

여기서는 명사적 의미로 쓰였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모든 사람'으로 번역이 가능한데, 이때 '모든 사람'이란

모든 인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계약에 동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 '위하여'로 번역된 '휘페르'(hyper; for)'~을 위하여', '~을 대신하여'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이며, 여기처럼 소유격과 함께 쓰인다.

 

따라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뜻은 '많은 사람,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 계약에

동참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라는 의미로 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죄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피흘림이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흘리는 '대속적 희생'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며, 이사야서 53장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예언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흘리는'에 해당하는 '에크퀸노메논'(ekchynnomenon; is shed;

is poured out)'쏟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크케오'(ekcheo)의 수동태

현재 분사로서 '외상에 의해 현재 쏟아져 나오고 있는'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 현재 분사 시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흘림의 효과가 예수님 당시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계시한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2000여년 동안 축성된 성체와 성혈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 육신(인성; 人性)과 천주성(신성; 神性)이 참으로 온전히

실체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현존하고 있음을 믿어 오고 증거해 왔다.

 

끝으로, 마르코 15장 25절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는 것을

이번으로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선언한 내용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번 유월절

만찬을 끝낸 직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면, 이 땅에서 가지던 성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신랑을 맞이하는 혼인 잔치가 베풀어질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분과 더불어 그 혼인 잔치의 축제에서

먹고 마실 것(묵시19,6~7)을 암시하고 있다.

 

 

 

최후만찬 


 예수께서는 공생활 3년을 마칠 무렵 그 당시의 관습대로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다.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같이 하기로 하셨다, 그것은 평소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루가 22:15).

예수께서는 ’만찬 도중에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예식을 하시다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26:26).

식사를 마치시고 포도주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내 피를 흘리는 것이다"(루가 22:20) 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 하시며 마시도록 권하였다.

이로써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새로운 계약을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것이다.
사도들에게 파스카 축제를 같이 하기로 한 이유는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한 새로운 계약에 제자들을 참여시키고 그들 제자들로 하여금 ’이 예(禮)를’ 영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미사성제(성체제의)는 영적 생명을 위한 양식이고 천상의 파스카 잔치의 전신인 것이다.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파스카(최후만찬)를 비교해 보면 그 뜻이 확실해진다.
구약의 파스카- 어린양의 희생 · 양고기(음식) · 양의 피(해방의 표시) · 노예생활에서 해방(육체적)
신약의 파스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 그리스도의 몸(빵, 음식) · 그리스도의 피(포도주, 새로운 계약) ·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영생)
이렇게 비교해 볼 때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최후만찬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파스카는 상징적이고 현세적 생명을 말하며 신약의 최후만찬은 실체적이고 영생을 위한 것이다.
또한 구약은 신약의 준비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한 해방, 즉 죄와 죽음에서 벗어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신약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희생되시고 ’모든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영적 양식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신약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의 혈제를 피 흐르지 않는 제사
즉 빵과 포도주의 형태 안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것이 바로 미사성제(성체성사, 성체제의)이다.


 

 


<성체성사>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르 14,22-26).”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라는 당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또 당신 자신을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주시려고,

최후의 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켜 세우신 성사입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성체성사에 참여합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일을 기념하고,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과 모든 것을 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또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사랑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성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3-29).”


바오로 사도의 말에는,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실제로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켰다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가 진짜로 예수님의 몸이라고,

즉 성체성사는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 몸”, “내 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실제 몸과 피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몸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예수님의 몸이라고 ‘믿기 때문에’ 받아먹는 것입니다.

생각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만일에 믿지 않는다면, 성체를 받아먹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고,

성체를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빵과 포도주로 남아 있는데,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지난 이천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던 질문입니다.

신학자들은 ‘실체 변화’ 라는 이론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애를 쓰지만,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론 자체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성체성사는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고, 사랑의 영역입니다.

신앙과 사랑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사랑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셨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에 당신의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면,

받아먹는 일에는 별로 차이가 없겠지만, 한 번의 사건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을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심으로써

날마다 성체성사가 지속되게 해 주셨고,

또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당신의 사랑으로 변화되게 해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에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우리가 영성체를 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전한다.’ 라는 말은 ‘증언한다.’, ‘동참한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영성체는 예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먹는 일이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입니다.

만일에, 믿음은 있는데 사랑은 없다면, 그런 경우에도 역시

영성체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성체를 모독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성체와 성혈이 실제로 주님의 몸과 피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고,

영성체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 안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체성사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신앙인의 삶’입니다.

죄를 지은 상태에서, 또는 죄를 짓고 있는 상태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큰 죄입니다.

(죄가 있다면 영성체를 하기 전에 먼저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라고 말씀하셨고,

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성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거룩한 일이고,

이 거룩한 일은 ‘거룩한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는 내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일이고,

동시에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시도록 능동적으로 예수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머무르다.’는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 또는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영성체는 우리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성을 다 쏟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