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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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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18 ㅣ No.74

[새 교황 프란치스코] 새 교황은 누구인가?

가난한 이들 편에서 사회 정의 실현 위해 헌신



- 지난 2007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모습.


[외신종합] 지난 2005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Jorge Mario Bergoglio,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선출된 라칭거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교황 후보였다.

당시 그는 독일에서 수학한 뒤 이룬 빼어난 학문적 업적으로 유명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 당시 사회적 양심의 마지막 보루로 가난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됐었다. 특히 그의 소박한 삶은 높은 평판을 받았는데, 주교 관저에 머물지 않고 아주 소박한 아파트에 살면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직접 음식을 조리하며 생활했다. 그를 접한 많은 이들은 그의 이러한 소박하고 서민적인 생활, 교구민들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그를 ‘파더 호르헤’라고 부르곤 했다.


■ ‘파더 호르헤’, 소박하고 서민적인 삶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한 철도 노동자 가정에서 1935년 태어났다. 그는 원래 화학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았으며, 문학과 심리학, 철학 등을 전공했다.

70년대와 80년대는 아르헨티나에서 군부 독재가 자행되고 있던 시기였고, 당시 예수회의 지도층을 비롯해 많은 사제들이 진보적인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전통적인 이냐시오 영성의 범주를 견지하면서,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본당과 군종 사목에 매진하도록 예수회를 이끌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비교적 중도적인 노선을 걷는 것으로 분석된다. 교회 안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는 사안에 따라 진보적, 혹은 보수적인 노선을 보인다.

사회 정의에 관한 한 그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배려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사목 방향에 있어서 그는 사회 정의의 측면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만 사람들의 삶의 조건은 가장 덜 발전했습니다.”

지난 2007년 한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모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화의 불공평한 분배는 사회악을 양산하고,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까지 이르게 하고 너무나 많은 우리 형제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 사회 정의에 진보적 입장, 전통적 생명 윤리 지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그러나 성윤리,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나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본적인 윤리적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낙태, 동성애, 피임 등에 대해서 그는 전통적인 교회 가르침의 입장을 견지한다.

지난 2010년 아르헨티나가 동성애 혼인을 처음으로 합법화했을 때, 그는 전국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이 새 법안에 대해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쳐달라고 신자들에게 말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 “심각하게 가정을 해칠 것”이라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성애 커플에게 자녀 입양을 허용할 경우, 이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그들 부모를 통해 부여해 주신 인간적 성숙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낙태 반대에 대한 그의 입장도 마찬가지로 강경하다. 2006년 조건부 낙태 허용법안이 제출됐을 때, 그는 정부를 향해 인간 존엄성 보호에 대한 의지가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교회 전체가 “인간 존엄성 수호에 모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이즈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깊은 동정과 연민을 보인다. 2001년 그는 한 에이즈 환자 병동을 방문해 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12명의 환자들의 발을 씻어주기도 했다.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남미 최악의 반유다테러 행위로 기록되는 유다교 연맹 7층 건물 폭탄 테러 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이 범죄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유다교에 대한 심심한 유감과 유다교에 대한 형제애적인 친밀함 등을 표현함으로써 종교간 대화와 보편적 인류애에 대해 인상적인 태도를 보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베르고글리오를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눈여겨 볼 것은 그가 성직자들의 특권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고, 사목적 현실에 대해서 현실 감각이 없거나 무감각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2년 9월, 그는 합법적 혼인을 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에 대한 세례를 거부한 한 신부에 대해서 신랄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이러한 결정은 “완고하고 가식적인 신-성직주의(neo-clericalism)”라고까지 말했다.


■ 제3세계에 대한 사목적 관심 기대

이번 콘클라베에서 베르고글리오는 지난 2005년 교황 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많은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비록 베네딕토 16세가 된 라칭거 추기경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지지였지만, 여전히 그러한 지지의 범위는 다른 후보들보다 광범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닌 특별한 장점 중의 하나는 그 스스로 이탈리아 출신 이주민이었기 때문에, 제1세계 출신이면서도 제3세계에 속한 사람으로서의 성장 과정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라틴 아메리카 신자로서 독일에서 공부했다. 또한 진정으로 국제적인 수도회 조직인 예수회 소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 지역의 사회적, 교회적 현실을 두루 꿰고 있으며, 진심으로 공감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다.

또 하나 그의 장점은 교회 내의 보수적 진영과 중도적 진영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양측의 입장 차이를 중재하거나, 상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목 현실에 대한 민감성, 학문적 깊이, 온건한 성품, 기도와 묵상의 깊이, 그리고 진정으로 영성적인 삶과 영성 등은 교회 안의 어느 분야에서나 깊은 존경과 공감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매우 탁월한 선교사적 기질과 성품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는 최근 “우리는 자족적인 교회의 영성적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길거리로 나서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때로는 우려할 만한 사고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교회가 자기 자신 안에 갇혀서 살아간다면, 교회는 노후해질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고통을 겪는 교회, 그리고 집안에 갇혀서 병에 걸려 시름하는 교회,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없이 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약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S.J.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S.J. : society of Jesus (예수회를 뜻하는 약자)

▲ 출생일 : 1936. 12. 17
▲ 사제수품 : 1969. 12. 13
▲ 주교임명 : 1992. 06. 27
▲ 추기경 서임 : 2001. 02. 21
▲ 교황 선출 : 2013. 03. 13

1967년에서 1970년까지 산 미구엘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69년 12월 13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1992년 5월 20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6월 27일 주교로 서품되었다. 1997년 6월 3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어 1998년 2월 28일 추기경 안토니오 콰라치노에 이어 대교구장에 취임하였다.

2005년 11월 8일부터 2011년 11월 8일까지 아르헨티나의 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 2월 21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18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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